소크라테스 Socrates(기원전 470/469~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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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소피스트(sophist, 궤변론자)들의 반대자이며,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7)과아리스토텔레스(Ais-toteles, 기원전 384~322)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그는 도덕과 진리에 관한 살아 있는 대화의 철학을 시도한철학자로서 플라톤의스승이며, 자신이 주장한 철학을 실천하며살았던 철학자 이전에참된 인간의 모범으로칭송받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직접 접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이 하나도 전해 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일생과 철학 사상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 즉 플라 톤 · 아리스토텔레스 · 크세노폰(Xenophon, 기원전 430~ 354) · 희극 작가였던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기원 전 450~386)의 작품들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에 의해서 그려지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얼마만큼 역사 성이 있는지,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인물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들을 통하여 소크라테스에 관한 몇 가지 사항들을 알 수 있다. 〔삶과 철학〕 기원전 470/469년경 아테네에서 조각가 인 아버지 소프로니스쿠스(Sophronicus)와 조산원이었던 어머니 페나레테(Phaenarete)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는 약간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흔히 악처(惡妻)로 여 겨지는 크산티페(Xantippe)라는 이름의 아내와 3명의 아 들이 있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초기 그리스 자연 철 학자들과는 달리 '자연' 이 아닌 '인간' 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였으며, 아테네 사람 누구와 만나든지 장소를 가 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인간사와 관련된 윤리적인 주제를 가지고 철학적인 토론을 벌이곤 하였다. 그가 철학하는 방법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 고 하면서 자신의 직접 적인 해답은 제시하지 않고, 그의 대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박술(elenchus)에 근거해서 계속 상대방에게 질문 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즉 무 지(無知)의 지(知)' 로부터 출발하여, 반어법(反語法, eipoveiox, irony)을 이용해서 겉보기에 지나지 않는 상대 방의 지식을 폭로하고, 자신의 영혼 안에서 근본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던 진리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었다.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전언(傳言)을 통하여 소크라테 스의 인품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찾을 수가 있는 데, 이에 따르면 포티데아(Potidaea) , 암피폴리스(Amphipolis) 그리고 델리움(Delium) 등의 전투에 참가했을 때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엄청난 인내심과 용기를 보였다고 한다. 또 기원전 406년에 아르지누세(Arginusae) 해전에서 아테네 함대를 지휘하던 장군들이 전투 후 에 생존자들과 아군의 시체를 거두어 오지 못한 죄로 고 발당하여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재판을 주재한 50인 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10명의 장군들이 함께 재 판을 당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유일하게 반대하였 던 사람이었다. 또한 30인 독재 정권이 아테네에 들어섰 을 때 부유한 외국인 거류자인 살라미스(Salamis)의 레온 (Leon)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고도 집으로 혼자 돌아 감으로써 독재 정권에 간접적으로 저항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곧은 성품을 지닌 그였지만 기원전 399년에 아니토스 (Anytos), , 멜레토스(Meletos) 그리고 리콘(Licon)에 의해 신(神)에 대한 불경죄와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아테네 법정에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플 라톤의 작품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cratis)이나 《크리톤》(Criton) 또는 《파이돈》(Phaidon)에서 나오는 것 처럼,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감옥 에서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것을 거 부하고 철학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 하면서 70세의 나이로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철학 사상〕 논리적 방법 :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 의 상대주의에 반대하고 변화하는 것들의 근거인 불변하 며 항시적이고 영원한 그리고 절대적인 실재를 추구하여 야 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그는 이러한 절대적인 실재, 즉 선 · 정의 · 용기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찾기 위하여 일종의 '질문-대답' 의 형식에 따른 대화론적인 방법을 발전시켰다. 즉 "정의란 무엇인가?" 또는 "용기란 무엇 인가?" 와 같은 "X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대화의 상 대자에게 묻고 그 상대자의 답변을 다시 논박하는 식의 대화를 계속 진행시켜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의와 용기 자체의 정의(定義)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접근 과정에서 필요한 한 가지는 자기 성찰인데, 이는 자 기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다고 확신한 것이 실제로는 참 된 진리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이는 델피 신탁의 격언인 "너 자신을 알라" 에서 영감 을 얻은 철학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방법 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정하는 것처럼 '귀납적 논증'(ἐπακτίκοι λόγοι, inductive arguments)과 '보편적 정의'(ὁρίζεσθαι καθόλου, universal definitions) 두 가지이다. 귀 납적 논증은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관찰부터 시작하여 그 근저에 동일하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형상(εἶδος)을 발 견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고 방법이다. 그는 이러한 보편 적인 정의를 확보한 후에 이것을 다시 윤리적인 삶 속에 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것들을 규정 · 한계 짓는 것에 사 용하였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변화하는 다양한 개체들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순수하고 절대적인 것에 도달 할 수 있는가 하는 논리적인 방법에 관심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가치론 : 소크라테스의 주된 관심은 자연 철학이 아니 라 인간의 삶과 관련된 가치 문제였다. 