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레스, 프란시스코 Suárez, Francisco(1548~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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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수아레스 신부.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신부.

스페인의 예수회 신부. 신학자. 철학자. 토마스주의를 중심으로 한 중세 스콜라 철학을 현대에 전해 주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
1548년 1월 5일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4세 때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 들어가 교회법을 공부한 후 예수회에 입회하고자 하였지만 건강 문제와 학문적인 경력 및 능력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그렇지만 계속 청한 끝에 입회 허락을 받고 1564년 6월 16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입회 후 3개월 뒤부터 살라망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566년부터는 같은 대학에서 신학을 배웠는데, 그에게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도미니코회의 만시오(Juan Mancio, 1497~1576)였다.
1570년 살라망카 대학과 세고비아(Segovia)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수아레스는 1572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철학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574년에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바야돌리드(Valladolid)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1575~1576년에는 아빌라(Avila)와 세고비아에서 가르치다가 다시 바야돌리드로 돌아와 1580년까지 신학을 가르쳤다. 이어 로마 대학에서 1585년까지 5년 간 신학을 가르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와 알칼라(Alcalà, 1585~1593)와 살라망카(1593~1597)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597년에 코임브라(Coimba)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한 뒤 1615년에 사임할 때까지 이 직무를 수행했다. 가르치는 일 외에도 수아레스는 신학적 · 정치적 논쟁에 관여하였는데, 이러한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16세기 예수회와 도미니코회 사이에 벌어졌던 하느님의 예정(豫定)과 인과 관계,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논쟁이었다. 이는 약 10년 동안 교황청에서 바녜스(D. Báñez, 1528~1604)를 중심으로 한 도미니코회 학파와 몰리나(L. de Molina, 1535~1600)를 중심으로 한 예수회 학파 간에 벌어졌던 '도움에 관한' (DeAuxiliis) 논쟁이었다. 이 논쟁에서 수아레스는 예수회의 벨라르미노(R.F.R. Bellarminus, 1542~1621)와 몰리나의 주장을 따라 하느님 은총의 선행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자유 의지를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또 정치적인 논쟁으로 대표적인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과 교황청 사이에 벌어진 교황권 제한에 관한 논쟁이었다. 1607년에 수아레스는 교황의 입장을 옹호한 <배네치아인들에 의해 침해받은 교회의 면속권>(De immunitate ecclesiastica a Venetis violata)이라는 논문을 썼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에 교황 바오로 5세(1605~1621)는 그를 탁월하고 신심 깊은 박사' (Doctor eximius ac pius)라고 칭하였다. 1617년 9
월 25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사망하였다.
〔저 서〕 수아레스는 42세 이후에 자신의 저서를 출판하기 시작하였음에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대부분의 저서들은 신학 서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중 일부 부분과 유사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신학 사상은 토마스주의를 따르고 있는데, 그의 생전에 출판된 첫 작품이 1590년에 저술한 《말씀의 육화》(DeIncarnatione Verbi)이고, 그 밖에 《그리스도 생명의 신비》(De mysteriis vitae Christi, 1592), 《성사론 제1부》(De sacramentis I , 1595) ,《형이상학의 쟁론》(Disputationes metaphysicae, 1597), 《신학 논총》(Varia opuscula theologica, 1599), 《성사론 제2부》 (De sacramentis II , 1602), 《징계에 관하여》(Decensuris, 1603), 《하나이며 셋이신 하느님》(De Deo uno et trino, 1606), 《덕과 종교적 상태》(De virtitute et statu religionis I ·, 1608, 1609) , 《법과 법관으로서의 하느님》(De legibus seu de Deo legislatore, 1612), 《가톨릭 신앙의 옹호》(Defensio fidei catholicae, 1613) 등이 있다.
특히 《형이상학의 쟁론》은 스콜라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중세 스콜라 철학을 현대 사상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1601~1603년에 수아레스의 가르침을 총망라하여 1612년 코임브라에서 출판한 《법과 법관으로서의 하느님》은 법철학에 영향력을 미친 저서였고, 교황 바오로 5세의 요청으로 쓴 《가톨릭 신앙의 옹호》는 영국의 제임스 1세(James I , 1394~1437)를 반박하는 글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왕에 대한 충성 서약과 영국 성공회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가톨릭 정통 신앙을 호교론적으로 옹호하였으며, 절대적인 왕권을 반대하고 현세 통치권에 대한 교황의 간접적인 권한과 전제 군주에 저항하는 시민권을 옹호하였다. 수아레스의 정치 철학적인 소양을 드러내는 이 저서는 제임스 1세의 비난을 받았으며, 런던에서는 공식적으로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저서들로는 《은총론 제1 · 3부》 (De gratia I · Ⅲ, 1619), 《천사론》(De angelis, 1620), 《6일의 과업》(De opera sex dierum, 1621), 《영혼론》(De anima, 1621), 《신앙, 희망과 사랑》(De fide, spes et caritate, 1621), 《덕과 종교적 상태 제3 · 4부》(De virtute et statureligionis Ⅲ · Ⅳ, 1624, 1625), 《궁극적인 목적》(De ultimo fine, 1628) , 《은총론 제2부》(De gratia II , 1651), 《유효한 도움으로서의 진정한 지식》(De vera intelligentia auxilii efficacis, 1655),《6편의 미발표 논문》(Opuscula sex inedita, 1859) 등이 있다. 이 밖에 출판되지 않은 글들도 많다.
