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의 수도 생활 전반에 관한 규범. 일반적으로 수덕에 관한 영적 요소와 공동체 생활에 관한 규율적인 요소들, 즉 수덕 생활 · 기도 시간 · 공동체 조직 · 장상 · 노동 · 교정 등을 포함한다.
I . 수도 규칙의 의미
〔의 의〕 '수도 규칙' 이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레굴라' (regula)인데, 이는 동사 '레제레' (regere, 이끌다, 수도 공동체의 책임자가 되다, 가르치다, 경작하다, 바로 세우다 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면 '레굴라' 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신앙의 규칙,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에 관한 규정, 교회 규율의 규정 또는 규정집, 전례 규정들의 총체, 보속과 회개, 수덕 생활에 관한 가르침과 모범, 수도승 공동체에 의해 준수된 실천, 수도승 규칙, 수도승원, 참사회 규칙 등이다.
수도 규칙서는 수도자들의 한 모임 또는 여러 모임들을 위한 생활 규범을 기록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수도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영적 체험들을 요약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 규칙서는 창설자가 살았고 증언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이 이어 가기를 바랐던 영성과 활동을 잇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고유한 영성과 전통이 담겨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 그에 적용되고 쇄신되면서 더욱 풍요로워져야 한다. 사실 수도 규칙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그것을 준수하려는 수도자들에게 생명의 원천이었으며, 이어지는 세대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도 규칙의 어떤 것은 계속 잘 지켜졌고 어떤 것은 그 의미와 정신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러나 수도 규칙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내재해 있는 영적 체험을 전달해 주는 힘으로 인해 생명력을 지닌다.
수도 규칙은 완전한 사랑과, 개별적으로는 모든 규칙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수도 생활의 최종 목적을 통한 그리스도 추종의 구체적인 방식이다. 교회의 변함없는 전
통과 의식 안에서 수도 규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법규들의 모음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사는 일련의 태도이다. 즉 복음을 사는 독특한 방식을 소개하 는 영적인 문서이자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을 사는 다양한 방식과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여러 수도 규칙들이 있게 되었지만, 그 본성상 수도 규칙은 그것을 따르는 수도회의 전체 영성을 포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성은 오히려 각 수도회 고유의 회헌에 잘 표현되어야 한다.
교회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수도 규칙은 수도회의 고유한 법에 속하지만 교회법 587조 4항에 나오는 다른 법전' 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수도 규칙은 회헌 등 기타 고유 법규들의 해석을 위한 기본 원리를 제공하는 원천으로서, 회헌의 상위 지침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기원과 용어〕 기원 : 뛰어난 인물들의 삶과 영성은 글로 쓰여지기 이전에 이미 삶으로 나타났는데, 그들의 이러한 삶과 영성은 다른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공동체의 상호 관계와 공동 생활에 관한 규범들이 동시에 부가되면서 수도 규칙에 그들의 생활과 영성이 표현되었고, 후대 사람들에게는 이 수도 규칙이 의무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탁발 수도회들의 경우에 수도 규칙은 삶의 대헌장이 되었으며,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자신들의 쇄신과 적응에 있어 으뜸가는 원천이 되었다.
용어 : 축성 생활회들을 통할하는 고유 법규들은 다양한 명칭과 의미를 갖고 있다. 그 가운데 '수도 규칙' 과 '회헌' (constittiones)이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인데, 클뤼니 개혁이 있었던 11세기까지는 '수도 규칙' 이라는 말만 사용되다가 오늘날의 수도회들(congregationis)에서는 회헌과 수도 규칙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수도 규칙이라는 용어는 회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수도 규칙을 근본 법규로 회헌을 보충 법규로 이해하기도 하였으며, 아주 드물게는 회헌의 보충 법규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한편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는 공의회 이전의 수도 규칙서들만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변경을 금지하면서, 새로운 수도회나 규칙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아야한다고 결정하였다(13항). 그 후 교황청에서는 프란치스코회(1223)와 가르멜회(1247) 등에는 예외적으로 '수도 규칙서' 란 명칭을 허락하면서 같은 시대의 도미니코회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로마 법학은 새로운 수도회들의 근본 규범을 회헌으로 본 반면에, 수도승원 · 의전 공주 사제단 · 탁발 수도회들의 경우에는 수도 규칙이라고 하였다. 1901년 6월 29일에 나온 주교 및 기타 고위 성직자 자문성' 의 규정 또한 경우에 따라 회헌의 보충 법규를 뜻하던 수도 규칙을 지도서(directorium)라고 평가함으로써 의미의 혼란을 피하고 '수도 규칙' 의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 재속회의 경우는 '레굴라' 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회헌 또는 규정(statuta)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수도 규칙' · '수도승규칙' · '규칙' · '회칙' · '회규' 등 일정하지 않다. 수도승 규칙' 이라는 용어는 수도 생활의 수도승적인 기원 즉 역사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므로 모든 수도 규칙의 통칭으로는 부적합하다. '회칙' 이나 '규칙' 이라는 용어는 회헌의 하위 법규로 오해할 여지가 있고, 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일반 단체들에서도 이러한 용어를 쓰고 있어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수도 규칙' 또는 '회규' 로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II . 역사상의 수도 규칙서들 〔수도자의 규칙인 성서〕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느님의 말씀' 은 수도자의 삶의 첫째 규범이다. 성 안토니오(Antonius, 251~356)는 자신의 영적 유산을 얻으려는 제자들에게 "성서는 우리들의 교육에 충분합니다"(《안토니오의 생애》)라고 말하였다. 수도 생활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명확히 조직되었으나, 그 기원에 있어 성서적 관점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파코미오 · 바실리오 · 아우구스티노 등의 수도 규칙들에는 성서 인용이 많은데, 이는 삶의 기준인 성서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살라는 뜻이다. 베네딕도는 자신의 수도 규칙에서 "하느님의 권위로 쓰여진 신구약 성서의 어느 면, 어느 말씀인들 인간 생활의 가장 올바른 규범이 아닌것이 있겠는가?(73, 3)라고 하였다. 수도 생활의 최종 규범은 복음이 제시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것이며, 모든 수도자들을 위하여 최고의 규칙이 되어야 한다(수도 2항). 교회법 또한 거의 그대로 이를 되풀이하고있다.
〔4~5세기〕 수도 규칙서들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母) 규칙들' 이 나타난 것은 4세기 말부터였다. 수도 생활의 표본인 《안토니오의 생애》 : 초기 수도승
생활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헌인 《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onii, 357?)에서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296?~373)는 안토니오의 생애와 함께 이상적인 수도승에 관하여 기술하면서 완전한 사랑을 향한 상승 과정인 모든 축성 생활의 이상을 기술하였는데, 이 전기는 전기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특히 수도자들을 위한 교훈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전기는 '대화식의 수도승 생활의 규칙'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 또는 '은수 생활의 복음' 이라고도 불린다.
