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아르투어 Schopenhauer, Arthur(1788~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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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비관주의(pessimismus)의 창시자이자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us)의 대표자. 〔생애와 저작 활동〕 1788년 북유럽의 단치히(Danzig,
지금의 폴란드 그다니스크)에서 부유한 은행가였던 아버지와 다소 사치스러운 성격에 가정적이지 못한 무명의 소설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는 있었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못하였다. 1793년 프로이센이 단치히를 합병하였을 때 프로이센의 독재를 피해 함부르크(Hamburg)로 이사하였으며, 1805년에 아버지가 사망할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2년 동안 학교를 다닌 뒤, 부모와 함께 프랑스 · 영국 ·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를 여행하였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하였던 그는 고전 문학을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는 어머니에게 심한 적대감을 품게 되어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어머니와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다.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한때 상점에서 일하기도 하였으며, 아버지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괴팅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의대생으로서 물리학 · 화학 · 식물학 등을 공부하였지만,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과 칸트(I. Kant, 1724~1804)의 철학 서적들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은 후로는 철학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1811년에 당시 철학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으로 가서 2년 간 철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피히테(J.G. Fichte, 1762~1814)와 슐라이어마허(F.E.D. Schleiermacher, 1768~1834)의 강의를 들었으나 별로 감흥을 받지 못하자 주로 혼자 공부하며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였다. 1813년에 <충족 이유율(充足理由律)의 네 가지 근거에 관하여>(Über die vierfache Wurzel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814~1818년에는 드레스덴(Dresden)에 머무르면서 인도 철학 특히 우파니샤드(Upanisad)를 연구하였다. 한편 1816년에 괴테(J.W. von Goethe, 1749~1832)의 영향을 받은 단편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Über das Sehen und die Farben)를 펴낸 데 이어 1818년에는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를 완성하였다. 그는 이 책의 중요성에 대
해 자부심을 갖고 곧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리라 기대하였지만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1820년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을 얻은 후 곧바로 이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은 그는, 당시 그곳에서 강의하고 있던 헤겔(G.W.F. Hegel, 1770~1831)에 맞서서 그와 똑같은 시간에 자기 강의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반(反)헤겔주의를 표방한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호응을 받지 못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에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였으며, 1831년에 베를린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그곳을 떠나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여생을 보냈다. 독신 철학자로서 개 한 마리와 더불어 살아간 그의 후반 생애는 외롭고 우울한 것이었지만, 저술 활동은 꾸준히 계속하여 1841년에 《윤리학의 두 가지 근본 문제》(Die beiden Grundprobleme der Ethik), 그리고 1851년에는 전기의 주요 저술을 통속적으로 해 설한 《소품집》(Parerga und Paralipomena)을 발표했다. 특히 <생활의 지혜에 관한 잠언>이 실려 있는 《소품집》은 당시 대중들로부터 크게 각광을 받았고, 이 책으로 그는 명성을 얻었으나 1860년에 이곳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사 상〕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칸트의 인식론, 플라톤의 이데아론, 독일 낭만주의, 고대 인도 철학의 범신론(汎神論, pantheismus)과 비관주의, 영국 경험론 등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저서들을 통해 구분해 보면 그의 철학은 현상(Erscheinung)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론,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는 형이상학, 일시적 해탈의 길인 미학(美學, Asthetik), 완전한 해탈의 길인 윤리학 등 4부로 나누어진다.
표상으로서의 세계 : 인식론에 있어서 그는 우선 칸트를 따랐다. 그에게 있어서 현상의 세계에 관한 한 이 세계는 주관적인 표상(表象)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 세계
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오성의 범주(範疇, Kategorie)에 의하여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칸트의 12개 범주 중에서 오직 인과율(因果律), 즉 충족 이유율 하나만을
인정하였다. 다만 이 충족 이유율은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의 성질에 따라서 각기 네 가지 의미, 즉 판단을 결합시켜 주는 논리적인 근거, 수학적인 사태 연관에 있어서 의 존재 근거, 행위 및 심리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동기, 물리적 사물들의 생성 세계에 있어서의 작용 원인 등으로 사용되었다. 형이상학에 있어서 쇼펜하우어는 현상과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를 구별하는 칸트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관념론자들이 물자체를 인식 불가능하다고 부정하고 출발하는 반면에, 그는 그것을 오히려 긍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의 탐구야말로 철학의 주요 과제라고 주장하였다.
