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추기경. 신학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
〔생애와 활동〕 1904년 7월 16일 벨기에 브뤼셀의 익셀(Ixelles)에서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말린(Malines) 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1921 ~ 1929년에는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로마의 벨기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철학과 신학을 통해 학문적 · 신앙적으로 성숙하였고 교회에 대해 보다 넓은 안목을 갖게 되었다. 그에
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이들로는 당시 말린 대교구장이었던 메르시에(D.J. Mercier, 1851~1926) 추기경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 교수였던 전례학자이자 교회 일치 운동의 선구자인 보뒤앵(L. Beauduin, 1873~1960) 그리고 선교사로서 유럽의 중국 유학생 지도를 위해 돌아와 있던 레브(V.Lebbe, 1877~1940) 신부 등이었다.
1927년 벨기에 말린 대교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1930~1939년에 말린 신학교에서 윤리 철학을 가르친 수에넨스는, 나치 정부하였던 1940~1944년에는 루뱅 대학교의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신학연구와 토론을 위한 작은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모임에서는 교회론을 비롯하여 전례의 쇄신과 교회 일치를 위한 글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으로 는 다니스(E. Dhanis), 세르포(L. Cerfaux, 1883~1968), 돈데인(A. Dondeyne, 1901~1985), 뮐러(L. Moeller, 1912~1986), 필립스(G. Philips, 1899~1972) 등이 있었다. 그리고 1945년에는 말린 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에는 말린 교구에 '레지오 마리애' 를 창단하였다.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본질적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순종하면서 성령께 개방되어 있다고 인식한 그는, 레지오 마리애의 사도적이고 영성적인 풍부함에 관한 내용을 《레지오 마리애 사도직 신학 : 사도직의 영웅, 에델 퀸》(Théologie de I'apostolat de la Légion de Marie : Une héroine de l'apostolat, EdelQuinn)이라는 책으로 저술하였다.
추기경 서임과 공의회 활동 : 1960년에 교구 주교 시노드의 준비 위원이 된 수에넨스는 이듬해 11월 24일 교황 요한 23세(1958~1963)에 의해 말린 대교구의 대주교 겸 벨기에의 수석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교황에게 보낸 대주교 임명에 대한 감사 편지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는 교황의 의도를 묻는 편지를 계기로 교황과 친분 관계를 맺게 되었다. 1962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직전 추기경으로 임명된 그는, 그 후 공의회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공의회 진행을 위해 유럽 · 미국 ·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여러 회의를 주관하고 적극적으로 공의회를 준비하였고 공의회 회기 동안에도 많은 활약을 하였다.
교회 일치를 위한 활동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인 1965~1966년에는 루뱅 대학의 분열 문제와 그의 교구장직 수행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대주교로서의 직책 수행에 충실하였고 교회 일치를 위해서도 다각도로 활약하였다. 즉 모스크바 정교회의 부주교와 만남을 가졌고, 1967년 10월에는 시노드를 통해 '국제신학위원회' 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듬해에는 프로테스탄트와의 교회 일치를 위한 강연을 위해 미국의 버클리와 헐리우드를 방문하였다. 또 1969년 1월에는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강연을 함으로써 성공회와의 대화를 위한 문을 여는 데 기여하였고, 1970년에는 스위스 칼뱅주의 신학자인 알멘(Von Allmen)과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브라우어(J.Brauer)와의 만남을 가진 데 이어, 방송 매체를 통해 교회 일치를 시도한 뉴먼(Newman)과의 만남을 미국에서 가졌다. 그리고 1971년에는 '마리아의 에큐메니컬 협의회' 에서 개최한 런던 대회에 참가하였다. 1979년 교구장직을 은퇴하기 직전까지 그는 성공회 주교들과의 교회 일치를 위한 만남을 갖는 등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였다.
