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

修德

〔라〕ascetismus · 〔영〕asce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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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덕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덕을 닦는 것이 수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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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덕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덕을 닦는 것이 수덕이다.

I . 영성 신학에서의 수덕
영성 신학이나 이를 실천하는 영성 생활에서 자주 언급되는 용어로, 완덕(完德)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덕을
닦는 것.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로 '완전한 사람' (마태 5, 48)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 일치(unio cum Deo)하기 위하여 완덕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영성 신학에서는 이렇게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정화(淨化)의 길(viapurgativa) · 조명(照明)의 길(via illuminativa) · 일치(一致)의 길(via unitiva)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여기에는 수덕적인 요소와 신비적인 요소가 있는데, 수덕적인 요소는 죄악을 피하고 기도를 하며 극기 생활을 통하여 덕을 닦는것을 말한다.
〔신약성서에서의 수덕 사상〕 복음서에서 제시되는 수덕 사상은 역사적인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충실한 제자직에서 요구되는 고통 · 위험 · 불이익 등을 그분과 함께 나누는 구체적인 행위를 전제하고 전개된다. 사도바오로의 서간에서 제시되는 수덕 사상은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에 겸손되이 순종하여 보다 충만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의식적으로 항구하게 자신을 갈고 닦는 영적 운동 선수 같은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자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원에 있다.
복음서 : 예수를 추종하는 제자직은 수덕적인 자아 포기를 요구한다. 예수에 의해 제자로 부름받은 이는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과거에 맺은 관계를 끊고 하느님 나라에 절대적인 우선권을 두어야 하며, 오직 그분을 따라 나선다는 목적을 향해 매진하여야 한다. 그분의 부르심은 "누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또한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마르 8,34-35 : 마태 16, 24. 25 : 루가 9, 23-24)라는 말씀에 있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온전한 투신을 요구하며 타인들로부터 받는 경멸과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그리스도를 추종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다(요한 6, 65). 그러므로 세속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마태 11, 25).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나서는 삶은 단순히 그분이 행한 것을 모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 이 아니라 그분과 더불어 그분의 체험을 실제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제자직이며 그분의 운명 안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복음서에서 제시되는 제자직은 스승인 예수와의 관계를 끊도록 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그분에 대한 충성심으로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복음서에서 제시되는 다른 수덕적 주제는 겸손이다. 이 주제는 '영적으로 가난한 이들' (אֲנִיִּים) 안에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마태 5, 3 : 루가 6, 20). '아나빔' (אֲנִיִּים)들 은 자신들에게 어떤 영적인 필요가 있는지 인식하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힘과 도움을 바라는 신심 깊고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종종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로부터 경 제적으로 억압받고 짓밟히기도 한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태 5, 3)라는 첫 번째 진복 팔단을 들려주었다.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마태 11, 29)한 이로서 자신을 표현한 그리스도는 자신 역시 하나의 가난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사도 바오로의 서간 :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수덕 사상이 여러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경기장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꾸준히 달리는 육상 선수처럼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는 영적인 운동 선수처럼 묘사되어 있다(1고린 9, 24-27 : 1디모 4, 7). 이러한 노력은 '묵은 인간' (에페 4, 22)과 육체와 그 연약함(로마 8, 12-13) 그리고 '권력과 권세(의악신)들,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 천공에 있는 악한 영들' (에페 6, 12)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완덕의 모범인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살기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는 과정에서 겸손과 극기(克己, mortificatio sui ipsius)를 실천하여야 한다. 사도 바오로 자신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영적으로 훈련된 운동 선수처럼 모든 노력을 경주하였으며(사도 24, 16 ; 히브 5, 14 : 12, 11), 꾸준히 그 길을 달리고 있는 일종의 수덕자(修德者, asceticus)였다(필립 3, 13). 사도 바오로의 수덕주의에서 드러나는 다른 면은 수덕의 공동체적인 의미이다.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여 영광을받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 안에서 살고 행동한다. 