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殉教 (라)martyium [영]marty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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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란 자신이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바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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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란 자신이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바치는 행위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 순교는 최상의 은총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최고 표현 이며, 가장 그리스도를 가까이 닮고 그분과 일치하는 방법이며 최고의 성성에 이르는 길이다.
: I . 윤리 신학에서의 순교
[용어의 의미] 순교의 순 (殉)자는 '죽을 사(死)' 와 '열흘 순(旬)' 이 합쳐진 것으로, 죽은 사람의 뒤를 이어열흘 안에 따라 죽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문화 전통과 관련 지어 보면 주인에게 시종(侍從)을 다하기 위해 순사(殉死)하는 풍습, 지아비의 뒤를 따라 부절(婦節)을 지키기 위한 순절(殉節), 주군에게 충절을 다하기 위한 순군(殉君) 등이 있었다. 나아가 직책에 충실한 나머지 죽음에 이르는 것을 순직(殉職)이라 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순국(殉國)이라고 한다. 결국 자신들이 의롭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스스로 바치는 행위이다. 그러나 권력자가 죽으면 그 신하나 부인 또는 하인들을 산 채로 함께 장례를 치르는 순장(殉葬)
풍습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자발적이 아니라 강요된 경우였음에도 순 (殉)자가 사용되었다.
라틴어로 순교는 그리스어 '마르투리온' (wapriptov)에서 유래된 '마르티움' (martyium)인데, 본래는 '증언' 또는 '증거' 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피 흘림으로 순교자가 됨' 을 뜻한다. 즉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 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를 위해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치는 이 행위는, 그리스도의 진리성과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진실성을 죽음으로써 증명하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영웅적인 행위이며 그리스도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된단계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는 순교라는 말보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는 의미의 "위주 치명"(爲主致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치명'이라고 줄여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현재는 두 용어 모두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순교' 나 '순교자' 보다는 '위주 치명' 이나 '치명자' 라는 용어가 본래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해 준다고 본다.
[조 건] 일반적으로 순교자의 조건은 세 가지로 규정된다. 첫째, 육체적 생명이 희생되어 참으로 죽음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간절히 죽기를 바라거나, 죽음에 상응하는 다른 중대한 가치를 희생하였다거나 엄청난 고통을 겪었거나 또는 죽을 뻔하였거나,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직접이 아닌 간접 또는 원인(遠因)으로 작용한 경우에는 엄밀히 말해 순교가 아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진리에 대한 증오 때문에 죽음이 부과된 경우이어야 한다. 질병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를 위해 선택한 생활의 방법에서 나오는 예정된 위험의 결과, 또는 과학적 탐구나 국가나 어떤 사상을 위한 투신 때문에, 다른 어떤 지고한 동기로 죽는 경우도 순교는 아니다. 더구나 자살이나 실수로 죽는 경우는 더욱 해당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지키려고 기꺼이 죽은 경우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이나 정신 이상 등으로 이성을 사용할 수 없었거나 선택의 여지없이 살해된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조건들이 신학적 결론이지만, 이 조건들에 대해서 경직되고 적확한 해석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심사숙고한 선택과 함께 의도적인 행위가 그 죽음의 순간에 꼭 있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즉 현행적 지향만이 아닌 잠재적 지향으로 인한 죽음의 경우도 순교라고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예타노(1480~1547)는 취침 중 순교의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부모의 신앙으로도 구원될 수 있고, 또 아기 예수를 대신해서 살해된 아기들의 피가 세례 중에 흘러내리는 물의 역할을 한다는 신학적 해석 때문에 무죄한 어린이들을 순교자 명단에 올리고 그들의 순교 축일(12월 28일)을 교회가 거행하는 이유는 정당하다고 하겠다. 두 번째의 순교 조건에 대해서도 좀더 확대된 해석을 한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오 또는 신앙 진
