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修理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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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수리산 전경(왼쪽)과 최경환 성인의 묘소 자리에 세워진 십자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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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수리산 전경(왼쪽)과 최경환 성인의 묘소 자리에 세워진 십자 비석.

박해 시대의 교우촌. 경기도 안양시 안양3동 담배골 소재. 수리산 지역에 언제 교우촌이 형성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자료에 의하면 1838년경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성인 일가가 이곳으로 이주함으로써 교우촌으로 알려지게 된 것 같다. 최경환 성인은 회장으로서 이곳의 신자들과 함께 담배를 재배하며 신앙 생활을 지켜 나갔는데, 1839년 당시 수리산에는 60여 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31일 최경환 성인 일가와 이(李) 에메렌시오 등 40여 명의 신자가 체포되었다. 그 후 최경환 성인은 1839년 9월 12일에, 부인 이성례(李聖禮, 마리아)는 1840년 1월 31일에, 이에메렌시오는 1839년에 각각 순교하였다. 최경환 성인의 시신은 그의 둘째 아들 최의정(崔義鼎, 야고보) 등이 수습하여 노고산 근처에 가매장하였다가 수리산으로 이장하였고, 1930년 5월 26일에 명동 성당으로, 그리고 1967년에는 다시 절두산 성당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현재 수리산에 있는 최경환 성인의 묘소 자리에는 수원 레지오 마리애 꼬미시움에서 세운 십자 비석이 있고, 묘소로 가는 길에는 1987년 봄에 신자들이 세운 십자가의 길이 있으며, 그 해 여름에는 성모 동굴이 마련되었다. 아울러 수원교구에서는 2000년 1월 수리산 성지 전담 신부를 임명하고 성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이성례 ; 최경환)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기해 · 병오 순교자 시복 조사 수속록》, 절두산 순교 기념관 소장/ <달레 교회사》 中, pp. 429, 436/ <최 양업 신부 일가의 이력서>, 《순교자와 증거자들》, 한국 교회사연구소, 1982/ 배티 사적지 편, 《증언록과 교회사 자료》, 천주교 청주교구, 1996/ 방상근, <최양업 신부와 수리산>, 《교회와 역사》 298호(2000. 3), 한국교회사연구소, pp. 9~12.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