파코미오의 규칙서 : 이집트 북부에서 독수 생활이 번창하고 있을 때, 파코미오(Pachomius, 290~346)는 남쪽에서 수도회 수도승들을 위하여 공동 생활과 형제적인 생활을 위한 수도 규칙을 썼다. 이 규칙서는 파코미오가 수도승들과 함께 살면서 수도자들에게 해준 권고 · 훈계 · 지시 등을 하나의 규칙으로 묶은 것으로, 원문은 콥트어로 쓰여졌으며, 404년경 성 예로니모(341?~420)가 서방 교회의 수도자들을
위하여 이를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파코미오 규칙서》는 실생활과 관계되는 계명(Praecepta, 144항) · 계명과 제도(Praecepta et Instituta, 18항) · 계명과 심판(Praecepta atque Iudicia, 16항)· 계명과 법(Praecepta ac Leges, 15항) 등 네 모음집으로 되어 있으며, 미사 · 기도 · 교리 시간 · 식사 · 노동 · 물품 소유 · 침구 · 면회 그리고 장례에 이르기까지 수도 생활에 관한 거의 모든 문제들이 규정되어 있다. 구체적이면서도 연결되지 않는 명령들로 순서 없이 구성되어 있지만, 이 규칙서의 특징은 모음집 중 '계명' (praecepta)의 분량
이 다른 것들보다 훨씬 많고, 네 개의 모음집에 모두 '계명' 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파코미오 규칙서》는 역사상 최초의 수도 규칙서로서 동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세부 규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동방 규칙서' (regula orientalis)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수도 규칙의 커다란 업적은 노동을 통한 수도원의 경제적 기초를 놓았다는 점과 그리스도교적인 참된 '일치' (κοινωνία)의 영적인 면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바실리오의 규칙서 : 370년에 가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바실리오(Basilius, 329~379)는 자기 교구 내의 여러 수도원들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이때 그는 수도 생활에 관 한 수도자들의 질문에 응답함으로써 그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바실리오 규칙서》는 이러한 질문과 응답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이 모음집은 《소(小) 수덕집》과 《대(大) 수덕집》으로 되어 있다. 203개 답변들로 된 《소 수덕집》(1차 편집본)은 397년 루피노가 그리스 원문에서 라틴어로 번역하여 서방 교회에 유포시킨 것으로, 보통《바실리오 규칙서》라고 부른다. 2차 편집본에서는 잘못한 이들의 교정에 관한 사항이 덧붙여졌고, 3차 편집본을 낼 때에는 바실리오가 직접 수정을 하였다. 이 규칙서는 수도승 생활의 원리들에 관한 55개 항목의 '길게 거론된 규칙서' (Regulae fusius tractatae)와 원리들의 적용인 313장의 '짧게 거론된 규칙서' (Regulae brevius tractatae)로 구성되어 있다. 《대 수덕집》은 여기에 《도덕집》과 바실리오의 서간 제22편과 제173편을 추가하여 동방 교회에 널리 유포된 수덕집을 말한다.
《바실리오 규칙서》의 질문 내용은 대부분 성서 말씀을 수도 생활에 적용 및 실천하려는 것에 관한 것이었고, 답변도 대부분 성서 인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규칙서에는 장상의 역할이 미약한 반면에 수평적인 형제적 사랑이 부각되어 있으며, 후대 수도회의 수도 생활에 미친 영향은 동방만이 아니라 서방에서도 지대하였다. 《바실리오 규칙서》는 동방 교회의 가장 중요한 수도 규칙서이다. 한편 《소 수덕집》 196~201장은 수녀들에 관한 언급인데, 이는 수도 생활 역사상 수녀들에 관한 최초의 명문 규정이기도 하다.
에바그리오 폰티코 : 현대의 수덕 신학과 신비 신학을 최초로 체계화한 사람은 에바그리오(Evagrius Ponticus, 345~399)였다. 그는 《안티레티코스(antirrhetikos)에서 심리학적인 섬세함으로 '8개의 주요한 악습들' 이 거처하는 곳과, 그 악습들을 이기기에 합당한 하느님의 말씀을 분석하였다. 그래서 초보 수도승을 위한 입문서라고 불렸다. 그는 또 영신 생활에 입문한 수도승을 위한 실천에 관한 부분과 숙련된 수도승을 위한 부분으로 구성된 《모나키코스)(Monachis)와 <수도승들과 수녀승들의 거울》도 저술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가시아노와 서방 수도승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가시아노의 《제도집》과 《담화집》 : 가시아노(Cassianus, 360?~432/435)가 작성한 《제도집》은 훗날 '가시아노 규칙서' (Regula Casiani)라고 불렸으며, 모두 12권으로 되어있다. 제1~4권이 본 의미의 제도집으로서 일종의 수도 규칙서인데, 그 내용은 제1권 수도복, 제2권 야간 기도, 제3권 낮에 바치는 기도, 제4권 수도회 입회 · 양성 · 노동 · 교정 등이다. 그리고 나머지 8권은 과식 · 사치 · 탐욕 · 분노 · 슬픔 · 태만 · 허영 · 교만 등 8종의 악습을 각각 다루고 있다. 반면에 전 24권으로 된 《담화집》은 그가 체험한 동방 수도 생활의 이상을 서방의 갈리아에 정착시키기 위해 쓴 것으로, 친구 젤마노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여기에서 동방의 훌륭한 수도자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모범적인 삶을 본받을 것을 권고하였다. 가시아노는 이 두 저서를 통하여 수덕의 과정과 방법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 책들은 후대 규칙서들의 원천들이다. 즉 《제도집》은 《스승의 규칙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 규칙서를 통하여 《베네딕도 규칙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에는 가시아노의 글이 낭독되지 않은 베네딕도 수도원이 없었을 정도였다.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서 : 388년 8월 이후 타가스테(Tagaste)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는 391년에 히포에서 평신도들을 위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발레리오 주교의 후임으로 주교가 된 뒤인 397년에는 히포의 수도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종들을 위한 규칙서》(Regula ad servum Dei) 또는《계명집》(Praeceptum)이라고 불리는 수도 규칙서를 집필하였다. 보통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라고 부르는 이 수도 규칙은 초대 교회 공동체처럼 마음과 정신의 일치 안에서 생활할 수도승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이었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는 《수도원 규정서》와 《계명집》이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라는 이름으로 유포되었다. 한편 아우구스티노의 서간(211, 5-16)에는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Regularis Informatio)가 수록되었으나, 이것은 《계명집》을 그대로 옮기면서 어휘를 여성으로 바꾸었을 뿐이므로 새로운 수도 규칙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 규칙서는 공동 생활의 원칙(1장), 기도와 단식(2~3장), 형제적 교정(4장), 공동 소유 문제(5장), 형제애와 상호 관계(6장), 장상(7장), 맺는 말(8장) 등으로 구성되 어 있으며, 《파코미오 규칙서》와 《바실리오 규칙서》에 비해 매우 체계적이고, 수도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들만을 중요시하였다. 