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 알베르트 (1875~1965)

Schweitzer, Al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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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바이처.

알베르트 슈바이처.

독일의 의사. 신학자. 목사. 철학자. 오르간 연주자. 적도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의사 선교사로서 인류의 형제애를 실천한 사람이다.
〔생 애〕 1875년 1월 14일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알자스(Elsaß) 지방 카이저스베르(Kaisersberg)에서 태어나 귄스바흐(Günsbach)에서 자랐으며, 1894년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 대학에 들어가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파리와 베를린에서 신학과 철학을 계속 공부하여 1900년에 칸트(I. Kant, 1724~1804)의 종교 철학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02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 1893년부터는 오르간 연주자로도 활동하면서 <바흐 : 음악가이자 시인>(J.S. Bach: le musicien-poète, 1905)이라는 논문과 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설계에 관한 논문(1906)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한편 1905년에 아프리카 열대 지방에서 의사로서 봉사하기로 결심한 슈바이처는,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1913년에 의학 박사가 되었고, 같은 해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Lambaréné)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의료 활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이는 랑바레네가 프랑스령이었고 슈바이처는 독일 국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바이처는 이때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문화 철학 연구를 하여 '생명 경외 사상' 을 자신의 핵심적인 윤리 사상으로 정립하였다. 1917년에는 프랑스의 전쟁 포로가 되어 보르도(Bordeaux) · 가래송(Garaison) · 생레미(St. Remy) 등지에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어 컨스바흐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1924년에 아프리카로 다시 갈 수 있게 될 때까지 유럽 각국을 순회하면서 강연과 오르간 연주 등을 하는 한편, 철학적이고 자서전적인 작품 저술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 경외 사상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27년까지 랑바레네에 머물면서 병원을 재건하는 한편 의료 활동을 하였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강연과 오르간 연주로 각국을 순방하던 중 1928년에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괴테상(賞)을 수상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유럽과 랑바레네를 왕래하였고, 195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계속 유럽과 랑바레네를 오가며 국제 평화 문제에 몰두하였는데, 특히 핵무기와 핵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월남의 전쟁 종식을 호소하였다.
1911년부터 아내와 함께 바흐의 작품을 편집하여 《바흐의 오르간 작품》(Bachs Orgelwerke, 1912~1914)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전세계인들에게 널리 읽혀졌던 <현세계의 평화 문제>(Das Problem des Friedens in der heutigen Welt, 1954)는 노벨상 수상식 때 그가 한 유명한 연설문이다. 1965년 9월 4일 랑바레네에서 사망하였다.
〔윤리 사상〕 배경과 문화 비판 : 슈바이처의 윤리 사상인 '생명 경외 사상'은 문화에 대한 비판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생겨났다. 그 물질 문화는 절정에 도달하였으나 정신 문화는 퇴보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문화를 비판한 슈바이처는, 1923년에 '문화의 몰락과 재건'(Verfall und Wiederaufbau der Kultur)과 '문화와 윤리'(Kulturund Ethik)라는 주제로 《문화 철학》(Kulturphilosophie)을 출간하였다. 문화를 정신의 창조물로 본 그에 의하면, 문화는 어떤 생물학적인 법칙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소멸과 몰락 이면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문화의 몰락은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창조적인 힘의 파괴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문화를 지탱하는 힘은 내적인 힘이고, 이 힘으로부터 문화에 대한 의지, 문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식과 확신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몰락이 닥쳐왔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문화의 몰락은 인간의 사고가 흐려졌기 때문인데, 인간의 사고는 문화에 대한 자신의 임무를 상실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먼저 철학을 고발함으로써 문화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현대 인간은 자유를 상실하였고···인간성에 도취하였으며, 조직 사회를 위해 자신의 정신적 자주성과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자이며, 모든 점에 있어서 문화의 이념에 대한 장애를 체험한 자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인간은 캄캄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왔다. 현대의 인간들이 처해 있는 위험한 처지에 대해 철학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인간들을 돕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가 진보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데에 따라 진정한 문화가 용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렵게 된다는 무서운 진리를 아직 아무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화의 몰락은 철학이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심화시키고 탐구하며 해답을 찾는 것이 철학의 과제라면, 철학은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로부터 소원해져 있었고 문화가 필요로 하는 자양분을 제공하지 못하였으며 문화의 몰락 현상을 주의 깊게 통찰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대한 철학의 과오였다고 지적하였다.
