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러시아에서가장 뛰어난 종교 철학자. 신학자. 시인.
〔생 애〕 1853년에 모스크바의 열심한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과 전례안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역사가이자 모스크바 대학교 교수였던 세르게이 솔로비요프(Sergei Soloviëv)이다. 솔로비요프가 훗날 그의 지혜론의 사상적 기초가 된 하느님의 지혜(sophia)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은 아홉 살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종교적 믿음을 서서히 잃어버리면서 그 시대의 사상과 물질주의, 그리고 무신론과 사회주의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철학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특히 스피노자 · 칸트 · 셸링 · 쇼펜하우어 · 콩트 등의 저술을 통하여 그들의 사상을 섭렵하였다. 이후 그는서양 철학과 일반 현대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이를 계기로 러시아 정교회로 되돌아갔다. 이어 1872년부터 모스크바의 교회 아카데미와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에서 공부하다가 1874년에 〈서양 철학 비판 : 실증주의 철학에 반대하여>(Kizis zapadnoi filosofi protivpozitivistov)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영국으로 자리를 옮겨연구를 계속하였다.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당시의 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F.M. Dostoevs-kii, 1821~1881)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젊은 철학자 솔로비요프는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1877~1878년에는 당시의 관념주의 철학을 대담하게 비판하면서 신인성(神人性, Godmanhood)에 관해 공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1880년에는 논문 <추상적 원리에 대한 비판>(Kri-tika otvlechennych nachal)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3월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2세를 암살한 이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가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이후 솔로비요프의 관심은 점차 변화하였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변화하게 하는 총체적인 능력이자 진리였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사회는 그에게 실망만안겨 주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역사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였다. 솔로비요프는 처음에 가톨릭 교회에 대해 준엄하고 부정적인 판단을 하였으나, 세계 공의회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정통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를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참 그리스도교이다. 왜냐하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가톨릭 교회관은 그에게 동방교회에서 순수하게 보존된 신성적 원리와 서방 교회에서 특별히 존중된 인성적 원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동서방 교회를 일치하도록 이끄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1896년에 솔로비요프는 러시아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가 재일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는 슬라브 비잔틴 전례의 가톨릭 신앙을 선택하였고, 1900년 7월 31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다.
〔사 상〕 신인성과 지혜 : 솔로비요프에 의하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지혜란 겸손 즉 인간과 세상을 향하여 하강하는 움직임 속에 성스러운 세계가 현현하는 것이다. 우주에 대한 관념으로서 성스러운 세계에 속하는 지혜는 하느님 안에서 이상적인 인간성이자 통일을 향해 있는 다원성이다. 지혜는 우주의 영혼이며 심지어 타락한 세계 속에서도 인류를 위한 이상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는 "로고스(logos, 말씀) 혹은 지혜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그리고 완전한 성스러움의 유기체를 표상한다" 라고 하였다. 결국 지혜는 세 가지 요소 즉 삶과 의식의 재료인 자연, 목적이자 발견해야 할 내용으로서의 성스러운 원칙, 삶과 의식의 주체로서의 인성으로 구성된다.
러시아 사상가들이 설명하는 '신인성' 이라는 용어는 한정된 그리스도론적 논의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유사하다. 솔로비요프는 성스러움과 자연 세계의관계를 '신인성' 혹은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과정' 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였고, 이를 통해 두 가지 본질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전체로서의 구원받은 인류를 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인성은 "모든 진화의 끝일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진화의 법칙이다." 혹자는 그의 신인성 개념이 신약성서와 교부들의 저작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아 이것이 지니는 구체적인 러시아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선 신약성서와의 관련성을 볼 수 있는데, 솔로비요프가 즐겨 인용하였던 로마서 8장 · 에페소서 1장 · 골로사이서 1-2장에 이러한 신인성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교부들의 저작은 이러한 신인성을 교의화시켰다. 그 근거는 인간이 성스러운 생명에 참여하기를 요청받았다고 주장하는 베드로 2서 1장이다. 그리고 이에덧붙여서 자신의 철학적 · 신비적 삶을 통해 솔로비요프는 신인성 개념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세계와하느님의 고유한 매개자는 오직 인간뿐' 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만이 자연의 중요한 일부로서 혼란스러운 다양성 가운데 '절대적 일원성' (absolute unitotality이라는 신성한 관념을 알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완전한 현시는 인간 본성을 취한 그리스도의 육화이며, 그리스도의 신인적 행위는 인간의 역사를 하느님과 통합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그리스도로의 변화과정을 창출해 냈다. 그의 신인성 개념은 또한 본질적으로 사회적 측면을 지닌다는 점에서 사회적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신인성은 사회 변화 즉 내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 경제적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고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에게 있어서 신인성 개념은 지혜의 개념과 관련을 맺고 있다. 불가코프(S.N. Bulgakov, 1870~1965)는 지혜론이 신인성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라고 주장하였고, 로스키(N.O. Lossky, 1870~1965)는 지혜론을 '러시아종교 철학의 매우 특징적인 교의' 라고 하였으며, 플로렌스키(P.A. Florenski, 1882~1937)는 더 나아가 성스러운 지혜인 소피아(sophia)의 개념이 러시아의 종교 의식을 결정하는 특성이라고 하였다.
