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부과될 죄나 재앙을 감면받기 위한 의식(儀式)에서 사람 대신 그 죄를 옮겨 받고 바쳐지는 희생 제물. 일반적으로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희생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속죄 양'이라고 하지만, 이는 이러한 성격의 희생 제물들을 대표하는 명칭일 뿐 실제로는 양뿐만 아니라 염소 · 소 · 돼지 · 비둘기 등 다른 동물들을 사용하기도 하 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 모양을 한 모형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을 속죄 양으로 사용한 예도 있었다. 종교학적 용어로는 일반 적으로 속죄 양보다는 '속죄 염소' (emissarius, scapegoat)가 이 같은 뜻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개념에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다른 의식, 특히 희생 제의(犧牲祭儀)에서 바치는 제물과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이다.
[명칭의 유래] 속죄 양 혹은 속죄 염소라는 명칭은 구약성서의 레위기 16장에서 유래한다. 레위기 16장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속죄 예식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
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속죄의 제물은 양뿐만 아니라 황소와 염소도 있었다. 이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속죄의 날에 두 마리의 염소를 잡아 한 마리는 번제물로 야훼 하느님께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살려 놓은 상태에서 그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지은 죄는 모두 염소에게로 옮겨지고, 그 염소를 광야로 내보냄으로써 사람의 죄는 사함을 받는다고 믿었다.
〔개념의 구분〕 사람의 죄를 대신 전해 받고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속죄 양의 개념은 일단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는 형태만 보면 일반적인 희생 제의나 화해 의식(和解儀式)이나 정화 의식(淨化儀式) 등에서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흔히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구분하여 굳이 속죄 양이나 속죄 염소라는 개념을 설정하게 된 것은 일반적인 희생 제의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속죄 양과 일반적인 제물의 구분은 그 희생 제물을 통하여 무엇을 의도하는가, 또는 그 희생되는 제물이 결과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인 희생 제의나 화해 의식 등에서 동물 등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그 제물을 통하여 신적 존재를 기쁘게 하거나 그와의 화해를 의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희생 제물은 단지 선물과도 같은 의미만을 지닌다. 물론 제사를 바치는 사람의 정성이 그 희생 제물에 실리기는 하지만, 그 희생 제물은 어디까지나 신적 존재를 기쁘게 하기 위한 선물이라는 '객체적 존재' 로서의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즉 희생 제물과 제사를 바치는 사람 사이의 어떤 인격적 연결성을 상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의 희생 제물은 동물만이 아니라 곡식이나 기타 사람의 정성을 표시할 수 있는 여러 물건들을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속죄 양 혹은 속죄 염소라는 개념은 단순히 신적 존재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 사람의 죄를 대신 떠맡아 신적 존재에게 그 젖값을 치르는 '주체적 존재' 라는 의미가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직접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양이나 염소 등 다른 대상을 통하여 대신 치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지은 죄를 그 대상에게 '전이' (轉移)시키고 그 대상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희생 제물은 단순히 신에게 제공되는 객체적 선물로서가 아니라, 제사를 바치는 사람을 대신한다는 일종의 인격적 연결이 이루어진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속죄 의식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속죄 양이나 속죄 염소가 바로 그 제사를 바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속죄 의식의 또 다른 종류로 정화 의식이 있는데, 이 의식 역시 사람이 지은 죄나 오염된 부분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한다는 점에서 속죄 양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화의식에서는 물 · 불 · 모래 등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고, 그 도구들이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사람의 죄를 제거하는 것이므로, 속죄 양에서처럼 죄의 전이와 제사를 바치는 사람과의 인격적 연결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양한 형태〕 사람의 죄를 옮겨 