또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갈라 2, 19-20)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은 모든 이들과도 연관을 맺고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도움이 되거나 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개개인의 노력은 사도 바오로처럼 공동체적인 의미가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수난의 부족한 것을 마저 채읍니다" (골로1, 24)라는 말씀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기원과 변천〕 초대 그리스도교의 수덕 권고들 :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로부터 기도 · 단식 · 자선에 관한 기본적인 실천 사항들을 배웠으나 다양한 동기와 형태로 이를 실행하였다. 단식은 의식적인 정화라기 보다는 성덕(聖德, sanctitas)의 성장을 위한 수덕적인 방법이었고, 자선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최후의 심판 기준(마태 25, 31-46)과 사랑의 계명(요한 15, 12)을 강조하여 점차적으로 사목 활동으로 발전되었다. 수덕 생활에서 중요한 기도와 성체성사 안에서 반복된 기도들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여러 형태의 기도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점차적으로 순교와 동정(童貞, virginitas)에 관한 지향이 고조되었다. 순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에 있어서 완덕의 최고봉으로 여겨졌고, 순교할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이상(理想)이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와 함께 매일 죽어야 하는 원리가 그리스도인 소명의 근본적인 요구로 받아들여졌으며, 이런 신심은 실제로 순교를 늘 준비하는 생활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극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이원론의 영향을 받은 나머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us)와 몬타누스주의(Montanismus) 그리고 마니교(Manichaeismus)의 수행을 본받아 이단으로 흘러가기도 하였다. 물질 세계를 지나치게 경멸하고 혼인을 부정하며 육식을 지나치게 금하며 지나친 윤리적 엄격함과 일부 죄에 대한 용서를 부정하는 경향 등은 모두 이원론에서 연유되어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수도자적 수덕주의 : 교회가 확장되자 일생 동안 동정을 지키려는 의지가 신심 깊은 신자들 사이에 커져 갔다. 그래서 동정의 이상과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에 대한 서적들이 나와 수행에 대한 가르침과 실행이 발전하였으며, 동정녀들과 수행자들은 지방 공동체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사막의 은수자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250~365)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시리아 · 이집트 ·팔레스티나의 사막에서 수행 생활을 하였는데, 그들은 외딴 곳에서 극기와 기도 생활에 힘쓰면서 사욕 편정(邪慾偏情, concupiscentia)을 완전히 제어한 상태인 무관심(apatheia)의 경지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로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수행에 힘썼던 것이다. 그들은 음식 · 수면 · 의복 · 숙소 등에 있어서 철저한 극기를 실천하였다.
그 후 초대 교회의 수덕주의에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일치하거나 보상의 개념으로 고통을 받는 중세기적 개념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역설적으로 313년 콘스탄틴 대제(306~337)의 밀라노 관용령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경시하고 순교 대신 힘든 사막의 생활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이집트에서 공동 수도 생활을 시작한 파코미오(Pachomius, 292~347)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는데, 이 공동 생활은 성문화된 규칙과 1명의 원장, 시간에 맞추어 하는 공동 기도, 개인에게 맡겨진 일정한 활동〔所任〕 등이 질서 있게 짜여져 있어 오늘날 봉쇄 수도원의 기원이 되었다. 하지만 복음 삼덕인 청빈 · 정결 · 순명이 공식적인 서원의 요소는 아니었다.
파코미오가 주창한 생활 양식은 교회 안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결함도 있었다. 우선 이러한 생활 양식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 수덕자들은 그리스 · 로마의 이원론적 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교회의 전통적인 가치들과 공존하는 데 어려움을 빚었다. 이들은 비록 격정 · 정욕 · 분노 · 공포 등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하는 '아파테이아'(ἀπάθεια)라는스토아 학파의 이상(理想)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추구하였지만, 육체와 영혼의 갈등을 언급한 성서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또 이들은 초월적인 것을 지적으로 추구하려고 하여 그노시스(gnosis, 내적 영적 조명)와 이론(theoria, 관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이상과는 달리, 보다 근본적인 그리스도교 진리를 강조하며 완덕을 의지의 영역으로 보았다. 즉 삶은 활동적인 애덕 안에서 표현된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들은 종종 물질계를 경시하는 풍조와 신약성서가 강조하는 공동체적인 구원보다는 개인적인 구원에 집착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회적인 영성은 개인적 수덕주의를 강조하게 되어 전례 생활을 무시하며 사회 안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사도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성 바실리오(Basilius Magnus, 329~379)가 시작하고 성 요한 그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7~407)가 지지한 수도 생활은 위에서 언급한 부족한 면들을 보충하는 제도로 등장하였다. 두 성인은 세속을 떠난 수도 생활을 지지하였으나, 떠남은 곧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로 간주되었다. 바실리오에게 있어서 습관적으로 조용한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많은 덕행, 특히 애덕 실천의 장애 요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애덕은 모든 덕행 중에서 타인에게 은총과 지식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한 그리소스토모는 수도자들에게 팔레스티나에서부터 다뉴브 강 너머까지 광대한 선교 지역을 담당하게 했다. 한편 서방에서는 성 베네딕도(480?~547?)가 직접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지는 않았으나 전례를 바탕으로 한 애덕에 기초하여 유럽을 복음화시키는 데 앞장서 나갔다.