리에 대한 증오 때문에 살해된 조건을 말하지만, 세례자 요한이나 마리아 고레티(1890~1902)의 경우는 그리스도교의 덕행을 방어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캔터베리의 대주교 토마스 베켓(1118~1170) 등은 교회의 질서와 규율을 지키려다 희생된 경우이다. 결국 순교자의 조건에 대한 해석은, 살해된 동기가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진리에 있다면 은총과 본성에 대한 통찰이 신학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전통 교리의 신앙 고백 형식에 더 엄격하여 전례적 거행과 시복 시성의 절차를 강조할 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 성령의 역사하심에 더 큰 비중을 두어 극단적인 죽음에 이른 영웅적인 증거자 모두를 순교자로 인정할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살해된 비가톨릭 선교사들의 경우나, 목숨을 걸고 비가톨릭적인 가치를 증거하기 위해 계 획된 상황 안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불충실자, 이단자, 열교자에 대한 교회론적인 평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성서적 의미] 구약성서에는 '마르투리온' 이란 단어가 없다. 물론 구약성서의 터전인 유대 공동체에서 순교의 체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카베오 시대의 순교자인 율법학자 엘르아잘은 거룩한 율법을 포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죽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태형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또 일곱 형제를 둔 어머니는 율법이 금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일곱 아들들과 함께 살해되었다(2마카 6-7장). 신약성서에서는 스테파노의 순교를 전하는 바오로에 의해 '마르투리온' 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즉 사도 행전 22장 20절에서 스테파노에게"당신의 증거자" (toi wopropoc, 000)라고 하였다. 여기서 마르투스' (uoopros)는 '증거자' · '참관인' 또는 '증인'을 의미하는데, 법률적인 의미가 강해 현재 우리가 순교라고 할 때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르투스' 의 사용은 요한 묵시록 2장 13절의 "나의 충실한 증인(ouipoosMoo o motot WOU) 안티파스"라는 구절에도 나타나지만,나락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살해된 "두 증인" (tois8uoiv wopwovivi이라는 언급(묵시 11, 3)과 여자 바빌론을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TOO iiuctoros Tow wopropow 'moou) 취해 있는" 것으로 언급(묵시 17,6)하는 구절에서 순교의 성격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반면 요한 묵시록에는 예수를 순교자 중 하나로 여기는 부분도 있는데, "충실한 증거자" (0 woprous, o mocoros)로묘사되어 있다(묵시 1, 5 ; 3, 14). 복음서에서는 명확하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는 자발적 행위와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파견된 분임을 강조한다. "아무도 내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하고 내가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다시 얻을 권한도 있습니다"요한 10, 18).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va. wapropioo대 iinfeiciox) 위해, 바로 그 일을 위해 났으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8, 37). "인자도 봉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고 또한 많은 사람
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태 20, 28).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마태 16, 21). 이렇게 초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최초의 순교자로 언급하고, 스테파노를 최초의 그리스도인 순교자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성서에서도 단순한 성실성에 입각한 증거가 아니고 피로써 증거한 순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의미의 변천] 교황 글레멘스 1세(90092~101)는 마르투레인' (uoporopeiv, 증거하다)이라는 동사를 고통 중에있는 베드로와 바오로의 인내력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였는데, 진리의 표지보다는 그들의 신앙의 결과로서 고통에 초월함을 강조하려는 스토아 학파적인 의미로 사용하였었다. 즉 사도들의 인내심에 중점을 두고자 했던 것 같다. '믿음을 위한 피 흘림의 증언' 이라는 순교의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미메테스' (upumis, 모방자) 또는 마테테스 (waencis, 제자)라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순교가 고통과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모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의 참 육체를 부정하는 그리스도 가현설(Docetsimus)에 대항하기 위해 순교자가 겪는 육체적 고통을 더욱 강조하였는데, 순교자의 육체적 고통은 살을 입고 있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상통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폴리카르포(69~155)는 예수의 삶과 죽음이 하느님 성자의 삶과 죽음 자체임을 믿는 충만한 증거 행위가 순교라고 하였다. 한편 <리용과 비인의 교회들에 보낸 편지>에는 피 흘림이 없는 신앙 고백자들에게는 순교라는 명칭의 사용이 거부되었다. 테르툴리아노(160~23)나 히폴리토(70~236)나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노(?~258) 등도 '호모로고이' (ophoxyou, 고백자)라는 단어를 살아 있는 증거자에게만 적용함으로써 순교자, 즉 피 흘림의 증거자와는 분명히 구별하였다. 그러나이런 순교자의 강인함이 이방인들에게는 수치스런 경솔함으로 보였다는 점에서 기록되었다. 순교가 순교하는 이의 의지적인 노력이라기보다는 그들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힘의 결과라는 <디오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는, 순교가 초자연적인 은총의 열매임을 고백하였다는 점에서 신학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유스티노(100~165) 순교자, 테르툴리아노, 락탄시오(250?~321?), 그리고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 순교자등은 순교자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강조하였다. 헤르마스의 《목자》에서는 순교의 효과로 영광을 받으며 사죄(赦罪)를 받는다고 하였고, 테르툴리아노는《목자》의 저자와 같은 입장에서 순교를 '제2의 세례'(secunda intinctio)라고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는 순교자의 고통 속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장된다고 하였고, 오리제네스(?~254)는 죽음에 대한 경시가 이미 얻은 영광에 대한 증거이며 부활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 있기에 순교는 그리스도교 신자임에 대한 증명이라고 하였다.
