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법인 순심 교육 재단'에서 운영하는 중등 교육기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340번지(순심중 · 고등학교), 경북 칠곡군 왜관 5리 776-9번지(순심여자중 · 고등학교) 소재. 1936년 5월에 개원한 소화여자학원(小花女子學院)이 그 모체이며, 1946년 5월 순심여자초급중학교로 인가되었고 같은 해 11월 남녀 공학인 순심초급중학교로 재인가되었다. 이후 1951년 8월에 순심중학교로 학교 이름을 바꾼 데 이어 이듬해 3월에는 순심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74년 11월에 순심여자고등학교를, 1977년 12월에는 순심여자중학교를 설립하면서 남녀 학교의 운영을 분리했다. 교훈은 '깨끗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돕는 사람이 되자 . 〔역대 교장〕 순심중 · 고등학교 : (중학교) 초대 이명우(李明雨, 야고보) 신부(1946. 5~1948. 12), 2대 이태재(李太載, 마티아, 1948. 12~1949. 9), 3대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1949. 10~1950. 1), 4대 김익진(金益鎮, 프란치스코, 1950. 2~6), 5대 정행돈(鄭行敦, 미카엘, 1950. 7~1961. 7), 6대 서상우(徐瑀, 요한) 신부(1961. 8~1967. 2), 7대 조중화(趙重華, 요셉, 1967. 2~1971.9), 8대 조성빈(趙誠斌, 프란치스코, 1971. 9~1981. 7), 9대 곽종학(郭鐘學, 요한 보스코, 1981. 8~1996. 2), 10대 고건상(高建相, 멜키올) 신부(1996. 5~1999. 2), 11대 장홍섭(張弘燮, 토마스 아퀴나스, 1999.2~현재). (고등학교) 초대 정행돈(1952. 4~1955. 3), 2대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신부(1955. 4~1957. 11), 3대 서상우 신부(1957. 11~1967.2), 4대 조중화(1967.2~1971.9), 5대 조성빈(1971.9~1981.7), 6대 곽종학(1981. 8~1996. 2)7대 고건상 신부(1996. 5~1999. 2), 8대 장홍섭(1999. 2~현재). 순심여자중 · 고등학교 : 초대 곽종학(1975. 3~1981. 7), 2대 조성빈(1981. 8~1985. 6), 3대 정경자(鄭京子, 애매) 수녀(1985. 7~1991. 12), 4대 김수덕(金洙德, 아네스마르가리타) 수녀(1992. 1~1996. 8), 5대 고애현(高愛賢,
데레사 세인트 폴) 수녀(1996. 9~현재).
〔설립 및 남녀 공학 시대〕 일제 시대 왜관 지역에는 공립 학교가 하나만 있어 많은 아동들이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왜관 청년회에서는 사설 학습 강습소인 '동창학원' (東昌學園)을 설립하여 소년들을 교육하였고, 1936년 4월 1일에는 왜관 본당에서 '소화여자학원' 을 설립하여 소녀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소화여자학원은 1947년 8월 폐지될 때까지 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고, 이후 순심학교의 모체가 되었다.
한편 광복과 더불어 왜관 본당에서는 건국 사상은 참되고 바른 교육에서 출발한다는 인식하에 호교와 국가의 진정한 문화 창달을 목적으로 중등 교육 기관의 설립을 모색하였다. 이에 1945년 12월 9일 '왜관 순심여자중학교 설립 기성회' 를 발족하고 소화여자학원을 정식 중학교로 승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이듬해 5월 미 군정청으로부터 '순심여자초급중학교'의 · 설립인가를 받고 9월 7일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남학생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학교 당국은 같은 해 11월 남녀 공학인 '순심초급중학교'로 학교 이름을 바꾸고, 광복 전 일본인들이 쓰던 '왜관심상소학교 건물을 대여하여 남학생 교실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년의 대차 기간이 지나고 또 학생수가 점차 늘어나자, 학교에서는 1949년 11월에 기존 건물을 증축(1층 5개 교실)하여 시설을 확충하였다. 1951년 8월에는 '순심중학교 (9학급)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듬해 3월에는 졸업생과 학부형 및 지역 사회의 요청에 따라 순심고등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4년 6월에는 8천여 평의 왜관동 776번지(현 순심여자중 · 고등학교 자리)에 교사(校舍)를 신축하였다.
순심학교는 중 · 고등학교의 병설, 부지 매입, 교사 신축 등을 통해 성장 발전해 갔지만, 이에 따른 재정상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대구교구에서는 학교의 발전을 촉진시킬 목적에서 1955년 4월에 순심고등학교를, 1961년 7월에는 순심중학교를 성 베네딕도회로 이양하였다. 순심학교는 이를 계기로 1962년에 여학생을 현재의 여학교 자리에, 남학생을 현재의 남학교 자리에 편성함으로써 남녀부를 분리하였고, 11월에는 남자부자리에 2층의 신축 교사(정규 교실 10개, 특별 교실 8개)를 준공하였다. 이어 1968년 12월에는 남자부 자리에 다시 3층(14개 교실)의 교사를 증축하였고, 1972년 12월에는 여자부 자리에 4층(45개 교실)의 교사를 신축하였다. 그런 가운데 재단에서는 단일 여성 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74년 11월에 순심여자고등학교의 설립 인가를, 1977년 12월에는 순심여자중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음으로써 남 · 여학교의 운영을 분리하였다.
〔순심중 · 고등학교〕 여학교와의 분리 후, 순심중 · 고등학교는 1979년 7월에 과학관(14개 교실)을 신축하였고, 1981년 10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가 24학급으로 증설 인가되었다. 또 이듬해 12월에는 중학교 14개 교실을 증축하였고, 1991년 5월에는 체육관을 신축하였으며, 1996년 8월에는 중학교에 기술실과 컴퓨터실을 증축하였다. 1998년 10월에는 4층의 생활관(웅비관)을 신축한 데 이어 2000년 3월에는 이 생활관을 5층으로 증축하였다. 이와 함께 운동을 통한 애교심과 단결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974년 4월에 레슬링부를, 1997년 3월에는 탁구부를 창단하여 운영하고 있다. 2000년 6월 현재 중학교는 9학급에 376명, 고등학교는 24학급에 891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그 동안 졸업생은 중학교가 52회에 13,885명, 고등학교는 46회에 11,792명이 배출되었다.
〔순심여자중 · 고등학교〕 남학교와 분리된 후, 순심여자고등학교는 1976년 2월에 학생들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건강 증진을 위하여 탁구실과 정구장을 완공했으며, 이듬해 12월에는 여자 중학교를 병설하였다. 이어 1979년 9월에 554평의 강당 겸 체육관을 준공하였고, 1981년 10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가 18학급으로 증설 인가되었다. 또 1983년 11월에는 본관을 증축하여 교실(7개) · 특별실(3개) · 소강당을 마련하였고, 1987년 5월에는 학생들의 휴식 공간으로 800평 규모의 잔디밭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1999년 8월에는 원거리 학생들의 통학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창조할 슬기로운 학생들을 육성할 목적에서 지하 1층 지상 3층의 생활관(백합관)을 신축 개관하였다. 2000년 6월 현재 중학교는 9학급에 374명, 고등학교는 18학급에 678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졸업생은 중학교가 20회에 3,629명, 고등학교는 24 회에 6,490명이 배출되었다. (→ 대구대교구 ; 베네딕도회)
※ 참고문헌 《왜관 반세기》, 천주교 왜관 교회, 1978. 〔方相根〕
순심학교
純心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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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5월 15일 소화여자학원 개원 기념(왼쪽)과 1937년 10월 4일에 거행된 축복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