성령 쇄신 운동의 활성화 : 1972~1973년에는 미국에서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 (Catholic Charismatic Renewal Movement)에 참가한 뒤 자신의 교구에 이 운동을 확산 ·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1974년에는 말린에서 혁신적이고 새로운 가톨릭 성령 운동을 위하여 신학적 · 사목적인 지도안을 발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카리스마적 쇄신>(Renouveau charismatique)이라는 첫 문헌을 발표한 데 이어 <쇄신과 어둠의 세력>(Renouveau et Puissances des ténèbres) · <나의 예배와 그리스도교적 신앙>(Le culte du moi etfoi chrétienne) · <성령 안에서의 안식>(Le repos dans L'Esprit) 등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브뤼셀에 있는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 국제 정보 센터의 발전을 위하여 미국 성령 쇄신 운동 지도자인 마틴(R. Martin)과 클라크(S.Clark)를 벨기에로 초대하였는데, 이러한 일들로 인해 수에넨스는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 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또 사목적 권고나 가르침, 현 상황에서의 교회에 대한 성찰, 시대적 징표의 직감, 진리 안에서의 개인적 · 교회적인 증언을 담은 《새 성령 강림》(Unenouvelle Pentecote)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고, '국제 성령쇄신 봉사회' (International Catholic Charismatic Renewal Services, I.C.C.R.S.)의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1976년에는 성령 운동을 교계 제도 안에 통합시키려는 의도에서 사제들만이 성령 운동 기도 단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문헌을 발표하였다. 1978년에 아일랜드에서 열린 '세계성령 쇄신 운동' 에 참석한 것을 끝으로 이듬해 7월 14일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였으나, 그 후로도 성령께 교회를 위탁하기 위하여 성령 쇄신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일을 계속하였다. 1990년에 심장병이 발병한 후 1996년 5월 6일 사망할 때까지 그는 줄곧 묵상과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생활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의 기여 및 사상〕 수에넨스는 1962년 12월 4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일반 기본안을 발표했는데, 당시는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의 병세가 악화되어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가 발표한 기본안은 전체 회의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훗날 교황 바오로 6세가 된 몬티니(G.B. Montini, 1897~1978) · 레르카로(G. Lercaro, 1891~1976) · 되프너(J. Döpf- ner, 1913~1976) 추기경들로부터는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이틀 후인 12월 6일에 첫 기본안에 수정을 가한 수에넨스의 기본안이 전체 회의에서 통과되었음이 공표되었고, 그 다음 날짜의 <옷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조정위원회' 위원명단이 발표되었는데, 위원장은 치코냐니(A.G. Cicognani, 1883~1973) 추기경이 맡았고, 위원들로는 수에넨스 외에 리에나르(A. Liénart, 1884~1973) · 스펠만(F. Spellman, 1889~1967) · 콘팔로니에리(C. Confalonieri, 1893~1986) · 되프너 추기경 등이 임명되었다.
수에넨스는 공의회의 전반적인 사안에 있어 앞으로 다룰 일반적 주제에 소제목들을 붙여 공의회 문헌안을 간소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공의회의 주제를 '교회안' (Ecclesia ad intera)의 것과 '교회 밖 (Ecclesia ad extra)의 것으로 크게 이분화시켰다. 그리고 공의회 첫 회기에서는 주제를 전례와 교회론 및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집중하였고, <교회 헌장>(Lumen Gentium)을 위한 작업으로 공의회를 진행시켜 나갔다. 두 번째 회기에서는 '종신부제' 에 대한 안건과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로서 복음화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생활하기 위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안건들과 주교의 임기를 75세로 제한하는 안건을 제출하였다. 또 1963년 5월에는 결혼한 사람도 가능한 '종신 부제' 제도를 확립하기 위하여 미국을 방문하였으며, 이 안건이 <교회 헌장>에 삽입되도록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사목 헌장>(Gaudium et spess)을 위한 기초안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를 작성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의 신학자들을 초청해 말린에서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처럼 수에넨스는 공의회 문헌 작성에 있어 조정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여러 안건들을 제출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로서 탁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가 제출한 안건의 주제-공의회 이후에도 자신의 신학 사상 안에서 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지만-특히 우선적으로 주장하던 주제는 평신도 사도직' 이었다. 