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사제

修道司祭

〔라〕sacerdos religiosus, presbyter religiosus · 〔영〕religious pr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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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사제란 수도자 신분과 사제 신분을 함께 지닌 성직자를 말한다.

수도 사제란 수도자 신분과 사제 신분을 함께 지닌 성직자를 말한다.

일정한 수도회에 입회한 수도자로서 사제 양성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은 자, 또는 사제로서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 서약을 함으로써 그 수도회에 정식으로 입적된 회원.
〔의미와 명칭〕 수도 사제란 수도자 신분과 사제 신분을 함께 지닌 성직자를 말하며, 교구 사제 또는 재속 사제와 구분된다. 곧 한 인간 안에 수도적 축성과 사제 신원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가 사제이시며 동시에 제물이심을 특별한 방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수도 사제란 수도 생활의 특별하고 고유한 기원과 양식, 그리고 정신에 따라 사제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또 공동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적인 정체성을 본질로 삼는다는 점에서, 사제직의 두 가지 기초인 교회를 대신하여' (in persona ecclesiae)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in persona Christi)를 잘 드러내 주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수도원에 입회할 때 이미 사제였다 해도 수도 서약을 하기 전까지는 수도 사제가 아니며, 수도 사제가 여러 이유로 수도회를 떠나게 되어 수도자로서의 신분이 상실되면 그때부터 수도 사제가 아니다. 그러나 수도 사제란 신분만을 뜻하지는 않으므로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 양성 교육' 외에도 수도 정신과 수도회의 고유한 정신에 따른 사제 양성을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수도 서약을 하기 전에 이미 사제인 사람도 수도 사제로서의 정신에 충만하도록 양성이 보충되어야 한다.
수도 사제는 서양에서는 '아버지' (Father, Padre, Vater)라고 불린다. 초기 교회에서 이 용어는 신자들에게 권위를 갖고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에서 주교를 이렇게 불렀으며, 교부들을 부르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가 후에는 탁발 수도회의 수도자들로 한정되었다. 현재도 탁발 수도자들을 이렇게 부르는 전통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제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도 사제' . '수사 신부' . '수도신부' , 수도승 전통에서는 '수도승 사제' 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수도 생활 역사에서의 수도 사제〕 초기에 수도승은 평신도이지 사제가 아니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수도승들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모습이 구현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아헨(Aachen) 교회 회의 이후, 더욱이 그레고리오 개혁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영' 과 '세속 정신' 과의 구분점이 성직(聖職)이었으므로, 사제직은 하나의 '개인 생활 지위' 로, 또 공동체에 봉사하는 직분이기보다는 하나의 신분으로 여기게 되었다(E. Schillebeeckx) .
수도자가 아니었던 주교 아타나시오(296?~373) 성인이 저술한 《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onii)에 보면, 성 안토니오로 대표되는 사막의 은수 생활자들은 주말에 지역 성당에 모여 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례하였는데, 이때 지역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고 은수자들의 공동체를 위해징계를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 사제는 반드시 수도 사제일 필요는 없었다. 반면에 사제가 아닌 수도자들은 주로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영성적으로 성숙해진 일부 수도자들은 사제로 서품되었다. 파코미오(290~346) 성인은 '공주(共住) 수도회' 를 발전시켰는데, 수도승들은 처음에는 지역 교회에 다니면서 그 교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점차 성사 집행과 미사 집전을 위하여 사제를 불러오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사제들이 수도자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사제직은 주교에 종속된 직무로 간주된 반면에, 수도 생활은 오로지 명상 기도와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것이었다. 사제직이란 공적 예배와 관련된 것이었고, 수도 생활은 금욕과 절제와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이었다.