순교의 의미는 새롭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는 순교자의 생명이 완전함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충만함이기 때문에 자기 욕구들에 대한 포기는실제의 피 흘림과 동등한 것이라고 보았다. 오리제네스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양심의 매일 순교라고 간주하였다. 치프리아노는 예기치 않은 방해 때문에 순교를 하려다 좌절된 경우도 이미 순교의 화관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또 올림푸스의 주교 메토디오(?~311)는 인내심을 갖고 동정을 간직한 처녀는 순교자의 영예에 비견될 수 있다고 보았고,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190~264)는 전염병 환자를 기꺼이 돌보다 죽은 경우도 순교자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사막 교부들은 피흘림 없이 하느님 사랑을 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백백색(白色) 순교 를 인정하였다. 아일랜드 수도자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욕정을 참으며 끊임없이 보속하는 것을 녹색(綠色) 순교 라고 생각하였다.
순교에 대한 교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위해 피 흘림의 증거는 그리스도와 일치된 것이며 하느님 현존의 증거이므로, 인간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그들 안에 하느님 힘이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며사죄를 받음과 영생의 보증으로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웅적인 피 흘림의 증거보다는 그리스도교 덕행의 완성 차원에서 순교와 순교자에 대한 성찰이 서서히 강조되었다. 과장된 순교 행적에 대한 정화도 요청되었고, 초대 교회 순교자의 부풀려진 숫자에 대한 정정 논란도 있었다. 영적 순교로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강조하였고, 복음적 덕행 즉 청빈 · 순명 · 정결이 순교의 가치와 동등시되고 또 수도 생활 안에서 더 심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는 박해 시대가 끝나고 피 흘림의 증거가 공식적으로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반그리스도교 지역이나 비그리스도교 지역 등 선교 지역에서 발생하는 피흘림의 증거로서의 순교 행위에대한 가치가 축소된 것은 아니다.
〔신학적 의미] 순교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살해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앙의 용기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동의에서 나오지만,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주시는 신앙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누릴 수 있는 영예와 선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에 대한 성찰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에 대한 증언 여부, 자발적인 의사 여부 그리고 교회의 성사성(聖事性) 여부등 세 가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교의 가치에 대한 증언 : 순교 행위는 우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느님 성부의 바람이 순교자의 인격적 결단의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그분이 가르친 가치들에 대한 명확한 자기 동의가 먼저 요구된다. 창조하신 하느님의 원의에 따라 인간성의 완성을 위해 마련하신 필수적인 가치들이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계시되고 전파되어 구체적인 인격 안에서 열매 맺게 되는데, 이 열매의 충만함이 바로 외적으로 표현되는 증거 행위인 순교이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충만함 속에는 신덕 · 망덕 · 애덕의 가장 완전한 형태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동참하고자 하였고 하느님 자비를 믿었기 때문에 약속된 상속자로서의 미래와 또 결코 죽음으로 끝날 수 없는 영생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벗을 위해 자기를 내어 주면서 겪는 극도의 고통과 죽음이 자기 파괴와 소멸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게 되고, 하느님 성부의원의를 따르며 당신 자신을 한없이 낮추신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부활이라는 실존적이고 전인적인 선물이었고 영생으로 들어감이었다. 순교가 증거한 결정적 가치는 죽음이 결코 창조 때 하느님이 원하신 죽음이 아니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이에게 부활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진리이다. 하느님의 선성과 절대성 그리고 성실성에 대한 증거인 것이며, 이 증거를 통해 자기 존재의 결정적인 확인이 된다.
자발적인 의사 : 이는 순교가 갖는 성격으로서 자유의지에 대한 최고의 상태이다.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선택이며 결단이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발휘된 자유 의지의 행사는 죽음 이후까지도 그 영향이 절대적으로 미치게 되며, 새로운 인간성의 미래를 결정해 준다. 가장 소중한 가치인 목숨을 자유 의사로 포기할 수 있음은 인간성의 최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순교는 그래서 몸과 마음이 갈라짐 없이 자기 모순을 극복한 최고의 상태이다.