이 규칙서에는 아우구스티노 자신의 카리스마적인 개성, 즉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 자매들에 대한 그의 사랑, 사도적 가난과 헌신, 봉사하려는 자세, 친절한 마음 등이 반영되어 있다. 이 규칙서가 서방 수도 규칙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성 아우구스티노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후대의 수도 규칙서들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이 되었다. 그리고 훗날에는 《체사리오 규칙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베네딕도 규칙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우구스티노 사후 적어도 100여 년 간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수도원들이 그의 규칙을 따랐으며, 10세기에서 12세기 말까지 공주 참사회 회원들(canonici regulares)도 거의 이 규칙을 따랐다. 특히 이 규칙서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 것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5세기] 《사부들의 제1 규칙서》 : 5세기 들어 《네 사부들의 규칙서》 또는 《세라피온, 마카리오, 파프누시오, 다른 마카리오 사부의 규칙서》가 나타났는데, 이를 다른 규칙서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부들의 제1 규칙서》라고 부른다. 이 일련의 규칙서들은 긴밀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내용과 용어 면에서도 점차 발전 · 보충되었다. 400~410년경 갈리아에서 쓰여졌으며, 로마인 또는 르랭(Lerins)의 네 명의 책임자들이 저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 규칙서는 장상들 모임의 회의록 형식을 띠고 있는데, 구성은 간단한 회의 목적 소개에 이어 네 명의 사부들의 발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제1장은 형제들의 일치와 순명, 제2장은 장상의 역할과 지원자를 받아들임, 제3장은 재를 지킴 · 독서 · 노동, 제4장은 수도자 및 성직자의 입회 문제, 제5장은 교정과 축복에 대한 언급이 다. 이 규칙서는 6세기 이탈리아 규칙서에 영향을 미쳤다.
《사부들의 제2 규칙서》 : 아주 짤막한 이 수도 규칙서는 내용상 제1 규칙서와 밀접하다고 해서 《사부들의 제2규칙서》(Secunda Regula Patrum)라고 부른다. 본래 '사부들의 규정서' (Statuta Patrum)라고 불린 이 규칙서는 430년경에 비질리오 부제가 편집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규칙서의 머리말에 의하면, 여러 수도원 장상들이 어떤 수도원의 새로운 장상 착좌식에 참석하려고 모인 기회에 회의를 열어 공동으로 사용할 이 규칙서를 작성하였는데, 주된 관심은 어려움이나 의문 나는 점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형제애를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부들의 제1 규칙서》 제1~4장에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수도 생활의 이상이 제시되었었는데, 잘못한 수도자들도 있게 되자 이들의 교정에 관한 내용이 제5장으로 덧붙여졌다. 규칙서의 이러한 보완 작업은 그 뒤에도 장상 회의를 통해 이루어져 《사부들의 제2 규칙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마카리오의 규칙서》 : 5세기의 중요한 마지막 규칙서로, '동방 규칙서' 와 같은 시대의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아마도 이집트의 파코미오의 선임자인 마카리오인 듯하다. 이 규칙서는 30개의 짧은 단락들과 금언들을 상기시키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첫 부분(1~3장)과 끝 부분(22~30장)만 저자가 직접 쓴 것이고, 10~18장은 《사부들의 제2 규칙서》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나머지 4~9장 및 19~21장은 수도 생활에 관한 예로니모의 편지를 인용한 것이다.
[6세기] 6세기는 규칙서들의 수에 있어서나 그중 일부 규칙서들이 지니는 중요성에 있어서 황금기였다.
《스승의 규칙서》 : 총 95장으로 된 익명의 작품으로, 거의 모든 장들이 질문으로 시작되고 "주님께서 스승을 통하여 답변하신다" 라는 형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tri)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6세 기에 쓰여진 이 규칙서는 《베네딕도 규칙서》에 영향을 준 주요한 원천이며, 서언 부분과 영성 부분(1~10장) 및 규율 부분(11~9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우 긴 서언 부분은 머리말 · 인간의 신원과 세례의 은총에 관한 주제 · 주님의 기도 해설 · 시편 주해 등 네 대목으로 되어있고, 영성 부분은 수도자의 종류(1장) · 아빠스(2장) · 선행을 위한 도구들(3~6장) · 순명(7장) · 침묵(8~9장) · 겸손(10장)으로 되어 있다. 규율 부분은 십일조와 그 책임자들(11장) · 교정(12~15장) · 식사(16~28장) · 휴식과 기상(29~32장) · 공동 기도(33~49장) · 노동(50장) · 여행과 외부와의 접촉(56~86장) · 입회 절차(87~91장) ·아빠스 착좌 절차(92~94장) · 문지기에 관한 장(95장)으로 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노 규칙서》가 구성원들 상호간의 관계를 강조하였다면, 《스승의 규칙서》는 수직적인 면을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규칙서는 고대 규칙서들 가운데 가장 길고, 이전의 규칙서들에 비해 매우 체계적이고 정확한 규칙서이다. 또한 공동체의 특성상 수도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세세히 규정하여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10장까지는 《베네딕도 규칙서》와 거의 그대로이다.
체사리오의 규칙 : 아르스의 주교 에오니오(Eonius)는 체사리오(Caesarius, 470~542)를 사제로 서품한 뒤 449년부터 힐라리아눔 수도원을 지도하게 하였는데, 503년에 아르스의 대주교가 된 뒤 그가 쓴 두 개의 규칙서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① 《거룩한 동정녀들의 규정서》(Statuta Sanctarum Virginum) : 512~534년 사이에 누이인 체사리아가 이끄는 세례자 성 요한 수녀원의 수녀들을 위해 쓴 것으로, 아우구스티노의 서간(211, 5-16)에 실려 있는 것과는 달리 '수녀들을 위한 최초의 수도 규칙서' 이다(2, 1-2). 이 규칙서에 나타나는 수도 원칙은 개인 소유의 완전한 포기 · 철저한 공동 생활 · 엄격한 봉쇄 규율 안의 정주 생활 등 세 가지이며, 특히 수녀들의 봉쇄 규율이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총 47장으로 된 이 규칙서는 주로 아우구스티노 규칙서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전의 여러 수도 규칙서를 사용하면서도 수녀들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새로운 규정들을 삽입하면서 쓰여졌다.
