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박해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야고보. 충청도 목천(木川)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열심한 기도 생활로 다른 이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냉담자를 권면하고 주위의 많은 외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등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자 피신을 권유하는 형에게 "우리 목자들과 교우들 모두가 박해 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는데, 지금 이 세상에 남아 있은들 무엇 합니까? 우리도 천주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것이더 나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결국 전주 감영(全州 監營)에 먼저 끌려갔던 신자의 자백으로 노상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평소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배교할 의사만 있으면 구해 주겠다고 하자, "그대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우정은 참으로 감격스럽소. 그러나 나는 하늘의 위대한 천주님을 섬기고 천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 내 일생의 소원이었소. 그러니 지금 어떻게 그분을 배반할 수 있겠소" 라며 거절하였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후 감사(監司)로부터 심문을 받았으나, 송인원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이에 분노한 관장은 그에게 '학춤' 이라는 악형(惡刑)을 가하였고, 이후에도 열흘에 한 번씩 약 2개월 동안 계속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결국 모진 고문 끝에 그 해 10월 말경 교수형을 받아 2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기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I, 천주교 전주교구, 1998. 〔金善美〕
송인원 (1816?~1839)
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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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