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독일의 교의 신학자. 교의사가. 20세기 가톨릭 교회와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현대의 탁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897년 7월 17일 바이에른 주(州) 오버바르(Oberbaar)에서 태어나 로젠하임(Rosenheim)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 뮌헨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22년 6월 29일 프라이징(Freising)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24년 스콜라 신학자인 그라프만(M. Grabmann, 1875~1949)의 지도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프라이징 철학-신학 전문대학'(Philosophisch-Theolgische Hochschule in Freising)과 프라이징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으며, 1926년부터 로마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1928년에 교수 자격을 획득하였다. 그 후 약 1년 동안 뮌헨 대학 강사로 활동한 뒤 '프라하의 독일 대학' (Deutsche Universität in Prag, 1929~1933)과 뮌스터 대학(1933~1946)에서 교의 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바이에른 주 정부와 뮌헨 주교로부터 나치 정부에 의해 1939년에 폐교된 뮌헨 대학 가톨릭 신학과의 재건을 위임받고 1945년 뭔헨 대학에 부임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교의 신학 교수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신학과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1965년에 은퇴할 때까지 대학의 내적 · 외적 재건에 공헌하였다. 한편 1952년에 대학 총장으로 선출된 슈마우스는 신학 박사 학위 과정을 독일의 다른 대학들보다 약 10년 빨리 평신도 남녀 학생들에게 개방하였었다. 대학에서 은퇴한 뒤에는 미국 시카고의 성 사베리오 여자 대학 객원 교수(1966/1967)로 초빙되어 강의를 하면서 그곳의 '요한 23세 연구소'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1950년에 《뮌헨의 신학 잡지》(Münchener Theologischen Zeitschrif)를 공동으로 창간 · 편집하였고, 스승 그라프만을 기리기 위하여 1954년에 '중세 신학과 철학연구를 위한 그라프만 연구소'(Grabmann-Institut zur Erforschung der mittelalterlichen Theologie und Philosophie)를 창설하였다. 또 자연 과학 · 철학 · 신학 등의 '학제적 연구를 위한 괴레스 동호인 협회' (Institut Görres-Gesellschaft fürInterdisziplinäre Forschung)를 공동 설립하였고, 국내외의 저명한 학술 협회들에서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뮌헨의 Bayer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Philosophisch-Historische Klasse, 1951 ; 로마의 Academia Mariana Internationalis, 1952 ; 나폴리의 Academia Leonardo da Vinci, 1952 ; Pontificia Academia TheologicaRomana, 1956).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준비 위원뿐만 아니라 전문 위원(peritus)으로 참석하여 교의 신학과 중세 신학 분야에 관계된 공의회 문헌 집필에 참여하였다. 신학자로서의 활동과 공로를 인정받아 교황청 고위 성직자(Päpstlicher Hausprälat) 및 교황청 대서기관(Apostoloscher Protonotar)이란 명예 직위와 함께 몬시놀로 임명받았으며, 스페인과 그리스로부터 명예 십자 훈장을 받았다. 1993년 12월 8일 뮌헨에서 9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저술과 사상〕 슈마우스는 존재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언급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인간을 자유로 이끄는 것을 신학의 과제로 삼았다. 대표적인 저술과 관련하여 그의 학문적인 발전 단계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 단계 : 이 단계는 역사적인 관점을 신학에 관철시키고자 한 그라프만의 노선과 방법론에 따라 사료를 통하여 교부학과 중세의 신학 · 철학 및 신학사 연구에 진력한 시기이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성 아우구스티노의 심리학적 삼위 일체론>(Die psychologische Trinitätslehre deshl. Augustinus, 1927)과 교수 자격 취득 논문 <천사적 박사 토마스의 변론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의 학설 차이 Ⅱ. 삼위 일체론의 차이>(Der Liber Propugnatorius des Thomas Anglicus und die Lehrunterschiedezwischen Thomas von Aquin und Duns Scotus II . Dietrinitarischen Lehrunterschiede, 1930)가 이 단계의 작품들이다.
