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동구 송림1동 245 소재. 1955년 9월 11일 답동(沓洞)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승천. 관할 구역은 동구 금창동, 송림1 · 2동과 송현1 · 3동 일부 지역. 〔교 세〕 1956년 3,109명, 1963년 4,134명, 1969년 3,922명, 1975년 5,360명, 1981년 4,119명, 1987년 5,822명, 1993년 7,045명, 1998년 4,484명. 〔역대 신부〕 초대 정덕진(丁德鎮) 루가(1955. 9~1959. 11), 2대 설리반(H. Sullivan, 薛立案) 헨리코(1959. 11~1962. 6), 3대 파퀘트(J. Paquet, 朴) 요셉(1962. 6~1966. 3), 4대 강의선(美義善) 힐라리오( 1966. 3~1968.4), 5대 강용운(美龍雲) 시몬(1968. 4~1970. 4), 6대 강성욱(姜聖旭) 마태오(1970. 4~1973. 9), 7대 로워리(M. Lowery, 羅) 마르티노(1973. 9~1976. 12), 8대 강근신(姜根信) 미카엘(1976. 12~1980. 2), 9대 조성교(趙誠 敎) 요한 그리소스토모(1980. 2~1984. 3) , 10대 박복남(朴福南) 요셉(1984. 3~1989. 2), 11대 이수일(李秀-) 제르바시오(1989. 2~1991. 1), 12대 김종학(金鍾學) 바오로(1991. 1~3), 13대 최상진(崔尙鎮) 야고보(1991. 3~1994. 2), 14대 이용길(李龍吉) 세례자 요한(1994. 2~1997. 1) ,15대 배효식(裴孝植) 바오로(1997. 1~현재).
인천시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는 송림동은 1950년대 초부터 교세가 날로 증가하였는데,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답동 본당 주임 임종국(林鍾國, 바오로) 신부는 관할 구역이 넓어 사목상의 어려움이 증대되자, 본당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54년 10월 30일 성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한 후 한 달 뒤인 11월 30일에 현 성당 부지 540평을 매입해 두었다. 이어 이듬해 4
월 12일 성당 공사에 착수하여 9월 11일에 2층 규모의 성당(총 305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이 날을 기해 송림동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정덕진 신부가 임명되었다. 그 후 1959년 6월 30일에 부지 193평을 추가 매입하여 사제관과 수녀원도 마련하였으며, 그런 가운데 신자수도 크게 증가하여 1960년 7월 17일에 도화동(道禾洞) 본당, 1962년 9월 16일에 화수동(花水洞) 본당, 그리고 1965년 6월 30일에는 영종(永宗) 본당을 분리하였다.
1964년 7월 11일에는 '송림 신용 협동 조합' 을 조직하였고, 1967년 3월 7일에는 '새싹유치원' (1989년 3월에 폐원)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 11월 1일에 서곳 공소가, 이듬해 4월 15일에는 대부도 공소가 본당 관할로 편입되었고, 또다시 신자수가 증가하자 1974년 10월 6일에 석남동(石南洞) 본당, 1976년 9월 18일에 송현동(松峴洞) 본당을 연이어 분리하였다. 1977년 9월에는 본당 신자 중 입대자나 타지역 거주 본당 신자들에게 본당의 사목 방침을 알리고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주보 보내기 운동을 벌였으며, 1979년에는 '서해 야학' 을 운영하여 근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터전을 제공하였다.
이어 1985년 8월 5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그리스도의 어머니' 꾸리아를 창단하였고, 1987년 9월 6일에는 '본당 공동체와 도시 빈민' 이라는 주제로 제1회 젊은이 잔치를 개최하였는데, 이 행사는 관할 내 도시 빈민 문제에 대해 본당이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1990년 2월 13일에는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였고, 같은 해 10월 10일에는 성령 쇄신을 위한 8주간 생활 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1992년 10월 15일에는 대부 본당을 분리하였다. 또 1994년 5월 29 일 '한소리 청년회' 를 창립하였고, 이듬해에는 설립 40주년을 기념하여 목단강 지역의 조선족 신자들을 위한모금 운동을 벌여 그곳에 성당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7년 상반기에 '잃은 양 찾기 운동' 을, 하반기에는 '새로운 양 찾기 운동' 을 전개하여 약 150명을 입교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관할 일부 지역이 재개발 대상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고, 금창동 일대 역시 재개발 대상 예정지여서 신자들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에 따른 사목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청될 것으로 보인다. (→ 인천교구 ; 답동 본당)
※ 참고문헌 《송림동 천주교회 40년사》, 천주교 인천교구 송림동 교회, 1995/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金成喜〕
송림동 본당
松林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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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