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量)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상징. 인류가 생활상의 필요, 즉 '셈' 을 위해 지각한 개념이다.
〔기원과 발달〕 상형 문자 시대 : 인간은 문자의 개발로 인해 역사 시대로 발전했는데, 문자의 가장 초기 단계는 사물의 모습을 간략하게 그려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상형 문자(象形文字, hieroglyph)라는 개념까지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은 기원전 33세기경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살았던 수메르인들의 경제활동 때문이었다. 상형 문자의 발달은 기원전 5000~3200년 동안에 사용되었던 물표(物標, token)의 유통 과정에서 유래되었다. 물표는 크기가 작은 조약돌 모양의 점토 덩이로, 물품의 명목과 가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표면에는 소유주의 고유 문양과 품목에 관한 숫자를 새겼다. 그 후 개발된 것이 점토 판(粘土板)을 만들어 그 위에 물표의 표면을 그려서 물표를 대신하고, 수효는 물품에 상응하는 그림 옆에 일정한 모양을 찍어 넣는 방법이었다. 즉 수효를 문자로 기록하는 방법이창안된 것이다.
점토 판에 수효를 찍어 그 내용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인해 시장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60진법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숫자의 단위는 1· 10 · 60이었고, 작은 반점(D)은 1, 조금 큰 둥근 점(○)은 10, 좀더 큰 주먹 모양의 반타원형(D)은 60, 그리고 반(半)은 중간에 금을 그어 표기하였다. 더하기는 큰 숫자의 오른쪽에 작은 숫자를, 빼기는 작은 숫자의 오른쪽에 큰 숫자를 표기하였는데, 오늘날 이와 같은 발상은 로마 숫자 표기법(예 : XI=11, Ⅸ=9)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곱하기는 큰 숫자 안에 작은 수를 표기하였다(예 :D=60×10). 숫자 1을 표기하기 위해 작은 반점을 찍거나 10을 가리키기 위해 1보다 조금 큰 점을 표기하였다는 것은 인류 문화의 보편성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60을 나타내기 위해 10의 숫자 모양보다 큰 반타원형을 표기하였다는 것은 60진법의 기본 단위에 대한 상형 문 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계기로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손과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었을 것이다. 한 손으로 손가락을 펴 가며 1에서 5까지 세고, 다른 손의 손가락 하나를 더 펌으로써 그것이 6임을 가리킬 수 있었다. 7~11까지는 편 손가락을 접으며 세고, 12번째는 다른 손의 두 번째 손가락을 펴서 12를 알릴 수 있다. 이렇게 계속하여 다른 손을 다 펴면 30이 되고, 다시 다 오므리게 되면 60이 된다. 손을 셈에 이용하면 반타원형 주먹모양은 60을 가리키게 되는데, 수메르 상형 문자 60의 표기가 반타원형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 : 기원전 3200년경부터 글씨의 모양이 상형 문자에서 쐐기 모양의 설형 문자(楔形文字, cuneiform)로 변화되었다. 또 갈대로 만든 끝이 뾰족한 첨필(stylus)로 토판에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글씨를 썼기 때문에 토판의 위치도 왼쪽으로 90도 돌려 쓰기 시작하였고, 곡선 모양의 상형 문자는 거의 모두 직선과 사선의 모양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1의 모양은 7, 10은 4, 60은 조금 큰 1자 모양의 Y 이 사용되었다. 실제 언어 소통에서는 1과 60이 '디쉬' (dis)와 '지쉬' (gis)로 분
명히 다르게 발음되었기 때문에 전혀 혼동의 여지가 없었지만, 숫자 문자에 있어서는 1과 60의 구분이 없어졌고 처음 숫자 1과 가장 큰 기본 단위 숫자인 60의 관계 에서 새로운 신관이 발전되었다.
