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곡가. 프로테스탄트 교회 음악의 창시자. 1585년 10월 14일 독일 코스트리츠(Kostriz)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학교 음악 교사였던 베버(G. Weber)와 그 지방 영주였던 모리츠(Moritz) 백작으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그의 부모는 음악이 아닌 법률 공부를 하기를 바랐다. 당시 영주들 중 특히 교육과 문화에 관심도 많고 능력 있는 작곡가 소리도 듣던 모리츠 백작은, 쉬츠가 13세 되었을 때 자신의 영지인 카셀(Kassel)의 성가대에 받아들인 뒤 그 성가대 학교(Collegium Mauritanum)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포함한 고전 교육을 받도록 하면서 음악적인 재능을 키워 주려고 하였다. 쉬츠는 그 후 당시 모리츠 백작에 의해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던 카셀의 악단을 높은 수준으로 올려 놓은 오토(G.Oto)에게서 음악 교육을 받았는데, 그는 오토를 자신이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 준 최초의 스승으로 꼽고 있다. 쉬츠는 오토에게서 교육을 받은 후부터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아, 나는 어째서 즐겁게 살아야 하는가!>(Ach Wie soll ich doch in Freuden leben, SWV 474)는 그의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대학 입학 직전에 작곡한 곡이다.
1608년에 쉬츠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마르부르크 1608년에 쉬츠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모리츠 백작은 그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베네치아(Venezia)에서 당대의 대가인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7~1612)에게 음악 교육을 받도록 주선해 주기까지 하였다. 쉬츠는 지극한 존경을 다하여 가브리엘리에게 사사(師事)하였고, 가브리
엘리도 쉬츠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러나 1612년에 스승 가브리엘리가 사망하자, 이듬해 귀향하여 음악을 포기하고 법률 공부를 다시 하려 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모리츠 백작은 오르간 연주자의 자리를 알선해 주었고, 이를 기회로 쉬츠는 1614년에 4개의 합창단을 위한 <오소서 성령이여>(Veni, Sancte Spiritus, SWV 475)를 헌정하였다.
1617년 쉬츠는 드레스덴(Dresden)의 선제후(選帝侯)요한 게오르그 1세(Johann George Ⅰ)에 의해 드레스덴의 궁정 악장으로 임명되어 궁정 음악 전체와 소년 합창단의 총감독을 맡았다. 궁정 악단을 단시일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그는 당시 수많은 행사들을 위해 작곡과 대본을 완성했는데, '종교 개혁 100주년 행사 와 '마티아스 2세 황제 영접' 등의 행사를 위한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또 1623년에 작곡한 <부활 이야기>(Auferstehungshistorie)는 독일 최초의 오라토리오라는 평을 받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깊다. 그리고 1627년에는 오페라 <다프네>(Dafne)를 작곡하여 공연하였는데, 이 악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1628년에 다시 베네치아로 간 그는, 1613년에 가브리엘리의 후임자가 된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를 만나 그에게서 결정적인 영 향을 받았다. 또 덴마크 왕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세 차례나 방문하였고, 덴마크 왕실을 위하여 여러 작품을 작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실 악단을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 후 독일의 여러 영주들의 궁정을 방문하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 음악의 원로로서 조언을 아끼지않았다.
60세가 되었을 때 게오르그 1세에게 청한 연금 지급이 거절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으나, 1656년에 게오르그 1세의 뒤를 이은 게오르그 2세로부터 반은퇴를 허락받은 뒤부터는 선임 악장으로서 4명의 휘하 악장을 거느리고 편안한 작곡 생활을 하게 되었다. 70세가 넘은 고령에도 <수난곡>, <예수 성탄 대축일 오라토리오>, <마니피캇> 등 세 편을 작곡하였다. 또 1670년에는 그의 애제자인 베른하르트(Chr. Bernhard)에게 자신의 장례식을 위하여 시편 54편과 119편을 팔레스트리나 형식의 5성부 모테트로 작곡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1672년 11월 6일 드레스덴에서 사망하여 아내와 나란히 묻혔는데, 그의 묘비에는 "하인리히 쉬츠,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 (Heinricus Schiitzius, Seculi sui Musicus excellentissimus 1 Electoris Capellae Magister MDCLXXII)라고 쓰여져있다.
〔평 가〕 흔히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음악의 초대 인물로 발터(J. Walter, 1496~1570)를 꼽는다. 그러나 발터의 시대에는 초기 프로테스탄트주의가 자리를 잡던 때였다. 따라서 쉬츠 그리고 그와 거의 같은 시대에 태어난 샤인(Johann Hermann Schein, 1585~1630)과 샤이트(Samuel Scheidt, 1587~1654)를 '3S' 라 하여 초기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을 창시하고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쉬츠는 가톨릭 교회 음악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베네치아 악파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다성 음악적 합창의 대가이기도 하였다. 특히 복합창 형식은 베네치아 형식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음악이 가톨릭 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음이 쉬츠의 작곡 기법에서도 확인된다. 그가 작곡한 독일 오라토리오 <부활 이야기>는 독일어 음악을 확립시키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 곡에서 그는 독일어의 수사학적인 면을 음악 안에 정교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후대 독일 음악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 참고문헌 《MGG》/ 《NGDMM》. 〔白南容〕
쉬츠, 하인리히 (1585~1672)
Schütz, Heinrich
글자 크기
8권

하인리히 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