받고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죄의 대가를 치르는 속죄 양의 개념은 비록 구체적인 대상물이 어떤 것인가 하는 차이는 있지만, 여러 문화권과 종교 전통에서 그 예들을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특별히 정해진 속죄일에 정기적으로 이런 의식을 행하기도 하고, 급작스러운 재앙이 발생하였거나 예상될 때 그 재앙을 막기 위하여 속죄 양의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속죄 양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가장 잘 알려진 양과 염소 이외에도 돼지나 소 등의 동물을 사용하는 경우와 나무 · 돌 · 점토 등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포로나 죄인 등 실제 사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사람을 속죄 양으로 사용한 예로는 고대 그리스의 타르겔리아(Thargeia) 축제가 유명하다. 타르겔리아 축제는 매년 5월 6~7일에 행해진 것으로, 본래는 성격 상 일종의 수확제(收穫祭)였다. 한 해의 초기에 이루어진 수확들에 대해 감사하기 위한 것으로, 그 기원과 영역에 있어 농경 축제에 해당된다. 이러한 수확제가 시간이흐름에 따라 정화와 속죄의 의식을 포함하게 되었고, 점차 본래의 농경제(農耕祭)로서의 성격이 모호해지게 된 것이다. 타르겔리아 축제가 속죄 양 개념과 연관된 것은 '파르마코이' (φαρμακοί)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축제 기간에 아테네 사람들은 파르마코이라고 부르는 두 사람의 희생 제물을 선정하여 그들에게 아테네 사람들의 모든 죄를 옮기고 그들을 도시 밖으로 내쫓는 의식을 행하였다. 도시 밖으로 몰아낸 그 두 사람을 돌로 쳐죽이고 불에 태워 버렸다고도 하는데, 이런 의식을 통하여 아테네의 모든 죄는 속죄 양인 두 사람으로 인해 사라져 버리고 아테네는 깨끗해졌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때 파르마코이로 선정되는 사람은 단지 포로나 천민, 불구자 등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성(神聖)을 지닌 사람, 고귀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파르마코이로 선정된 예도 있었다.
이와 유사한 예로 고대 히타이트(Hittites) 사람들의 의식이 있다. 기원전 14~13세기 사이에 히타이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이나 불행을 동물이나 다른 사람(대부분 전쟁 포로)에게 전가하여 그 동물이나 사람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들은 무사해지기를 바라는 의식을 행하였다. 특히 그들은 점술이나 신탁에 의해 자신들의 왕에게 흉조(凶兆)가 있음이 나타나면 왕을 대신할 사람을 선정해서 그에게 모든 불행의 가능성을 전가하여 그를 나라 밖으로 내쫓는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왕은 흉조로부터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속죄 양 개념과 관련된 또 하나의 흥미 있는 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행한 의식이다. 예로부터 뿔 달린 동물들이 사악(邪惡)한 영력(靈力)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뿔 달린 동물들을 적절히 다루어 사용하기만 하면 효력 있는 속죄 양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환자의 머리 위에 뿔 달린 동물의 머리를 놓고, 환자의 아픈 부위와 같은 동물의 부위를 도려내는 의식을 행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환자의 병이 그 동물에게 옮겨져 환자는 낫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의식에서는 실제 동물이 아닌 동물 모양으로 만든 모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속죄 양 개념에 해당하는 다른 예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앞서 예로 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속죄 양 의식이 가장 보편적이고 잘 알려진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의 속죄 양 개념은 훗날 그리스도교에서 예수가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였다는 믿음, 즉 예수가 전 인류의 구을 위한 속죄 양이 되었다는 믿음으로 연결되었기 때문 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대속)
※ 참고문헌 J. Dyneley Prince, Scapegoat,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ed. by James Hastings, New York, 1911/ James Frazer, The Scapegoat, London, 1913/ Joseph Henninger, Scapegoat,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ed. by Mircea Eliade, New York, 1987/ 小口偉一 · 堀一郎 監修, 《宗敎學辭典》, 東京大學出版會, 1989. 〔吳智燮〕
속죄 양
贖罪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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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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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양은 사람 대신 그 죄를 옮겨 받고 바쳐지는 희생 제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