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204소재. 1960년 3월 19일 남원(南原, 현 쌍교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순창군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동계(東溪) · 쌍치(雙置) · 복흥(福興) 3개소. 〔교 세〕 1972년 150명, 1976년 623명, 1982년 713명, 1987년 1,512명, 1992년 1,613명, 1999년 1,940명. 〔역대 신부〕 초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1960. 3~1961. 12), 2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1961. 12~1962. 12), 3대 정재석(鄭在石) 요(1962.12~1968. 10), 4대 문정현(文正鉉) 바르톨로메오(1968. 10~1970. 7), 5대 박창신(朴昌信) 베드로(1974. 6~1976. 8), 6대 박종상(朴鍾祥) 가브리엘(1976. 8~1977. 12), 7대 성태수(成泰洙) 이냐시오(1977. 12~1980. 1), 8대 강덕행(姜德幸) 요셉(1980. 1~1984. 1), 9대 김병환(金炳煥) 요한(1984. 1~1985. 1), 10대 엄기봉(嚴基奉) 베드로(1985. 1~1988. 1 ) , 11대 박기준(朴基俊) 라우렌시오(1988. 1~ 1990.1), 12대 양경배(梁庚培) 베네딕도(1990. 1~8), 13대 나춘성(羅春城) 스테파노(1990. 8~1993. 2), 14대 권이복(權彜福) 베네딕도(1993. 2~1998. 1), 15대 정승현(丁勝鉉)요셉(1998. 1~현재 )
〔공소와 본당 설립〕 전라도 지역을 담당한 리우빌(A. Liouville, 柳達榮) 신부가 1882년에 작성한 교세 통계표에 따르면, 현 순창 본당 관할 지역인 쌍치면과 복흥면 일대에 많은 공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공소들은 1889년 배재〔梨峴〕 본당이 설립되자 이곳 관할이 되었는데, 1895~1896년경 수류(水流) 본당의 라크루(M. 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사목 방문을 통하여 신설한 오룡촌(五龍村) 공소가 이후 순창 지역의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오룡촌 공소 강당은 15칸 규모의 초가였다.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는 1918년의 사목 방문 때 '매괴의 성모'를 주보로 공소 축복식을 거행했다. 1929년 5월 26일 능교리(菱橋里, 현 신태인) 본당이 설립되자 이곳 관할이 된 오룡촌 공소 신자들은 활발한 신앙 생활을 함으로써 1929년 당시 고해성사자가 600명, 성체성 사자는 300명에 이르렀다. 1954년 가을 신자들은 한국 전쟁 때 불탄 공소 강당의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봄 5칸의 강당을 완공하였다. 1958년 4월에는 순창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고자 하는 교구의 계획에 따라, 순창과 거리상으로 가까웠던 남원 본당 주임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 신부가 조용진(라우렌시오)을 전교 회장으로 임명한 뒤 성당 부지를 물색하게 하였다. 그 결과 같은해 5월 남계리 205번지의 논 1,400평을 매입한 데 이어 7월에는 이곳에서 가까운 산을 매입하였다. 이에 따라 1960년 3월 19일 순창 본당이 신설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상호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신태인 본당에 소속되었던 순창군의 공소들이 순창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현 성당 소재지인 동산을 성당 건립 부지로 정한 이상호 신부는 196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성당(60평)과 사제관(40평)을 차례로 완공한 뒤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6월에는 인보 성체 수도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정착과 성장〕 4대 주임으로 부임한 문정현 신부는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69년에 성당 증축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그 해 7월 유학을 떠남으로써 공사가 중단되었고, 순창 본당은 신부 공석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임실(任實) 본당 주임 서석기(徐錫基) 신부가 임시 주임을 겸임하였고, 1971년 4월에는 쌍치면 일대의 공소들이 신태인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으며, 1972년 9월부터는 임실 본당 주임 김진소(金眞召) 신부가, 그리고 1973년 6월부터는 남원 본당 주임 김병엽(金炳燁) 신부가 임시 주임을 겸하였다. 그 후 1974년 6월에 박창신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신태인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던 공소들도 다시 순창 본당으로 환원되었다. 8대 주임 강덕행 신부는 지역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1981년 11월 17일 '성모 성심 수녀회' 를 초청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동계면 현포리 541번지에 부지 544평을 마련한 뒤 동계 공소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공소 강당(43평)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983년 3월 15일에는 공소 건물 안에 유아원(1989년 폐원)을 개원하였다. 또 3년 전부터 확장 공사를 준비하였던 종암 공소는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증축 공사(20평)를 마치고 1985년 성탄 때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1대 주임 박기준 신부는 1989년 1월에 사제관(44평)을 신축하였고, 13대 주임 나춘성 신부는 1990년 10월 성당 내부를 현대적으로 수리한 데 이어 1992년 5월에는 성당 내에 성모 동굴을 건립하여 신자들의 성모 신심을 함양하고자 하였다.
14대 주임 권이복 신부는 순창 본당을 농민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본당으로 육성 · 발전시키기 위하여 주민들의 소득 향상을 도울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전개하였다. 1994년 10월에 우리 밀 제품과 농축수산물을 판매하는 '우리 농산물 직매장'과 이것으로 만든 음식과 가공 식품을 판매하는 밀 수레'(2000년 초 폐장)를 개장하였고, 이듬해 6월 8일에는 농산품을 가공하여 상품화하는 '순창 성가정 식품' 공장을 건립하였다. 초기에는 운영 미숙으로 자금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일본으로 수출까지 하는 등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또 권이복 신부는 순창군 쌍치면 내의 5개 공소가 이농 현상으로 신자수가 줄어들자 공소 활성화를 위해 면 소재지에 통합 공소인 쌍치 공소의 건립을 계획하고, 1996년 12월 목조 한옥 강당(27평)을 완공한 뒤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와 같이 지역 사회와의 일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순창 본당의 사목 형태는, 점차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하여 어려움이 커져 가고 있는 본당 사목 방침에 하나의 모범이 되고 있다. (→ 전주교구 ; 남원 본당)
※ 참고문헌 김진소, 《天主教全州教區史 研究資料集》 2집 (1882~1986, 敎勢統計表),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 천주교 전주교구, 1998. 〔金善美〕
순창 본당
淳昌本堂
글자 크기
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