평신도 수덕주의 : 평신도 영성은 비록 초대 수도원 영성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대단히 영향력 있는 영성이다. 3세기 중엽 데치우스(249~251) 황제 와 발레리아누스(253~260) 황제가 박해를 일으켰을 때 배교자들이 많았는데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세례 지원기 교육 과정이 생겨 개종자들의 교육을 위한 철저한 훈련기간을 두었다. 그것은 성서적 관점에서 구세사와 부활전야의 세례성사에 기초를 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왕국과 암흑의 주권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그 교육은 《디다케》(1, 1-2. 7)와 《바르나바의 편지》(18, 1-20, 2)에 나오는 '두개의 길'에 대해 단순하고도 윤리적인 교리 교육을 정교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4세기에 들어 예루살렘의 치릴로(315~348) · 요한 그리소스토모 · 암브로시오(339?~397) 등은 사탄과 허례 허식 행위를 의식적으로 추방하는 예식을 전례 안에 도입하여 3년 간의 수덕 교육을 실시하였다. 성사 생활 · 기도 · 참회 · 영의 식별 · 자선 행위 등은 마지막 교육 기간에 강조되었으며, 이 과정에는 세례받은 신자들도 참여하여 부활 축제 준비를 하며 쇄신의 기회로 삼았
다. 또한 수덕의 역사 안에서 이러한 평신도의 풍부한 수덕주의는 수도원 운동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편이었지만, 부활 대축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한 준비로서 사순 시기에 시행된 기도와 여러 가지 수덕 행위는 평신도들에게 중요한 영성적 교육이 되었다.
〔전통적인 수덕 방법인 극기〕 극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완덕의 모범인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는 수덕 행위이다. 그러므로 극기는 완덕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이며, 성서와 영성 대가들의 가르침에서도 그 필요성이 누차 강조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수덕 생활의 중요한 원리로 제시되어 왔다. 극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우선 인간성 자체에서 기인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느님께로 향하는 영적인 욕구를 지니지만 동시에 원죄의 결과로 인해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두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그분을 떠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기로써 완덕의 모범인 예수를 본받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온갖 장애물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성서적 용어와 가르침 : 극기란 용어는 성서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이 주는 시련을 잘 견디어 내고(지혜 3, 5-6), 인내를 다하며(집회 1, 23) 절제하여(집회 37, 27-31)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하는(집회 5, 2) 표현들이 있다. 복음서에도 극기에 대한 직접적인 용어는 피하고 극기를 의미하는 여러 용어들과 관점들을 소개하고 있다. 스승이요 주님인 그리스도는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는 이에게 분명히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끊으며(루가 9, 23 ; 14, 27) 포기와 초탈(루가 14, 16. 33), 고통스러운 절단(마태 5, 29-30 : 요한 15,2), 가족으로부터 떠남(마태 10, 29-30 : 루가 11, 21-26), ,회개(마태 11, 20 : 루가 13, 5), 하늘 나라를 위한 정결과 독신 생활의 권고(마태 19, 12),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가르침(마태 6, 24) 등으로 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극기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 것(요한 12, 24-25)으로 비유되기도 하며, 영적 훈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1고린 9, 27).
