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사도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의 직책에 맡겨진 사목적인 권한.
수위권은 '첫째' 라는 뜻의 라틴어 '프리무스' (primus)에서 유래된 말로, 교회 내의 서열과 명예 그리고 사목적위상에 대해 교황이 지닌 고유한 최고의 권한을 뜻한다. 따라서 '수위성' 은 교회법상 모든 주교와 신자들에 대해 교황이 갖고 있는 완전하며 최고의, 보편적이고 사목적인 권위를 의미한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의 수위성과 직결된 것으로 열두 사도 중에 베드로가 늘 첫째였었다는사실과 로마의 주교는 베드로의 사목적 후계자로 베드로의 수위성을 계승하였고, 역사적으로 로마의 주교는 동료 주교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며 어떤 의미에서 감독자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사목적 책무는 세상의 통치자들과 같이 백성을 강제로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봉사에 그 핵심이 있으며(마태 20, 25-26), 세례받은 신앙인은 모두 하느님 안에서 평등하고 그 누구도 아버지 · 스승 · 지도자일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두의 스승이기 때문에(마태 23, 8-10) 수위권은 봉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봉사와 평등의 그리스도교적 핵심 원리를 고찰할 때 권위적인 표현인 '수위권' 보다는 '우선권' 또는 '대표성' 이라고 부르는 것이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훨씬 더 타당하다.
I . 복음에 나타난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
〔항상 첫째로 언급된 베드로〕 사도 베드로가 열두 사도 중 첫째였고 나름대로 독특한 권위를 지녔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사도 베드로는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와 함께 예수로부터 첫 번째로 부름을 받고 선발된 제자 중 하나였고(마태 4, 18-22),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는 현장에 함께 있던 세 제자 중 하나였으며(마르 5, 37),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때(마태 17, 1-9 ; 마르 9, 2-10 ; 루가 9, 28-36)와 예수가 수난 직전 게쎄마니에서 고뇌의 기도를 바쳤을 때(마태 26, 37 : 마르 14, 33), 그리고 최후의 만찬 준비를 위한 장소를 마련할 때(루가 22, 8) 늘 첫째로 언급되었다. 열두 사도의 명단은 복음에 따라 배열 순서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베드로 사도의 이름은 늘 첫 번째였다(마태 10, 2 : 마르 3, 16 : 루가 6, 14 ; 사도 1, 13). 따라서 첫 번째로 언급된 이름이 지닌 상징성은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베드로의 개명과 대표권 행사〕 베드로만이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늘 대표로 행동하였다(마태 14, 28 ; 15, 15: 16, 16-22 ; 17, 4 ; 18, 21 ; 19, 27-30 : 마르 8, 29 ; 10, 28 ; 11, 21 ; 14, 29 ; 루가 8, 45 : 9, 20. 33 ; 12, 41 ; 18, 28 ; 22, 31 ; 요한 6, 68 ; 13, 6-10. 36). 성서상 개명(改名)은 새로운 소명을 받는다는 의미를 지닌 하느님의 확인이다. 아브라함의 개명(창세 17, 5), 야곱의 개명(창세 32, 39)과 함께 베드로의 개명(마태 16, 18)이 바로 그것이다.
베드로 대표성의 근거는 최연장자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첫 선발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복음을 근거로 학자들은 그보다 더 크고 깊은뜻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분명히 첫째로 선임된 사도이고, 특수 임무를 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예수의 편애를 받았지만 베드로는 편애를 넘어선 고유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였고(루가 4, 38), 그의 배에 올랐고(루가5, 3), 그를 물위로 걷게 하였고(마태14, 29), 그의 세금도 내어 주었고(마태 17, 24-27), 선발된 세 명의 제자들중 늘 첫째였고(마태 17, 1 ; 26, 37),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루가 22, 32), 때로는 꾸짖기도 하였다(마태 14, 31 ; 16, 23 ; 마르 14, 37 ; 마태 26, 34 ; 루가 22, 34). 특히 그에게 발현하였고(루가 24, 34 ; 1고린 15, 5) 순교의 죽음도 예고하였다(요한 21, 18).그뿐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는 열두 사도를 대표하여 예수에게 신앙을 고백하였고, 이어 예수로부터 하늘 나라의 열쇠를 부여받았다. "그대는 베드로(바위)입니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데 저승의 성문들 도 그것을 내리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대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습니다. 그러니 그대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요, 그대가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입니다" (마태 16, 18-19). 물론 이 이야기가 예수가 부활한 후 베드로에게 당부한 말씀(요한 21, 15-19)과 함께 후에 첨부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성서 전승상 공동체가 수렴하고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초기 교회의 역사적 삶을 보여 준 구체적인 증거이다.
