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마리아 (?~1801)

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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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사실이 밝혀져 며느리와 함께 사약을 받는 송 마리아(탁희성 작) .

입교 사실이 밝혀져 며느리와 함께 사약을 받는 송 마리아(탁희성 작) .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이름은 미상. 순조(純祖)의 서백부(庶伯父) 은언군(恩彥君) 이인(李祖)의 처.
아들 상계군(常溪君) 담(湛)이 모반죄로 몰려 자결하고, 남편 이인이 정치적 파동에 휘말려 1786년에 강화도로 유배된 뒤 폐궁(廢宮)에서 며느리 신(申) 씨와 함 께 외롭게 지냈다. 그러던 중 여회장 강완숙(姜完淑, 골롬바)의 선교로 며느리 신 마리아와 함께 입교하였으며,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자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송 마리아는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여러 명의 하녀들을 입교시켰을 뿐만 아니라 명도회(明道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폐궁의 나인[內人]인 서경의(徐景儀)의 밀고로 천주교 신자라는 것과 주문모 신부가 잠시 폐궁에 피신해 있었던 사실이 밝혀져, 같은 해 4월 29일(음 3월 17일) 며 느리와 함께 사약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 일로 인해 천주교와 무관했던 남편 은언군도 사사(賜死)되었다. 그 후 1849년에 손자 원범이 제25대 철종으로 즉위하자 대역 죄인이라는 불명예가 신원(伸寃)되었고, 철종은 자신의 조모와 백모의 신앙을 기려 천주교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지 않았다. (→ 신유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 下/ 金玉姬, 韓韓國天主教女性史》 I · Ⅱ,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1983.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