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서울에서 태어나 황정동(黃井洞, 지금의 동대문 부근)에서 돌에 글자나 무늬를 새기는 각수장(刻手匠) 일을 하였다. 1800년에 입교하여 김의호(金義浩) · 김한빈(金漢彬, 베드로) ·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등과 교류하면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던 중, 이듬해 황사영의 <백서>(帛書) 사건이 일어나자 황사영을 집에 숨겨 주었다. 또 김의호 · 최설애(崔雪愛) 등과 함께 그에게 상복을 만들어 주어 피신하도록 하였는데, 결국 이 일로 체포되어 1802년 1월 29일(음 1801년 12월 26일) 김의호, 변득중(邊得中), 장덕유(張德裕) 이경도(李景陶, 가롤로), 김백심(金百心),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오), 최설애, 손경윤(孫敬允, 제르바시오) 등 8명의 신자들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신유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邪學懲義》 . [편찬실]
송재기 宋再紀(?~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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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