슈마우스는 교부 시대 신학자들의 유명한 저서만이 아니라 미발표된 필사본도 연구함으로써 그 작품들의 유래뿐만 아니라 신학적 · 철학적 사상의 발전 과정을 찾고자하였다. 미발표된 원전에 관한 관심은 초기 단계의 논문만이 아니라 일생 동안의 많은 연구 논문들과 저술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그에게 있어서 조직 신학의 역사적인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의 제자들이발표한 논문 90여 편 가운데 역사적인 주제를 다룬 논문이 50편 이상이라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그는 《그라프만 연구소지》(Mitteilungen des Grabmann-Institutes der Universität München) 편집을 주관했고, '중세필사본 출판위원회' (Kommission für die Herausgabe unged-ruckter Texte des mittelalterlichen Geisteslebens)의 출판물과 《중세 철학과 신학의 역사에 관한 논문집》(Die Beiträgezur Geschichte der Philosophie und Theologie des Mittelalters)을 편집하였으며, 《교의사 편람》(Handbuch der Dogmengeschichte)을 그릴마이어(Aloys Grillmeier, 1910~ )와 공동 편집하는 등 교부학과 중세 신학의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두 번째 단계 : 슈마우스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자료의 파악이 신학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문제 제기보다는 교의사적인 연구 방향의 설정과 신학의 기초적인 연구인 조직 신학이었다. 또 그에게 있어서 신학사(神學史)의 연구란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하에서도 불변하는 계시와 활동하는 성령의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학적인 관점이 그의 조직 신학적인 관심에서 드러났다. 그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인간이 된 하느님을 인간에게 알리는 복음 선포에 봉사하는 것을 신학의 당연한 과제로 여기면서, 학문과 복음 선포 중간에서 둘 사이를 '중개' 하려는 신학적인 시도를 극력 반대하였다. 그래서 "모든 교의 신학은 복음 선포의 교의학(Verkündigungsdogmatik)이어야 하며···교의 신학이 자신의 구원과 관계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서와 교부들의 전승을 기초로 하여 신스콜라 신학을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고, 현대인들에게 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일환으로 프라하 대학과 뮌스터 대학에서의 교의 신학 강의를 토대로 《가톨릭 교의 신학》(Katholische Dogmatik)이 저술되었고, 1938년에 이 책의 제1부 2권이 출판되었다. 이 저서는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앙이 시대의 문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의 잔재로 취급되고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억압받던 당시, 젊은 신학 세대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환영받았다. 이 저서에서 모든 교의를 인격적인 '나와 너의 관계' (Ich-Du-Beziehung)로 새롭게 제시한 슈마우스는, 당시 교회 내의모든 정신적인 동향(청소년 운동, 성서 운동, 전례 운동 등)을 관심 있게 받아들이고, 교의 신학에 역사 비평적인 성서 주석과 그 결과를 연결시켰다. 이 책은 교의 신학 저서로는 처음으로 평이한 문체로 쓰여졌으며, 구원사적 관점에서 당시의 철학 · 자연 과학 ·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답변을 모색하였다. 1964년까지 6판 5부 8권으로 증보 · 출판되었는데,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가톨릭 교의 신학의 기본 저서로 읽혀지고 있으며, 20세기 신학사에서 교의 신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시대적 의미의 신학적 분출이며 대변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근대주의' 라는 오명을 받아 교황 비오 12세(1939~1958)에 의해 금서로 조치될 뻔하였고, 방법론 · 언어 · 사상 면에서 지나치게 시대를 앞질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신학적인 개념, 즉 하느님 백성인 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 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받아들여져, 그는 공의회 준비위원회의 고문과 공의회 전문 위원으로 초대받았다. 결국 지나치다고 비판받았던 그의 교의 신학은 교회사의 발전 과정에서 꼭 필요한 진보적인 자세로 인정받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 번째 단계 : 이 시기에 저술된 그의 두 번째 교의신학 저서인 《교회의 신앙一가톨릭 교의 신학 전서》(Der Glaube der Kirche. Handbuch der katholischen Dogmatik)는 공의회의 영향을 받아 저술한 것으로, 교회의 신앙 교리를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자 한 책이다. 1968년에 영어로, 1969/1970년에는 독일어로 2권이 출판되었으며, 1979~1982년사이에 완전히 새로 개작되어 6부 13권으로 재출판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당시까지의 교의 신학 구조(신론, 삼위 일체론, 창조론, 그리스도론 등)와는 달리 전체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한 분이시고 삼위이시며 인간이 되신 하느님 아들의 영원한 원천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자이신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시는 완성자이신 하느님', '교회를 통한 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의 구원'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이 저서에서 슈마우스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자신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계시와 그 계시를 듣고 응답하는 인간의 신앙을 하느님과 인간의 구원적 만남으로 제시하는 인간학적인 관점을 강조하였다. 