수메르인들은 신들을 숫자로도 표기하였다.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큰 신들에게 각기 숫자를 배정하여 신들 가운데 왕인 '하늘의 신' 안(An)은 60, '바람의 신' 엔릴 (Enlil)은 50, '구마 사제의 수호신' 엔키(Enk)는 40, '달[月]의 신' 난나(Nanna)는 30, '태양 신' 우투(Utu)는 20, '금성 여신' 인안나(Inana)는 15, '천등의 신' 아다드(Adad)는 10으로 정하였다. '달의 신'과 30의 관계는 한 달을 30일로 정하는 달력에 적합하며, '태양신'에게 20이 할당된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천문 계산에 의하면 하늘의 황도(黃道) 별자리를 18로 정하고 20일을 한 별자리의 움직임으로 하여 일 년을 계산하였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18세기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황도를 12개의 별자리로 고정하고 한 달을 달의 기간과 비슷하게 30일로 정하였다. 50이 엔릴의 숫자이고 수메르 연맹체에서 엔릴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도시 국가가 중심지가 되면서 50은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였다. 그래서 '50의 집'(에닌누)은 엔릴의 신전 이름이 되었고,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바빌론이 중심세력이 되면서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Mardk)이 최고신이 되어 그도 50이란 숫자로 표현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50년 되는 해가 희년으로 선포되었다(레위 25, 10). 또 지혜의 신 엔키는 지하수의 신으로 구마 사제의 수호신이자 약자를 곤경에서 구해 주는 구원신이었으므로, 악신의 꼬임에 빠져 병이 걸렸을 경우 40일 동안 정결례를 하도록 하였다. 구원의 사건에도 40일 또는 40년이 요구되었는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 이후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이라든지, 예수가 사탄을 물리치기 위하여 광야에서 홀로 40일 동안 지내야했던 것도 40이라는 숫자가 구원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승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시리아 제국 시대 : 기원전 14세기부터 7세기 말까지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아시리아 제국이었으며, 산헤립 같은 왕의 명성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지중해 인근의 여러 민족들에게까지 잘 알려졌을 정도였다(창세 10, 11). 도시 국가 아슈르(Ashu)의 수호신은 국가이름과 같은 아슈르였는데, 그 이름을 '아쉬-슈르' 라는 두 음절 문자로 표기하였다. '一' 자 모양(~)의 표의 문자 '아쉬' 는 '혼자' , '홀로' , '하나' 라는 뜻이다. 아시리아의 현자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고대 근동의 패권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제국의 수호신 이름을 고대 바빌로니아의 전통과는 다르게 풀이하였다. 바빌로니아의 최고신은 전통적으로 '하늘의 신' 이며 60으로 표기되었지만, 아시리아 현자들은 아슈르의 음절 표기에 '하나' , 혼자'라는 표의 문자가 포함된 것에 착안하여 60(최고신)은 1(하나)로도 표기된다고 해석하여 아슈르는 '홀로', '하나' 이며 최고신 즉 1=60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때부터 아시리아 지식인들은 세상의 최고신은 1(첫째)이며 60(最高, 마지막)이라고 해석하였다. 당시 아시리아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졌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현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 하느님의 권한을 언급하였다. "나는 시작이요 나는 마침이다. 나밖에 다른 신은 없다"(이사 44, 6).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식인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먼 옛날의 일들을 기억해 보아라. 내가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내가 하느님, 나 같은 이가 없다"(이사 46, 9)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옛날' 은 창조 이전의 옛날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당신 길의 맏이로 나(지혜)를 지으셨도다, 그 옛날 당신의 행업 이전에" (잠언 8, 22). 여기에서의 '먼 옛날의 일들'은 창조 이전의 일을 가리키는데, 즉 창조를 1(하나)로 계산하면 1 이전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논리이다. 1 이전의 것을 '무' (無)라고 표현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무(無)라는 순서에서 출발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발전에서 생겨난 문구가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요한 1, 1)라는 구절이다. 이 옛날은 창조 이전의 그때를 가리키며, 순서로는 첫째 이전의 것을 말한다. 