신인성이라는 관념의 실제적 기능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 아버지의 의지에 복종시킨 그리스도와 합일을 이루는 인간의 신성한 의지에 대한 자유 의지적 복종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와의 합일은 솔로비요프에게 있어서 그 잠재적 보편성이 실현되기까지 시간을 두고 성장하는 신인 유기체와의 통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신인성에 관한 강의에서 그는 성스러운 존재에게 있어서 두 가지 통일성, 즉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통일성과 수동적인 통일성은 구분해야 한다고 하였다. 전자는 로고스 즉 능동적 힘으로서의 하느님과 동일시되는 반면에, 후자는 "우리가 소피아라는 신비적 이름으로 부르는 바대로 인류애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솔로비요프가 의미하는 인류애의 원칙은 이에 대한 원형적 · 영속적 관념, 즉 인류애의 이상이다. 그는 인간을 영원하지 않은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이 원형적 관념 혹은 이상은 그리스도 즉 하느님이자 인간인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며, 따라서 지혜는 영원한 말씀인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신성한 존재에 영원히 포함되어 있는 이상 혹은 완전한 인류애이다. 결국 솔로비요프는 영원한 인간애를 지혜와 동일시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를 천상에 있는 하느님의 육체라고 불렀다. 그에게 있어서 지혜는 천상에 있는 모든 인간애의 이상이며, 이러한 전적인 통일성은 전적인 인간성과 동일시되는 동시에 지상에서의 인간 창조와도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천상의 지혜는 지상의 지혜가 된다. 이것이 우주와 하느님이 맺는 비공격적 관계를 드러내는 지혜이다. 이러한 세계 정신은 이 지상의 모든 인류애이며, 이는 그 천상 상대와의 일치 즉 천상 하느님의 육체인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갈망한다.
자기 비움 : 솔로비요프에게 있어서 자기 비움(kenosis)은 신성한 의지를 지닌 자유로운 응답이다. 성스러운 세계와 창조물의 일치는 반드시 자유로운 응답의 결과이다. 역사적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는 자기 비움의 행위, 즉 세계 창조 이전의 행위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신성한 의지, 혹은 사랑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한 신성한 로고스는 자신의 고결함과 신성한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자유롭게 하느님의 영광을 거부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으로서 신성한 영광을 성취할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자기 비움은 신인적 인성 안에서만 완성된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러한 방식으로 신성한 원칙은 "실제로 천상에서 내려와 자신을 낮추며, 종의 신분을 취한다. ·신성한 원칙은 더 이상 이전의 불완전한 현현에서처럼 수동적 인간 의식의 한계로 감출 수 없다." 그리스도는 악(惡)과 투쟁하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동요에 직면하고 있다. 또 영원한 존재의 사슬과 시간 · 공간의 한계 속에 나타나며, 인간의 본성을 띠고 나타난다. 즉 하느님의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 우주적 생명의 다양한 유한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의미를 띤 비공격적 자기 비움이다.