교회의 성사성 : 순교가 지닌 성사성은 칠성사의 범주에 들지는 않지만, 인격의 상징인 언어를 통한 신앙 고백과 함께 물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받는 세례성사와 너무도 유사하다. 그래서 순교는 교부 시대부터 '피의 세례'〔血洗〕 또는 '제2의 세례' 등으로 불렸다. 홍해의 물에서 죽었고 그 물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물의 세례로 하느님 백성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듯이, 피로 고백한 신앙으로 죄를 완전히 용서받고 부활해서 뽑힌 이들 즉 성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죽음과 생명, 죄악과 하느님 자비, 전례와 실재, 평범과 불가사의, 자유와 폭력 등 상반된 것들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것 또한 순교이다. 그래서 순교를 초성사(超聖事, suprasacrament)라고 부르는 신학자도 있다. 교회의 성스러움은 이런 순교행위 안에서 드러난다.
[의 미] 교회는 순교에 대한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순교는 피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소명이 며 믿는 이들 각자의 완성을 위한 하느님의 초대라고 분명히 선언하였다. "··주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있을수 없다(요한 15, 13). 이런 최대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특히 박해자들에게 증거하도록 어떤 신자들은 이미 초기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앞으로도 항상 부르심을 받을 것 이다. 따라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당하신 스승을 본받고 스승을 닮아 피를 흘리는 제자의 순교를 교회에서는 최상의 은혜요 사랑의 최고의 증명이라고여기는 것이다. 이런 은혜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것이기는 하나, 모든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가 언제나 당하고 있는 박해 중에서도
십자가의 길로 그리스도를 따라갈 준비는 갖추고 있어야하겠다" (교회 42항). (V 순교자 ; 위주 치명 ; → 배교 ;성인 공경)
※ 참고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박도식, 《순교자들의 신앙》, 성바오로출판사, 1978/ KarlRahner, 김수복 역, 《죽음의 신학》, 가톨릭출판사, 1982/ F.X. Murphy, Martyr, (NCE) 9, pp. 312~314/ 0. Semmelroth, KSM) 3, pp. 417~419/ T.Gillby, Theology of Martyrdom, (NCE》 9, pp. 314~315. 〔李東浩〕
: II . 영성 신학에서의 순교
[의 미] '순교' . '순교자'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마르투리온' (uoproptov)과 '마르투스트스'마르투다투스' (woprog)는 본래 '증언' · '증언자' (증인)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용어로 채택되면서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변하였는데 '마르투리온' 이란 단어는 교회 안에서 언어를 통한 증거, 피 흘림의 증거(순교), 영적 순교 등 세 가지 의미로발전하였다.
언어를 통한 증거 : '증거' (uopropiov)는 교의(敎義)의 구성 요소이기 이전에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부여한 명령이었다. "여러분은 이런 일들의 증인입니다" (루가24, 48).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사도 1, 8). 이같이 스승인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증거의 사명을 부여하였고, 사도들의 전생애와 활동 전체가 증거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가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듣고본 모든 것들을 증거하였다.
피 흘림의 증거 : 사도 시대에 '마르투리온' 은 증거하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보여 주기 위해 피 흘리면서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지칭하였다. 즉 '순교' 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실제로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미리 말씀하신대로(마르 10, 39 : 마태 10, 17-18 등 참조), 그분 때문에법정에 끌려가고 왕이나 총독들 앞에서 매를 맞고 재판을 받으면서 그분을 증거하였으며 결국 피 흘리면서까지그 진리를 밝혔던 것이다.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이나 목격자들과는 달리, 주님을 직접 보지도 못하였고 그분으로부터 듣지도 못하였지만, 전해 들은 사실들을 굳게 믿으면서 피 흘림의 증거를 보였을 때 그들을 '순교자' 라고 일컬었다.
영적 순교 : '마르투리온' 이란 단어가 순교라는 뜻으로 보편화되면서 교부들은 복음적 삶을 철저히 사는 이들까지 순교자라고 불렀다(치프리아노, <편지> 37, 1 등 참조). 교회 안에서 순교의 개념은 영적 순교라는 뜻으로기도와 고행에 전념하던 은수 생활에, 그리고 그 후에는수도 생활에까지 확대 · 적용되었다.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던 이들의 피 흘림의 참 순교 바로 곁에 준순교(準殉敎)로 간주되는 복음 삼덕을 철저히 실천하던 이들의 피 흘림 없는 순교 를 가까이 놓으면서 교부들은 이중 순교의 가르침을 펴게 되었던 것이다.