후대에 발전된 그리스도교 교리인 '무(無)에서의 창조' (creatio exnihilo)의 기원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육십진법과 십진법〕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60진법의 문화였지만 이스라엘을 포함한 셈어권과 고대 이집트는 10진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문헌에서도 60진법 문화의 숫자 개념과 상징 숫자를 많이 엿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계보에 나오는 숫자이다. 창세기 5장의 계보에 따르면 아담이 산 햇수가 930년이고, 노아도 그의 햇수 600년에 홍수가 일어났고 그 후 35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한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왕 계보에 의하면 에리두(Endu)에서 두 임금이 각각 3600×8년과 3600×10년을 다스렸다고 한다. 창세기의 족장들이 산 햇수는 수메르 왕의 계보에서 수메르 임금들이 통치한 햇수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된 것이 다. 위에서 수메르 왕 계보의 숫자를 곱셈으로 표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3600×10년이라는 햇수는 3600을 10번 하는 동안 다스렸다는 내용이다. 수메르어에서 육십진법의 기본 숫자 단위는 1 · 10 · 60 · 60×60의 순서로 3600이 가장 큰 단위의 숫자이다. 한편 히브리어의 십진법 기본 숫자 단위는 1 · 10 · 100 · 1000의 순서이며, 가장 큰 단위 숫자는 1000이다. 이를 육십진법과 비교하면 60에 상응하는 숫자는 10진법의 10이고, 3600(60×60)에 상응하는 숫자는 100(10×10)이다. 홍 수 이전 족장들의 계보에 아담이 산 햇수를 히브리어로 읽으면 930년(9×100+30)이 된다(창세 5, 5). 이러한 방법으로 셈하면, 100 단위의 햇수 9번과 나머지 햇수를 살았다는 뜻이다. 수메르 왕 계보의 통치 햇수나 아담 계보의 족장들의 나이가 같은 방법으로 셈해졌음을 알 수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담 계보에 나오는 족장들이 산 햇수가 1,000년 이상 되는 경우가 없다는 점이다. 즉 10×10×10의 숫자 계산이 없었다는 결론이다. 히브리어
에서도 가장 큰 숫자의 단위는 1000이지만 족장의 나이는 모두 1,000년 미만이다. 수메르 왕 계보에 의하면 한 도시 국가의 여러 임금들이 통치한 햇수가 3600×60년 을 넘는 경우는 있지만, 한 임금이 3600×60년을 다스리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아담의 계보에도 한 족장의 나이가 100×10년 이상은 살 수 없었다는 것은 시적(詩的) 역사이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숫자 개념의 범주를 공유하였음을 알려 준다.
〔상징 숫자〕 원인(原人, Homo erectus)이 다른 유사 동물과 달리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진화될 수 있었던 가장 획기적인 변형은 서로간의 의사 소통에서 숫자를 헤아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하나, 둘, 셋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지능이 개발된 것이다. 문자 문명을 시작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도 가장 초기 단계에 발견되는 문자는 숫자였다. 이처럼 문화의 발전과 개혁에서 숫자의 역할은 간과될 수 없다. 고대인들이 신화를 이야기하고 영웅전을 구사하는 가운데 숫자는 일상적인 셈의 숫자에서 상징적인 숫자로 전환되었고, 상징 숫자가 알려 주는 예고는 다른 상징 문맥과 함께 기억되고 실현되었다. 고대 근동의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문학이나 성서 또는 초기 유대교 문헌 등에서 이러한 숫자 개념과 문구를 자주접할 수 있다.
이처럼 상징 숫자는 문학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상징 숫자가 학문으로 발전된 것에 크게 기여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였다. 기원전 6세기경의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두루 다니며 전문 지식을 많이 습득하였고 전통적인 숫자의 신비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모든 수의 시작은 1이며 거기에서 2가 생성되고 1과 2가 합하여 3이 형성되었다고 정리한 것이다. 만물의 시작은 1이라는 공리(公理)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상식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은 매우 짧은 기간에 지중해 인근 도시들과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지역으로 퍼져 적용되었음이 많은 문헌에 서발견된다. 예를 들어 초대 교부들은 1, 2, 3을 창조와 관련 지어 1은 '빛', 2는 '하늘과 땅', 3은 '만물'이라고 풀이하였다.
〔성서의 상징 숫자〕 하나(1) :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이 구원자로 믿는 하느님은 하나이지 결코 둘 이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신은 하나라는 신앙 고백을 확정 짓는 문구는 '쉐마'(שְׁמַע)이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신명 6, 4). 유대교의 전통적인 성서 해석에 의하면 '야훼는 하나 라는 말씀에 '그분은 홀로'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의 기원은 고대 바빌로니아 잠언에서 읽을 수 있다. "태양 신은 정말로 하나이며 그 홀로이지만 사람은 많다" (《슈루파크의 가르침》 75행). 히브리어 성서에서 하느님을 태양에 비유한 대표적인 구절은 "정녕 주 하느님께서는 태양이요 방패이시며" (시편 84, 12)이다. 