또한 빈 무덤을 본 막달라의 마리아가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 사도에게 알린 것과, 두 사도가 함께 무덤에 다다랐지만 요한이 베드로를 기다린 점(요한 20, 2-8),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주도한 점(요한 21, 3), 베드로가 유다 대신 새 사도 선출을 위한 모임을 주재한 점(사도 1, 15-26) 그리고 성령 강림 후의 첫 강론(사도 2, 14), 첫 기적(사도 3, 6)을 행한 점 등 사도 행전의 초기
행적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펼쳐졌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의 대표성은 공동체 기능 곧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서 보듯이 사도 베드로도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바오로는 늘 그를 첫째로 인정하였다. 다만 바오로가 그를 무섭게 질타한 것은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도 하느님의 기준에 어긋날 때에는 가차없이 꾸짖음을 받게 된다는 다른 관점의 교훈이다.
II .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수위권
로마의 주교는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로마 주교의 인명록과 미사 중 성찬 전례 기도문의 제1 양식에서는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제2대 교황인 리노(64/67~79?), 3대 교황 클레토(Cletus, Anacletus, 79~90/92), 4대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 등의 순서로 기술하고 있다.
〔초기 교부〕 로마의 글레멘스 : 교황 글레멘스 1세는 고린토 교회에 대해 로마 주교의 사목적 권위를 행사한 첫 인물이었다. 물론 서간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학자에 따라 다소 다르고 대표권 행사라는 분명한 법적 선언도 없지만, 서간의 전체 문맥과 문체 및 내용 등을 볼 때 교황 글레멘스 1세가 고린토 교회에 대해 교사 또는 장상의 위치에서 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사실 글레멘스 1 세 교황은 인사말에서 분쟁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점에 대해 변명과 함께 미안함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가 서로 맺고 있는 단순한 사랑과 관심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한 그 어떤 책무와 의무감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 표현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권위적이며, 자신의 권고를 따르지 않는 것은 바로 불순명의 잘못임도 선언하고 있다. "누구든지 나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며 위험한 일입니다. 그 죄에 대해 나는 어떠한 책임도 없습니다" (59, 1-2). 사실 그는 자신의 집필이 성령에 의한 것이며 그 개입이 바로 성무 집행임을 강조하면서 하느님께 연유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서간의 집필 연대인 96년경에는 사도 요한이 에페소에서 생존해 있었을 것 으로 추정되는데, 가까운 아시아 교회가 아닌 로마 교회 가 개입하였다는 사실이 바로 그 권위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170년경의 고린토의 디오니시오 증언, 에우세비오, 《교회사》 Ⅳ, 23, 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 이냐시오(35~107)가 로마 교회의 대표성을 분명히 선언하였음은 소아시아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의 서두 인사를 비교할 때 쉽게 확인된다. 그는 로마 교회를 "로마인들의 지역에서 주도적인 교회" (Eccclesia] quae praesidet in locoregionis Romanorum, ἥ τις καί προχάθηται εν τόπω χωρίου Ρωμαίων)라고 하였고, "합당하고 순결한, 사랑을 주도하는 교회" (Ecclesia digne-casta ct caritatis praesidens) 즉 '아가페를 주도하는' (προχαθημένη τῆς ἀγάπης) 교회라고 표현하였다. 풍크(F.X. Funk)는 여기에서 '프로카테마이'(προχάθημαι)라는 동사는 '주도한다' 는 뜻으로 대표적 권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하르나크(A.K.G. von Harnack, 1851~1930)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은 이것을 로마 교회가 애덕 실천에 있어서 더욱 모범적이고 관대했다는 단순한 의미로 축소 · 해석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학자들은 '주도하다' 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된 점에 주목하였다. 첫째는 "로마인들의 지역에서 주도적"이라는 표현은 어떤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이 <마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6, 1, 2)에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주교 · 사제 · 부제 등의 직무와 관계된 수직(守直)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가페' (ἀγάπη)의 다양한 의미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 풍크가 주장하였듯이 이냐시오는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편지>(11, 2),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12, 1), <트랄리아인들에게 보낸 편지>(13, 1), 그리고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9, 3)에서 '아가페' 를 교회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아가페를 주도하는"이라는 표현은 '보편 교회' 를 지칭한다. 그러나 티엘르(J. Thiele)와 에를하르트(A. Ehrhard)는 이와 다른 주장 을 펴면서 '아가페' 란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초월적 사랑, 즉 헌신의 극치를 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가페의 주도를' 로마 교회가 행사하는 지도력과 지시적 권위로 이해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총화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결론은 로마 교회가 지닌 영예뿐만 아니라 보편 교회로서의 대표적 권한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에서 주도적인 그 교회가 바로"다른 이들을 가르쳤고" (3, 1) 그 교회의 주교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9, 1). 특히 상기할 내용은 이냐시오는 다른 여섯 개의 서간에서 한결같이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사목자로서 권위 있게 권고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예외로 로마 교회를 드높이며 그 대표성을 언급하였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는 두 사도 곧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해 세워진 교회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베드로와 바오로처럼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다만 죄인일 뿐입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분들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갇혀 있는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4, 3). 이와 같이 전체적 문맥은 분명히 로마 교회의 우월성을 확언하고 있다.
