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즘

〔라〕Sufismus · 〔영〕Suf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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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은 무슬림들이 각자 알라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운동이다(수피즘을 묘사한 16세기 터키 장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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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은 무슬림들이 각자 알라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운동이다(수피즘을 묘사한 16세기 터키 장식화).

이 슬람의 신비주의. 무함마드(Muhammad, 571~632)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 체제가 점차 교리와 의례의 준수라 는 형식에 치우치고 무슬림들이 제국을 세운 후 사치와 허영에 빠지자, 이에 회의를 느낀 금욕주의자들이 7~8
세기에 무슬림들은 각자 알라(Allah)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면서 일으킨 운동이다. 수피즘이라는 용 어는 아랍어의 '양털' 을 뜻하는 수프 (ṣūf)에서 유래하였다. 초기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은 양털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양털 옷 입은 이' 라는뜻의 '수피'(ṣūfī)라 불렸는데, 여기에서 수피즘이라는 용어가 유래된 것이다.
〔타종교의 영향과 차이〕 수피즘은 점차 발전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수도자 · 불교의 승려 · 신플라톤 철학자들로부터 새로운 사상적 사조와 관행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이들 금욕주의자들의 양털 옷 · 특정한 건물에서의
은둔 생활 · 의례 행사 때의 음악 등은 그리스도교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독신 생활은 자신들의 이상으로 여기 지 않았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 또 초기 수피들의 동냥 생활과 염주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수도자들이 인도의 불교 신자들로부터 받아들여 이들에게 전한 것이며, 후에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부 수피 종단에 수용된 범신론적인 요소와 성전(聖典) 즉 《코란》과 《하디스》의 밀교적(密敎的) 해석 에는 그노시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엿보인다.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 서적이 아랍어로 번역된 후에 비로소 그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은 8세기 중엽 바그다드에서 시작되었다.
수피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을 절대신 속에 소멸시킴으로써 완성되는 완전한 상태 즉 '파나' (fana)인데, 이 것은 힌두교와 불교의 '열반' (涅槃)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힌두교와 불교에는 절대 유일신의 개념이 없고 소멸 과 윤회(輪廻)의 가르침을 전제로 하는 반면에, 이슬람에서는 절대 유일신 알라가 존재 즉 우주 만물의 중심에 있고 영혼의 전생(前生)에 관한 교리는 없다.
〔특 성〕 개인적 신비주의 : 수피즘의 특징은 공동체적이 아니라 개인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피 개개인
의 목적은 자기 완성과 절대신과의 합일이고, 따라서 그 방법도 개개인이 모두 다르다. 이 점은 운명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이슬람 신학자들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 수피들은 이슬람 신심 행위의 준수와 합리성의 추구를 통해 서 절대신과의 합일을 이루기보다는, 사랑을 비롯한 정서적 체험과 정신적 빛의 인도를 받아 이루려고 한다. 《코란》에 의하면, 그 첫걸음은 '절대신에 대한 완전한 의탁'이고, 그 다음으로 육체적 · 정신적 고행이 필수적으로 따른다. 마음의 평온을 중시하는 금욕 생활이 신비주의자에게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절대신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맡기고 개인적 욕구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피즘의 밑바탕에는 절대신의 뜻에 무조건 복종이라는 이슬람의 기본 교리가 깔려 있다.
조직과 체제 : 초기의 수피들은 집단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고행과 수도를 하였다. 그러다가 12세기에 들어와서 정신적 지도자인 '종사' (宗師, shaykh)의 지도아래 종단이나 동호단(同好團)을 조직하기 시작하였고, 이때 신입자와 기존의 연수생들에 대한 규율도 갖추어졌다. 수피 종단은 '길' 이라는 뜻의 '타리카'(tariqah)라 불 렸다. 절대신을 향하여 올라가는 여정 중에 수피들은 여러 '단계' 의 '연속적인 상태'(ahwal)를 거치는데, 후회와 절제의 단계에서 시작하여 절대신에게 몸과 마음을 위탁함과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단계까지 거치게 된다. 그 후 그들은 연속적인 상태로 계속 여정을 거치는데 그 최고의 상태가 자신의 완전 소멸을 통하여 영원히 절대신 속 에 머무르는 것 즉 영생(永生)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단계' 는 점차 높은 단계로 옮길 수 있으나 '연속적인 상태' 는 절대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다. 한편, 수도 생활 도중에 수피는 정신적 지도자인 종사의 엄격한 통제와 지도 편달을 받는다. 그리고 같은 종단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중심 건물(takiyya, zawiyah, ribat)에 모여서 일반 사원에서 행할 수 없는 음악과 춤이 섞인 의례를 행한다. 동호단은 기금과 자산을 가진 자선 재단의 역할도 하며, 그 구성원에는 종사와 제자 외에도 일반 평신도들이 있는데 이들은 의례를 비롯한 여러 종교 활동에 참여한다.
