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전기

殉教傳記

〔라〕acta martyrum · 〔영〕acts of the marty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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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교에서, 특히 150~350년경까지 쓰여진 순교자들의 신앙과 수난 및 죽음에 관한 기록. '순교자 행전(行傳)' 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순교 전기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법정 재판 기록〕 당국자들이 순교자들에게 행한 질문과 대답 등이 속기사들이나 공문서 담당자들에 의해 쓰여진 이러한 형태의 순교 전기는 주로 공공 문서고에 보관되어 왔는데, 간혹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사본을 얻어 보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태만을 '순교 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기록은 박해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직접적인 주요 원천이 되는 자료이고, 순교자들의 이전 삶보다는 주로 증언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역사가 하르나크(Adolf von Harnack, 1851~1930)는 예수 그리스도와 순교자들 사이의 밀접한 연결을 강조하면서 순교 전기가 신약성서 계시에 대한 일종의 지속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증인들 안에 현존하고 증인들의 말은 성령의 말씀이라는 복음 말씀(마태10, 19-20)에 따른 것이다.
《성 유스티노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전기》(Acta SS.Iustini et sociorum) : 그리스어로 쓰여진 이 작품은 가장 잘 알려진 호교 교부인 유스티노(Justinus, 100~165)에게 선포된 공식 판결문을 담고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다. 유스티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 황제 시대에 로마 총독 루스티코(Quinto Giunio Rustico)의 지시로 다른 6명의 신자들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 이 행전은 간략한 서론, 심문과 판결문, 그리고 짧은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독이 선포한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지 않고 황제의 명에 복종하지 않는 이들은 법에 따라 태형에 처해진 후 참수형에 처해진다." 순교 전기에 따르면 유스티노와 그의 동료들은 165년에 로마 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지방 총독에 의한 시칠리움 순교자들의 순교 전기》(Acta proconsularia martyrum Scillitanorum) : 이 작품은 현재 전해져 오는 아프리카 교회사에 관한 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라틴어로 쓰여진 첫 번째 그리스도교 문헌이기도 하다. 마다우라의 남파노(Namfano di Madaura) 미진(Miggin), 사남(Sanam)을 비롯하여 누미디아(Numidiia) 출신 신자 6명의 재판 기록을 담고 있는데, 이들은 지방 총독인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의 지시로 180년 7 월 17일 참수형을 받았다.
《지방 총독에 의한 치프리아노 순교 전기》(Acta proconsularis S. Cypriani) : 순교 전기 중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치프리아노를 쿠루비(Curubi)로 유배시킨 첫 재판, 체포와 두 번째 재판, 사형 집행 등 세 문헌으로 나누어져 있다.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는 발레리아누스(253~260)와 갈리에누스(253~268) 황제 시대인 258년 9월 14일에 참수형을 받았다.
〔순교자들의 수난기〕 이 형태의 순교 전기는 목격 증인이나 신앙을 가진 이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다.
《폴리카르포의 순교록》(martyrium Polycarpi, 156) : 이 작품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복음을 따라 산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Polycarpus Smyrnensis, +156)의 신앙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폴리카르포는 죽음을 바라지도 피하지도 않았 으며, 배교를 설득하는 군인과 지방 총독에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박해의 동기는 이교 축제에서의 한 젊은이의 죽음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젊은이의 죽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허위 주장을 퍼뜨렸다. 결국 속죄양으로 체포된 폴리카르포는 칼로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은 유대인들의 교사(敎唆)에 의하여 화장되었으나, 신자들이 유골을 모아 매장하였다.