〔2~3세기의 교부들〕 빅톨 1세 교황 : 2세기 중엽 빅톨 1세 교황(189~198/199)은 부활 축일 논쟁에서 로마식 계산의 부활 축일 날짜를 거부하고 소아시아의 관습을 고집하는 주교들에게 파문을 경고하였다. 결국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Irenaeus, 130~200)의 설득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사목 행정상 교황의 대표권 행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V, 24, 9-18).
이레네오 :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 교회의 대표성에 관해 더욱 분명한 증언을 남겼다. 가톨릭의 진리는 오로지 사도들이 세운 교회의 전승 안에 있다고 증언한 이레네오는, 당시의 주교인명록을 다 열거할 수 없다면서 로마 교회의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한 가르침 만을 전해 주었다. "이 책에 모든 교회의 계승을 다 열거한다는 것은 대단히 지루한 일인 것 같아서 가장 위대한 두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해 로마에서 창설되고 조직되었으며 모든 이들에게 알려진 지극히 오래되고 가장 큰 교회만을 살펴봄으로써 사도들로부터 내려온 전승과 사람들에게 주어진 믿음이 주교들의 계승을 통하여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밝히려 한다. 그럼으로써 자만심이나 허영심이나 무분별이나 그릇된 판단 등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당한 집단을 형성하는 자들을 창피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단 논박》 Ⅲ, 3, 2 ; PG 7, 848-849). 그리고 중요한 내용이 이어지는데, 그리스어로 된 원문은 유실되어 라틴어로만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전세계의 모든 신자와 교회는 (로마) 교회의 더 큰 권위 때문에 마땅히 이를 따르고 이에 일치해야 한다. (로마)
교회는 바로 사도들의 전승을 보존해 왔기 때문이다" (Adhanc enim ecclesiam propter potentiorem principalitatem necesseest omnem convenire ecclesiam, hoc est eos qui sunt undique fideles, in qua semper ab his qui sunt undique, conservata est ea quaeest ab apostolis traditio) . 라틴어로 된 이 내용에서 학자들 사이에 핵심 논쟁이 되는 것은 '권위' 라고 번역된 '프린치팔리타스' (principalitas)의 의미이다. 즉 이 단어가 그리스어에서는 어떤 단어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스어의 어떤 단어가 번역된 것인지 정확히 지적할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아우텐시아' (αὐθεντία) , '엑소우시아 (ἐξουσία), '카톨리코스' (καθολικός) '해게모니코스 (ἡγεμονικός) , '프로에고우메노스' (προηγουμένως)'프로테우에인' (πρωτεύειν) 등의 번역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반 덴 아인데(Van den Eynde)와 바르디(Bardy)는 이 '프린치팔리타스' 를 '아르케' (ἀρχή), '아르카이온'
(ἀρχαῖον) 또는 '아르카이오테스' (ἀρχαιότης)로 이해하였다. 즉 '첫째' 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더 큰 권위'(potentior principalitas)란 더 앞선다' 는 의미로 사도적 기원의 권위 있는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추정되는 단어의 뜻은 로마 교회의 권위 · 힘 · 보편성 · 주도성 · 우선성 등으로, 특수한 대표성을 나타낸다. 여기서 이레네오는 일차적으로 그노시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지적하면서, 참된 신앙은 사도들의 전승에 기초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뜻은 로마 교회가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에 의해 세워졌고, 그 사도적 기원 때문에 특수한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로마 주교의 인명록은 로마 교회와 주교 곧 교황의 대표성과 수직 임무를 확인해 주고 있다.
