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북구 수유2동 233소재. 1967년 4월 7일 미아동(彌阿洞, 현 길음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수유2 · 4 · 6동, 쌍문1동 전 지역과 수유3동, 쌍문3동 일부 지역. 〔교 세〕 1967년 718명, 1972년 2,800명, 1977년 5,415명, 1982년 6,638명, 1987년 9,154명, 1992년 7,157명, 1999년 8,829명. 〔역대 신부〕 초대 김몽은(金蒙恩) 요한(1967. 4~1970. 11), 2대 김희선(金喜善) 요셉(1970. 11~1973.5), 3대 구전회(具田會) 바르톨로메오(1973. 5~1978. 8), 4대 김옥균(金玉均) 바오로(1978. 8~1982. 8), 5대 이계중(李啓重) 요한(1982. 8~1986.2), 6대 김덕제(金德濟) 치릴로(1986. 2~1991. 10), 7대 최서식(崔瑞植) 라우렌시오(1991. 10~1996. 9), 8대 김구희(金球熙) 요한(1996. 9~1998. 9), 9대 황흥복(黃興福) 요셉(1998. 9~현재).
1963년에 설립된 교리 신학원(수유동 234번지 소재)에서는 1965년에 신학원 내에 임시 성당을 마련한 후 주일 미사를 거행하였는데,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미아동 본당 관할 신자들은 성당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점차 이 미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본당 설립을 원하던 이들의 열망과 신자수의 증가로 마침내 1967년 4월 7일 수유동 본당이 분리 · 설립되어 김몽은 신부가 초
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 해 7월 교리 신학원의 도움을 받아 현 성당 부지 637평을 마련한 본당 신자들은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1969년 3월 단층 성당(99평)을 완공하였다. 한편 교리 신학원은 1971년에 현재 위치하고 있는 혜화동 90-12번지로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어 2대 주임 김희선 신부 때인 1972년에는 이웃한 인보 성체 수녀원과의 구역 경계를 확정 · 구분하면서 주택지에 있던 사제관을 성당 구내로 옮기고, 사제관과 연결하여 주일학교 교실을 마련하였다. 성당의 외형적인 모습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3대 주임 구전회 신부는 사목위원회를 정식 발족시켰으며, 신자수가 증가하자 1975년 1월에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창동(倉洞) 본당을 분리하고 1,0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사제관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110평)로 신축하였으며, 1979년 1월에는 인보 성체 수녀회를 초청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옥균 신부는 미비한 성당 시설의 전면적인 개축을 계획하고, 1980년 4월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1981년 8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성당(569평)을 증축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자 1983년 8월 16일 수유1동 본당과 번동(樊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각각 1,632명의 교적과 1,037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1986년 1월에는 성당이 화재를 입었으나, 전 신자의 일치된 복구 작업을 통해 다시 재건되었다. 6대 주임 김덕제 신부는 1990년 4월 본당 부설양로원 '사랑의 집' 을 개설하여 지역 내의 불우한 노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으나, 2년 만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여 폐쇄하고 말았다. 이후 1998년 9월 수유동 본당이 제6 지구 지구장좌 본당이 되면서 9대 주임으로 부임한 황흥복 신부는 교구의 사목 방침에 발맞추어 활발한 소공동체 활동을 펼치는 한편, 신앙의 내실화와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길음동 본당)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金善美〕
수유동 본당
水踰洞本堂
글자 크기
8권

1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