한편 히브리어 숫자 개념에 '하나'는 첫째요 가장 높은 것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창세기 1장 시작 부분에 보면,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 (창세 1, 5)라는 표현이 있다. 첫째 날을 하나 즉 '하루' 라고 표현하였다. 둘째 날부터는 서수(序數)로 표현되었지만 첫째 날은 기수(基數)이다. 여기에서 하나는 첫째를 나타내는 상징 숫자로 사용된 것이다. 홍수 이야기에서는 물이 열째 달까지 줄어들기 시작하여 열째 달의 '하나' 즉 초하루에 산꼭대기가 보였다(창세 8, 5). 또 제사장의 예복 중에 가슴받이를 만드는 설명에서는, 여러 가지 색색 실로 네모나게 가슴받이를 만들고 거기에 보석들을 네 줄로 박았는데, 홍옥수 · 황옥 · 취옥은 '하나 줄 즉 맨 윗 줄에, 둘째 줄에는 홍옥 · 청옥 · 백수정을····등등 넷째 줄까지 보석을 금테두리 안에 끼워 박았다(출애 39, 10-13)고 하였다. '하나' 라는 숫자가 서수로 사용될 경우에는 첫째 혹은 맨 위쪽을 뜻한다. '주는 하나이시다'라는 문장과 '주 앞에 다른 신들이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십계명의 문장과 연관하여 보면, '주 하느님은 하나'라는 문맥은 '그분이 첫째이며 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둘(2) : 이 숫자는 '상대' , '분리' , '적대'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아브라함과 롯, 아브라함과 아비 멜렉, 이스마엘과 이사악, 사라와 하갈, 에사오와 야곱, 레아와 라헬 등 대부분 짝을 이루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예언자 아모스는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아모 3, 3)라고 반문하며 상대와 분리를 뜻하는 '둘'이란 상징 숫자를 말한다. 둘의 상징성에 대한 좋은 예는 창조의 둘째 날에 대한 기록이다.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 사건을 단락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고 한 다음에 그 날
짜를 말한다. 그러나 물 가운데 궁창이 생겨 물을 갈라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신 이튿날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라는 문장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문장(창세 1, 10) 다음에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그 앞(1, 8)에 쓰여졌다. 창세기 1장 6-10절은 이튿날에 대한 창조 이야기이고, 11-13절은 사흘날에 대한 내용이다. 이튿날을 명기하는 문장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문장 앞으로 옮겨진 이유에 대하여 초기 유대교 랍비들은 하느님은 둘(이튿날)의 숫자가 분 리와 적대감을 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기에 좋다고 말할 수 없어서 그 문장을 앞으로 옮겨 적은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셋(3)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 6)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3의 상징 숫자에 대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예수 당시의 유대교 문헌으로 자주 읽혀졌던 《선조들의 어록》(פרקי אבות) 첫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모세로부터 전승으로 받은 세 가지 말을 전하고 있다. "판단을 내리는 데 숙고하여라. 제자들을 많이 양성하여라. 토라에 울타리를 쳐라." 이 세 가지 말은 '배우고, 가르치고, 행하라' 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편 집회서 50장에 나오는 대사제 시몬은 《선조들의 어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상은 세 가지 위에 서 있다. 토라 위에, (하느님을) 섬기는 일 위에, 자비를 한껏 베푸는 일 위에." 이러한 시몬의 세 가지 근본에 대하여 많은 현자들은 여러 방향으로 이를 설명하였는데 사도 바오로의 선생 가믈리엘의 아들인 가믈리엘 2세의 말에서도 이 전통을 엿볼 수가 있다. "그는 말한다. 세상은 세 가지 위에 존재한다. 정의 위에, 진리 위에, 평화 위에." 시몬과 가믈리엘 2세의 어록을 대조하면 '토라는 정의를,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진리를, 한껏 자비를 베푸는 일은 평화'를 뜻한다는 등식을 구할 수 있다. 또 요한 복음서의 '길과 진리와 생명' 도 이와 대응한다. 즉 하느님의 가르침인 토라는 하느님의 길이며 정의이고, 진리로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여야 하며, 자비를 한껏 베풀어 생명을 얻고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3의 발달은 셈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셈어의 특징은 대부분의 동사가 3근자음(根子音)을 가지고 있으며 동사의 활용에서 3근자음은 거의 탈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를 영자로 음역한 KTB는 "글을 쓰다" 는 동사의 3근자음이다. 그 활용의 예로, KaTaB(그가 글썼다), KoTeB(그가 글쓴다), KaTuB(글이 쓰여있다), KaTBu(그들이 글을 썼다), yiKToB(그가 글을 쓸 것이다) 등 KTB의 3근자음은 항상 동사형에 들어 있고 오직 모음만 변한다. 이러한 모음의 변화는 동사 형태에 따라 거의 규칙적이다. 또한 3의 상징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같은 성서적 문맥뿐만 아니라 문화의 상징 구조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가장 기본적인 통합 체계를 의미한다.