② 《수사들을 위한 규칙서》(S. Caesarii Episcopi Regula Monachorum) : 남자 수도승들을 위한 것으로 《거룩한 동정녀들의 규정서》보다 짧은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백히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거룩한 동정녀들의 규정서》와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수녀들에게 강조되었던 사항들과 봉쇄 규율이 삭제된 반면, 수도생활에 관한 영성이 많이 덧붙여졌다.
에우지피오의 규칙서 : 이 규칙서는 나폴리의 산 세베리노 아빠스였던 에우지피오(Eugippius)가 530년경에 작성한 것인데, 다른 저자들의 단편들을 혼합하여 첨가하면서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을 베낀 것이다. 여기에는 은둔 생활에 피해를 입힌 사람을 처벌하는 공동 생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베네딕도 규칙서》 : 성 베네딕도(Benedictus, 480?~547?)가 쓴 수도 규칙서(regula monachorum)로, 그의 유일한 작품이다. 베네딕도는 가시아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부분적으로는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에서 공동 생활에 관해 배웠다. 예컨대 1장과 7장은 거의 글자 그대로 가시아노의 것이며, 순종(5장)과 침묵(6장) 부분도 내용상으로는 가시아노의 것과 같다. 또 시간 전례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과 그 밖의 많은 '관습들' 도 가시아노에게 서 배운 것이다. 한편 《스승의 규칙서》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이 규칙서의 구조와 내용은 《스승의 규칙서》에 거의 글자 그대로 실려 있다. 베네딕도는 《스승의 규칙서》에서 너무 세밀한 규정은 삭제하고 옛 전통과 자신이 체험한 바를 덧붙여, 짜임새 있고 균형 잡힌 훌륭한 규칙서를 작성하였다.
《베네딕도 규칙서》는 서방 교회의 '수도회 수도 생활'에 있어서 매우 균형 잡히고 총체적인 규칙서로서 폭 넓고 종합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적이면서도 탁월하게 정신적이다. 또 지나친 엄격성을 피하고 분별력과 신중성과 중용의 정신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규칙서에는 이론과 규율 · 사랑과 징계의 배합 · 권위와 개인의 창조성 사이의 융통성 등이 잘 조화되어 있다. 그 이전의 12개의 수도 규칙서들과 비교해 보면, 구조와 내용 면에서 훨씬 체계적이고 완벽하다. 《스승의 규칙서》처럼 이 규칙서도 하느님-아빠스-수도승의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인내와 봉사 · 상호 순종 · 공손한 사랑 안에서 드러나는 참된 형제적 사랑의 겸손 등 수평적인 형제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이상적인 형제적 수도 공동체를 제시하였다(72장). 베네딕도의 공로는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 양식을 서방 교회의 여건에 잘 적응시킨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딕도 규칙서》가 비록 서방 교회 최초도 아니고 유일한 규칙도 아니지만, 서방 수도 생활에 미친영향은 다른 어느 수도 규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고, 특히 8~12세기의 서방 수도 생활을 거의 독점적으로
지배하다시피 하였다.
아우렐리아노의 규칙 : 6세기 중엽 프랑크 제국의 왕 킬데베르토(Childeberto)는 남녀 수도자들을 위해 각각 하나씩 수도원을 세워 아우렐리아노에게 그 조직과 운영을 맡겼는데, 아우렐리아노는 이 수도원들을 위하여 《수도승 규칙》(Regula Monachorum, PL 68, 385-394)과 《동정녀들의 규칙》(Regula Virginum, PL 68, 399-404)을 저술하였다. 이 수도 규칙들은 가시아노와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특히 체사리오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사부들의 제3 규칙서》 : 535년에《마카리오 규칙서》와 아즈 교회 회의와 오를레앙 교회 회의 및 투르 교회 회의의 결정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다.
《타르나토 규칙서》(Regula Tarnatensis, PL 66, 977-986) : 이 독특한 규칙서의 저자와 저술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6세기 후반 갈리아에서 작성된 것 같다. 총 23장으로 되어 있으며, 파코미오, 바실리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주요한 수도승적인 흐름의 요소들을 한데 모았다.
《동방 규칙서》(Regula Orientalis, PL 50, 373-380) : 총 4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23장과 27장 및 36~47장은 《파코미오 규칙서》에서, 24장과 30~32a장 및 33~35장은 《사부들의 제2 규칙서》에서 발췌하였다. 고유한 부분은 아빠스(1장) · 장로들(2장) · 원장(3장) · 당가(25장) · 문지기(26장) · 주간 당번(28장) · 각종 책임자 (29장) · 교정 절차(32장) 등이다. 아마도 부제 비질리오(Vigilius)가 작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규칙서는 수도생활에 관한 규율에 관해서는 다른 규칙서의 내용을 사 용한 반면, 수도원 내의 위계 질서와 책임 한계에 대해서는 새롭게 규정하였다. 특히 7단계로 된 교정 절차(32장)가 독특하다.
<페레올 규칙서》 : 553~573년 사이에 우세스(Uzés)의 주교 페레올(Femeol)이 자신이 세운 페레올라(Ferreolac)의 수도원을 위하여 총 38장으로 된 규칙서(Regula ad Monachos)를 작성하였는데, 이전 규칙서들 특히 체사리오가 작성한 규칙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양식은 현저하게 권고적이며,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독창적인 수도 규칙으로 평가되었다.
《바오로와 스테파노 규칙서》(Santorum Pauli et Stephani Regula ad Monachos, PL 46, 951-958) : 아니아네(Amiane)의 베네딕도가 전해 주는 이 수도 규칙은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6세기 후반에 이탈리아 또는 스페인에서 쓰여진 것 같다(D.A.Calmet. 수도승들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바실리오와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들로 가득 채워진 권고를 보다 많이 언급하고 있는 이 수도 규칙은,
일반적인 주제들을 서술하고 있으며 총 41장으로 되어있다.
[7세기] 7세기에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수도 규칙서들이 번성하였고,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특히 성 골롬바노의 규칙서를 통하여 아일랜드 수도승들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성 레안드로의 규칙서》(Sancti Leandri Regula, PL 72, 873-894) : 레안드로(Leandro, 540?~600)는 575년에 세비야의 주교가 된 후 자신의 여동생 플로렌티나가 사는 수녀원을 위하여 이 수도 규칙서를 작성하였는데, 수도 규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덕에 관한 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 이시도로의 규칙서 : 성 이시도로(Isidorus, 560?~636)는 615년경 스페인 베티카(Betica)의 수도승들을 위하여 수도 생활의 여러 관습들을 통일시키고자 짧은 머리말과 24장으로 된 《수도승들의 규칙서》(Reula Monachorum)를 썼는데, 이 수도 규칙서는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서 · 베네딕도의 규칙서 · 파코미오의 규칙서 · 가시아노의 '관습들'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속에 대한 포기 · 영성보다는 규율의 강조 · 금욕적인 성격 · 행정의 중요성 등이 그 특징이며, 스페인에서 작성된 것 중 가장 중요한 수도 규칙이다.