테르툴리아노 : 테르툴리아노(Tertulianus, 150/160~220/240)는 그가 이단에 빠지기 전에는 로마 교회를 '진리의 규범' (《이단자 규정》 36, 4), '일치의 기준' (《프락세아 논박》 1, 6), '사도 베드로가 살다 간 곳 (《이단자 규정》 36, 3)으로,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교회의 수위권을 부여받은 교회의 기초(《전갈약) 10, 12)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몬타누스주의(Montanismus)에 빠진 다음에는 이 모든것을 베드로 개인의 것으로 해석하였고(《수치> 21, 10), 그 후 교계 제도를 배척하며 영적 교회의 우위성만을 강조하였다.
치프리아노 : 초기의 테르툴리아노처럼 치프리아노(Cyprianus, ?~258) 역시 로마 교회는
'베드로의 교좌(敎座)' (cathedra Petri)라고 선언하였다(서간 55, 14). 그렇지만 베드로 또는 로마 교회가 지닌 수위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교회의일치》(De Unitate Ecclesiae) 4장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수정본이 전해지고 있기때문에 전체적 종합이 더욱 힘들다. 그러나 치프리아노가 분명히 주장한 것은 베드로의 수위권은 다른 사도들과의 동등성 안에서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베드로의 수위권을 어떤 의미에서는 제한적으로 이해하며 교회의 일치를 위한 기능적 역할일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로마는 베드로의 교좌 즉 대표 교회로 거기에서 사제적 일치가 확인된다고 하였다(서간 55, 14). 스테파노 1세 교황(254~257)과의 세례 논쟁에서 치프리아노는 그에 반대하였지만, 이후에 펼쳐진 많은 분쟁 중에서 로마 주교의 권위와 일치의 담보성을 인정하고 수락하였다(서간 55 ; 67).
〔교회사에서의 근거〕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Dionysius Alexandrianus, 190~265?)는 교회 공동체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와 갈등에 대해 교황 디오니시오(259~268)에게 문의하여 확답을 받곤 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Ⅶ, 26, 1). 그뿐만 아니라 로마의 방문이 일치의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폴리카르포, 헤제십포, 유스티노, 아베르치오, 이레네오, 오리제네스 등이 모두 로마를 방문하였다는 사실은 상징 이상의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있다. 또한 발렌티누스, 체르돈, 마르치온, 아펠레스, 프락세아, 플로리누스, 비잔틴의 데오로투스 등의 이단자들도 로마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방문한 사실도 상기할만하다.
그리고 313년 콘스탄틴 대제(306~337)가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 후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음에도 로마 교회가 계속 그 대표성을 지녔다는 역사적 사실과, 니체아 · 콘스탄티노플 · 에페소 · 칼체돈 등의 4대 공의회가 황제의 주도로 황제의 영향하에서 개최되었지만 교황 사절의 신분과 참여가 보장되고 교황의 동의가 있어야 공의회의 결정이 유효했던 점 등은 로마 교회의 대표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특히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 제국은 5세기 초 게르만족을 비롯한 이방인들의 남침으로 폐허가 된 로마를 복구하고 지키면서 교황의 사목권이 정치 능력과 연계되어, 그 이후 교권과 함께 속권도 주도하는 교황 지상권의 발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교황의 정치 권력 장악은 결과적으로 봉사를 기초로 한 사목 수위권이라는 본래의 뜻을 퇴색시키며 교회의 속화와 함께 종교 개혁을 통해 교회가 분열되는 비극의 먼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Ⅲ . 공의회 문헌에 나타난 수위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교황의 수위권은 신학적으로 분명하고 보편적으로 수락된 것은 아니었다. 동방 교회는 로마의 대표성을 늘 제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였고, 때로는 마찰과 갈등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과적으로는 수위권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동서 교회로 분열되고 말았다. 그러나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에서는 레오 1세 교황(440~461) 때부터 교황의 수위권은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피렌체 공의회〕 그리스 정교회와의 친교와 일치를 선언한 칙서 <레텐투르 첼리>(Laetentur caeli, 1439)는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우리는 또한 거룩한 사도좌와 로마 주교는 온 세상에 대해 수위권을 지니고 있으며 로마 주교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임을 선언합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는 사도들의 으뜸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 온 교회의 머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며 스승입니다. 또한 그는 온 교회를 양육하고 이끌고 다스릴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대 공의회와 교회법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Decrees, vol. 1,p. 528). 