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로니오, 예루살렘의(550~638)

Sophronius Hierosolymit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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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교의학자. 설교가. 성인전작가. 시인. 소피스트(ὁ σοφιστής, 궤변론자)라고도 불렸다. 축일은 3월 11일.
550년경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이름에 붙은 소피스트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수사학 교수로 활동한 것 같다. 그 후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성 테오도시오(Theodosius) 수도원의 수도자가 된 그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수도자 모스쿠스(Joannes Moschus, ?~619)와 함께 장기간에 걸쳐 여행을 하였으며, 특히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로마에도 갔다. 모스쿠스가 619년에 로마에서 사망하자 소프로니오는 팔레스티나로 돌아왔다가 그 후 다시 이집트 여행 길에 올랐다.
소프로니오는 633년부터 '그리스도 단의설' (單意說, monotheletismus)에 관한 논쟁에 관여하였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 단의설을 주장한 총대주교 치릴루스(Cyrillus,631~642)에게 칼체돈 공의회(451)의 결정을 변론하기도 하였다. 얼마 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이자 단의설 논쟁의 장본인인 세르지우스(Sergius, 610~638)와 토론하 기 위하여 그곳으로 간 그는, 존경받는 수도자로서 뛰어난 학식과 신심을 지녀 634년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곧바로 단의설을 반박하는 교회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의 생애 말년인 637년에는 아랍인들이 침입하여 칼리프 오마르(Caliph Umar)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는데, 이때 소프로니오는 팔레스티나에서 행해진 잔인한 행위들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성지(聖地)가 정복된 다음해인 638년에 사망하였다.
〔작 품〕 소프로니오는 교의에 관한 작품들과 많은 문학적 유산을 남겼다. 그의 풍부한 문학 작품들은 모두 마이(Angelo Mai, 1782~1854) 추기경에 의해 수집되었지만,전부가 그의 작품은 아니다(PG 87, 3, 3115. 4014).
단의설 논박서 : 소프로니오는 세르지우스와 단의설 논쟁을 벌이던 시기에 단의설을 반박하는 작품을 저술하
였는데,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그는 단의설의 모호성을 지적하고, 두 활력 즉 신성과 인성에 관한 가르침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600개의 교부 증언들을 인용하였다. 이 방대한 선집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일부 내용이 현재의 팔레스티나에 위치한 도라의 주교 스테파노(Stephanus)가 649년에 개최된 라테란 교회 회의에 제출한 청원서에 인용되어 전해지고 있다. 또 그는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임명된 후 발표한(Mansi 11, 461. 510) <교회 회의 서간>(Epistula Synodica, 또는 <착좌 서간>)에서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 가운데 각각의 본성은 고유의 활력 또는 활동력을 지닌다는 가르침을 자세히 논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정식들(fommula)을 사용하지는 않았다(Mansi 11, 461 ~510 : PG 87, 3, 3125~3146) .
성인전 : 소프로니오는 교의 논쟁에 참여하기 이전까지는 성인전 작가와 시인으로 활동하였었다. 당시의 유명한 의사가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황제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여 메누티스에 묻힌 이집트의 치루스와 요한 순교자의 무덤에서 눈병에 걸린 사람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거짓이라고 비웃은 이야기를 듣고 저술한책이 바로 608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성 치루스와 성 요한의 순교에 대한 찬가》이다(PG 87, 3, 3379~3676; 참조 : BHG 475, 479). 이 작품 제1부에는 성인들의 생애와 수난, 알렉산드리아에서의 매장, 치릴루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412~44)로 있을 때 이루어진 메누티스로의 이장(移葬)이 서술되어 있고, 제2부에서는 성인들의 간구로 이루어진 기적의 치유를 서술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자 자신의 치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마이 추기경이 소프로니오의 작품으로 출간한《성 치루스와 성 요한의 생애》(PG 87, 3, 3677~3696)는소프로니오의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알렉산드리아에서 창녀로 생활하다가 요르단 동쪽의 사막에서 수십 년 동안 극도의 금욕적인 생활로 회개한 마리아 전기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생애》도 그의 작품으로 출간되었으나, 그 친저성 역시 의심을 받고 있다(PG87, 3, 3697~3726). 소프로니오가 모스쿠스와 함께 여러해에 걸쳐 집필한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요한(JoannesEleemosynarius, +619)을 찬양한 작품은 소실되었으나, 그 일부 내용이 시메온 메타프라스테(Symeon Metaphraste)에 의하여 편집된 《성 요한 엘레모시나리우스의 생애》(PG114, 895~966)의 첫 장에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시 :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5세기부터 장음절과 단음절을 구분하였고, 음절을 계산하는 운율론은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자들 특히 수사학자들은 여전히 고대의 운율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소프로니오가 남긴 시들 중 대부분도 이러한 운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스의 서정 시인 아나크레온(Anacreon, +570)의 모음집(Ανα-κρεόντεια, PG 87, 3, 3733~3838)과 서정시적인 송가는 소프로니오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마이 추기경과 그의 동료 마트란가(P.Maranga)가 출간한 필사본에는 23편의 송가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14~16번은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빠져 있다. 그러나 아랍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를 다른 14번은 에르하르트(L. Ehrhard)가 추가한 것이다. 대부분의 그의 시는 교회의 축일을 찬미하고 있으나 일정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른데, 일반적으로 다정다감한 시인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박학한 교의학자의 명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사업 · 십자가 · 부활 · 승천 · 단식의 유용성 등을 주제로 삼고 있는 234편의 송가로 구성된 《트리오디움》(Triodium, PG 87, 3839~3982)의 저자는 소프로니오가 아니라 9세기의 찬가 작가인 요셉임이 파라니카스(Para-nikas)에 의해 증명되었다.
설교들 : 소프로니오가 총대주교로 있을 당시에 행해진 설교 가운데 9편이 전해지고 있지만(PG 87, 3, 3201~3364), 일부는 라틴어 번역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리 고 이 9편의 설교 가운데 사도 요한에 관한 찬가는 짧은 두 개의 단편뿐이다. 소프로니오의 거의 모든 설교는 교회 축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풍부한 교의적 내용과 연설체로 표현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관한 설교 (PG3217~3288)는 내적인 가치가 특히 탁월하다. 《그리스 교부 선집》(Series Patrologia Greca)에 라틴어로만 수록된 두 개의 설교가 우세너(Usener)에 의해 그리스 원문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내용은 성탄에 관한 것과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이다. 첫 번째 설교는 아랍인들이 이미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베들레헴이 점령된 634년 12월 25일에 행해졌기 때문에, 예수 성탄 축일을 평상시처럼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서 거행하지 못하였던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세너는 피시디아 출신의 시인 그레고리우스(Gregomis)의 이름으로 전해진 페르시아 순교자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Magundat, +628)에 대한 설교도(PG 92, 1679~ 1730) 소프로니오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 그리스도 단의설)
※ 참고문헌  0.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tkrichlichen Literatur, Bd. 5, Freiburg im Breisgau, 1932/ B. Altaner · A. Stuiber, Patrologie, Frei-burg, 1978/ Chr. von Schönborn, Sophrone de Jérusalem. Vie monastique et confession dogamtique, Paris, 1972/ T. Spidik, Dictionnaire encyclopédique du chrisitamisme, vol. 2, Paris, 1990. 〔河聖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