극기의 간접적인 표현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묵은 사람을 벗어 버림(골로 3, 9-10)과 정욕과 사욕을 십자가에 못박음(갈라 5, 24) 등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상호 연관적인 개념으로서 포기(renuntiatio) · 초탈 · 영적 전쟁 · 십자가의 신비 · 금욕 · 심전(心戰) 등의 용어와 함께 영성 신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도 요한도 간접적으로 극기에 대한 권고를 하면서, 세상과 거기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어 특별히 완덕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 그리고 재산에 대한 자랑을 반대하고 경고하였다(1요한 2, 15-16).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극기는 환난을 당하고 극심한 경우에는 박해와 순교까지도 감내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묵시 7, 13-17).
극기의 본질과 의미 : 라틴어 성서에 나오는 극기(mortificatio)는 '죽인다'(mortificare, occidere, percutere)는 의미이다(시편 37, 32 ; 38, 10 : 79, 11 ; 107, 17 : 잠언 19, 9 : 토비 13, 2 ; 지혜 16, 13 : 욥기 5, 18 : 호세 6, 1 : 에제 17, 24 ; 로마 8, 36). 또한 생명의 원리에 있어서, 특히 그리스도교의 인생관에서 볼 때 죽음은 생명과 연관성이 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잘 드러나 있는데, 즉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가르침이 그것이다. 생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하느님의 역사(役事)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생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하느님은 인간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자 증거를 드러냈다(요한 3, 17). "그분은 우리 죄를 몸소 당신 몸에 지시고 나무에 오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로움에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베드 2. 24). 죄에 죽는 이 즉 "육으로 고난을 당한 사람은 죄를 끊었습니다"(1베드 4, 1). 여기에서 극기의 참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극기는 자신을 포기하고 고통을 당함으로써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육체의 욕망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의 욕망은 죽음의 원인(causa mortis)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극기는 회개(paenitentia) · 포기 · 희생(abnegatio)의 의미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구별된다. 회개는 죄에 대한 뉘우침과 사랑을 얻기 위한 개정(改正)의 마음을 의미한다. 포기는 재산의 소유와 그 욕망에서 초탈하여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을 추구하고 참된 복〔眞福〕을 얻기 위하여 청빈의 덕을 실천하는 것을 뜻하며, 희생은 인간적인 욕망에 대한 애착(自愛, amor sui)과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한다. 즉 하느님을 섬기고 인간에게 철저히 봉사하며 투신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사람들과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애착까지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극기는 육체의 욕망을 죽이기 위하여 영의 인도를 받아 투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의 욕망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과 자발적인 극기까지 포함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는 삶으로 드러나며 그 결과는 성령의 열매들(갈라 5, 22)과도 통한다.
극기는 영성 생활에서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사욕 편정과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의 욕망은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 15개 이상이나 된다(갈라 5, 1. 9-21). 이런 욕망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죄의 결과로서 빚어진 악에 기울어지는 경향에 따라 행해지며, 이러한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욕망들은 그리스도교적 수행을 어렵게 한다. 사도 요한은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은 구체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육체의 관능적인 욕구와 눈의 과도한 호기심, 그리고 재산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으로 드러난다고 전제하면서 이러한 욕망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없다고 가르친다(1요한 2, 16). 또한 극기는 인간의 자만심과 분수에 넘치는 지나친 영광의 추구를 절제하여 모든 덕의 기초인 겸손을 실천하게 한다. 나아가 극기는 그리스도인이 완덕의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으로서, 인간의 외적 · 내적 감각과 감성적 욕구까지도 제어하여 이러한 감각에서 유발되는 온갖 좋지 않은 상상을 제어하게 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완전한 합일에 이르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는 마지막 작업으로서, 전통적인 심리학의 분류에 의한 영혼의 두 가지 영적 기능인 지성과 의지까지도 정화할 것을 요구한다. 지성이 정화되면 인간은 신앙의 빛을 받아 사물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올바로 관찰하고 판단하게 되므로 헛되고 무익하며 죄스러운 생각을 모두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의지가 정화되면 인간은 신앙의 인도를 받은 지성이 제안한 선을 추구하게 되므로 정당하지 않은 온갖 욕망을 제어하여 이상적으로는 피조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 사랑인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게 된다. 따라서 육체적 극기 및 정신적 극기는 인간의 정욕을 제어하고 마음을 비우게 하여 하느님을 수용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인 것이다.