골롬바노의 규칙서들 : 613년에 뤽세유(Luxeuil)와 봅비오(Bobbio)에 수도원을 설립한 골롬바노(Columbanus, 540~615)는 《수도승들의 규칙》(Regula Monachorum, PL 80, 209-224)과 《수도원 규칙》(Regula Coenobialis)을 썼는데 , 앞의 것은 바실리오와 가시아노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영적 지침서이고, 두 번째 것은 현저하게 규율적인 것으로서 공동 생활에 관한 규정들, 특히 처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규칙에 나타난 수도 생활에 대한 개념은 복음적이라기보다는 결의론적이며 다분히 금욕적이고 고행적이다. 또 강조하는 덕행은 겸손과 지칠 줄 모르는 사랑, 예수의 고통에 참여하는 희생과 극기, 그리고 성령께 대한 신심이다. 이 수도 규칙에서 특별한 것은 개인 기도와 묵상에 관한 것인데, 시간 전례의 각 시간경이 끝날 때마다 묵상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이 수도 규칙은 아일랜드의 수도 규칙서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것이었고, 7세기에는 수많은 수도원과 수녀원들이 이 수도 규칙을 따랐다.
성 프룩투오소의 규칙서 : 성 프룩투오소(Fructuosus, ?~665)는 640년경 은수 생활을 하려고 비에르초(Bierzo)지방 산속으로 갔으나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첫 수도 규칙' (regula compultense)을 작성하였다. 그 후 다시 수도원을 떠나 은수 생활을 하였으나 또 다시 제자들이 모여들어 3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프룩투오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도원들을 설립하다가 브라가(Braga)의 주교로 서품된 후, 자신이 세운 수도원들을 연맹으로 조직하고 《공동 규칙서》(Regula Communis)를 저술하였다.
《공동 규칙서》 첫 부분에서는 일련의 남용들을 막으려는 경향이 보이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연맹을 맺는 수도원들의 관계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였다. 총 23장으로 된 첫 수도 규칙' 은 아리우스주의 이단으로부터 개종한 수도승들에게 지침이 되었는데, 그는 이 규칙에서 엄격한 공동 생활과 순명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의 수도 규칙에 나타나는 수도 생활의 특징은 '계약적' 이라는 점이다. 이 수도 규칙은 이베리아 반도의 수도승들에게 《성 이시도로의 규칙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공동 규칙서》 또는 《아빠스들의 규칙》 : 성 프룩투오소의 규칙이 실행되던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쓴 또 다른 《공동 규칙서》(Regula Communis)가 656년 이후에 나왔
다. '성 프룩투오소의 협약(pactum)' 이라고 알려진 일종의 약속과 서약이 규칙서의 부록처럼 실렸는데, 이 협약을 통하여 수도자는 아빠스에게 순명할 것을 약속하였 다. 당시 수도승 생활에 대한 원동력으로 인용된 복음 구절들이 수록되어 있다.
도나토의 규칙 : 도나토(Donato, 626~658)는 브장송(Besangon)의 주교가 되자마자 골롬바노 규칙과 베네딕도 규칙을 따랐던 사람들을 위하여 남자 수도원을 설립하는 한편, 자신의 어머니 플라비아가 세운 수녀원을 위해 《수도 규칙서》(Regula Virginum, PL 87, 273-298)를 저술하였다. 이 규칙은 총 77장으로 되어 있는데, 베네딕도 규칙서 · 동정녀들을 위한 체사리오의 규칙서 · 골롬바노 규칙서들을 짜깁기한 것이어서 부조화와 중복된 부분이 보인다.
동정녀들을 위한 발트베르토의 규칙 : 발트베르토는 수도승이 된 후 630년경에 파르무티에(Faremoutier)의 수도승들에게 자신의 규칙을 보냈는데, 이 규칙은 골롬바노 규칙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베네딕도 규칙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콘센소리아 규칙서》(Regula Consensoria Monachorum, PL 66, 993-996) : 이 짧은 규칙서는 7세기 후반의 것으로 스페인에 기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총 9장으로 되어 있으며, 수도 규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동 생활을 하는 전통을 따르고자 하는 수도자들이 취할 일련의 약속들이다.
〔8~9세기 카롤링거 왕가와 수도 생활의 개혁〕 수도생활의 개혁 : 카알 대제(768~814) 때는 수도 생활이 일관성이 없었고 수도원들이 각각의 수도 규칙을 가지고 있거나 빈번하게 주요 규범과 부차적인 여러 규정들로된 '혼합된 수도 규칙들' (regulae mixtae)을 가지고 있었다. 이 수도 규칙들은 골롬바노 규칙과 베네딕도 규칙을 부분적으로 혼합한 것이었다. 카알 대제는 베네딕도의 규칙이 지배적인 권위를 갖는 것을 보고 모든 수도원들이 베네딕도 규칙을 받아들이도록 지시하였다. 그렇지만 많은 수도원들은 비교적 엄격한 베네딕도 규칙보다는 훨씬 가벼운 《참사 위원 제도서》(Institutio Canonicum)를 받아들였다.
수도 규칙을 통일하려는 계획을 세운 카알 대제의 아들 루드비히 1세(814~840)는 아니아네의 베네딕도(750~821)의 도움을 받아 이를 실행에 옮겼다. 즉 774년 생
센(Saint-Seine) 수도원에 입회한 아니아네의 베네딕도는 동방과 서방의 다양한 수도 생활 양식을 연구한 뒤, 베네딕도 규칙을 순수하게 지키려는 결심을 하고 베네딕도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782년에 아니아네에 소박한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개혁할 생각으로 여러 수도 규칙들의 모음인 《수도 규칙서 전집》(Codex Regularm)과 여러 규칙들의 주제별 대조를 통하여 베네딕도 규칙을 주석한 《규칙서들의 대조》(Concordia Regularum, PL 103, 702-1380)를 집필하였는데, 그가 추진한 개혁의 주 원칙은 '통일' 이었다. 즉 정신의 통일 · 수도 규칙의 통일 · 관례와 관습의 통일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의 개혁은 결실을 맺어 새로운 입회자들이 늘어났고, 804년 이후 10년 사이에 개혁 수도원이 25개가 넘었다. 그의 개혁은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퍼졌으며, 814년에 루드비히 1세는 인덴(Inden) 강가에 교회 개혁의 중심이 될 코르넬리뮌스터 수도원을 지어 그를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영토에 있는 수도원들을 방문하여 쇄신시킬 책임을 그에게 맡겼다.