솔로비요프가 사용한 용어로서의 자기 비움은 존재 이전의 로고스와 역사 안의 그리스도, 그리고 승천 이후의 그리스도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의 순종과 겸손은 그의 운명이 종말론적 의미에서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결정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그는 초대 그리스도교와 정치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는 하느님의 규칙이 교황의 권위를 통한 보편적 교회 조직에 의해 직접적으로 운영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신정 정치의 개념을 확장시켰는데, 일례로 그는 신성한 로고스의 자기 비움에 관하여 이야기하였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의 실재를 보여 주었다. 보편적 · 역사적 구원 과정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은 신인성 과정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순종은 보다 큰 우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든 권력과 권위의 진정한 본질이 된다. 이것은 인간 사회의 조직화에 적용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교회의 권위에 대한 원칙을 통해 표현된다. 부활은 물질과 영혼의 화해이며, 이 안에서 물질은 영적 육체로서 그 진정한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교의 결정적이고 특징적인 진리는 영성화(spiritualization) 즉 육신의 성화이며, 이는 일면적이고 편파적인 영성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취한 신성한 로고스의 육화와 부활은 3중의 승리이며, 여기서 성스러운 것 · 물질 · 인간적 요소 모두가 중요성을 띠게 된다. 하느님은 이 세계 안에서 영광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능하고 무한한 존재로 나타나, 물질의 힘을 구속하고 이를 거짓으로 이끌지 않고 자신의 본질과 융합시켜 여기에 더 고양된 실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평 가〕 솔로비요프에게 제기할 수 있는 비판은 그의 개념이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라는 점보다는 '신성한 인류애' (Divine-Humanity)에 대한 그의 원리가 헤겔(G.W.F.Hegel, 1770~1831)과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의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진화론적이고 낙관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근본이 되는 악의 문제를 도외시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기록들은 악의 문제와는 매우 거리가 멀며, 이 주제에 대한 고찰은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또 십자가의 신비가 솔로비요프 사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도 않다. 반면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신에게 다시 다가가서 자유로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죄인은 틀림없이 십자가의 신비를 통해 화해를 이룩한다. 그에게 이것은 살아 있는 자기 비움이자 그를 해방자 로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적 복종이다.
본래 슬라브 옹호주의자였던 솔로비요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으로 러시아는 세계적인 중요성을 지닌 종교적 소명을 갖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의 가난과 겸손은 하느님이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였다는 표시라고 가르쳤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성 안에서 이러한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을 보았으나, 후에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의 사상은 지혜론을 출발점으로 해서 발전하였다. 솔로비요프가 도달한 사상 체계 안에서 실제적 결론은 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우위성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교황은 완전한 겸손의 표현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의 종들의 진정한 종으로서 필요한 존재였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보편적 사랑의 상속자인 교황은 모든 사람을 돌보고 감싸 안아야 하며, 다른 주교들 또한 그들의 양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로마 주교는 지배로서가 아니라 겸허한 봉사로써 으뜸이 되며, 이것이 진정으로 자기 비움적인 교황직이다(<성직자 마르티노프에게 1878년에 보낸 편지>, St. Peterburg, 1911,t. Ⅲ,p. 29). → 자기 비움 ; 종교철학)
※ 참고문헌 N. Zernov, Three Russian Prophets. Khomiakov, Dostoevsky, Soloviev, London, 1944/ P. Zouboff, Solovyev on Godmanhood, Godmanhood as the Main Ideas of the Philosophy of Vladimir Solovyev, New York, 1944/ C.F. Copleston, Russian Religious Philosophy, Cambridge, 1988/ 《TVEB》, 1980/ V. Soloviev, Warand Christicmityfrom the Russian Point of View, London, 1915/ 一, Works 10, 2nd ed., St. Peterburg, 1896, p. 941 F.A. Miller, 《TMERSH》 36, 1984/ N. Gorodetzky, The Humiliated Christ in Modem Russian Thought, London, 1938/ B. Schultze, Pensatori russi difronte a Cristo, Firenze, 19471 C.V. Mochulsky, Soloviev, Paris, 1936/ C. Graves, The Holy Spirit in the Theology ofSergius Bulgakov, Geneva, 1972/ V. Soloviev, History and Future ofTheocracy, t. 4, trans. ital., La Russia e la Chiesa Universale, Milano, 1947/ -, God Man and the Church. The Spiritual Foundations of Life, Cambridge, 1973/ D. Barsotti, Cristianesimo russo, Firenze, 1948/ T. Spidlik, L'idée Russe, une autre vision de 'homme, Troyes, 1994.〔郭承龍〕
솔로비요프, 블라디미르 세르기에비치 Soloviëv, Vladimir Serghievich(185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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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솔로비요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