사제직이 지역 공동체를 위한 교회의 봉사직으로 간주되던 당시, 예를 들어 성 마르티노의 경우처럼 성직자와 평신도들은 영적 지도의 자질이 있는 이를 사제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성인' 의 특징인 금욕의 자질을 사제와 주교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바실리오(329~379) 성인은 가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 대주교에 의해 은수 생활에서 나와 그의 보조자가 되었고, 370년에는 그의 뒤를 이어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규율이 엄격한 사회 사업들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수도 사제들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반면에 예로니모(341?~420) 성인은 사제품은 받았지만 사제의 역할은 거의 하지 않았다. '사제 생활' 과 '수도 생활' 을 대표하는 인물인 아우구스티노(354~430) 성인은 주교가 되자 사제들과 공동생활을 하였는데, 공동 생활을 한 이 사제들이 중세에 이르러 참사회로 발전하였다. 가시아노(360?-432/435)는 수도자들을 독방 생활에서 끌어내어 사제로 만들거나 살림살이에 얽매이게 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뜻에서 "수도자는 여자와 주교를 철저히 피해야 한다" 고 썼다(《제도집》 참조). 그리고 476년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으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많은 수도 사제들이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6세기에 쓰여진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tri)에 의하면 사제는 손님과 같은 환대를 받으며 공동체의 구성원에서 제외된 특별한 자(77장)로 여겨졌다. "사제는 수도원 안에서 외부인으로 간주된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제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83장). 곧 《스승의 규칙서》에서는 교회와 수도원, 사제와 수도승을 엄밀히 구분하였으며, 미사는 수도원 밖의 본당에서 참례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성 베네딕도(480?~547?)는 성직자나 사제가 수도원 내에서 성직자라는 사실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성직을 받은 자들이 수도원에 입회하고자 할 때에, 그들을 받아들임에 있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입회한 사제는 "모든 규칙을 준수하여야"(《베덕도 규칙서》 60, 2) 했다. 따라서 사제들은 전례 의무를 수행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동체 내에서 수도원의 서열 순위를 지켰다. 수도 사제들은 뛰어난 영성과 겸손의 덕을 지녀야 했으며, 비록 평수사(conversi)가 수도원장이라고 해도 그에게 순명하여야 했다. 만일 수도 사제가 자신은 지역 교회에 속한다고 생각하여 수도원장에게 순명하지 않으면 그 지역 주교와 문제를 해결하였다. 베네딕도가 수도 사제를 받아들였던 유일한 이유는 수도원 안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사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로마 제국이 끝나고 중세로 넘어가면서 《베네딕도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원의 수가 늘어났고, 사목적인 이유로 성품을 받으려는 수도자들도 늘어났다.
한편 아일랜드의 수도 생활에서는 수도자들은 동시에 사제였고, 수도원장직은 언제나 사제가 맡았으나 때로는 주교가 수도원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수도원장이 사제일 경우, 사제 서품식이나 성유 축성과 같은 주교의 권한에 속하는 전례 집전을 위하여 수도자 한 명을 주교가 되도록 하였다. 아일랜드 수도자들은 사제직과 관련하여 '사적(私的) 미사 와 '사적 고백' 의 관습을 지켜 나갔다. 그리고 집단으로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베네딕도 수도 규칙이 골롬바노 규칙을 대신하게 되자 베네딕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자들 중에 '선교사 독수자' 가 등장하였다.
중세에는 어려서 수도원에 입회한 수도자들 대부분이 사제품을 받거나 부제 또는 차부제로 남아 있었고, 성인이 되어 입회한 사람들은 평수사로 머물렀다. 수도 사제들이 늘어난 것은 전례 거행의 증가(본당에서 하루에 여러대의 미사를 봉헌하던 당시의 관례를 따른 것)와 위령 미사 및 사적 미사의 급증 때문이었다.
수도 사제의 직무는 전례와 관련된 것이었다. 대다수 중세 수도원들은 봉건 영주들이 세운 사유(私有) 교회(ecclesia propria)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교회의 사제들은 수도원장에게 종속된 재속 사제들이었다. 카알 대제 이후 수도자와 참사회 회원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졌으며, 12세기 시토회의 개혁과 그와 유사한 다른 수도회들의 개혁을 통하여 수도 사제와 현대적 의미의 평수사가 명확히 구분되었다. 