수도회 법 : 816년에 소집된 주교 회의에서는 서원한 수도자들이 동등한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 결과 모든 수도원에서 베네딕도 규칙에 따라 시간 전 례를 바칠 것이 요구되었다. 한편 루드비히 1세는 그 이듬해 수도원장 회의를 소집하여 72조로 된 '수도회 법' (Capitulare Monasticum)을 발표하였는데, 이 법은 아니아네의 베네딕도가 주장한 엄격한 수도 생활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문헌은 베네딕도 규칙을 받아들이는 한편 그것을 보충 · 변경하였고, 파코미오 규칙서처럼 세밀한 규정들을 둠으로써 수도 생활의 정신보다는 행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이 법의 관심사는 수도자들의 전례 생활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세속과 격리하려는 것이었다.
영향 : 아니아네의 베네딕도에 의해 베네딕도 규칙이 모든 수도승 세계에 부과되고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사후에도 거부와 반항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계속되었다. 그는 '수도회 법' 을 통하여 다른 여러 가지 수도생활 운동, 특히 10세기 클뤼니 개혁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수도승회는 베네딕도회와 동일시되었고, 공주 사제단은 아우구스티노회와 동일시되었다. 그리고 훗날 회헌이 될 관례 · 관습 · 규정 등이 그 필요성과 더불어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1세기 이후〕 서방 교회에서는 특히 6~8세기에 수 많은 수도 규칙서들이 작성되었으나, 그 후 11세기 말까지는 수도회 입법이 거의 전무하였다. 《공주 의전 사제 단 규칙서》(Regula Canonicorum Regularium)와 은수자들을 위한 일부 규칙서들을 제외하면, 새로운 수도 규칙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이 확산되었다.
오래 전부터 주교들과 아빠스들은 새로운 수도 공동체를 설립할 때 통치할 규범들을 제정하고 수도 규칙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제4차 라테란 공의회 이후에는 수도원을 설립할 때 새로운 법률을 부과하는 대신 기존의 수도 규칙들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도록 하였다(can. 13). 이는 교회 안에서 새로운 수도회들의 급증에 직면하여 혼란을 피하려는 것이었는데,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도승들은 봉쇄 생활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고, 봉쇄의 틀을 벗어난 복음 설교 · 병자 간호 · 가난한 이를 도움 · 청소년 교육 등 사도직 특성의 다른 이상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수도 규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서로 다른 봉쇄 수도원들은 독자적인 행정 체제와 생활을 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한 수도원이 다른 수도원의 분원으로 모원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12세기 들어 새로운 형태의 사도직과 생활 양식이 요청됨에 따라 한 장상 아래 그리고 공통된 법규를 따르는 여러 수도 공동체들을 위한 수도 규칙과 회헌을 작성하여야만 했다. 결국9~11세기에는 관습(consuetudiness monasticae) · 규정(statuta) · 지침(ordo) 등 수도 규칙서를 보충하는 문헌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렇게 각 회에 고유한 회헌들과 고유 법규(관습, 관례 등)의 편찬이 활발해지고 보편화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후에도 여전히 여러 수도 규칙들이 인준을 받았다. 마지막 수도 규칙은 1493년에 쓰여진 《성 프란치스코 아 바올라의 수도 규칙서》였다. 새로운 점은 이제 작성되는 모든 수도 규칙서는 교황청의 공식 인준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사랑의 헌장》 : 이전의 여러 수도 규칙들은 너무 짧거나 수도 생활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만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것은 영성 지침의 성격이 강하고, 어떤 것은 지나치게 규율적인 면이 강조되어 그 자체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를 보충하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그 결과 수도 규칙과는 달리 수도원의 근본적인 법으로 적용될 수도원 관습과 관례 등을 갖게 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시토(Cîteaux)회의 《사랑의 헌장》(Charta Caritatis, PL 166, 1377-1384)이다.
이 《사랑의 헌장》은 시토회의 하딩(Sthefanus Harding) 아빠스가 1118년에 수도원들이 클뤼니처럼 서로 갈라지지 않고 일치(정신과 조직, 제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으로, 수도 생활 역사상 최초의 '회헌' 으로 볼 수 있다. 이전의 수도 생활은 어떤 창설자의 수도 규칙을 받아들이면서 각 수도원은 자기의 특수한 관습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헌장》의 주목적은 새로 창설된 수도회 내의 여러 수도원의 일치를 보전하는 것이고, 일치를 보전하기 위해 베네딕도의 규칙을 글자 그대로 어떤 해설도 없이 엄격하게 똑같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 문헌에는 베네딕도 규칙을 주석 없이 모든 수도원에서 똑같이 준수하는 일, 수도원들간의 일치 유지, 은수 생활, 청빈 생활과 회개의 정신, 성모에 대한 공경 등이 강조되어 있다.
성전 기사 수도회 규칙 : 성 베르나르도(Bernardus, 1090~1153)가 성전 기사회를 위하여 작성한 수도 규칙서(Regula Pauperum Commilitorum Christi Templique Salomonici)이다. 부이용(Bouillon)의 고드프레도와 함께 예루살렘에 남게 된 9명의 기사들은 십자군을 떠난 뒤에 예수의 무덤을 순례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위고 데 페이앙(Hugh de Payens)과 합류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아우구스티노 규
칙을 따랐으며, 1118년에는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바르문드(Warmud) 앞에서 서약을 하였다. 그리고 1128년 1월 13일 트루아(Troyes) 교회 회의에서 수도 규칙이 승 인되었고, 1130년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스테파노에 의해 보완되었다.
요한 기사 수도회 수도 규칙 :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회의 수도 규칙(Regula Militum Hospitalis)이다. 예루살렘의 세례자 요한 병원에서 성 제라르도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출신의 평신도들이 1048년에 창설한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 형제회' 는 1113년에 아우구스티노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로 인정을 받았으며, 1137년에는 기사 수도회로 개편이 되었다. 2대 총장 푸이(Raimundo Puy)가 고유한 수도 규칙을 작성하였고, 1300년에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포로 해방을 위한 성삼위 수도회 규칙 : 1198년 12월 17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가 사라센인들의 포로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마타의 성 요한(Ioannes de Mata)과 발루아의 성 펠릭스(Felix de Valois)의 생각을 받아들여 아우구스티노 규칙에 기초한 수도 규칙(Regula Fratrum SS. Trinitatis Redemtionis Captivorum)을 인준해 주었다. 그리고 1217년에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가 이 수도회의 인준을 재확인하였다. 총 43장으로 된 이 수도 규칙에서 처음으로 가난 · 정결 · 순명의 3대 서원이 규정되었는데, 그 후 아시 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 규칙을 시작으로 모든 수도 규칙에 이 3대 서원이 명문화되었다.