〔신심 행위와 의례〕 의례, 창시자에 대한 존경과 충성의 표현, 그리고 교의에 있어서 각 종단간에는 차이점이 많다. 가장 특징적인 의례는 '디크르'(ḍhikr, 念神)이다. 이는 절대신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신이나 신의 별칭(진리 · 빛 · 천지 전능자 등)에 덧붙인 문구를 참여자 모두가 큰소리로 수없이 외치면서 그에 맞 추어 숨쉬기와 몸 동작을 행하는 것이다. 사랑의 노래나 곡과 같은 찬미가도 함께 부르고, 북과 피리류의 악기를 동원하여 그 연주에 맞추어 춤도 춘다. 모든 구성원들은 금요일 오후 종단 건물에 와서 이 의례 행사에 참석하여 야 한다.
한편 수피 종단에서는 신심 행위로서 성인 공경을 하였는데, 이는 정통파 이슬람에서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슬람의 기본 교의는 절대 유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코란》에서는 유일신에게 다른 잡신을 결속
시키지만 않으면 다른 모든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알라와 신자들 사이의 거리감이 너무나 크고 멀기 때문에, 이 거리감을 종교 지도자들이 메워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 갔다. 또 이슬람 교리에서는 성 직자가 허용되지 않지만, 신자들을 인도하고 사원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는 성직자가 사실상 필요하였 고, 따라서 점차 이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직자가 되는 공식적인 절차와 규정은 없으므로 누구나 스스로 자처하면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이들 이슬람 성직자들은 공식 의례(예배 · 단식 · 헌금 · 순례)만 규정대로행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병 · 결혼 · 得男 등)을 해결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므로 결국 수피들이 이적을 행할 능력과 종교적 고결성을 내세워 자신들의 지도적 위 상을 과시하고 나서게 되었다.
〔종 단〕 수피 모임 가운데 최초로 구성된 것은 12세기 중엽에 페르시아인 아브드 알 카디르 알 질라니(Abdal Qadir al-Jilani, +1166)가 창시한 카디리야(Qadiriyah) 종단이었다. 그는 바그다드에 살았는데 그의 주변으로 많은 제자들과 야심가들이 모여들었다. 이 종단은 관용과 자선을 널리 베풀어 오늘날 이슬람 세계 전역에 지부를 두 고 있다. 그 다음으로 리파이야(Rifaiyah) 종단이 가장 오래되었는데, 이 종단의 이름은 창시자 아흐마드 이븐 알 리 알 리파이(Ahmad ibn Ali al-Rifai, +1182)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종단의 추종자들은 최면 상태에서 뜨거운 불덩어리를 삼키거나 신체의 한 부분에 칼날을 대는 등의 묘기를 연출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데르비시들' (dervishes, 가난한 이들 즉 종단의 추종자들)로 알려졌다. 또 터키인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은 마울라위 (Mawlawi-yah)라는 종단은 춤추는 '데르비시들' 로 알려져 있다. 이 종단은 시인이며 신비주의자인 잘랄 앗 딘 알 루미(Jalal ad-Din ar-Rumi, 1212~1273)에 의해 터키의 코니아에서 창시되었는데, 터키 제국의 전성기에는 이 종단의 수장이 새로 즉위하는 술탄-칼리프(Sultan-Caliph)의 허리에 검을 매어 주는 특권을 누리기도 하였다.
북아프리카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수피 종단은 아부하산 알 샤딜리(Abu Hasan al-Shadhili, +1258)가 창설한 샤딜리야(Shadhiliyah)로)로, 이 종단 추종자들은 일상적 생업에 충실히 종사하면서 종교에 헌신하여 생업과 종교의 조화를 최상의 가치로 여겼다. 또 1837년에 창단된 리비아의 대표적 종단 사누시야(Sanusiyah)는 정치에도 관 심이 높아 이탈리아의 침입에 저항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건국한 리비아 왕국의 국왕도 이 종단에 속하 였었다. 이외에 유명한 종단으로는 이집트의 와하비야(Wahhabiyah), 중앙 아시아의 낙슈반디야(Naqshbandiyah) 및 터키의 백타시야(Bektashiyah) 등이 있다.
〔영향과 의의〕 이슬람 신학자 아부 하미드 알 가잘리(Abu Hamid al-Ghazzali, +1111)는 자신의 저서 《종교학의부활》에서 이슬람의 교리에 어울리면서도 수피들에게도 맞는 신학을 제시하였다. 또한 수피들은 절대신에 대한 부드럽고 우아한 시를 페르시아어 · 아랍어 · 터키어로 지어서 문학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수피들은 서아프리카 · 소아시아 · 인도 · 동남 아시아로 진출하여 이슬람을 포교함으로써 상당한 성공을 거두 었다. 이것을 이슬람 역사에서는 제2의 팽창기로 보고있는데,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시작된 제1의 팽창(632~732)은 주로 무력에 의한 정복이었으나 제2의 팽창은 대체로 평화적인 수피들의 선교 사업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슬람 내부의 종파적 분열과 무력감에 새로운 활력소를 넣 어 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슬람의 정통 수니파를 대표하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 (Abbasides, 750~1258)의 지배적 지위가 시아파의 '파티마 왕조'(Fatimides, 909~1171)와 '부와이흐 왕조' (Buwayhides, 945~1055)의 정권 장악으로 위협을 받았을 때, 종파와는 무관한 수피즘이절대 다수 신자들의 관심을 끌어 결국 수니파의 위기를
구해 주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근세에 들어서서 서양의 물질 만능주의와 이성 우위의 합리주의가 세계를 풍미하자, 수피들의 신심 행위도 자 연 약화되어 갔다. 터키에서는 수피 종단이 금지되었고,시리아와 이집트의 수피 종단은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무슬림들은 앞으로도 수피 사상에서 이슬람의 불꽃이 다시 피어 오를 것으로 믿고 있다. (→ 이슬람교)

※ 참고문헌  J.S. Trimingham, The Sufi Orders in Islam, Clarendon Press, 1971/ A.J. Arberry, Sufism : An Accoumt of the Mystics of Islam, Allen & Unwin, 1950/ 이드리에스 샤지움, 《마음 그릇一이슬람 수피수도승들의 삶》, 형성사, 1992/ A.B. 알 칼라비디지움,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교리》, 조명문화사, 1995. 〔金定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