〔신학 사상〕 수아레스가 살던 시대는 스콜라 철학의 황금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중세의 질서가 와해되고 급진적인 새로운 사상들이 나타나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에 수아레스는 중세의 철학과 신학을 종합하여 형이상학의 체계를 새롭게 정립하였는데, 학문적 방법론은 살라망카 대학의 비리아(Francisco de Vitoria, 1486~1546)에 의해 시작된 전통을 따랐다. 교부들의 사상과 신학 및 철
학에 정통하였던 그는 각 교의(敎義) 주제들을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전개하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가지고 재구성하였다. 삼위 일체론을 전개하면서는 유비(類比, analogia)의 방법으로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사이의 교환할 수 없는 차이점에 기초해서 신성(神性)을 논하였다. 또 육화에 관한 논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로서 인간성을 지니며, 이 인간성은 하느님의 말씀에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하느님의 말씀과 하나를 이룬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초자연적 질서나 은총에 대한 가르침은 그의 신학에 가장 정교하게 다루어진 부분이었다. 그는 은총의 질서가 지닌 초월성을 강조하면서, 의화는 성화 은총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성화 은총과 죄는 서로 상반된 것이며, 죄는 은총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하느님 앞에 의로움을 쌓아 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선행이란 순전히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선행을 함과 동시에 초자연적인 힘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또한 그는 죄란 본질적으로 인간이 하느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며, 소죄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느님의 예지(叡智)에 관해서 수아레스는 몰리나의 '중지' (中知, scientia media)라는 주장을 따랐다. 즉 그는 예정의 절대 불가변성을 부정하였고,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의 행위를 예견하지만 인간의 의지에 의한 협력 없이는 하느님의 은총도 효과를 지니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는 하느님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futuribilia)을 알고 있다는 몰리나가 일컬은 하느 님의 '특수 지식' 이라는 견해를 약간 수정하여, 하느님은 모든 것을 그것들의 지향적이고 객관적인 존재 방식 그 자체로 즉자적으로 안다는 견해를 펼쳤다. 그는 몰리나의 신학 사상을 더 구체적으로 이론화하면서도 합의주의(合宜主義, congruismus)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영 향] 수아레스는 스콜라 사상의 전통을 현대에 이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수아레스의 형이상학은 이베리아의 가톨릭 학파를 거쳐 여러 북유럽 국가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의 《형이상학 쟁론》은 독일의 루터파 대학에서 수 차례 재판될 정도로 널리 읽혀졌다. 또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국제법을 포함한 법학 역시 독일의 개혁 전통과 네덜란드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 는 스코트(J.B. Scott) · 롬멘(H. Rommen) · 트렐레(C.B. Trelles) 등에 의해 법학에 미친 그의 중요성이 재평가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까지도 그는 법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윤리 신학에 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학문의 깊이에 있어서나 방대한 양의 저술로 미루어 당대의 가장 탁월한 학자로 평가되는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 스콜라 사상의 대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 몰리나주의 ; 스콜라 철학 ; 은총론)
※ 참고문헌  Francisco Suárez, Über die Individualitiät und das Individuationsprinzip, Lateinisch-Deutsch, hrg. Rainer Specht, Hamburg,1976/ 一, On the Essence of Finite Being as such, on the Existence of that Essence and their Distinction, trans. by Norman J. Wells, Milwaukee, Wisconsin, 1983/ -, On the Various Kinds of Distinctions, trans. by Cyril Wollert, Milwaukee, Wisconsin, 1947, 1976²/ -, On Fommal and Universal Unity, trans. by J.F. Ross, Milwaukee, Wisconsin, 1964/ J.J.E. Gracia· D. Davis, The Metaphysics of Good and Evil according to Suárez, Philosophia Verlag, München · Hamden . Wien, 1989/ J. Dalmau, 《NCE》 13, pp. 751~756/E. Elorduy, 《LThK》9, pp. 1129~1 132. 〔姜永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