피렌체 공의회의 이 선언은 그리스 정교회에는 잠정적 수락의 역사적 문서에 불과하였지 만, 로마 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교황에 대한 상대적 지위를 주창하였던 공의회 우위설(conciliarismus)에 대해 결정적으로 제동을 건 동서 교회 합의의 최초 문건이었기 때문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 <영원한 목자>(Pastor Aeternus)의 '제3장 로마 주교의 수위권, 그 권한과 특성' 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는 로마 주교의 권한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로마 주교는 온 교회에 대한 지휘 · 감독뿐만 아니라 최상의 관할권을 지니며 이것은 신앙과 윤리 도덕의 영역은 물론 행정과 규율 등 모든 면에 해당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다만 더 큰 몫의 권한뿐만 아니라 참으로 완전한 최상권 즉 모든 교회와 사목자, 신자들에 대한 고유한 직접적 권한을 지니고 있다."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이 헌장의 내용은, 비록 법 규정으로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수위권을 설정하신 의도와 목적은 사제직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되기 위한 보장 장치이다. 사실 이를 통해 온 교회는 신앙과 친교의 일치를 이루게 된다. 온 교회에 대한 교황의 사목권은 바로 주교 직분의 수행으로, 지역 주교 곧 교구장들의 사목 수행과 결코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교황은 또한, 해당 국가의 통치자와는 상관없이 모든 주교들과 직접 친교와 교류를 나눌 수 있다. 교황은 또한 교회 내의 모든 문제를 취급하고 판단할 주재자이며, 그 이상의 권한자는 교회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Decrees, vol. 2, pp.813~814). 공의회 문헌에서 교황의 권한은 '주교 직분의' (episcopalis)· '고유의' (ordinaria) . '직접적' (immediataa)인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공의회의 의도는 혼테임(J. von Hontheim), 아이벨(J.Eybel), 탐부리니(P.Tamburini) 등과 같은 학자들의 주장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교구 밖에서 교황의 권위란 대교구 내에서의 관구장 곧 대주교의 권한과 흡사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것은 사목 관할권이 아닌 일종의 관찰권으로 지역 주교에 대한 의무 수행 여부를 확인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된 것이다. 공의회는 바로 이러한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때문에 교황은 온 교회에 대해 주교직분을 지닌다. 그 의미는 각 지역 주교가 해당 교구에 대해 전권을 지니듯 교황은 전세계 교회에 대해 주교로 서의 전권을 지닌다는 뜻이며, '고유적' 이란 바로 이 권한이 교황의 주교 직분에 근거하고 있음을 뜻하며, 직접적' 이라는 것은 해당 주교의 매개 없이도 교황은 직접모든 교구와 신자들의 사목자로서의 권한을 지닌다는 뜻이다(Mansi 52 ; 1103D~1106A).
한편 공의회 신앙 분과의 대변인은, 교황권은 그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은 완전한 자유와 자율이 보장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법의 제약은 받는다. 즉 주교직은 교회의 기본적 요소 중 하나이므로, 교황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결코 주교들의 사목 고유권을 빼앗을 수 없으며 주교들은 결코 교황의 대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Mansi 52 : 715B~C ; Leo ХⅢ, Satis cognitum, ActSSed 28, 1895~1896, p. 732). 사실 베드로 사도가 받은 수위권이란 교회를 위한 건설 작업이지 파괴 업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자연법과 신정법의 한계 내에서만 유효하다(Mansi 52 ; 1105C~D ; 1109A). 그러나 문제는 교황의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제재나 호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교황이 공적으로 잘못했다면, 예를 들어 이단에 빠진 경우에 많은 신학자들은 주교들이 합의하여 그 사람은 더 이상 교황이 아님을 선언할 수 있고 후계자를 선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황의 권력 남용에 대해서 교회는 기도하고 하느님께 간구 하도록 윤리적 처방만 있을 뿐 그 어떤 제재 방법이 없고, 바로 이 점이 교황권 남용에 대해 교회가 지닌 제도적 한계이다. 물론 교황이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해서는 안되지만 절대적 보편권에 대해 그 어떤 제도적 제한도 없이 무조건 보장한다는 것은, 교회 일치를 위해 여전히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하느님 앞에 모두가 죄인이며 평등해야 하는 성서의 가르침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이것 이 바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시대적 한계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칙 <교회 헌장>(Lumen Gentium) 제3장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직의 본질과 권한을 확언하면서 동시에 교황이 주교단의 머리이며 대표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주교단은 오직 교황과 함께 일치해 있을 때에만 그 존재가 확인된다고 역설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장은 연속과 보완의 관계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이 교황 중심으로 교황에 초점을 맞추어 교회와 주교 직분을 논한 반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 직분이라는 연대성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였다. 그러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장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며, 그것을 전제로 한 다음 주교들이 보다 적극적 · 능동적으로 일치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교단 또는 연대성의 본질은 늘 교황과 함께하는 조건에서만 그 존재
