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가톨릭 선교학의 선구자. 독일 민스터 대학 신학부의 선교학부 교수이자 뮌스터 선교학파의 창시자. '선교학 연구 국제 협회'(Internationale Institut für Missionswisssen-schaftliche Forschungen)의 설립을 주도하였고, '선교학 연구소'(Institut für Misionswissenschaft)의 설립에 기여함으로써 오늘날 가톨릭 선교학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다.
〔생애 및 활동〕 1876년 3월 29일 당시 독일 영토였던 알자스의 클라인란다우(Kleinlandau)에서 태어나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에서 역사학을 연구하고, 190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파스토르(Ludwig von Pastor, 1854~1928)의 초청을 받아 로마에서 4년 동안 《교황사》(Geschichte der Päpste) 간행에 협력하였으며, 1906년에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 대학에서 철학 박사와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회사 교수 자격을 얻었다. 그 후 뮌스터 대학에서 교의 신학과 교부학을 가르쳤으며, 1910년에는 선교학 강사 자격을 받았다. 한편 1909년 여름 정부로부터 독일 식민지에 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라는 요청을 받은 뮌스터 대학에서는 당시 교회사를 가르치던 슈미들린에게 이를 위임하였고, 슈미들린은 이듬해 여름 학기부터 '독일 보호령의 가톨릭 선교 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로써 최초의 선교학 강의가 이루어졌고, 독일 제국에서 식민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신학부에서는 교회의 선교 사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선교학 학부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뮌스터 대학은 가톨릭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선교학 학부를 개설한 대학이 되었다.
이때 슈미들린은 선교학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선교학 연구소'의 설립이 필요함을 대학에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가톨릭 평신도 협회에 의해 그의 의견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 1911년에 '선교학 연구 국제 협회' 가 설립되었다. 1914년에 정식으로 첫 선교학 정교수로 임명된 그는, 이후부터 선교학 특히 선교사(宣敎史)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선교학 학술지의 창간을 주도함으로써 선교학을 육성하였다. 또 대학 내에 선교 그룹을 조직하여 학생들 사이에 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교구 사제들을 위한 선교 회의를 여러 번 주재함으로써 이 회의들을 통해 교구 사제들을 위한 '선교협회' (Missionskonferenzen)가 창설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또 교사들과 고향을 방문하는 선교사들과 수도회 회원들을 위한 '선교학 연구 주간'(Misseonsstudienwoche)을 운영하였고, 교구 사제들로 구성된 '독일 외방전교회' 를 설립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슈미들린은 학문적 · 정치적 · 인간적인 동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단체를 상대로 논쟁을 벌였는데, 이는 그가 성격적으로 논쟁을 좋아하는 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학자적인 열성 때문이었다. 그가 논쟁을 벌였던 대상들은 그의 교수였던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에르하르트(Albert Joseph Maria Erhard, 1862~1940), 동료 학자들, 주교들과 성직자들,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 그리고 독일 수도자 장상 연합회 등이었다. 심지어는 나치 정권과도 충돌했다. 1934년에 그는 히틀러(A. Hiitler, 1889~1945)에게 경례하는 것을 거부하여 대학으로부터 은퇴를 강요받은 뒤 노이 브라이자흐(Neu-Breisach)에서 머물렀는데, 얼마 동안은 학술지 편집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1937년에는 그 일마저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9개월 동안 감옥에 감금당하였다. 중단 없이 나치 정권에 저항하였던 슈미들린 신부는 알자스의 쉬르메크(Schimeck) 근방에 있던 슈트루토프(Struthof) 강제 수용소에서 1944년 1월 10일 사망하였다.
〔저서 및 사상〕 슈미들린의 선교학 강의는 대부분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현재까지도 선교학 분야에서는 규범적인 자료로서 중요한 학문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저서들로는 《선교학 입문》(Einführung in die Missionswis-senschaft, 2nd ed., 1925) · 《가톨릭 선교학 개론》(Katholische Missionslehre im Grundriss, 2nd ed., 1923) · 《가톨릭 선교 역사》(Katholische Missionsgeschichte, 1925) 등을 비롯하여 1913년부터 출간되었던 《선교학 연구 논문집》(Missions-wissenschafliche Abhandlungen und Texte)과 《선교학 연구》 (Missionswissenschaftliche Studien) 등이 있다. 그는 단행본 외에도 여러 가지 정기 간행물을 출했는데, 특히 《선교학지》(Zeitschrift für Missionswisenenschaft)는 그가 1911년에 창간한 학술지로 여기에는 창간 후 25년 동안 슈미들린의 주요 논문 165편이 수록되어 있다.
슈미들린은 프로테스탄트 선교학자인 바르네크(GustavWarneck, 1834~1910)의 사상을 상당히 많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인용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사상과 신념을 주장하면서 그의 사상을 비판하고 논박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루뱅 학파는 교회의 부식(扶植)'(plantatio Ecclesiae)을 선교의 주 목표로 강조하며 발전한 반면에, 슈미들린이 기초를 놓아 발전한 소위 뮌스터 선교학파는 복음 선포와 구원을 강조하였다. 뮌스터 선교학파의 이러한 노선은 슈미들린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슈미들린이 사망한 후 루뱅 선교학파와의 선교학적 관점 차이로 논쟁이 되었는데, 이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해결되고 정리되었다. → 샤를, 피에르 ; 선교학 ; 선교학 연구 국제 협회 ; 선교학 연구소)
※ 참고문헌 E. Stange ed., Die Religionswissenschaft der Gegenwart in Selbstdarstellungen, Bd. 3, Leipzig, 1927, pp. 167~191/ Karl Müller, Jo-seph Schmidlin(1876~1944) : Papsthistoriker und Begründer der katholis-chen Missionswissenschaft, 1989/ Josef Glazik ed., Joseph Schmidlin : Lebenund Werk, 50 Jahre katholische Missionswissenschaft in Münster, 1911~ 1961, Münster, 1961, pp. 22~33/ Gerald H. Anderson et al. eds., Joseph Schmidlin, Mission Legacies, 1944, pp. 402~409. 〔朴金玉〕
슈미들린, 요제프 (1876~1944)
Schmidlin,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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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