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고창군 고창읍 성남동 386 소재. 1960년 3월 19일 정읍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고창군 대부분 지역이고, 소속 공소로는 동혜원(고창읍 죽림리), 신광(부안면 상앙리), 안현(부안면 송현리), 심원(심원면 연화리), 해리(해리면 나성리) 등 5개소. 〔교 세〕 1962년 160여 명, 1985년 709명, 1988년 1,682명, 1993년 1,870명 . 〔역대 신부〕 초대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1960. 3~1962. 12), 2대 배영근(裵永根) 요셉(1962. 12~1970. 5) , 임시 메르베르장(Commar Meerbergen, 고현택) 고마르(1970. 5~1971. 4), 3대 유장훈(劉章勳) 요셉(1971. 4~1972. 9), 4대 김봉희(金鳳熙) 요한(1972. 9~1974. 6), 5대 오현택(吳賢澤) 가시미로(1974. 6~1976. 5), 6대 강인찬(姜仁贊) 도미니코(1976. 5~1979.2) 7대 김순태(金順泰) 요셉(1979. 2~1982. 10), 8대 서석구(徐錫九) 요한(1982. 10~1986. 1), 9대 한봉섭(韓奉燮) 시몬(1986. 1~1989. 1), 10대 김진화(金鎭華) 마태오(1989. 1~1991. 1), 11대 김태환(金泰煥) 토마(1991. 1~1993. 2), 12대 박기준(朴基俊) 라우렌시오(1993. 2~현재).
〔설 립〕 이곳 고창군의 무장면 지역에는 이미 박해 시대 때부터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병인박해(1866)로 인해 교우촌이 폐쇄됨으로써 신자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 뒤 1887년경 라푸르카드(A. Lafourcade, 羅)신부가 고산 '으럼골' 에 주재하면서 선교할 무렵, 장성 지방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신자 몇 세대가 있었다. 그들은 라푸르카드 신부와 그 후임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 등으로부터 해마다 판공성사를 받다가 1895년 이후 수류 본당 소속이 되었고, 그 후 다시 정읍 본당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48년 정읍 본당 김후성(金厚星, 프란치스코) 신부의 주선으로 모양성 밑에 있는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함으로써 고창 공소가 설립될 수 있었다. 이후 고창 공소는 6 25 동란으로 정읍 본당이 일시 폐쇄되면서 신태인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1954년부터 다시 정읍 본당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고창 공소는 아직 본당 승격의 여건을 갖추지 못한 처지였지만, 1군 1본당 원칙을 실행하려는 교구의 사목 계획에 따라 1960년 3월 고창읍 성남동의 현 성당 대지를 확보하고 본당 설정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때 본당의 신자수는 10세대에 불과했다.
〔성장과 변모〕 본당 신자들은 이후 주임 신부를 중심으로 성당 건립에 노력하는 한편 부속 건물 건축과 전교 활동에 노력해 왔다. 우선 1960년 8월 소성당(현 유치원)을 건립하고, 이듬해 7월에는 사제관과 창고를 완공했으며, 1968년 3월 약 100평에 이르는 현재의 성당을 완공,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다음으로 본당에서는 초기부터 사목 협의회와 평신도 단체를 구성하여 현재 성모회, 제대회, 학생회, 레지오 마리애 등이 신심과 봉사에 힘쓰고 있다. 한편 2대 주임 배영근 신부 때에는 경제 생활이 타지방에 비해 낙후된 지역 환경을 감안하여 구호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1970년 3월 한공렬(베드로) 주교의 도움으로 처음의 소성당에 샛별유치원을 설립 ·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전신자를 참가 대상으로 하는 목요 기도회와 토요 신앙 강좌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왔으며, 1980년대에는 매월 셋째 토요일을 선정하여 1일 피정을 개최하였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자 1인당 비신자 1명씩 인도하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교세 확대에 노력하고, 친화력 있는 상가(喪家) 활동을 통해 유교 전통이 강한 지역 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 전주교구) 〔車基眞〕
고창 본당
高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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