순교의 폭 넓은 이해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일상 생활에까지 적용되었다. 매일 앞에 놓이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순교의 시작이며 핵심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복음적 삶에는 매일 매 순간마다 순교적 결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요소와 목적] 순교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공적증언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확증하기 위해 임의로 받아들이는 죽음이다. 이 두 요소들은 동시에 필수적이어서 그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본래 의미의 순교라고 할 수 없다. 후대에 와서는 상황의 변화로 법적인 측면의 보완으로 '박해' 라는 요소가 덧붙여졌다.순교의 목적은 '왜 죽었는가, 무엇을 위해서 죽었는가 하는 것을 규명하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당한 죽음은 순교일 수 없다. 그러므로 순교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였으며 언제나 살아 계시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기꺼이 받아들이고 겪는 죽음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죽음)이라는 벌이 (사람을) 순교자 되게 하지 않고, 그 이유가 순교자 되게 한다"(시편 34편 해설)고 하였던 것이다.
[특 성] 순교자와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특성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그리스도 본받기 : 초기 그리스도교 문학 즉 순교록들과 교부들의 저서들 안에 나타나는 순교의 특성 중 첫째 이며 근본적인 측면은 스승이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며 따름" (로마의 글레멘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14, 17 :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마네시아인들에게 보낸편지》 5, 2 ; <폴리카르포의 순교록》 13, 3 등 참조)이다. "충실한 증인"(묵시 1, 5)인 그리스도는 자신의 말을 행위를 통해 증거하였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것을 완성하여 봉인하였다. 한편 그의 제자들은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순교가 스승인 그분과 가장 긴밀히 일치하는 방법이고, 모범인 그분을 제일 가까이 따르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 그 길을 걸었으며 다른 이들에게도 따르도록 권하였다. 그들을 이어 교부들은 그 진리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목숨을 바쳐 확신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세기를 통해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것이 되게 하였고,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하여금 이렇게 천명하도록 하였다.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당하신 스승을 본받고 스승을 닮아 피를 흘리는 제자의 순교를 교회에서는 최상의 은혜요 사랑의 최고 증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교회 42항).
그리스도의 현존 : 순교자들은 단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까지 바치면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이 자신들의 힘이나 덕 또는 인간적 열의나 영웅심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질그릇같이 깨지기 쉬운 자신들의 연약함(2고린 4, 7)을 자각하고 겸손되이 인정하면서 자신들 안에 그리스도와 성령의 은총이 충만할 때 순교가 가능하다고 고백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바치기에, 그분도 자신들 안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고 도와 주신다는 것이 공통 신념이었다. 그리스도는 지상에 계실 때 신앙을 위해 고통받는 이들 안에 자신의 특별한 현존을 약속했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넘겨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그 시간에 일러주실 것입니다"(마태 10, 19-20 ; 마르 13, 11 : 루가 21, 12-15). 과연 주님은 놀라운 이적과 함께 그들 안에 참으로 머물러 계심을 확증해 주었다. 그분은 법정에서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비추어 주었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해주었으며, 또한 극적인 순간에 강한 용기와 천상적 평화를 허락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사도7. 55-56)로부터 시작하여 헤아릴 수 없는 증거자들과순 교자들 안에서 주님의 약속 이행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순교자들은 주님과 그분의 복음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그분이 끝까지 도와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그 특별한 은총에 감사하였다. 순교자 아폴로니오는 지방 총독 페렌니오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총독 페렌니오여,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께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는 내게 구원을 마련해 주는 당신의 판결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성 아폴로니오의 순교록》 46)라고 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도 황제 트라야누스(98~117)가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을 때 주님께 '감사' 하였다(《안티오키아의 주교 성 이냐시오 순교록》 참조).
순교자들은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그곳에 가서도 끊임없이 기도하였으며, 천상적 평화와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 안에서 볼 수 있는 주님 현존의 표지였으며 그 열매였다. 주님은 순교자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승리하셨던 것이다.