또 과거에 이루어진 모든 사건은 최종 목적인 종말의 완성을 위한 것이고, 인간 삶의 목적은 죽음을 넘는 절대적인 미래를 향한 것이므로 모든 신학적인 진술은 미래에 대한 개방성을 지향하여야 하며, 종말론이 모든 신학의 기준이 된다는 종말론적 관점도 부각시켰다. 교회 일치 운동이 신학에서 무엇보다 우선하는 과제라는 기본 입장이 드러나 있는 이 저서에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와 하느님께로 향해가는 인간과 세상은 타종교까지 포함하는 구원 역사의 과정이므로 타종교인의 구원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세상의 학문과 신앙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교회의 세상으로의 개방을 역설한 슈마우스는 신학과 교회를 고립에서 벗어나 타종교 및 세상의 학문과 대화하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개방성은 '진리의 위계 질서' 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입장을 따른 것으로, 교회의 개방 및 타종교에서의 구원 가능성 문제 등과 관련하여 공의회 이후 나타난 많은 신학적인 새로운 조류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 진리를 위협하는 잘못된 해석들이 생겨나는 것은 진리의 위계 질서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공의회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세 번째 단계의 그의 신학적 입장은 각 시대에 맞게 새로운 사상을 해석하고 조직 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진보적인 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의 전승을 중시하며 혁명적인 사상적 변화에 유보적으로 대응하는 보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기의 다른 주요 저서들로는 《왕국과 교회》 시리즈 중 하나인 《가톨릭적 그리스도교와 국가 사회주의적 세계관의 만남》(Begegnung zwischen katholoschem Christentum und nationalsozialisticher Weltanschauung, 1933)과, 《그리스도교의 본질》(Vom Wesen des Christentums, 1947), 《종말에 관하여》(Von den Letzten Dingen, 1948), 《인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Christus, das Urbild des Menschen) , 《우리 안에 사시는 하느님의 신비》(Vom Geheimnis des in unswohnenden Gottes, 1953), 《천사와 악마》(Engel und Dämonen, 1955), 《삼위 일체의 신비》(Vom Mysterium der göttlichen Dreieinigkeit, 1972) 등이 있다.
〔평 가〕 가톨릭 신학에서 변화와 각성을 촉구한 선구자로 평가받았던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승에 반대하는 신학자들을 '신학적인 십대' 라고 지칭하며 그들의 비판에 대해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앙》에서 그는 전승과 교계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또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을 갖고 학문적으로만 연구하는 신학에 반대하였다. 반면에 근본주의, 감성적인 신비주의, 성직자 중심의 교계 제도로의 전환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신학적인 입장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진보와 지속성'으로 대변된다. 슈마우스는 20세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교회의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시를 인간 삶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는 교의 신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각 방면의 사람들과 즐겨 대화하였던 사제로서, 자신의 신학적 사상을 삶 안에서 실천하고자 하였다.
※ 참고문헌 K. Forster, Tendenzen der Theologie im 20. Jh. Eine Geschichte in Porträts, Hans Jürgen Schulz Hag., 1967, pp. 422-427/ M. Eder, Biographisch-Bibliographisches Kirchenlexikon 9, 1995, pp. 322~327/ R. Heinzmann, Die Identität des Christentums im Umbruch des 20. Jh.s.,《MthZ》 38, 1987, pp. 115~133/ 一, Michael Schmaus in memoriam, 《MthZ》 45, 1994, pp. 123~1271 L. Scheffczyk, u.a. Hag., Wahrheit und Verkündigung(Festschr. M. S. zum 70. Geb.), Bd. I , 1967. 〔吳善子〕
슈마우스, 미카엘 (1897~1993)
Schmaus,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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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미카엘 슈마우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