한편 13세기에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한 탁발 수도회들의 수도 사제들은 학문 연구나 설교 등을 통하여 도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 갔다. '프란치스코회' (작은 형제회)는 처음부터 신분에 관계없이 '형제회' (fraternitas)를 이루며 생활하였는데, 점차 교회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사제직을 지망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대외적으로는 수도 사제인 수도자들이 교회의 사목적 필요와 선교의 요청에 부응하였지만, 수도회 내에서는 '성직화' 의 경향이 두드러져 본래 창설자의 정신과는 다른 삶의 모습도 나타났다. 17~18세기의 수도 사제들은 교회사 · 교부학 · 실증 신학 · 성서학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수도 사제들은 증가해왔고, 맡은 직무나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고유한 성격과 양성〕 수도 사제의 고유한 점은 무엇보다도 수도 생활 및 수도자의 특성 및 수도자로서 부여받은 특수한 면들에서 드러나야 한다. 수도 사제로서의 직무는 복음적 가치에 대한 철저한 투신으로 충만해지며 그의 제자직도 성사적이며 구체적인 교회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수도 사제의 고유한 점은 영성과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수도 사제직은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주고 격려하는 힘있는 표지가 된다. 수도 사제들은 자신들의 고유함을 수도 정신과 수도회의 정신에 따라 잘 생활하는 만큼 수도 사제다워지는 것이다. 특히 교구 사제들과 더불어 사목 활동에 참여하는 수도 사제는 자신이 수도자라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면이 수도 사제에게서 언제나 분명하게 드러나기 위해서는 사제 직무 후보자들의 초기 양성 기간은 물론, 지속적인 양성 과정에서 스스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성찰하고 터득함이 중요하다(<수도자 양성 지침> 108항). 첫째, 교회의 구조에 속해 있는 사제직의 본질과 교회의 생활 및 성덕에 속해 있는 수도 생활의 본질에 관한 명확한 이해와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사목적 직무는 수도 생활이 지닌 본질의 일부라는 원리를 터득하여야 한다. 둘째, 영성 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회원으로 속해 있는 수도회의 재원을 이끌어 내어 자신의 내부에서 그 수도회가 교회를 위하여 지니고 있는 은사를 부여받아야 한다. 셋째, 창설자의 증거와 가르침으로 고무된 개인적 영성 체험을 증거하여야 한다. 넷째, 법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여야 한다. 다섯째, 그 수도회의 장상이 부를 경우 보편 교회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동원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존중될 때 수도 사제는 자신의 단일한 소명이 지닌 두 가지 차원을 원만하게 성공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
〔교회법상의 수도 사제〕 법 적용 : 수도 사제는 교회내의 그 어떤 신분보다도 복잡한 법의 적용을 받는다. ①수도 사제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할 사항을 지켜야 한다(208~223조). ② 성직자이므로 교구 사제나 다른 축성 생활회의 사제들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을 제외한, 교회법상의 성직자에 관한 모 든 규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즉 성직자들의 양성(232~264조), 성직자들의 입적(265~272조), 성직자들의 의무와 권리(273~289조), 성직자 신분의 상실(290~293조)등이다. ③ 수도 사제는 수도자이므로 수도자에 관한 교회법 573~709조의 적용을 받는다. 이 밖에도 수도 사제는 성직자 및 수도자에 관한 보편 교회의 가르침과 규범들, 예컨대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과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지침> 등을 비롯하여 수도회의 회헌과 그 밖의 고유법 및 양성 지침 등을 지켜야 한다. ④ 수도 사제 신분의 취득은 사제 신원과 서약을 통한 수도 축성이 동시에 한 사람에게 발생하는 때이다. 경우에 따라 수도 서약이 먼저일 수도 있고 사제 서품이 먼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제품이나 수도 서약을 한다고 무조건 수도 사제로서의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서나 수도자로서 모두 동일한 수도회에 정식 회원으로 입적되어야 한다. ⑤ 수도 사제로서 신분의 상실은 수도회에서 교구로의 이적 · 수도회에서의 결정적 탈퇴 · 제명 처분 등으로 발생한다. 주교품에 승격된 수도자는 소속 회의 회원으로 남게 되므로(705조) 수도 사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순명 서원에 있어서는 교황에게 종속되며, 퇴임한 주교인 수도자는 수도원 아닌 다른 곳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한편 수도 사제인 회원이 다른 수도회로 이적하더라도 수도 사제로서의 신분에는 변화가없다.
권리와 의무 : ① 그리스도의 추종(662조), ② 기도와 관상(663~664조), ③ 형제적 공동 생활(602조, 607조 2항, 665조), ④ 사회 홍보 수단의 이용(666조), ⑤ 봉쇄, ⑥ 가난한 생활과 재산 포기(668~670조, 282조), ⑦ 장상의 허락 없이 수도회 밖의 직무를 맡지 않음, ⑧ 교황 및 소속 직권자에 대한 순명의 의무(273~274조, 573조, 590조), ⑨ 성직자 및 평신도와의 협력의 의무(275조), ⑩ 성덕 함양의 의무(663조, 276조), ⑪ 정결과 독신(277조, 573조), ⑫ 지속적인 공부(279조), ⑬ 상주 의무(283 조, 665조), ⑭ 신분에 부적합한 활동 금지(285조 1~2항), ⑮ 국가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맡지 않음(285조 2항), ⑯ 세속인의 재산 관리 금지(285조 4항), ⑰ 사업과 상업의 금지(286조), ⑱ 정당이나 노동 조합 활동금지(287조) 등.
