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동 본당

壽進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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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1동 664 소재. 1950년 4월 22일 서울 백동(柏洞, 현 혜화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둔전리(屯田里)본당' 의 후신이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수진1 · 2동, 신흥1동 전 지역과 태평1~3동 일부 지역. 〔교세〕 1963년 1,205명, 1967년 1,311명, 1971년 2,596명, 1976년 3,216명, 1980년 5,945명, 1985년 4,203, 1990년 5,925명, 1995년 6,447명, 1997년 6,831명. 〔역대 신부〕 초대 박지환(朴址煥) 요한(1950. 4~1951), 2대 유진선(柳眞善) 레오(1962. 9~1968. 10), 3대이명기(李命基) 베르나르도(1968. 10~1981. 6), 4대 황익성(黃益性) 아우구스티노(1981. 6~1982. 3), 5대 정지웅(鄭址雄) 요셉(1982. 3~1983. 2), 6대 정주성(鄭主成) 요셉(1983. 2~1987. 2), 7대 서종선(徐鍾善) 토마스(1987. 2~1990. 11), 8대 윤용배(尹龍培) 라자로(1990. 11~1994. 2) ,9대 윤민구(尹敏求) 도미니코(1994. 2~1997. 2), 10대 이찬종(李贊鍾) 요셉(1997. 2~현재).
〔둔전리 본당 시대〕 광주군(현 성남시) 일대에 최초로 설립된 수진동 본당은 광주군 대왕면의 둔전리 본당 후 신이다. 둔전리 본당은 둔전말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는데, 이 공소는 하우현(下牛峴) 본당 관할로 1902 년에 신자 23명으로 시작하여 1921년에는 64명에 이르렀다. 그 후 1927년 4월 29일 백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곳 관할 공소로 편입되었다가 1950년 4월 22일 둔전리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지환 신부는 공소 강당으로 사용해 오던 건물을 성당으로 개조하고 사제관을 신축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다지기 위 해 노력하였으나, 완공을 앞두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군종 신부로 입대하였다. 이에 둔전리 본당은 다시 혜화동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는 다시 신당동(新堂洞) 본당 관할 공소로 편입되었다가 1959년에 천호동(千戶洞)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공소가 된 후 둔전말 신자들은 합심하여 구호 물 자와 사재를 털어 전화(戰禍)로 주춧돌만 남은 성당을 다시 지었고, 마침내 1962년 9월 유진선 신부가 2대 주 임으로 부임하면서 둔전리 본당으로 재승격되었다. 당시 신자수는 약 1,200명이었는데, 유진선 신부는 재임 기 간 중 사목뿐만 아니라 빈민 구호 사업과 농촌 개발 사업에도 헌신하였다. 한편 1963년 10월 수원교구가 설정되 면서 둔전리 본당은 서울대교구에서 수원교구로 편입되었다. 3대 주임 이명기 신부 때인 1971년 3월에는 성당 이 위치한 대왕면 일대가 군사 기지로 확정되어 본당이폐쇄될 처지에 이르자 성남 지역(당시 광주군 중부면)으로
본당을 이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우선 이명기 신부가사제관을 얻어 그 지역으로 옮기면서 본당 이름도 '성남 본당' 으로 바꾸었다.
〔수진동 본당 시대〕 둔전리 성당 일대가 군사 기지로 확정된 후 이전해야 할 본당 터를 찾던 중 당시 천막을 치고 탁아소를 운영하던 성체회(현 인보 성체 수도회)에서 탁아소 옆에 성당을 지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왔 다. 이에 이명기 신부는 우선 탁아소 근처에 단독 주택을 마련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평일 미사를 봉헌하고 주일 미사는 탁아소를 빌려 봉헌하였다. 그리고 성당 건립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인 1971년 8월 15일 성당 1층 (지하실)을 완공한 뒤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본래 성당은 3층으로 지을 계획이었으나 공사비 부족으로 1층만 짓고 중단되었다가 1974년 가을에 어렵게 2층을 완공하였지만, 또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1977년에 한 신 자의 도움과 이에 분발한 본당 신자들의 모금으로 3층과 부대 시설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지 7년 만인 1978년 5월 1일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73년에는 중부면 일대가 성남시로 승격되면서 신자가 급증하였다. 이에 따라 1976년 10월 5일에 단대동 (丹垈洞) 본당이 설립되어 단대동 · 상대원동 · 은행동과 중동 및 신흥동 일부 지역의 신자 1,3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고, 이때 본당 이름도 '수진동 본당' 이라고 바꾸었다. 또 4대 주임 황익성 신부는 1982년 2월 8일에
성남동(城南洞) 본당을 분할하면서 성남동(현 모란) 일대의 2,014명의 신자를 이관하였고, 1984년 9월 16일에 는 신흥동(新興洞) 본당을 분할하여 태평2동 일대와 복정동 일부, 신흥2동 일대의 신자 1,230명의 교적을 이 관하였다. 그리고 7대 주임 서종선 신부 때에는 성당 신축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성당 증축 기금 신입이 시 작되었으며, 1989년 7월 7일에는 증축을 위해서 대지 100평을 인보 성체 수도회로부터 매입하였다. 이를 바 탕으로 9대 주임 윤민구 신부는 1995년 5월 5일 성당 증축 기공식을 갖고 이듬해에 소성당 · 사제관 · 사무실 건물 3층을 완공하였다. 한편 지속적인 교세 확장으로 또다시 본당 분할 작업에 착수하여 1999년 1월 26일 태 평동(太平洞) 본당을 분할하였다. 이때에는 태평1~3동일부와 복정동, 그리고 옛 둔전리 지역이었던 신촌동 · 오야동 · 심곡동의 신자 2,285명의 교적이 이관되었다. 성남 지역 최초의 본당이자 대희년인 2000년에 본당 창설 50주년을 맞은 수진동 본당에서는 5월에 본당사 《수진동 성당 오십년사》를 편찬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 둔전리 본당 ; → 수원교구 ; 혜화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성당 오십년사》, 천주교 수진동 성당, 2000. 〔吳美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