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시대의 교우촌이자 교회 사적지. 충남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322 소재. 수리치골이 처음으로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1846년 11월 2일 페레올(J.Ferréol, 高) 주교와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신부가 그곳에 성모 성심회(聖母聖心會)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병오박해를 피해 외리골, 성치골 등지로 피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성모 성심회의 설립을 결정하고 수리치골을 그 장소로 선정했던 것이다.
당시 수리치골이 있던 국사봉 일대는 박해를 겪으면서 여러 개의 은신 교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수리치골은 그 가운데 하나로 신입 교우 한 가족이 살고 있던 외딴 지역이었다. 그러나 성모 성심회가 설립되고 신부들이 방문하면서 점차 교우촌으로 발전하였고, 인근의 신앙 중심지로 변모해 갔다. 현재 수리치골에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의 본원이 있다. → 다블뤼 ; 성모 성심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달레 교회사》 下, pp. 136~137/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과 수리치골>, 《교회와 역사》 158호(1988. 7), 한국교회사연구소, pp. 4~1 1/ 정 양모, <다블뤼, 마리 니콜라 앙토안>, 《한국가톨릭대사전》 3,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방상근, <성모 성심회>, 《교회와 역사》 263호(1997. 4), pp. 8~12/ 천주교 대전 교구 공주중동 교회, 《중동 본당 100년사》, 1999, pp. 78~79. [方相根]
수리치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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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