가르멜 수도회 규칙 : 성 브로카르도(Brocardo)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가르멜 산의 은수자들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아보그라도의 성 알베르토(1205~1210)에게 '생활 양식을 줄 것을 요청하자 알베르토는 그들에게 '생활 계획' (Propositum)을 주었다. 이로써 가르멜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생활 계획' 은 짧지만 조직뿐만 아니라 가르멜회의 정신을 미리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1226년 1월 30일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의 인준을 받음으로써 '생활 계획' 은 법적 의미의 수도 규칙이 되었다. 이 수도 규칙(Regula Primitiva Ordinis Cammelitarium)은 짤막한 서문과 16개의 장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준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르멜회가 설립되는 모든 지역에서 이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이를 완화해 줄 것을 교황에게 청하였고, 그 결과 1247년 9월 1일 칙서 <궤호노렘>(Quae honorem)을 통하여 완화되었다. 그 후 또 다른 새로운 청원이 받아들여져 교황 에우제니오 4세
(1431~1447)가 1432년 2월 16일 칙서 <로마니 폰티피체스>(Romani Pontifices)를 통하여, 그리고 1459년에는 교황 비오 2세(1458~1464)가 가르멜 수도 규칙을 다시 완화하였다.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 규칙들 : 이것은 13세기에 나온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 수도 규칙으로, 바실리오 규칙 · 베네딕도 규칙 · 아우구스티노 규칙과 함께 제4차 라테란 공의회 이전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4대 수도 규칙 중 하나이다. 프란치스코는 "기존의 어떤 회칙에서도 기도와 사도적 생활의 조화를 통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S. Bonaventura, Opera omnia Ⅶ, 393)에 새로운 회칙을 갖고자 하였다. 그의 수도 규칙은 규칙 생활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삶의 체험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세 개
의 수도 규칙을 썼다.
① 원(原) 수도 규칙(Protoregula, Forma Vitae) : 1209년 봄 첫 동료들과 함께 수도 규칙의 인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간 프란치스코는, 4월 16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구두 인준을 받았다(《세 동료》 51). 그리고 교황은 이 결정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선포함으로써(《페루지아 전기》 67) 교회 내의 새로운 수도 규칙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수도 규칙은 유실되어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아주 간단한 복음 구절들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 프란치스코의 유언》 14-15. 18 ; 《토마스 첼라노의 제1 생애》 35 ; 보나벤투라의 《대전기》 3, 8 등). 또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를 따름에 관한 프란치스코의 원 체험에 관한 영감적인 요소와 시대 변화에 따라 적용된 공동 생활을 위한 규정 등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던 것 같 다.
② 인준받지 않은 수도 규칙(Regula non Bullata, 1221) : 이 수도 규칙의 배경에는 수사들의 증가와 지리적 팽창, 총회의 설정(1215), 관구 제도 설립, 선교 활동, 학문과 성직화에 대한 움직임 등의 변화와 갈등이 깔려 있다. 1219~1220년 프란치스코가 동방에 체류하고 있을 때 수도회 내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였는데, 장상들과 유식한 수사들은 이때 수도회를 제도화하려고 하였다. 이런 긴장들은 1219년 총회 때 분명해졌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도회 내의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명확한 지침으로 작성된 것이 이 '인준받지 않은 수도 규칙' 이었다. 이것은 '원(原) 수도 규칙' 을 발전시킨 것으로, 1220년 9월 22일 이후 성서 전문가인 스피라의 체 사리오 수사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듬해 5월 30일 성령 강림 총회 때 상정되었지만 인준받지 못하였다. 단일화되지 않은 총회의 결정 사항이나 규정들을 총 24장으로 나누어 구성한 이 수도 규칙은 수도회가 발전되어 안정될 때까지의 수도회의 체험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 수도 규칙은 상당히 길고 성서 인용이 매우 많아 복음적 색채가 짙으며 법적이고 제도적인 요소들이 부족하다. 따라서 완벽한 규범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이상을 가장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는지침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인준받은 수도 규칙' 보다 영성적으로 충실하며 법적인 측면보다는 영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회 회원들과 프란치스코의정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 수도 규칙에는, 수도 생활 역사상 최초로 선교에 관해 규정되어 있다(23장).
③ 인준받은 수도 규칙(Regula Bullata) : 수사들은 인준받지 않은 수도 규칙' 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고, 프란치스코 또한 당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쓴 수도 규
칙을 인준받을 생각이 없었다. 유식한 수사들은 좀더 법적이며 구체적인 수도 규칙을 요구하였고, 성서 인용을 좀더 줄여 주기를 바랐다. 또한 보호자 추기경 제도의 입법화와 '인준받지 않은 수도 규칙' 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검토되어야 했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1222/1223년 겨울 레오 수사와 법률 전문가 보니파시오 수사와 함께 폰테 콜롬보(Fonte Colombo)로 가서 단식과 기도중에 수도 규칙을 작성하였다. 이 수도 규칙은 1223년 6월 11일 총회에 상정되어 수사들의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고, 같은 해 11월 29일 칙서 <솔렛 안누에레〉(Soletannuere)를 통해 교황 호노리오 3세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이것이 프란치스코회의 공식 수도 규칙이다.
총 12장으로 되어 있는 이 수도 규칙은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의 신앙 고백이자 영성 지침이며 수도회의 근본이다. 구체적인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는 법적 문헌이기도 한 이 수도 규칙의 핵심 내용은 "형제들은 순례자로서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여야 한다"(1, 1)는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에 근본을 두고 있는 이러한 삶은 '교회 안에서' '소수성' (minoritas)과 '형제애' (fraternitas)의 정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규칙서는 '인준받지 않은 수도 규칙' 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으며, 법적인 요소들도 더 많이 포함되었다. 여러 사람의 개입으로 이루어진것이어서 프란치스코의 단순하고 투박한 문체를 찾기 어렵지만 유연함과 조화를 찾아볼 수 있다. 새로 도입된 부분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인준받지 않은 수도 규칙' 을 요약한 것이고, 단순하면서도 정교한 방식으로 수도 생활을 규정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반복을 피하였고 성서 인용도 현저히 줄였다.
