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곡

受難曲

〔라〕Passio · 〔영〕Passion

글자 크기
7
수난곡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소재로 만든 교회 음악이다.

수난곡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소재로 만든 교회 음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소재로 만들어진 교회음악. 현재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파스카 금요일의 전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수난곡이라는 한자 표기는 수난기(受難記)를 음악화시킨 것' 을 의미한다.
[발 전] 초대 교회의 복음 선포 내용 중 가장 먼저 나타나고 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래서 성주간과 예수 부활 대축일이 일 년 전례 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례를 장엄하게 집전할 경우 복음 봉독 역시 성대하게 음률을 붙여 낭송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성주간에는 주님의 수난기를 특별히 성대하게 봉독하였다. 성주간 첫날인 주님 수난성지 주일에는 마태오 수난기(26-27장), 성화요일에는 마르코 수난기(14-15장) 성수요일에는 루가 수난기(22-23장), 그리고 파스카 금요일에는 요한 수난기(18-19장)를 봉독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기록을 보면 수난기는 특별히 '장엄하게 읽을 것' (solemniter legere)이라고 되어 있다(《강론집》 218, 1). 이 '장엄하게 읽는다' 는 표현은 400년 후에 악보상 나타나는 수난기 봉독 방법에서 확실하게 설명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9세기부터 수난기를 낭송할 때에는 복음사가 · 예수 · 그 밖의 사람들 등 각각의 배역에 따라 다른 음높이의 낭송률을 배정하였고, 그 배역들을 각각 '씨' (c), '티' (t), '에이' (a)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를 상트 갈렌(St. Gallen) 수도원의 발불로(Notker Balbulus, 840~920)가 최초로 설명하였는데, '씨' 는 '유창하게' 혹은 '빠르게' (celeriter)라는 뜻으로 복음사가(마태오, 마르코, 루가 혹은 요한) 역을 뜻하고, '티' 는 '붙잡다' 혹은 '끌고가다' (tenere, trahere)는 뜻으로 상대적으로 점잖은 속도로 노래하는 예수 역을 뜻하며, '에이' 는 더 높게' (altius)라는 뜻으로 기타 인물들의 배역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에이' 대신에 종종 '에스' (s)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높은 곳에' (sursum)라는 뜻으로 역시 기타 배역들의 낭송률을 뜻하였다. 이 기타 배역에는 유대인들, 예수의 제자들, 군인들, 빌라도 총독, 백성의 무리들이 속한다. 14세기부터는 예수 역을 뜻하는 '티' 가 십자가(☦) 표시로 바뀌기도 하였다. 이러한 표시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로마 미사 경본》(Missale Romanum)에서도 볼 수 있다. 본래의 뜻은 세월과 함께 바뀌어서 '씨'는 '역사 기록인' (chronista) 혹은 '가수' (cantor)라는 뜻으로 알아들었고, '에스' 는 성당 또는 회당(synagoga)이라고 알아들었다. 이러한 문자 표기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며 전래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복음사가 역은 중간 음역에서, 예수 역은 낮은 음역에서, 기타 배역들 부분은 높은 음역에서 낭송되는 형태를 갖추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구 분〕 전례적인 기본 형태는 음악 형식의 발달과 함께 변하였다. 16세기에는 다성부로 작곡되는 수난곡이 두 가지로 나누어져, 직접 화법 부분만을 작곡하는 극적 수난곡(dramatische Passion)과 전체를 다성부로 작곡하는 모테트적 수난곡(Motettische Passion)으로 분류되었다. 분류하는 관점에 따라서는 복음사가(c) 부분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낭송률을 따라서 빨리 노래되며 나머지 군중이나 독창자들의 부분은 다성부로 노래되어 마치 서로 주고받는 것이 화답송과 같다 하여 붙여진 화답식 수난곡(Responsoriale Passion)과 처음부터 전체를 다성부 음악으로 작곡하는 통작(通作) 수난곡(Durchkomponierte Passion)으로 나누기도 한다. 수난기의 대본을 중심으로 분류를 한다면 네 복음서 중 어느 한 복음서를 중심으로 수난곡을
작곡하는 경우와 어느 한 수난기를 짧게 요약해서 작곡하는 경우, 그리고 네 복음서를 다 합쳐서 요약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는 주로 예수의 십자가 상 일곱 말씀 〔架上七言〕에 중점을 두곤 한다.
오라토리오식 수난곡(Oratoriche Passion)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이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낭송률을 따라 하던 단성부 부분들을 독창식의 서창이나 혹은 가끔씩 자유로운 평성가식의 낭송률로 대치하고 여기에 코랄이나 아리아 및 합창곡들을 첨가하는 형식이었다.
음악적으로 가장 발달한 수난곡 형태로는 수난 오라토리오(Passions oratorium)를 꼽는데, 이는 이탈리아에서 오라토리오가 탄생하면서 수난기를 소재로 오라토리오를 만든 것이었다. 이것의 특징을 꼽는다면 대본이다. 당시까지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기록에 충실하여 작곡을 하였지만 수난 오라토리오는 대본을 자유롭게 개작하여 상징적인 인물을 등장시켰다. 현재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수난 오라토리오는 로시(L. Rossi)의 <성주간 오라토리오>(Oratoio per la Settimana Sancta, 1643)이다. 또 같은시기에 빈(Wien)에서는 장면 연출까지 하는 <성 무덤극> (Sepolcri)이 있어서 성주간에 금지된 궁정 오페라를 대신했다. 그러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 카알 4세(1355~1378)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라는 개작 대본(Metastasio)이 18세기 초에 나타나면서 수난 오라토리오의 홍수 시대를 맞았다.