평신도에게 내려오시는 성령의 역사(役事)로 인해 평신도 사도직의 다양한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공의회의 '교회론' 요약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주제였다. 수에넨스는 교회는 하나의 조직에 그쳐서는 안되며 살아 있는 신비 혹은 생동하는 성령의 은사의 총합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신비체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며 이 논제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1964년 9월 14일에 시작된 제3 회기에서 그는 좀더 균형 잡힌 마리아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는 사적 계시로 인해 과장된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을 지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중심론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잘못 해석되어 경시되 는 마리아론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공의회의 사목적인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연 그의 업적으로는 '부부간의 도덕' 을 들 수가 있다. 이는 가톨릭 운동(Actio Catholica)이나 레지오 마리애 등과 같은 평신도 운동을 통하여 부부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는 이론이었는데, 1964년 10월 29일에 그는 이러한 제안이 <사목 헌장>에 삽입되도록 요구하였다. 수에넨스는 현대의 과학적 진보를 감안하여 '자연적 윤리' 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였으며, 1965년 9월 29일에는 세례성사 때 하는 새로운 성스러운 탄생에 대한 언약을 혼인성사 때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는 또 사제 양성에 있어서의 신학교 교육이 영적 ·지적 · 사목적인 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활기 있는 선교를 위해 1964년 10월에 <사목 헌장>의 '현대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 에 대한 요약안을 검토할 때, 그는 교회의 복음화와 그에 병행하는 문화적인 진보를 구별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근본적으로 기여하였다. 수에넨스는 인문주의와 복음주의는 분리될수 없지만 그렇다고 혼돈되어서도 안된다고 하였으며, 복음화나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의무를 강조하였다. 1965년 12월 6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를 기념하는 미사가 교황청 전체 위원회에서 거행되었을 때, 수에넨스는 공의회 종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2월 8일 장엄미사와 함께 종료되었다.
〔저 서〕 수에넨스는 사목 서한이나 문헌의 발표 외에도 많은 저서들을 저술하였는데, 대부분 번역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도직 신학》(Théologie de I'apostolat, 1951), 《선교 상황에서의 교회》(L'Egliseen état de mission, 1955), 《수도자의 사도직 육성》(Promotion apostolique de la religieuse, 1962) 《학교 교육 문제》(Laquestion scolaire, 1956) 《근본 문제》(Un probléme crucial, 1963) , <현대 교회 안에서의 연대성》(La coresponsabilitédans I'Eglise d'aujourd'hui, 1976), 《교회의 미래》(L'avenir del'eglise, 1971), 《그리스도교적 사랑과 오늘날의 성(性)》(Amour chrétien et sexualité aujourd'hui, 1976) 《성령 안에서의 쇄신과 인간의 봉사》(Renouveau dans I'Esprit et service del'homme, 1979), <교회 일치 사상과 성령 쇄신》(Oecumenisme et renouveau charismatique, 1978), 《회상과 희망》(Souvenirs et espérances, 1991) 등이 있다.
※ 참고문헌 Ramsey Michael, Come Holy Spirit, 1977/ Cristianismosin Cristo?, Editiones Paulinas, Zolla Vizcaya, 1970/ Famiglia cristiana(L'unitá della chiesa nella logica del Vaticano II), 1969. 6/ Dictionay of Pentecostal and Charismatic Movements, W.C.C. Publications, Geneva, 1991/ Ricordi e Speranza, Paoline, Cinisello Balsamo, 1993/ R.J. Bord · J.E. Faulkner, The Catholic Charismatics, 1983/ D. Bundy, Charismatic Renewal in Belgium : A Bibliographical Essay, 《EPTA Bulletin》, 1986. 5, pp. 76~90/ Corntemporary Authors 61~64, 1976, p. 5421 Current Biography Year Book, 1965, pp. 420~422/ E. Hamilton, Cardinal Suenens A Portrait, London, 1975/ Intemational Who's Who 1986~19871 P. Lesourd · J. Ramiz, Leon Josef Cardinal Suenens, 1964/ L.L. Sandidg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Catholic Charismatic Movement in Belgium, unpublished M.R.S.C, Thesis, Catholic Univ. of Leuven, 1976. [李再淑]
수에넨스, 레옹 조제프 Suenens, Léon Josph(190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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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레옹 조제프 수에넨스 추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