이러한 가치 문제 는 다시 말해서 윤리학의 문제이며, '선' (ἀγαθόν) · 덕 (ἀρετή) · '행복' (εὐδαιμονία)과 같은 주제를 그 대상으 로 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은 행복인데, 이러한 행복은 인간이 덕에따른 생활을 할 때 성취되는 것이라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덕의 실천은그 덕이 무엇인지를 알 때 가능하다는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덕은 곧 지식이기에 악행은 오로지 무지에 의해 행해지며, 따라서 어느 누구도 알면서악행을 고의로 행하지는 않는 것으로간주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인간이 참된 선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있음을 강조하였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그것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항상 그것에 의거해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국가》(Politeia)에서 "아는 자(ὁ επιστήμων)는 현명하고(σοφός) ···또 아는 자는 선하다(ἀγαθός)"라고 말하였 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지덕(知德) 일 치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절대적으로 올 바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행하고자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 서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특히 감정에 의한 절제심의 결 여로 악행을 고의적으로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소크라테스의 정의와 용기와 같은 덕에 대한 절대적 인 앎이 곧 정의롭고 용기 있게 되기 위한 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필요 조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소위 '지덕 일치설' 을 완전 히 그릇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정치적 견해 : 소크라테스의 정치관은 그의 민주주의 에 대한 태도와 관련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논의된 주제이다. 흔히 그는 신에 대한 불경죄와 아테네 청년들 을 타락시켰다는 두 가지 이유로 아테네 법정에 기소된 것으로 플라톤의 작품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의 분위기 속에서 신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자유롭게 인정 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신에 대한 불경죄는 실질적인 죄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 역시 소크라테스가 어떤 철학적인 내용을 가르쳤기 때문 에 그러했던 것인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실제로 소크 라테스에 대한 죄명은 종교적 ·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 치적인 이유로 기소되었다고 보는 것이 현대의 많은 학 자들에 의해 더 설득력을 갖고 받아들여지고 있다(특히 I.F. Stone). 소크라테스의 정치관은 그의 '아는 자의 통치'(the rule by the one who knows)라는 사상에 기초해서 주장 되고 있는데, 이는 지식(Επιστήμη)을 소유한 자가 통치 하고 대중은 그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마치 양 떼가 목자를 따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는 공동체의 문제에 신발 장수 · 목수 · 농부와 같은 대중 이 민회(民會)에 참여하여 국사(國事)를 결정하는 것을 우중(偶衆)의 정치라며 민주주의를 비판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입장은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와 《국가》에서 개진되고 있는데, 이는 민주주 의를 지지한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8~415)의 정치관과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언 급을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 는데, 예를 들어 포퍼(K.R. Popper, 1902~ )는 소크라테스 의 철학을 그의 제자 플라톤의 철학과 구별하면서 소크 라테스를 반민주주의자로 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였다.그러나 바커 (E. Barker)와 스톤(I.F. Stone)은 소크라테스를 반민주주의자로 보았다.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가 '아는 자의 통치' 라는 정치관에 의거해서, 참된 지식이 아니라 일종의 '의견' (δόξα)만을 갖고 있는 대중이 모든 폴리스 (polis,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의 문제를 결정하는 민주주 의에 반대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으 로 여겨진다. 소크라테스의 정치관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는 불의에 복종하지 말고 저항할 것을 주장한 반면에 《크리톤》에서 는 국가의 명령이 불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그의 준법 정신과 관 련하여 그가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일반 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언급을 하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영혼론 :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훌륭한 삶은 '영혼'(ψυχή)이 '육체' (σῶμα)를 잘 통제할 때 가능하다. 육체 는 일종의 수단으로서 영혼에 복종하여야 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자는 자신의 영혼이 무엇인지를 아 는 자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작품 《파이돈》에서 일종의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는데, 철학자는 자신의 영 혼을 죽음을 통해 육체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언급하 였다. 이러한 그의 영혼관은 그가 왜 감옥에서 탈출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였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
[영 향]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그의 철학은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또 그 이후 서양 사상에 다방면에 걸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소위 소크라테스 학파라고 불리는 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강조하 였는데, 메가라(Megara) 학파의 에우클레이데스(Eucleides, 기원전 450~380)는 엘레아(Elea) 학파와 소크라테스 의 선 사상을 종합하려고 하였고, 키니코스(Kynikos) 학 파의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기원전 445~366)는 물질 적인 필요를 극도로 경멸하고 소크라테스의 덕 사상에 기초한 절대적인 자족을 강조하였다. 또 키레네(Kyrene) 학파를 창시한 아리스립푸스(Aristippus, 기원전 435~350) 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가치는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신체적인 감각 에서 느낄 수 있는 쾌락이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소크라 테스의 철학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인 크 세노폰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유스티노(Justinus, 100?~165?)는 소크라테스를 그 리스도교 이전 시기의 순교자로 간주하였고, 에라스무스 (D. Erasmus, 1466~1536)는 그를 성인이라고 불렀다. 그러 나 니체(F. Nietzsche, 1844~1900)는 소크라테스의 극단적 인 이성주의를 지적하면서, 그가 아폴로(Apollo)적인 이 성주의와 디오니소스(Dionysos)적인 비이성주의의 조화를 깨뜨림으로써 서유럽의 몰락을 가져온 철학자라고 비판하였다. (→ 그리스 철학)
※ 참고문헌 Xenophon, Memorabilia, Loeb Classical Library, Harvard Univ. Press, 1923/ Aristophanes, Clouds, Loeb Classical Library, Harvard Univ. Press, 1967/ Plato, Apology, Crito, Phaedo, Loeb Classical Library, Harvard Uinv. Press, 1971/ Aristotle, Metaphysica, Ethica Nicomacheia, Loeb Classical Library, Harvard Uinv. Press, 1968/ A.E. Taylor, Socrates, London, 1935/ A. Chroust, Man and Myth : The Two Socratic Apologies of Xenophon, London, 19571 W.K.C. 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 3, Cambridge Univ. Press, 1969/ E. Barker, The Political Thought of Plato and Aristotle, Dover Publications, London, 1906/ E. Zeller, Socrates and the Socratic Schools, trans. by O.J. Reichel, New York, Russell & Russell, 1962/ K.R.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Routledge, London, 1993/ I.F. Stone, The Trial ofSocrates, Anchor Books, 1988. 〔孫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