극기의 방법 : 극기를 위해서는 포기와 고행이 필수적이다. 영성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을 반대하여 행하는 것(agere contra)은 극기 실천의 우선적인 과제이다. 인간의 육체적인 욕망이 하느님이 정해 놓은 올바른 목적에 어긋날 경우, 그것에 반대하여 행함은 극기를 요구하며, 재산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을 반대하여 행함도 역시 극기를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좋은 극기의 방법으로 단식을 강조하였고(마태 17, 21 ; 26, 41),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여러분은 영을 따라 거니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육의 욕정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육은 영을 거슬러 욕정을 일으키고 영은 육을 거슬러 (일어납니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어 여러분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갈라 5, 16-17). 그리하여 구체적으로는 단식 · 절식 · 편태 · 철사 줄로 뾰족하게 만든 혁대 두르기 · 맨발 · 구걸(탁발) · 성지 순례 · 유랑 생활 · 밤샘 기도 등과 같이 실제로 육체적인 고행을 통하여 수행하는 방법과 온갖 종류의 모욕과 천시를 참아 받는 정신적 고행 등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도록 권고한 수행 방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행들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수도원의 규칙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자신과 세상의 죄악을 보속한다는 가르침도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규칙에 따라 사는 자는 하느님을 위해 산다'(Qui regulae vivit, Deo vivit)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영성 대가들의 수덕지침은, 극기의 실천은 언제나 온건하고 지속적이어야하며 기도와 성사 생활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가르쳐 왔다.(→ 극기 ; 덕 ; 수덕 신학 ; 영성 수련 ; 영성 신학)
※ 참고문헌  Jordan Aumann, Spiritual Theology, Sheed & Ward, London, 1982/ A. Willwol, S.J., Ascèse, Ascétisme, 《Dsp》 1, pp. 936~1010. [田達秀]
II . 종교학에서의 수덕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져 있는 도덕 능력으로 인격형성의 원동력인 덕(德)을 닦는 것.
수덕을 유교 전통에서는 '수기' (修己) 또는 '수신' (修身)이라고도 하는데, 신유학 전통 속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대학》(大學)에 나오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 齊家治國平天下)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덕을 닦아서 집안과 이웃과 사회 전체를 평안하게 한다는 인격 완성의 기본 틀과 지향성은 유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전통 들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사상에서도 덕(virtus)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습관화된 능력과 탁월한 성품을 지칭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덕과 덕 있는 사람을 윤리의 중심에 두었다. 수덕의 핵심은 이기적 자아를 정화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은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의식의 정화〕 수덕은 '의식(意識)의 정화' (purification consciousness)를 가져온다. 부모나 스승을 통해 배우는 전통적인 지식은 자기가 경험해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 묘사적으로 들어서 저장된 것이다. 이 저장된 지식을 직접 확인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 체험이 필요하다. 수덕이란 실존적 자기 체험을 통하여 전통을 실천하면서 그 안에 잠겨 있는 깊이 있는 층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전통적 상징을 쓰는 긍정적인 길을 통해 오기도 하고, 상징 등을 넘어서 사고와 이미지를 비우는 부정의 길을 통해서 오기도 한다. 부정의 길은 더 철저한 수행을 강조해서 무지(無知)의 구름 · 무심법(無心法) · 무위자연(無爲自然) 등의 부정적 언어를 통해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는 차별 의식을 정화시킴으로써 순수의식 상태에서 절대 진리를 있는 대로 체험하게 한다. 이러한 체험은 집착 없이 고양된 평온함과 순수한 희열 및자유를 누리게 한다.
순수 의식 상태의 체험은 권세 · 부유 · 미모 · 명예 등 세속적인 가치를 상대화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와 자유를 얻게 되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 과 앎을 갖게 한다. 순수 의식의 체험이 유신론과 결합하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말하게 되고, 인격성을 초월한 절대 실재나 경지의 획득을 지칭하게 되면 불이 (不二)의 이론으로 발전한다.
