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선지 孫 - (1820~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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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 벽지에서 선교하다가 호랑이를 만난 손선지 베드로(탁희성 작) .

산간 벽지에서 선교하다가 호랑이를 만난 손선지 베드로(탁희성 작) .

성인.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회장. 밀양 손씨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후손. 일명 성운(成云). 세례명은 베드로. 축일은 9월 20일.
1820년 충청도 임천군 팔충면(林川郡 八忠面, 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서 손달원(이냐시오)과 임 체칠리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신앙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그의 남다른 신앙심을 눈여겨본 샤스탕(Chastan, 鄭) 신부에 의해 1837년 18세의 나이로 전교 회장에 임명되었다. 김 루치아와 혼인한 뒤 1839년에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순교하여 훗날 성인이 된 한재권(요셉)이 살던 충청도 진잠 장안리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장남 손순화를 낳았다. 그 후 전라도 고산 다리실(현 완주군 비봉면 천호동)로 이사하여 지내다가 다시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담배 농사를 주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 계속공소 회장 일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12월 5일(음 10월 29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붙잡혀 정문호(바르톨로메오), 한재권과 함께 전주 감영으로 끌려갔다. 신문을 받던 중 회장임이 탄로나, 공소를 거쳐간 서양 신부와 교회 서적의 출처를 알아내려는 관헌들로부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등 회장의 직무를 다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3일(음 11월 7일)북문 밖 진터 숲정이에서, 대성동과 성지동 일대에서 체포된 5명의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47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병인박해 ; 한국 성인 ; 한재권)
※ 참고문헌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I, 천주교 전주교구, 199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김옥희,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 Ⅲ , 계성출판사,1986.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