애덕의 완성 : 순교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데 가장 훌륭한 방법이며 그분과 가장 긴밀히 일치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 정점으로서 완성이다. "누가 자기 친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 그보다 더큰 사랑은 아무도 지니지 못합니다"(요한 15, 13). 주님께서 직접 가르쳤고 또 구체적으로 실천한 이 말씀은 순교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이 모방하고자 하는 주님의 수난 속에 실로 인류를 위해
목숨 바치신 무한한 사랑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리카르포(69~155)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순교자들을 "참된 애덕의 원형들"(1, 1)이라고 일컬었고, 《폴리카르포 순교록》의 저자는 그들을 "무한한 사랑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인 동시에 모방자들"(17, 3)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또 치프리아노(?~258)는 순교를 그리스도교의 덕행들(믿음, 소망, 사랑) 중 "가장 영웅적인행위" 라고 하는 이유는 최대의 인내를 보이는 절정적 애덕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인내의 선에 대하여》 13~15).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50~215)는 순교를 '애덕의 완성' 이라고 더욱 강도 높게 정의하였다.
순교가 그리스도의 모방이라고 하는 것은 순교자의 고통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유사한 점을 가진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순교자의 희생적인 자세가 그리스도의 자세를 닮았기 때문이다. 즉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교부들은 순교자를 성체성사의 재료(제병) 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에 견주며 희생 제물로 여겼다(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2. 2 : <폴리카르포의 순교록> 14~15 참조). 이같이 그리스도의 모방이며 그분과의 일치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봉헌이라는 인식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순교에 대한 열렬한 염원을 갖도록 하였다.
순교의 결실 : 순교의 결실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 안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알려졌고 또한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순교는 우선 그것을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에게 주님의 큰 은총을 가져다 준다. 초기 교회 때부터 순교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데 장애가 되는 죄의 모든 때를 깨끗이 씻어 주는 또 하나의 세례성사로 여겨졌다. 테르툴리아노(160~23)는 그 은총에 대해 "피의 세례는 물의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에게 그것을 대신하며, 세례성사(의 은총)를 잃은 이에게 그것을 회복시켜 준다"(《세례성사에 대하여》 16, 2)고 하였고, 오리제네스(?~254)는 순교를 세례성사를 완성시키는 두 번째 세례' 라고 표현하였다. 교부들은 한결같이 순교가 순교자들로 하여금 천
상 화관을 받는 데 지연될 수 없도록 하는 지대한 상급의 원천이므로, 그들의 영혼은 곧장 천상 낙원의 주님에게로 인도된다고 가르쳤다(헤르마스, <목자> 10, 1 : 치프리아노, <포르투나토에게 보낸 편지》 서론 4, 13 : 테르툴리아노,《영혼에 대하여》 55)
또한 순교는 교회와 세계의 유익을 위한 희생 제사이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스승 그리스도처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제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이냐시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8, 1 : 오리제네스, 《민수기에 의한 설교> 24). 테르툴리아노는 교회의 확장에 기여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강조되는 순교의 역할을 '모범의 효력' 이라고 하였다(《호교론) 21). 그러나 단순한 모범의 결과-이것도 성령의 은총 없이는 결실을 이룰 수 없다-뿐만 아니라, 순교자의 공덕과 전구의 덕으로 받는 은총을 통해이루어지는 사도적 결실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에 대해 분명하게 표현한 그의 다음 말은 세기를 관통하는 명언이다. "너희들이 우리를 타작(살해)할 때마다 즉시 우리는 더 많은 숫자로 불어난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그 씨앗이다"(호교론) 50, 13). 교회의 역사는 언제 어디서나 순교의 사도적 결실성을 확인해 주고 있으며, 교부들의 말씀 특히 테르툴리아노의 가르침이 참됨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같이 순교자들의 성성(聖性)과 품위가 출중한 것으로 교회 안에서 처음부터 언제나 인식되어 왔고 그들을 본받고자 하는 열의와 공경하는 마음의 표현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여러 공경 행위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발전되었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긴밀한 일치를 이루며 그분 안에서 완성된 성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에 틀림없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친구들인 동시에 아직 세상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믿음 안에서 가까운 이웃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 대전에서 언제나 우리를 위해 전구해 줄 수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하느님 대전에서 인간들의 변호사 혹은 중재자로 여겨지게 되었고, 동시에 신자들은 알맞은 예절로 그들을 공경하게 되었다. 일찍부터 소중히 여겨지고 보존되어 오던 유해도 그 공경에 있어 찬반의 논란을 거치면서 교부들로부터 그리고 교도권으로부터 교의적으로 정당화되고 인정을 받았다. 그 후 순교자공경 행위는 유해를 중심으로 한 공적 전례 예식으로 발전되었다. (- 성인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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