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넷째 동생인 최신정(崔信鼎, 델레신포로)의 아내 송 아가다(1838~1930)의 전기(傳記) . 작자 미상이며, 15×16cm 크기의 한지 76쪽에 달하는 한글 필사본이다. 책 끝에 '1927년 정유(丁酉), 1933년 계유년 종(癸酉年終)' 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27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33년에 완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전체 문맥으로나 1930년에 송 아가다가 이미 사망한 사실로 볼 때 송 아가다가 직접 집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대필하였을 것이다. 내용은 송 아 가다의 집안 내력에서부터 출생, 유년 시절, 최신정과의 결혼, 그리고 사망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책 끝부분 <뒷날에 덧붙임>에서는 송 아가다의 증언으로 자신의 시아버지인 성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의 묘가 안양(安養) 수리산에서 발굴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송 아가다는 1838년에 순교자 송구현(宋九鉉)의 9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16세 때인 1853년에 최신정과 결혼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살던 중, 1866년 병인박 해(丙寅迫害)를 당하여 자녀들과 함께 각지로 피신하였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재산을 모두 약탈당하여 걸식에 나서게 되었다. 어느 날 춘천 '물은다미' (무른더미, 옥
산포) 마을에 도착한 송 아가다 일가는 그곳에 사는 우씨의 도움으로 정착하였으나,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하던 남편이 빛만 진 채 가출하자 아가다가 생계를 꾸려 나가 야 했다. 약 8년이 지난 뒤 자녀들도 성장하고 더부살이도 면하게 되자, 아가다는 집안 사람들이 살고 있던 인근 '물이울' 이라는 교우촌으로 이주하였다. 한편 큰딸은 어려서 잃었고, 남은 3남매 중 장남 최태종(崔台鍾, 루가)이 사제가 되기를 갈망하여 페낭(Pinang) 신학교에 유학까지 갔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둘째 딸 안나의 외아들 김휘중(金輝重, 요셉, 1887~1918)은 1917년 9월 22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었다. 송 아가다는 93세 때인 1930년 4월 24일 사망하여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3리에 소재한 풍수원 공동 묘지에 묻혔다.
《송 아가다 이력서》는 비록 평범한 여교우의 일생을 다룬 기록이지만, 박해 시대를 이겨낸 굳건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 줌과 동시에 당시 신자들의 어려운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양업 신부 집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의가있다.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순교자와 증거자들》,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교회와 역사》 93호(1983. 3), 한국교회사연구소,p.1. 〔편찬실〕
《송 아가다 이력서》
宋 - 履歷書
글자 크기
7권

《송 아가다 이력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