〔주교 및 교구 사제단과의 관계〕 교계 제도와 관계없이 수도승원들이 주교에게 소속되기 시작한 칼체돈 공의회(451) 이후 수도 사제들 또한 교계 제도의 틀 안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수도자의 지역 교회에의 긴밀한 투신이 요청되는 만큼 수도 사제의 양성은 "수도회 고유의 정신" (주교 35항 2)도 고려하는 가운데 장차 그가 직무를 수행하여야 할 개별 교회의 사제단에 대한 가입을 고려하여야 한다. '주교들의 협력자들' 인 수도 사제들은 "주교의 권한 아래서 영혼들을 보살피고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느니 만큼, 참된 의미에서 그들도 교구의 성직계에 속한다" (주교 34항). 또한 수도자들은 그들이 성좌 설립 수도회에 속한다 할지라도, 참으로 교구 가족의 일원임을 명심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또한 전례 의식의 차이는 인정되나, 경신례의 공적 수행 · 영혼들의 사목 · 신자들을 향한 설교 · 신자들 특히 어린이들의 종교적 내지 윤리적 교육 및 교리 교육과 전례 훈련 · 사제직에 고유한 특권과 사도직 수행에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 등에 있어서는 수도자들도 그 지역 장상에게 예속된다. 교회법은 수도회의 정당한 자치를 인정하고 있으며(586조), 이로써 수도자들은 보편적 · 선교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곧 수도 사제들은 교구장 주교의 사목직 수행과 영혼들의 사목에 적극 협력하여야 하며, 교구장은 수도회의 자치와 고유한 삶에 간섭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 · 장려하여야 한다. 곧 교구장 주교와 수도 사제들과의 공동체 정신은 마땅히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수도회나 수도 사제의 고유함이 손상되어서는 안된다. 또 주교는 여러 수도 단체들 사이, 수도 단체와 교구 사제들 사이의 질서 있는 협력을 촉진하여야 한다(주교 34항). 규범적으로 말해서, 주교가 개별 교회 안에서 어떤 사명이나 사목 활동을 위임하는 수도 사제 또는 수도회의 위치는 교구장 주교와 수도회 장상 또는 관계 수도자 사이에 체결되는 서면 계약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 동일한 상황에 있는 수도 부제도 마찬가지이다(<수도자 양성 지침> 109항).
〔현재의 문제점들〕 수도 성소의 본질은 축성된 수도 생활로의 부르심이지 사제직으로의 부르심은 아니다. 다시 말해 수도자로서의 서약이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것이며 사제로서의 서품은 이차적인 것이다. 그러나 수도 사제의 증가나 발달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수도회 내의 수도 사제의 존재가 아니라, 수도 사제 각자가 먼저 수도자로서 얼마나 충실하게 교육을 받으며 얼마나 수도적 정신에 충만하게 사제직을 수행하느냐 하는 점이다. 따라서 수도원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사제에 대한 특별한 관습은 철폐되어야 하며, 수도 사제 각자가 수도자로서의 축성된 삶에 충실할 때 근거 없는 성직주의나 반성직주의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수도 생활의 은사와 사제 신원이 결합할 때에 나오는 긍정적 가치를 더 깊이 검토하여야 할 때이다.
수도자와 수도 사제의 신분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수도원 안에서 미사 집전 방식 · 공동 집전 · 미사 지향 · 미사 예물 등이 문제가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1994년에 열린 제9차 주교 시노드에서는 혼합 수도회의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었는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축성 생활> 61항) 특히 혼합 수도회들 안에서의 수도 사제들과 평수사들 사이의 관계 정립이 중대한 과제로 주어졌다. (← 교구 사제 ; 재속 사제 ; → 수도자)
※ 참고문헌  AA.VV., Dizionario degli Istituti di perfezione, vol. 8,Roma, 1988, pp. 48~97// -, Episcopato Presbiterato Diaconato. Teologia e Diritto Canonico, Roma, 1988/ 一, La formaciόn de los religiosos. Comentario a la Instrucciόn 'Potissimum Institutioni', Roma, 1991/ Cyprian Davis, Monasticism and Priesthood, The Priest, vol. 50, n. 11(1994. 11), pp. 55~60(김화영 역, <수도 생활과 사제직>, <사목> 193호, 1995. 2, pp. 85~94)/ E. Schillebeeckx, Kerkelijk Ambt. Vororgamers in de gemeentevan Jesus Christus, 1980(정 한교 역, 《교회 직무론》, 분도출판사,1985)/ Elio Gambari, Vita religiosa. secondo in Concilio e il nuovo DirittoCanonico, Roma, 1985, pp. 208~211/ B. Forshaw, Father(religious title),《NCE》 5, p. 8521 J. Koonamparampil, Clerical Obligations Applied to the Religious. An Exegetical Study of Canon 672, Roma, 1990/ L. Landin, The Causes of the Clericalization of the Order ofFriars Minor 1209~1260, Chicago, 1968/ Severino-Maria Alonso, La Vida Consagrada, Madrid, 1988, 9th ed., pp. 195~198/ 《코이노니아》 16집(1991. 가을), 한국 베네딕도 수도자 모임, pp. 6~38. 〔奇京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