넷(4) : 복음서는 4개이고, 토라 즉 모세 오경은 다섯 책으로 묶여졌다. 동서남북과 춘하추동이 네 방향과 절기의 구분이기에 고대로부터 4는 전체적인 장소와 시간
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에덴 동산에서 네 줄기의 강물이 흘러내리는 것이나 새 예루살렘의 환영을 보고 새 성전의 건축을 예언했던 에제키엘이 활동 초기에 환시로 보 았던 사람과 사자와 황소와 독수리의 네 얼굴을 지닌 동물에서도 4의 상징성을 볼 수 있다. 한편 예수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태 13, 3-8)에서도 인간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섯(6)과 아홉(9) : 6이란 숫자가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불길한 예감을 알려 주는 맥락에서 사건이 전개됨을 읽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제6시부터 어둠이 땅을 온통 덮어 제9시까지 계속되었다"(마태 27, 45)고 한다. 6시에 어둠, 즉 불길한 징조가 온 땅을 덮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9시에 예수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시편 22, 1)라는 저항의 기도문을 낭송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9라는 숫자가 회개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 은전 열닢을 가진 여인이 한 닢을 잃었다가 되찾고 기뻐하는 이야기(루가 15, 8-10)가 있는데, 이 비유에서 예수는 "여러 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유대교에서는 예식을 행하기 위하여 열 명의 정족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 명이 하느님의 길을 잃고 오지 않는 경우 나머지 아홉 명이 등불(하느님의 말씀)을 켜고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 보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즉 하나가 하느님께'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라고 저항하며 회당에 오지 않을 경우 나머지 아홉 명이 그 잃어버린 은전 한 닢을 찾지(돌아오게 하지) 못하면 최후의 심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해석이다.
일곱(7) : 고대 근동 문헌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상징 숫자는 701다. 이스라엘에서는 창조 사건의 가장 거룩한날을 이렛날로 정하여 안식일로 규정하였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일곱째 날을 모든 작업에서 쉬는 온전한 날로 만들고 이를 어기면 가혹한 벌을 내려 이렛날의 신성함을 보호하겠다는 사고는, 고대로부터 701 가지는 전통적인 상징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아담의 일곱 번째 자손(창세 4, 17-24)인 라멕은 777년을 살았다(창세 5, 31)고 하며, 예수는 형제를 용서하려면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였고(마태 18, 22),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서는 귀신 일곱이 떨어져 나갔다(루가 8, 2)고 한다. 701 상징 숫자로 사용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구약성서의 큰 명절인 과월절 · 초막절 · 주간절은 각기 7일 동안의 축제일이며, 유대인들은 결혼식에서 일곱 번 축복 기도를 하고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 성령이 내려온 오순절의 시작도 유대교 과월절에서 주간절까지의 날수인 일주일의 일곱 번을 한 다음날이다. 주의 기도문이 일곱 개의 문장으로 엮어진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며, 지혜에 일곱 개 기둥이 있듯이(잠언 9, 1) 하느님에게 일곱 개의 눈이 있다(즈가 4, 10)는 것도 상징 숫자 701 낳은 신화이다. 성서에서의 7은 구원과 승리의 숫자이다. 초기 유대교 회당 바깥 앞면이나 안의 바닥에 새겨진 일곱 촛대의 등잔대인 '메노라' 는 생명의 나무를 상징한다.
여덟(8) : "복되어라"를 여덟 번 반복하며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라고 끝맺는 예수의 행복 선언(마태 5, 3-10)은 복받을 여덟 종류의 사람들을 열거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나이 들어 할례를 받고 낳은 아들 이사악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다. 유대교에서 할례는 갓난아기의 복을 비는 제의이다. 중세 시대에 교회 에서 사용하였던 세례용 물통은 팔각형이었다. 예언자 사무엘이 사울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추대하기 위하여 찾으러 다닐 적에 이새라는 노인이 그의 눈에 들은 것은 그에게 8명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복받은 아버지라는 것이며, 그중에서 여덟째 다윗을 택한 것도 8이라는 상징 숫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가 여덟 가지 복을 선언한 것은 오랜 전통을 잇는 행위였다.
열(10) :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하여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아담의 계보를 열 세대로 정한 것, 이스라엘인의 대속죄일이 티 쉬리(Tishri) 달의 열째 날인 것, 또 죄를 열 번 반복하며 고백하는 의식 등 10의 상징성은 십진법의 완전한 단위를 뜻한다. 주의 기도문이 모두 열 구절인 것도 의도적이다.