성녀 글라라의 수도 규칙 :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Clara, 1194~1253)는 1212년 3월 1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밤에 프란치스코 앞에서 삭발하고 그가 준 짧은 '생활
양식' (forma vivendi)에 따라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내린 결정 때문에 고유한 수도 규칙을 갖지 못하고 우고리노 추기경이 베네딕도 규칙에 따라 1219년에 작성한 수도 규칙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1228년에는 '가난의 특전' (priviliegium paupertatis)을 부여받았다. 1247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1243~1254)는 '우고리노 수도 규칙' 을 변경한 새 수도 규칙을 작성하여 지키도록 하였으나, 이 수도 규칙은 글라라가 원했던 엄격한 가난의 이상을 담지 못한 것이어서 글라라 자신이 두 번에 걸쳐 직접 수도 규칙을 작성하여 1252년 9월 16일 라이날도 추기경으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이어 이듬해 8월 9일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인준을 받은 글라라의 수도 규칙은 성 프란치스코의 '인준받은 수도 규칙' 과 거의 같은 구조와 정신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관상 생활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바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 규칙 : 수도 생활 역사상 수도 규칙(regula)이라는 명칭이 붙은 마지막 문헌이다. 그는 처음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은수자들' 이라고 불렸던 새로운 수도회의 터를 버리고 움막 세 개와 소박한 경당 하나를 지은 뒤, 회 수도원(congragatio)적인 생활 양식을 받아들여 마침내 '미소한 이들의 회' (Ordo Fratrum Minimorum)를 창설하였다. 그는 옛 교부들과 설립자들을 모방하도록 하기 위하여 회원들에게 지켜야 할 규범을 부과하였다. 동시에 그의 덕행의 모범은 수도 가족 안에 살아 있는 규칙이었지만, 그는 수도 규칙을 쓰기로 결정하였고 마침내 1493년에 첫 편집이 이루어졌다. 두 번 더 편집이 이루어졌는데, 그중 마지막 것이 1506년 7월 28일 교황 율리오 2세(1503~1513)의 칙서 <두둠앗 사크룸〉(Dudum ad sacrum)을 통하여 인준되었다. 특별한 점은 회원들이 수도자 공통의 3대 서원 외에도 수도 규칙이 정한 단식과 금욕을 서원하는 것이었다.
Ⅲ . 수도 규칙의 본질과 해석
〔수도 규칙의 본질과 강제성〕 수도 생활 역사의 초기에는 수도회가 없이 수도원과 수도 규칙만 존재했었으므로, 여러 개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들도 많았다. 수도 규칙이 교회의 공식적인 인준을 받게 된 것은 12세기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수도 규칙의 법적인 성격이 약하였다. 수도 규칙은 영성적인 문헌이자 중요한 생활 지침이며 법적인 문헌이다. 따라서 수도 규칙은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받는 그런 성격의 문헌이 아니라 일부 법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창설자의 영성과 수도회의 전통을 기록한 근본적인 지침이다. 그러므로 수도 규칙은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는 윤리적인 것으로서 복음적 권고의 삶과 수도회 고유의 정신을 살도록 도와 주고 쇄신의 지침이 되는 수도 규칙은 마땅히 양심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고유한 수도 규칙들을 지닌 수도회들에 있어서 수도 규칙은 회헌에 비해 법적인 강제성이 훨씬 약하지만, 영성적 · 윤리적인 면에서 상위의 근본적인 규범이므로 더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즉 수도 규칙은 수도회의 모든 고유 법규들을 지배하는 해석 원리인 것이다.
〔현대 수도 규칙의 해석〕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수도 규칙은 거룩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수도 생활의 근본적이고 변경할 수 없는 규약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수도자를 위한 삶의 계획이며 거룩함의 이상인 수도 규칙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도 규칙은 회원들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모두 규정하고 있지 않고 때로는 영성적인 성격이 강한 부분도 있어 현실 적용 문제, 즉 현재 가속화되고 있는 쇄신과 변화의 시대에 수도 규칙의 해석과 적용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수도 규칙에 대한 태도는 다음 두 가지 움직임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우리들로부터 수도 규칙으로,수도 규칙에서부터 창설자의 영성으로, 그리고 우리 삶 에 다시 체화(體化)된 영성을 통하여 나자렛 예수에 대한 충실한 추종으로 나아가는 것과, 둘째는 예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느낌으로써 수도 규칙에 표현되어 있는 카리스마 안에서 오늘날 그분을 따르는 데 적합한 방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움직임은 분석과 종합의 변증법, 충실성과 창의성, 영성의 원천인 성령 안 에서의 성장, 오늘날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께 대한기쁜 증언을 포함하고 있다. (→ 수도 회칙 ; → 《바실리오 규칙서》 ; 《베네딕도 규칙서》 ; 수도 생활 ; 수도회 ; 수도 회헌 ; 《아우구스티노 규칙서》 ; 《작은 형제회 규칙서》 ; 《파코미오 규칙서》)
※ 참고문헌 A. Lόpez Amat, El seguimento radical de Cristo, vol. 2, Madrid, 1987/ AA.VV., Diccionario Teolόgico de la vida consagrada, A. Aparicio Rodríguez · J. Canals Casas eds., Madrid, 1989, pp. 1538~1548/ Dizionario degli Istituti di perfezione, 1976~1983, Roma, vol. 7, pp. 1410~1522/ Albertus Ghinato, Regula S. Francisci in Evolutione, O.F.M., Romae, 1960/ Armando Quaglia, Storiografia e storia della Regola francescana, Falconara, 1985/ Augutines Rule, A Commentary by Adolar Zumkeller, Augustine Press, 1987(이형우 역, 《아우구스티누스 규칙서》, 분도출판사, 1989)/ Basilio de Cesarea, Le Regole. Regulae fusius tractatae. Re-gulae brevius tractatae, trans. by Lisa Cremaschi, Magnano, 1993/ Benedictus, Regula Benedicti(이형우 역주,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 교부 문헌 총서 5, 분도출판사, 1991)/ Càndido Mazόn, Las reglas de los religioSOS. su obligaciόn ynaturaleza jurídica, Analecta Gregoriana, vol. 24, serieiuris canonici, sectio A(n. 3), Romae, 1940/ Ippolito Jan Lipinski, Rapportifondamentali tra la Regola di san Francesco e la legislazione dei FratiMinori nel secolo XII Roma, 1975/ Giuseppe Turbessi, Regole monasticheantiche, riedizione, Roma, 1990/ R. Naz dir., Dictiomaire de Droit Canonique, vol. 3, Paris, 1965, pp. 539~540/ Jesús Alvarez, Historia de la vida religiosa, vol. 3, Madrid, 1987/ Edoardo Arborio Mella · Cecilia Falchini ed., Regole monastiche d'occidente. da Agostino a Francesco d'Assisi, Magnano, 1989. 〔奇京鎬〕
수도 규칙서
修道規則書
〔라〕regula ordinis · 〔영〕religious rule
글자 크기
8권

1 / 9
수도 규칙서는 수도자들을 위한 생활 규범의 기록이자 수도 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영적 체험들의 요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