〔순화된 윤리 실천〕 수덕은 순화된 윤리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자기 전통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을 자신의 체험으로 직접 확인하였기 때문에 덕을 쌓은 사람은 최고의 윤리성을 증거한다. 불교의 공(空), 곧 무아(無我)의 깨달음은 자비로운 보살의 이상을 가능하게 하고, 그리스도교의 자기 비움(kenosis)은 순수한 사랑과 봉사를 요청한다. 사실 이기적인 자아의 정화를 거치지 않은 극기나 봉사는 오히려 실천자를 자기 만족에 빠지게 하여 참된 사랑의 봉사를 하지 못하게 한다. 착실한 수덕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을 겸손하고 강하게 해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기쁨과 온유함을 갖고 대처하게 한다. 수덕이란 한 인간의 영적 자질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로 드러난 활동보다 더 중요하고 그 바탕이 된다. 따라서 순화된 윤리 실천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각 종교 공동체들은 수덕의 구체적인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 : 불교에서는 이를 위하여 팔정도(八正道)를 가르치는데, 처음 세 가지는 '바른 말' [正言], '바른 행동'[正業], '바른 직업' [正命]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 도덕적인 행위는 무지로서 인간을 제약하기 때문에 의식의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우선 필수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윤리적인 삶은 해탈에서 근본이 되며, 대승 불교에서는 보살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집착하고 번뇌하는 의식의 정화를 위해서는 '바른 수행' 〔正精進〕, '바른 사고 [正念], '바른 명상' [正定]을 가르친다. 끝으로 지혜 의 눈을 획득함으로써 '바른 봄' [正見]과 '바른 앎' 〔正思〕에 이르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순수한 지혜와 자비심을 갖추게 되고,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진여(眞如)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번뇌가 없는 자비로운 윤리 행위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보살의 삶이라 고 하는데, 불자들에게 보살 서원은 수덕의 지침이다.
그리스도교 : 교회의 수덕 신학에서는 순화된 윤리 실천을 위해서 일반적으로 정화 단계 · 조명 단계 · 일치 단계를 제시한다. 정화 단계는 불법적인 죄와 생활을 버려 깨끗이 하는 것이고, 조명 단계는 하느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 합법적인 것까지도 버릴 수 있게 됨을 뜻하며, 일치 단계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순명에서 자아의지를 버리게 되고 마음의 순수함을 얻게 된 상태이다.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마태 5, 8)이라는 말씀은 더러움에서 정화되어 모든 거짓을 벗고 진실하게된 사람의 상태를 지칭한 것이다. 수덕의 최고 단계인 신비 체험과 높은 윤리는 맞물려 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3, 34)라는 예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게 되겠기 때문이다. 로이스브루크(J. van Ruysbroeck, 1293~1381)는 마음이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겸손 · 복종 · 자아 포기 · 인내 · 온유등의 덕을 실천하여야 한다고 했고,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1328)는 덕이 있어야 하느님과의 일치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ab Avila, 1515~1582)는 인간의 의지를 하느님께 온전히
굴복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육화의 신학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수덕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합니다"(마태 5, 48)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힌두교 : 참된 윤리는 자신을 아는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고, 자기 신분에 적합한 도덕적 실천은 진리를 향하게 하는 초월성을 가지고 있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바가바드 기타>(Bhagavad-gita)에서는 세 가지 구원의 길이 제시되어 있다. 이 중 행위 요가(Kama yoga)는 지혜요가(Jnana yoga) 및 신애(信愛) 요가(Bhakti yoga)와 더불어 해탈하는 방법으로 중요시된다. 행위 요가란 결과에 집착함이 없이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철저히 실천하는 삶으로, 여기에서의 도덕적 완성은 곧 구원의 길이다. 지혜요가가 소수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신애 요가는 이론뿐만 아니라 시 · 노래 · 춤 · 연극 등을 통해 널리 보급되고 대중화되었다. 신애 요가에서는 은총으로 신에게 온전히 신뢰하며 사는 삶이 곧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쳤다. 지혜 요가에서는 경시되던 지상의 현상 세계 역시 환상이 아니라 신의 창조적 힘이요 사랑의 놀이로서, 이 안에서 신은 자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보여 주고 있다고 하였다.
중국 전통 : 다른 어느 종교 전통보다도 수덕을 강조하였는데, 그 이유는 윤리성의 완성으로써 천리(天理)를 알 수 있고 하늘과 땅의 화육(化育)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온전해진 사람은 곧 성인(聖人)이다. 성인은 천도(天道)와 합일되어 있으므로 덕으로써 백성 을 교화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을 다하면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고, 자기의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되고 하늘을 섬기게 된다"(《孟子》, 《盡心》 上 1). 하늘을 섬기는 길은 자기 마음 안에 부여된 도덕성을 실현하는 길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단정함으로써 수덕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었다.
