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세바스티아노. 한국 이름은 성래순(成來純) .
1888년 5월 4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g) 교구의 툿칭(Tutzing)에서 태어나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1909년 10월 10일 첫 서원을 하였다. 1913년 7월 25일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9월 7일 서울 백동(柏洞, 현 혜화동)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1920년 8월 5일 원산(元山) 대목구가 설정되면서 함경도 지역의 사목권이 베네딕도회에 위임되자 이듬해 5월 1일 내평(內坪) 본당 8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그곳에서 근피(根皮)와 학소리(鶴巢里)에 학교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몇 개월 만인 그 해 가을 서울 수도원의 부원장 겸 수사 지도 담당으로 전임되었다. 1923년 11월 원장이었던 슈미트(C. Schmid) 신부가 원산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자, 그는 일본어가 유창한 슈넬 신부를 원산 본당 2대 보좌로 임명하여 그에게 주로 일본인 신자 사목을 담당하게 하였다. 1925년 9월에는 백동 수도원의 부원장 겸 신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임명되어 신학생 지도와 교회사, 전례 지도 등을 담당하였고, 이듬해부터는 신학생 강의와 사감만을 전담하였다. 슈넬 신부는 영어와 프랑스어는 물론 한국어와 일본어 등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베네딕도회의 설립 목적을 소개하거나 수도원을 방문하는 외부인의 안내를 전담하기도 하였다. 1927년 3월 21일에는 수도원에 있던 유럽인 수사들의 피정을 지도하였고, 같은 해 신학교가 덕원(德源)으로 이전된 뒤에도 계속 신학생들의 지도를 맡았다. 1932년 12월 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원산 본당에서 잇달아 3개의 언어로 강론을 하여 많은 인기를 얻음으로써, 이듬해부터는 매월 첫 주일에 원산에 거주하는 일본인 신자들을 위한 미사와 강론을 담당하였다. 또 1934년 초 의란(依蘭) 지목구가 카푸친회에 위임되고 카푸친회 신부들이 덕원 수도원에서 생활할 때에는 그들에게 일본어 교육도 담당하였다. 이때 일본으로 가는 카푸친회 신부들을 안내하기 위해 같이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동경의 '베들레헴 별장'(Villa Bethlehem) 병원에서 몇 주간 요양하였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의사들은 유럽 휴가를 권유하였고, 슈넬 신부는 1934년 7월 초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11월 7일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돌아와 교회사와 전례 강의 및 실습을 담당하였고, 손님 담당 신부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4개월 만인 1936년 3월 초 병이 재발하여 왼쪽 몸 전체가 마비되었는데, 5월 말 경 왼쪽 다리의 마비는 풀렸지만 왼쪽 팔의 마비는 계속되어 거의 방에서만 생활하였다. 수사들의 간호와 기도에도 결국 회복되지 못한 채 1937년 3월 25일 파스카 목요일에 사망하였고, 유해는 수사들과 그가 담당했던 일본인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도원 내 공동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1/ 一,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 《死亡者 名簿》, 1990. 〔편찬실〕
슈넬, 제바스티안 (1188~1937)
Schnell, Seba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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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