의지로서의 세계 : 그에 따르면 우리가 이 현상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세계를 인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체험하기도 하며, 단순한 표상 이외에 의지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의지를 가지고 현상 세계를 넘어 사물 그 자체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외적인 현상 세계의 감각적인 직관이나 표상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의식으로 자기 자신의 근본적 비밀 즉 본질(本質, Wesen)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의지 그 자체라고 하는 그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의지란 좁은 의미의 의식적인 욕망뿐 아니라 모든 소망 · 동경 · 사랑 · 미움 · 고통 · 사고 · 표상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우리의 삶 전체가 체험이고 의지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몸은 의지가 객관화된 것에 지나지않는다. 실상 의지는 세계의 모든 현상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 중력(重力)에서 인간의 자의식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생명체들의 자기 보존 본능이나 충동들도 모두 다 이 의지의 발로인 것이다. 그런데 의지는 원래 맹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욕망으로서, 그 요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본질 즉 물자체는 '맹목적인 생에의 의지' (blinder Wille zum Leben)라고 할 수 있다.
비관주의 : 그는 각 욕망이 충족되자마자 곧 또 새로운 욕망을 낳기 때문에, 그것의 궁극적인 만족이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의지란 자기에게 결여된 것을 원하는 것이며, 무엇이 결여된 상태는 곧 고통이다. 인간은 매일같이 새로이 생겨나는 여러 가지 욕구들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은 생존을 유지시켜 나가기 위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맹목적인 의지에 지배되기 마련인 인생은 필연적으로 고통일 수밖에 없다. 만족(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정상 상태가 일시적으로 깨어지는 데서 오는 어떤 소극적인 상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이란 별수없이 불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 의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우선 의지를 부정(否定)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하였고,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그 하나가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학이라고하였다.
예술과 윤리학 :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의 지성은 늘 생에의 의지나 자기 보존이라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활동한다. 다시 말해서 '이해
관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갓 개체 보존의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 영원한 본질 · 이념 · 형상(플라톤의 '이데아' 와 같은 것)을 직관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예술적 관조(觀照)의 순간에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 · 공간 · 인과율을 넘어서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을 그 자체로 바라본다. 이때 우리의 의지는 갈구하기를 그치고 자기 집착을 벗어나 영원과 합일된다. 그리하여 기쁨과 평안을 맛본다. 그러나 이러한 미적 경험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예술은 우리에게 오직 일시적 해탈을 제공해 줄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길, 곧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은 윤리학이다.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은 '동정의 윤리학' (Mitledsethik)으로, 불교 혹은 인도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윤리학은 우선 우리로 하여금 세상 만물은 필연적인 인과의 사슬에 의해 결정되므로 일체의 욕망이 공허하다는 것, 또 개체(자아 의식)는 한갓 가상에 불과하며 '모든 것은 하나 〔梵我-如〕라는 것을 깨닫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때 우리는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동정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형제로 바라보게 된다고 하였다. 곧 한때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의지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항구적인 해탈의 경지(Nirvana)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영향과 의의〕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당시에는 독일 관념론에 밀려 강단 철학의 비주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 사상은 그 후 특히 니체(F.W. Nietzsche, 1844~1900)의 사상 및 현대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실존 철학의 길을 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단순히 지식의 체계를 지향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적인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인 고뇌에 주목하고 그 근원 및 해소 방법을 지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행동과 결단을 요구하는 실존 철학적 계기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본능에 사로잡혀 있는 영원히 저주받은 것이며, 인간 생명의 핵심적인 본성이 욕망이며, 선이란 결국 환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의 의지' 라는 본능을 포기해야 하며, 그렇다고 해도 이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일시적이라는 주장은 불교의 교리에 근거한 측면이 강하다. 또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희망' 과는 상반된 주장인 동시에 인간의 지성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변화와 성숙 등 모든 가능성을 무시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니체, 프리드리히 ; 독일 관념론 ; 비관주의 ; 생의철학 ; 실존 철학)
※ 참고문헌  Johannes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2, Freiburg · Basel · Wien, 1981(강성위 역, 《서양철학사》 하, 이문출판사, 1987)/ P. Deußen ed., Jahrbicicher der Schopenhauer-Gesellschaft, 1912/ 《EP》 7/ Christopher Janaway,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8, Edward Craig ed., New York, Routledge, 1998, pp. 545~554. [朴贊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