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벽 孫小碧(1801~1840)

글자 크기
7
수를 놓는 솜씨가 뛰어났던 손소벽 막달레나(탁희성 작).

수를 놓는 솜씨가 뛰어났던 손소벽 막달레나(탁희성 작).

성인.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막달레나. 축일은 9월 20일. 성인 최창흡(崔昌洽,베드로)의 아내이자 성인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의 어머니.
1801년 서울의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태어나던 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귀양갔고, 얼마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성격이 유순하고 몸가짐이 조심스러웠으며, 바느질과 수를 놓는 솜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17세 때 최창흡과 혼인한 뒤 1821년에 콜레라가 전국으로 창궐하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았고 더욱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 이들 부부는 11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대부분 어려서 사망하고 맏딸 바르바라와 막내딸만 살아 남았다.
사위 조신철(趙信喆)이 북경에서 가져온 물건을 집에 숨겨 두었다가 1839년 5월에 발각되어 가족과 함께 체포된 손소벽은, 포도청에서 7회에 걸친 가혹한 신문과 태장(笞杖) 260도를 맞는 혹형을 받았으며, 형조에서도 3회에 걸친 형문(刑問)을 당하였으나 모두 극복하였다. 이때 그녀는 두 살짜리 막내딸을 데리고 있었는데, 모정 에 이끌려 신앙의 용기가 꺾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읍내에 사는 친척에게 딸을 맡기기까지 하였다.
손소벽은 1840년 1월 31일(음 1839년 12월 27일) 6명의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당고개〔堂峴]에서 40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최영이 ;최창흡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기해일기》 《달레 교회사》 김옥희,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 Ⅱ,계성출판사, 1986.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