〔가톨릭의 수난곡〕 가톨릭 전례에서는 현재까지도 그레고리오 성가식의 낭송률에 의한 수난곡이 복음 봉독이라는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기 때문에 가장 선호되고 있다. 화답식 수난곡이나 오라토리오식 수난곡도 전례에서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트리엔트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다성부 음악의 수난곡들은 전례에서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화답식 수난곡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라소(O. diLasso, 1530/1532~1594) , 게레로(F.Guemero, 1527~1599) 빅토리아(T.L. de Victoria, 1548~1611), 버드(W. Byrd, 1543~1623)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에 <성 무덤극>이나 수난 오라토리오는 가톨릭의 전례 밖에서 사용되었다. 전례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작곡 의지를 감소시켰지만, 하이든(F.J. Haydn, 1732~1809)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이나 베토벤(L. van Beethoven, 1770~1827)의 <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 정도로 맥을 이어 왔다.
19세기 중엽에 들어 수난 오라토리오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는데, 한편으로는 복고적인 형태에 대한 선호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 교회 음악이 정화 되기를 바라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 이탈리아 형식을 다시 살린 리스트(F. Liszt, 1811~1886)의 <그리스도>혹은 구노(C.F. Gounod, 1818~1893)의 <구원>(La redemprio) 등이 후기 낭만파 형식과 접목되어 작곡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페로시(L. Perosi)가 체칠리아 운동의 일환으로 <마르코 수난기>(1893)를 작곡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말씀에 집중함으로써 신앙과 반대되는 요소들을 여과시키려는 노력은 교황 비오 10세(1903~1914)의 자의 교서 <유쿤다 사네>(Iucunda sane, 1904. 3. 12)에 의하여 장려되었고, 오늘날에도 그레고리오 성가식의 수난기 낭송은 성주간 전례의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수난곡〕 프로테스탄트의 수난곡은 주로 독일에서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국한할 수밖에 없다. 루터(M. Luther, 1483~1546)가 수난곡에 반대하는 말을 하였지만, 이는 수난곡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과장된 수난곡에 대한 경고였다. 부겐하겐(J. Bugenhagen)이 독일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쓰면서성주간을 위한 독서집을 만들었고, 이로써 라틴어로 쓰여진 수난기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향으로 1600년경에는 함부르크에서 수난곡이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화답식 수난곡이 주종을 이루면서 전례에서의 위치도 미사에서 저녁 기도(Vespere)로 옮겨졌다. 초기 프로테스탄트에서 미사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된 것은 루터가 신부였었고, 적어도 16세기 초까지는 미사를 봉헌하였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독특한 수난곡 형식으로 유절(有節) 형식의 찬송가 가사를 사용한 리드 수난곡(Lied passion)이 있는데, 그 첫 작품이 메일란트(J. Meiland)의 <마태오 수난곡>이다. 이 리드 수난곡이 차츰 화답식 수난곡의 자리를 잠식하였지만 17세기까지는 화답식 수난곡이 주종을 이루었다. 슈츠(H. Schutz)의 수난곡 세 개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반대로 오라토리오식 수난곡은 전례보다는 음악적으로 더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음악사적 변천 과정에서 생긴 모든 새로운 것들 즉 독창 노래(Monody)와 통주저음(general Bass) , 협주하는 기악 성부, 많은 성서적 대본과 찬송가의 가사 등을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부터는 수난 오라토리오와 수난 칸타타(Passions cantate)가 등장하였다. 수난 오라토리오는 1640년 셀레(Th. Selle, 1599~1663)의 수난곡이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전 독일로 급격히 퍼지면서 18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수난곡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대표적인 작품은 바흐(J.S.Bach, 1685~1750)의 <마태오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이다. 그러나 이 수난 오라토리오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 음악 가운데서 예외적으로 오페라적인 요소들을 갖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비전례성을 띠기 시작하였다. 1716년에 텔레만(G.P. Telemann, 1681~1767)의 수난곡이 연주될 때에는 입장료를 받았고, 또 교회 밖에서 하려 했지만 단지 예정했던 장소가 좁아서 교회에서 공연되었다.
이렇게 수난 오라토리오가 프로테스탄트의 전례 범위를 벗어나서 사회적인 연주 행사로 기울자 19세기 중엽부터는 복고적인 현상이 생겨서 슈츠의 수난곡들이 다시 연주되었고, 이러한 흐름을 따라서 헤르초겐베르크(H.von Herzogenberg, 1843~1900)의 수난곡이 다시 예배적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현대에도 수난곡들이 자주 연주되지만 대부분 예배에 이용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수난 오라토리오를 제외한 모든 장르의 수난곡들이 다시 나타났는데, 디스틀러(H.Distler, 1908~1942) · 히헬센(H.F.Hicheelsen) 등은 화답송적 수난곡을, 토마스(K. Thomas,
1904~1973) · 페핑(E. Pepping, 1901~1981) 등은 통작적 수난곡을, 콜룸(H. Collum) · 쿠쿡(F. Kukuck) 등은 오라토리오적 수난곡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수난곡의 미래는 얼마나 예배의 울타리로 들어오는 작품을 작곡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 <마태오 수난곡> ; → 그레고리오 성가 ; 오라토리오 ; 주님 수난 성지주일 ; 파스카 삼일)
※ 참고문헌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mwart,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Bärenreiter Verlag, 1989/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icms, MacMillan Publisher, 1980. [白南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