열둘(12) : 이스라엘에 있어 12지파는 민족 전통의 중요한 근본이며 성서에 반영된 이스라엘의 민족사도 12라는 상징 숫자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요셉의 꿈 이야 기에서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요셉에게 절한다(창세37, 9). 별 열한 개는 황도 십이궁의 문화를 말해 주며, 요셉은 황소자리이다. 11개 별과 해와 달이 황소자리에 절하는 것은 춘분에 태양과 달이 황소자리에서 떠오르는 상황을 말한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그 성전앞에 세우는 청동 기둥의 둘레를 12척으로 정하였으며, 물을 담을 바다 모형의 큰 청동 그릇을 만들었는데 특이한 것은 "이 바다 모형은 황소 열두 마리 위에 얹혀 있었으며 세 마리는 북쪽을, 세 마리는 서쪽을, 세 마리는 남쪽을, 세 마리는 동쪽을 바라보았다"(1열왕 7, 25)는 사실이다. 즉 황소 열두 마리가 원 모양의 큰 청동 그릇 밑을 받히고 서 있는 형상이다. 이것은 황도 십이궁의 모형이며 곧 밤 하늘의 12성좌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우주의 큰 대야이다.
예수는 자신의 제자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처음에 열두 제자를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열두 제자는 12지파를 상징하며, 옛날의 민족 공동체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새 계약의 공동체를 뜻한다.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빵 조각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한다. 예수는 또한 제자들 가운데 72명을 뽑아 둘씩 짝지어 온 땅에 파견하였는데(루가10, 1),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출하여 3개 조로 나누어 보낸 것이다.
〔수치 계산법〕 고대 그리스 학문이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 여러 학파를 형성하며 발전되면서, 제반 과학과 철학은 초기 유대교 랍비들의 논리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논리학과 수치 계산법(gematia)이었다. 수치 계산법 즉 '게마트리아' 는 그리스어 '게오메트리아' (γεωμετρία, 측량, 기하학)를 변형하 여 만든 전문 용어이다. 그리스어 알파벳이 숫자로 사용되었듯이 히브리어의 철자도 숫자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단어를 수치로 환산하여 그 덧셈으로 여러 이치를 판단하였는데, 예수의 족보를 14대로 나누어(마태 1, 1-17) 정리한 것에서 그 단적인 예를 볼 수 있다. 다윗(דוד)의 히브리어 철자를 숫자로 환산하여 더하면 4+6+4 즉 14이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 예수의 족보를 14대로 정하였고,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 바빌론 유배에서 예수까지가 14대라는 해석이다. 이로 인해 예수는 "삼중의 다윗"(다윗다운 다윗의 자손)으로 지칭될 수 있었다.
한편 예수의 히브리어 이름은 '예호슈아'(יְהוֹשֻׁעַ)이고, 그리스어 이름은 '야손'(Ἰάσον)이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그리스어 음역은 '예소우스'(Ἰησοῦς)로 이것을 수치로 환산하면 10+8+200+70+400+200이 된다. 결국 수치 계산법에 따르면 예수라는 이름의 수치는 888이다. 다윗이 여덟 번째 아들의 복을 안고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선택된 것처럼 예수는 8의 복을 십진법으로 3번 중복하여 최상의 복을 받는 메시아의 이름이 된 것이다. 한편 6의 어둠의 상징성을 극대화하여 그리스도의 대적자로 만들어진 예는 666이란 숫자이다(묵시 13, 18). 그리스도 사업의 방해자로 선정된 666의 숫자를 간직한 인물이 그리스도교인들을 탄압한 로마 제국의 통치자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의 미〕 수는 단순히 셈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문화가 창출하는 공통적인 수의 상징성에서도 수의 활용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성서에 언급된 많은 수는 상징적인 수법과 자모의 수치 계산법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항상 저자의 의도를 고려하여야 하며, 따라서 성서의 수에 대해 과도한 상징적 해석을 하거나 융통성 있게 다루어야 할 수를 엄밀히 다루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의 수는 간혹 정확한 숫자의 지시 이외에도 수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 바빌론 ; 상징 ; 상형 문자 ; 설형 문자 ; 수메르 ; 육백육십육)
※ 참고문헌 Annemarie Schimmel, The Mystery of Numbers, Oxford, Oxford Univ. Press, 1993/ J. Davis, Biblical Numerology. A Basic Study of the Use of Numbers in the Bible, Michigan, Baker Book House, 1968. 〔曹哲秀〕
수
數
〔라〕numerus · 〔영〕number
글자 크기
7권

상징 숫자를 학문으로 발전시킨 피타고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