와 의미가 확인되는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수위권을 교황 개인의 관점에서 강조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황의 수위권이, 주교들과 필연적으로 관계된 점을 강조하면서 그 연대성과 공의회를 통해 장엄하게 선포되는 더욱 진전된 방법이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공의회의 소집 · 주관 · 폐막권 등은 교황에게 유보된 고유 권한이다. 교황 지상주의(ultramontanismus)의 주창자들은 교황의 위상을 교계 제도의 정점으로 보면서 주교직의 성사성으로 이해하였는데, 즉 주교직의 전체성을 가시화한 것이 바로 교황직이라는 것이다. 그 래서 교황을 '제도화된 인격' (persona institutionalizata)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교황은 주교직의 압축으로 보편성을 지니며 각 주교들은 개체에 해당된다는 유비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주교들을 전제하지 않은, 주교들과 무관한 교황은 무의미할 뿐더러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3장 교계 제도와 주교직' 에 앞서 제2장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먼저 고백하였고, 이어 교계 제도에서 주교 직분의 연대성과 '단체성' (collegialitas)을 강조하였다. <교회 헌장>제3장의 공식 주석(Nota explicativa praevia)에서는 교황권과 주교단 사이의 관계를 순수한 법 논리로만 해석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는 일반법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신앙적 해석을 전제로 한 것으로, 갈등과 괴리는 전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주교단은 그 자체로 항상 교황의 존재와 교황과의 일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이른바 피라미드식의 교회 이론이 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교황의 수위권을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 그리고 그 봉사 직분의 모범자이며 길잡이란 관점에서 이해하고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긴 그리스도의 모범(요한 13장)을 원형으로 삼아 이해하고 해석하여야 할 때이다. 봉사만이 참된 권위이기 때문이다.
〔현 교회법의 규정〕 교회법에서 수위권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교황' 이라고 표현된 경우에는 교황이 개인적으로 수위권을 행사함을 뜻하며, '사도좌' 나 '성좌' 라고 표현된 경우에는 교황과 함께 그의 수위권 행사를 돕는 교황청의 직책자들을 의미한다.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교회법 333조에는 교황의 직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교황은 자기 임무에 의하여 보편 교회에 대한 권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모든 개별 교회들과 그 연합들에 대하여도 직권의 수위권을 가진다"(333조 1항)고 하였다. 또 이를 통해 "개별 교회들에 대하여 주교들이 가진 고유하고 직접적인 직권이 강화되고 보장된다"고 언급하 였는데, 이는 <영원한 목자> 3항과 <교회 헌장> 27항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교황의 판결이나 교령에 불복하는 상소나 소원은 용인되지 아니한다"(333조 3항)고 한것은 교황의 사법적 판결과 입법적 또는 행정적 교령에 반대하여 상소할 곳이 없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교황은 교회의 최고 재판관(1442조)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교황 수위권
; → 교황 ; 니콜라오 1세 ; 바티칸 공의회)
※ 참고문헌 F.A. Sullivan, 《NCE》 11, pp. 779-780/Noman P. Thanner, Decrees of the Ecumenical Councils, vol. 1~2, Georgetown Sheed & Ward, 1990/ Romano Pontefice ed., Primato di S. Pietro, 《EC》 , Vatican, 1950/F. Cayré, Patrologie et Histoire de la Théologie, Desclée & Cie, 1953, p. 67ff/ H. Kiing, Infallibile, Anteo-Bologna, 1970/ J. Quasten, Patrolgia I , Marietti, 1967. 〔咸世雄〕
수위권
首位權
〔라〕Primatus Romani Pontificis · 〔영〕Primacy of the P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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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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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권은 교황이 지닌 고유한 최고의 권한으로, 사도 베드로의 수위성과 직결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