《비엔과 리용 공동체의 편지》(Epistula ecclesiarum Viennensis et Lugdunensis) : 아시아와 프리지아 교회에 보낸 편지로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eae, 260~340)에 의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교회사》 5, 1, 1~2, 8). 177/178년에 동방 교회에 보내진 이 편지는 박해 기간 동안에 죽
은 리용 교회와 비엔 교회의 순교자들의 수난기이다. 당시 90세였던 포티노(Photinus, 87~177) 주교, 여종이었으나 말과 모범으로 동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블란디나(Blandina, +177), 개종자인 마투로(Maturus), 비엔의 부제 상토(Sanctus), 의사 알렉산드로(Alexandrus), , 그리고 15세 소년 폰티코(Ponticus) 등이 이 수난기에 등장한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수난기》(Passio SS. Perpetuae et Felicitatis) : 레보카토(Revocatus) 펠리치타, 사투르니노(Saturninus), 세쿤둘로(Secundulus), 페르페투아 등 5명의 예비 신자一이들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세례를 받았다와 이들의 교리 교사인 사투로(Saturus)의 순교를 담고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 문학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서술된 이 수난기에 따르면, 페르페투아는 당시 22세로 이미 결혼하여 갓난아기가 있었고, 펠리치타는 페르페투아의 하녀로 체포될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순교하기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다. 이들은 202년 3월 7일에 카르타고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카르포와 파필로, 아카토니카의 수난기》(Pasio Carpi, Papyli et Agathonicae) : 목격 증인에 의하여 쓰여진 것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와 루치우스 베루스(Lucius Verus, 161~169) 황제 시대인 170년경에 카르포(Carpus)와 파필로(Papylus)는 페르가뭄(Pergamm)의 원
형 경기장에서 화형을 당하였고, 아카토니카(Agathonica)는 스스로 불꽃 속에 몸을 던졌다고 전해 준다.
《아폴로니오의 순교 전기》(Acta Apollonii) : 에우세비오는 《교회사》에서 이 순교 전기를 요약하여 전하고 있다(5, 21, 2~5). 유명한 철학자였던 아폴로니오는 로마 총독 페렌네(Perenne)로부터 심문을 받고 콤모두스(Commodus, 180~185) 황제 때인 185년에 참수형을 당하였는데, 그가 페렌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면서 행한 설교는 호교 교부들의 논증과 유사하였다.
〔순교자들의 전설 문학〕 이러한 형태의 작품은 후대 작가에 의해 신약성서의 외경 작품과 유사한 형태로 쓰여진 것으로, 역사적 가치보다는 주로 순교자들의 기적이나 잔혹한 죽음 그리고 환시 등을 다루고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행전들로는 아네스(Agnes), 체칠리아(Caecilia), 펠리치타(Felicita, 2세기경)와 일곱 명의 아들들, 히폴리토(Hippolytus, 170~236), 라우렌시오(Laurentius, +258), 세바스티아노(Sebastianus, +288), 요한과 바오로(Joannes et Paulus), 고스마와 다미아노(Cosmas et Damianus) 등이 수록된 《로마 순교자들의 행전》(Acta martirium Romani), 《글 레멘스의 순교록》(Martyrium Clementis), 《이냐시오의 순교록》(Martyrium S. Ignati) 등이 있다.
그 밖에 에우세비오는 초대 순교자들의 순교 이야기를 담은 《순교 행전 모음집》을 썼다고 하나 불행히도 이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에우세비오는 자신의 《교회사》에서 이 모음집의 많은 부분을 요약해서 전해 주었다. 이외에도 그는 303~311년 팔레스티나에서 행해진 박해 동안에 순교한 이들에 대해서도 저술을 남겼다. 또 어느 익명의 작가 역시 사포레 2세(Sapore Ⅱ, 339~379) 시대의 박해 기간 동안에 순교한 페르시아 신자들의 순교 전기를 저술하였는데, 이 행전은 현재 시리아어로 전해지고 있다.
〔평 가〕 순교 전기는 성인전(acta sanctorum)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전은 실제로 순교자들에 대한 서술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전은 순교 전기보다 더 넓은 범위의 행전이다. 왜냐하면 성인전은 점차 순교자들에 대한 서술뿐만 아니라 매일의 신앙의 삶에 대한 묘사 즉 무엇보다도 수도자들의 삶에 대한 묘사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박해 시대 이후의 이야기로 수도자들은 순교자들의 삶을 이어받은 자들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과 수도자적인 삶은 무혈의 순교자 혹은 양심의 순교자의 삶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honii)이다. 나아가 성인전은 주교와 다른 성인들의 삶도 다루었다. (→ 성인전 ;순교)
※ 참고문헌  B. Altaner, Patrologia, trad. italiana di A. Babolin, SJ.,Marietti, Casale, 1983/ AA.VV. Atti e Passioni dei Martiri, Fondazione Lorenzo Valla Arnoldo Mondadori Editore, 1987/ 《ODCC》, p. 14/ J. Quasten, Patrologia, vol. 1, trad. italiana del Dr. Nello Beghin, Marietti, Casale, 1992.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