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고흥군 고흥면 남계리 415 소재. 1971년 1월 1일 벌교 본당에서 분가하여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 관할 구역은 고흥군 고흥읍 과역면 · 도화면 · 두원면 · 풍양면 · 점암면 · 산내면 · 포두면 · 봉래면 일원이고, 소속 공소로는 과역(과역면 과역리), 도화(도화면 당오리) 공소 등 2개소. 〔교 세〕 1971년 63명, 1975년 234명, 1980년 501명, 1988년 1,022명, 1993년 1,073명. 〔역대 신부〕 초대 스피스(R. Spies, 파) 레이문도(1971. 1~1971. 7), 2대 아리아가(F. Arriaga, 민) 프란치스코(1971. 8~1973. 9), 3대 콘트레라스(J. Contreras, 고) 요셉(1973. 9~1974. 9), 4대 벨라스코(A. Velasco, 조) 아르투르(1974. 9~1975. 5), 5대 카실라스(G. Casillas, 주) 가브리엘(1975. 5~1979. 4), 6대 리베라(J. Rivera, 이) 요한(1979. 4~1982. 1), 7대 가르자(I. Garza, 우) 이냐시오(1982. 1~1983. 6), 8대 마르퀘즈(J. Marquez, 마) 요한(1983. 6~1987. 4), 9대 토레스(G. Torres, 도) 가브리엘(1987. 4~1988. 12), 10대 알바레즈(P.J. Alvarez, 안) 바오로(1988. 12~1991. 2), 11대 진용민(陳庸珉) 핀바르(1991. 2~1993. 1), 12대 최민석(崔敏錫) 첼레스티노(1993. 1~현재).
〔설립과 성장〕 고흥 본당은 고흥 공소의 발전으로 이루어졌다. 이 공소는 순천(현 저전동) 본당 관할 아래 있던 1955년 고흥 지역에 거주하는 정계성(요셉), 김 라우렌시오, 차 이시도로 등 6명의 신자들이 본당 신부와 협의, 이듬해 고흥면 서문리 107번지에서 월 1회 주일 미사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설립을 보았다. 이후 1958년 공소의 사목 관할권이 벌교 본당으로 이관되면서 본당의 모리시(M. Morrissey, 모 미카엘) 신부는 공소를 도와 고흥면 옥하리의 교우집을 임차하도록 하고, 월 12회 미사를 드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공소에서는 1960년 모리시 신부의 후임이 된 올리어리(A. O'Leary, 오 안드레아) 신부의 도움으로 현 성당 소재지의 대지 약 600평을 비롯하여 1961년 6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모두 약 690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1965년 9월 강당과 관사를 지은 뒤 1971년 1월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본당 신자들은 이후 공소 강당을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제2대 아리아가 신부 재임시인 1971년 9월 사제관을, 제5대 카실라스 신부 재임시인 1976년 교육관을 각각 신축하였으며, 제6대 주임 리베라 신부 재임시인 1981년 10월 성당 증축공사를 함과 동시에 수녀원 · 회의실을 건립함으로써 현재의 성당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녹동 본당을 분가시킴과 동시에 현재의 관할 구역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본당의 면모를 갖추어 오는 동안, 신자들은 사목 협의회와 함께 청년회 · 레지오 마리애 등 평신도 단체를 구성하고, 1983년 10월에는 한국 교회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순교 복자 유해 순회 기도회를 가졌으며, 1980년 6월부터는 선교의 일환으로 통신 성서 교실을 운영하고 성서 보급에 주력하였다. 현재 본당에는 카리타스 수녀회가 사목을 돕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지역 사회의 여건으로 전교 활동이 쉽지 않고 젊은이들 가운데 이주 신자가 많다는 점이다. (→ 광주대교구) 〔편찬실〕
고흥 본당
高興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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