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5구 425 소재. 1958년 4월 6일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동정이신 모친. 관할 구역은 곡성군 전지역이며, 소속 공소는 옥과(옥과면), 석곡(석곡면) 공소 등 2개소. 〔교 세〕 1958년 10명, 1961년 197명, 1966년 487명, 1970년 578명, 1976년 584명, 1981년 633명, 1988년 902명, 1993년 1,197명. 〔역대 신부〕 초대 캐롤(V. Carroll, 노) 빈첸시오(1958. 4~1962. 2), 2대 김종남(金鍾南) 로마노(1962. 3~1967. 1), 3대 제임(J.A. Jaime, 명) 알바 예수(1967.1~1969.3), 4대 토레스(J.R.Torres, 이) 요한(1969. 3~1972.9), 5대 프랑코(M. Franco, 김) 마우릴리오(1972. 9~1975. 7), 6대 이재흥(李載興) 힐라리오(1975. 7~1978. 3), 7대 정철수(鄭哲秀) 프란치스코(1978. 3~1982. 2), 8대 박희동(朴熙東) 요한(1982. 2~1985. 6), 9대 김서규(金瑞圭) 마태오(1985. 6~1987. 2), 10대 이준형(李濬炯) 모이세(1987. 2~1990. 1), 11대 이재술(李在述) 마르코(1990. 1~1991. 2), 12대 정경수(鄭景壽) 그리소스토모(1991. 2~1994. 2), 13대 이영선(李永宣) 골롬바노(1994. 2~현재).
〔설 립〕 곡성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의 신자들이 을해박해(1815)를 피해 곡성군 오곡면 미산리와 승법리로 피신해 옴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들 신자들은 생계 유지와 신분 은폐를 위해 옹기를 구으며 생활했는데, 1827년의 정해박해로 인해 다시 탄압을 받고 이곳 교우촌들은 폐허가 되었다. 당시 신자들 대부분이 배교하였으나, 장계 고을 이 바오로의 누이인 이 막달레나와 이성지(세례자 요한) 등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순교하였다. 이후 곡성 지역의 복음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중 1950년 무렵에 이르러 광주 교구에서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교구장 대리 힐리(M.Healy허 미카엘) 신부가 지역의 실정을 파악하고 성당 건립을 추진하게 하였다. 이때 지역 신자수가 10여 명에 불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당 건립이 추진된 이유는 순교자를 배출한 이 고장에 본당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때문이었다. 성당 건립은 당시 문정중학교 교장이던 이정재(李政宰)가 학교 내의 자기 소유 대지 약 1,000평을 교회에 기증하고 거액을 헌납함으로써 급진전될 수 있었다. 그 결과 1958년 4월 성당을 착공함과 동시에 본당 설립을 보게 되었다.
〔정착과 변모〕 성당은 본당이 설립된 해 7월에 완공, 10월에 축성식을 하였다. 그 뒤 본당에서는 제2대 김종남(로마노) 신부 재임시인 1962년 3월 부지 1,300여 평을 추가 매입하였고, 1964년 8월 성모상을 제막하였으며, 1967년 9월 수녀원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86년에 동굴식 성모상을 건립하였다. 그 동안 신자들은 공소 건물의 신축에도 노력하여 1958년 12월 옥과 공소의 강당을, 1984년 석곡 공소의 강당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본래부터 지역적인 영세성으로 인해 자립이 어려웠으므로 교구 당국의 재정 지원을 받아 왔는데, 1970년 구례 본당을 분할함에 따라 본당 재정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본당이 재정 자립을 이루게 된 것은 1987년 이후였으며, 그 다음해에는 석곡 공소가 재정 자립을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본당은 한때 침체되어 오다가 1982년부터 제8대 주임 박희동 신부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힘을 합쳐 성당 보수, 사제관 신축, 선교 활동 등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9대 김서규 신부 부임 이후 반모임을 재개하고, 성서 연구회와 빈천시오회를 조직하는 한편 그 밖의 신심 단체들을 정비하는 등 단체의 활성화에 주력하면서 신자수의 증가를 가져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86년 9월 신용 협동 조합을 재정비하고, 제10대 이준형 신부 부임 이후에는 사회 민주화에도 동참하면서 1987년 7월 가톨릭 농민회 곡성 지회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본당에는 특히 젊은 연령층이 두터워졌고, 그 동안 성심회 · 애덕회 · 성모회 · 빈첸시오회 · 성소후원회 · 청년회 · 학생회 · 교사회 · 성가단 등과 레지오 마리애 등이 설립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 광주대교구) 〔車基眞〕
곡성 본당
谷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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