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 본당

秀巖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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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산시 와동 267 소재. 1981년 8월 1일 안양(현 중앙) 본당 소속이었던 수암면 와리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일치의 모후. 관할 구역은 시흥군 수암면 일부와 안산시 중앙동, 성포동, 고잔동, 와동, 부곡동, 수암동. 〔교 세〕 1981년 1,646명, 1983년 2,545명, 1988년 2,982명, 1992년 7,946명, 1994년 10,394명, 1997년 5,996명. 〔역대 신부] 초대 송영규(宋榮奎) 바오로(1981. 8~1984. 2), 2대 오브리엔(O'Brien, 신오복) 안토니오(1984. 2~1985. 2), 3 대 조규식(曹圭植) 요셉(1985. 2~1991.9), 4대 최재용(崔 在鎔) 바르톨로메오(1991. 9~1995. 9), 5대 윤용배(尹龍 培) 라자로(1995. 9~1999. 1), 6대 배영섭(裴英燮) 베드로 (1999. 1~현재) .
수암 본당의 모체인 수암면 와리(瓦里, 방죽말) 공소는 하우현(下牛峴) 본당 관할로 1913년에 신자수 27명으 로 시작되었으며, 1946년 소사(素砂) 본당의 설립으로 군자면과 수암면 일부 공소가 이 본당 관할이 되면서 와 리 공소도 소사 본당 관할이 되었다. 그 후 1970년에 소 사 본당이 인천교구 소속이 되면서 안양 본당으로 이관 되었는데, 이 당시 신자수는 78명이었다. 한편 1977년 군자면 거모리 일대에 반월 신공업 단지가 조성되자, 수 원교구에서는 대규모 공업 단지 및 아파트 단지로 개발 될 이 지역의 복음화에 관심을 기울여 본당 신설을 계획 하고 1979년에 와리 267번지를 성당 부지로 확보하였 다. 그리고 1981년 5월 10일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 하였으며, 같은 해 8월 1일에는 와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 당시의 본당 이름은 '와리' 였으나, 같 은 해 11월 8일 지역 명칭에 부응하여 '수암동' 으로, 얼 마 후에는 '수암' 본당으로 개칭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영규 신부는 공단이라는 지역 특성에 따라 노 동 사목에 역점을 두고, 공단 내의 신자와 미신자를 상대 로 상담 전화를 개통하는 등 지역 복음화에 힘쓰는 한편 성당 건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982년 5 월 지하실 공사가 완료된 후 공사비 부족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2대 주임은 당시 원곡 본당 주임이었던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오브리엔 신부가 겸임하였고, 1985
년 2월에는 조규식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조 규식 신부는 수암 본당이 위치한 지역 특성상 유동 인구 가 많아, 신자수의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떨어지고 냉 담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여 아파트 단지를 집중 방문하 였고, 〈나눔의 자리>라는 본당 소식지를 만들어 예비 신 자와 냉담자에 대한 선교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 공사가 중단된 이후 지하 임시 성당에서 계속 미사를 봉헌해 왔 으므로 성당 건립을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 결 과 1988년 3월에 공사를 재개하여 이듬해 10월 2일 김 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 다. 한편 1987년 4월에는 성당 앞의 주택 한 채를 매입 한 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를 초청하였으나, 이듬해 9월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교체되고 말았 다. 4대 주임 최재용 신부는 교세 확장으로 사목상의 어 려움이 증대되자 월피동 462-2번지의 부지 182평을 매 입한 다음, 1995년 9월 14일 월피동 본당을 분리시켜 1,883세대 4,716명을 이관하였다. 5대 주임 윤용배 신 부는 성서 필사 운동 · 성서 합본 사용하기 운동 등을 전 개하였고, 지속적인 교세 확장으로 또다시 본당 분할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98년부터 본당 분할 기금을 적립하 여 1999년 1월 26일 고잔동 본당을 분리하고 963세대 2,702명을 이관하였다. 그리고 같은 달 윤용배 신부가 교 구청 사회 복음화 원장으로 이임하면서 배영섭 신부가 6 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 수원교구 ; 중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 구, 199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