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에 베네딕도회에서 설립한 실업 학교. 뮈텔(G.Mutel, 閔德孝) 주교의 요청으로 1909년에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도회는 이듬해 건전한 직공 양성을 통하여 선교 사업을 전개한다는 목적에서 실업 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 이름은 “기도하고〔崇〕, 일하라〔工〕"라는 베네딕도회의 이념에 따라 '숭공'이라 하였고, 교과 과정은 4년, 교과목은 기능 교육 외에 제도(製圖) · 한문 · 일본어 · 수학 · 교리 교육을 병행하였다. 전 과정을 이수한 학생에게는 이론과 실기 시험을 치른 후 자격증을 교부하였고, 졸업생들은 2년 간 유급 조수(助手)로 학교에남을 수 있었다. 숭공학교에서는 제대 · 촛대 · 세례대 등을 주문받아 제작 판매하였고, 자동차의 상부를 제작하거나 수리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숭공학교의 대표적인 제작품은 1915년에 만든 명동 대성당의 강론대이다.
숭공학교는 개교 후 꾸준히 성장하여 1914년 7월에는 학생수가 70명에 이르렀고, 작업장은 대목공부 · 소목공부 · 자물쇠 제작부 · 양철부 · 페인트부 · 제차부(製車部)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부설 원예부는 장차 농업 학교로 승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수사들이 징집됨에 따라 승공학교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또 운영 주체가 독일인이어서 재산상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다. 이에 수도회에서는 1918년 6월에 학교 경영권을 형식상 경성교구장인 뮈텔 주교에게 이양하였고, 이듬해 9월 23일에는 경성교구의 푸아넬(Poisnel, 朴道行) 신부가 성 베네딕도회 소속 재산 관리 위원으로 임명되어 재산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승공학교의 재산과 운영은 보장되었지만, 1920년 8월 5일 원산 대목구가 설정되어 베네딕도회가 이 지역을 맡게 되면서 승공학교는 폐교될 운명에 처하였다. 즉 수도원이 원산으로 이전할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더 이상 실업 학교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21년 11월 3일 수도원 구내에 소신학교가 설립되자, 승공학교 학생들은 이들과 함께 건물을 사용하다가 1923년 6월 30일 마지막 학기를 끝으로 폐교되었다. 폐교 당시의 교장은 레오폴드 다베르나스(L. d'Avernas, 羅碧宰) 신부였다.(→ 베네딕도회)
※ 참고문헌 최석우, <한국 분도회의 초기 수도 생활과 교육 사업>, 《사학 연구》 36집, 한국사학회, 1968/ 一, 《한국 교회사의 탐구》 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백 플라치도, <한국에서의 초기 베네딕도회의 선교 방침>, 《한국 교회사 논문집》 1,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1/ 一,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方相根〕
숭공학교
崇工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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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공학교 전경(왼쪽)과 제차부 작업장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