유교의 예치(禮治)를 신랄하게 비판한 도교 전통은 무위자연을 가르쳐서 일면 도덕적 인의(仁義)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무위자연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기적 시각에서 남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하려고 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중시하였음을 알게 된다. 성인(聖人)은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하며 경쟁함이 없이 모든 이를 키우고, 모든 것이 이루어진 후에는 물러난다. 장자(莊子, 기원전 369?~286)는 최고의 덕〔上德〕을 지닌 사람을 지인(至人) 혹은 신인(神人) 등으로 불렀다. 이들은 모두 도를 따르고 배워서 도와 하나가 된 인격자로서 최고의 윤리성을 실천하는 완숙한 인간들을 가리켰다.
〔자기 비움을 통한 사회 구제성〕 수덕은 체험적 성격을 지녀서 대중성을 갖고 자신을 비워 남을 수용하는 사회 구제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수덕은 신학이나 철학과 같은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인층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정화를 할 마음만 있으면 덕을 쌓아 성인이 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중국 선불교의 성격을 규정한 혜능(慧能, 638~713)은 나무꾼 출신으로 글자를 쓸 줄 몰랐다고 하며, 이슬람교의 대표적 신비가인 라비아(Rabia)는 노예 출신의 여성 시인이었다. 수덕에 깊이 들어가려면 지식의 병폐를 깨닫고 교만을 치료하기 위해서 쌓아 온 모든 지식과 명예와 소중히 여기는 모습들까지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뿌리깊은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 슬픔과 무지의 구름 속에서 자신을 비우면서 기다리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나긴 정화의 길을 걸은 후 어느 순간 자아를 깨고 나와서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는 밝은 지혜와 자비로운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선불교에서 진정한 자기를 찾는 10개의 표상인 <십우도>(十牛圖)의 마지막 그림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사는 마을의 시장으로 보살로서 돌아오는 장면이다. 아빌라의 데레사가 쓴 《영혼의 성》(Las Moradas o Castillo Interior, 1577)에 나오는 제7 궁방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정화의 열매는 순수한 사랑의 봉사이다. 영혼이 일체의 형체를 떠나 순수한 얼로 남아 지음이 없으신 이와 결합되어 묻는 질문은 "주여, 나로 하여금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이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하느님과의 영적 일치에서 실행이 나오는 법이라고 강조하였다. 이 상태에 이르면 메마름이나 시끄러움은 거의 없고, 영혼은 항상 고요하고 잔잔하다. 황홀한 체험도 없어지고, 두려움도 고독도 괴로움도 없어진다.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도 영혼만은 떠나지 않는 평화를 누린다. 깊은 침묵 속에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모든활동[動]은 고요함(精)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고, 동정을 관통하는 공경(敬)스러움이 삶과 행위 전체에 스며 있는 것이다.
〔의 미〕 수덕의 실천은 세속화와 개인화 경향으로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 참으로 필요한 것이다. 서유럽 세계에서 '덕의 윤리' (ethics of virtue)가 다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런 조짐 때문일 것이다. 즉 상식윤리 · 의무 윤리 · 실용적 결과주의의 윤리가 도덕적 주체의 유지에 대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통적 수덕 윤리는 주체와 남에 대한 균형적인 관심을 유지해 왔다. 자신의 의식과 윤리 행위와 삶 전체를 정화해서 스스로 덕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사회를 결속시키고 구제하는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덕을 향하여》(After Virtue)라는 책을 저술한 맥킨타일(A. MacIntyre) 교수가 책의 종결 부분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베네딕도 성인-그러나 물론 매우 다른 형태를 취하는 베네딕도 성인을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한 말은 새로운 형태의 수덕을 실천하는 살아 있는 성인들이 필요한 시대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하겠다. (→ 덕)
※ 참고문헌  Ninian Smart, The Purification of Consciousness and the Negative Path, Mysticism and Religious Traditionl Steven Katz, Ethics and Mysticism, Foundation ofEthicsl Alasdair MacIntyre, After Virtuel Michael Slote, From Morality to Virtue. [金勝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