슈바이처는 또한 문화의 몰락에 대한 원인을 윤리의 결여에도 두었다. 하지만 그가 시도한 문화에 대한 비판은 문화에 대한 재건과 직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슈바이처의 문화 비판은 문화에 대한 권태와 회의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몰락해 가고 있는 문화를 재건하고자하는 의지의 표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와 윤리 : 슈바이처는 문화의 재건을 위한 열쇠는 윤리의 재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문화와 윤리의 관계를 고찰해야 할 당위성이 제시된다. 문화의 핵심은 윤리적인 것이며 문화의 진보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윤리적인 진보라고 파악한 그는, 물질적인 진보는 단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문화적 진보에 열광한 나머지 윤리의 힘이 쇠퇴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고, 그 결과 물질적인 진보를 문화와 동일시하는 착각에 사로잡혔다고 진단하였다.
그는 또 문화를 '개인과 사회의 정신적 · 물질적 진보'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슈바이처는 동 시대인들이 진보로 보는 것에서 몰락을 보았다. 그에 의하면, 진보란 개인과 단체의 생존 경쟁이 약화되고 줄어드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생존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면 들수록 문화의 진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진보를 재는 척도는 생존 경쟁의 감소이다. 생존 경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발생하는데, 인간은 자연 안에서 자연을 거슬러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을 거슬러 싸워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의 생존 경쟁을 줄이고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성의 지배가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확대되고, 이성의 지배 영역이 심화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문화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문화는 자연에 대한 이성의 지배와 인간의 사고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인간의 사고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이성은 인간 상호간의 생존 경쟁을 저지시키고, 개인과 사회 전체와 다수의 복지를 고려하여 결정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문화의 핵심은 윤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윤리적 행위는 인간의 사고와 의지를 지 배함으로써 성취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전통만을 고수하고 충분하게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의 상실과 퇴보를 체험한다. 슈바이처에게 있어서 윤리는 문화를 조종하는 '열쇠' 일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계획적이며 의미 깊은 행위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는 오직 윤리적 이상(理想)의 도움으로 진보의 올바른 궤도를 유지시킬수 있다고 보았다. 진보는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윤리적 이상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진보란 진정한 의미의 진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와 윤리의 재건 : 문화와 윤리의 재건을 위한 슈바이처의 출발점은 회의주의 · 불가지론 또는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이었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삶과 생명에 대한 의지를 제시하였다. 생명에 대한 의지를 통해 세계와 생명을 긍정하고 윤리를 지탱시켜 주는 근본 원리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 근본 원리는 사고의 필연성을 전제로 한다. 그는 인간에게 용기를 주고 인간 실존의 근원을 지탱시켜 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의식은 "나는 사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이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생명은 홀로 살려는 의지를 키울 뿐만 아니라 여러 생명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의지를 키우고 있는 이 여러 생명 가운데에는 나의 생명과 전혀 무관한 타자(他者)의 생명이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생명은 내 안에 존재하는 생명의 연장 또는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생명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이 엄청난 비극을 제공하고 있음을 통찰하고, 자신의 고유한 실존을 위한 생명이 타자의 생명을 요구함을 통찰한다. 그래서 타자는 어떤 이방인으로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내부에는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의 가치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신비스러운 절박감이 내재되어 있다. 세계는 생명 의지에 대한 자아 분열의 비참과 비극의 장소이다. 한 존재는 타존재의 희생을 요구하고, 한 생명은 타생명을 파괴해 버린다. 그러나 내 안에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의지는 타자도 나와 동일한 생명에 대한 의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결과 나의 생명 의지는 타자의 생명 의지를 인정하고, 타자의 생명 의지와의 일치를 원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들을 통하여 슈바이처는 '생명 경외' 라는 윤리 사상을 도출해 내었다. 생명 경외란 슈바이처가 주장하는 윤리의 핵심적인 보루이며,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왔던 세계 긍정 · 생명 긍정이라는 윤리를 포함하고 있다. 이로써 슈바이처는 윤리적 세계와 생명 긍정의 세계관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윤리적 세계와 생명 긍정의 세계관은 슈바이처가 지향하는 문화 재건의 이상이고, 이러한 세계관으로부터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 이라는 기본 명제를 파생시킨다. 세계는 근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생명의 의지는 가능한 한 삶을 끝까지 살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명에 대한 의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파괴되고 있다. 그럴수록 생명 의지는 생명의 부정을 뛰어넘어 생명 긍정을 지향해 야 한다. 즉 생명 경외라는 윤리의 기본 원리를 구현하여야 한다.
새로운 윤리인 생명 경외 : 슈바이처는 자신의 《문화철학》 제2권 <문화와 윤리>에서 생명 경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그리고 제3권과 제4권을 통하여 생명 경외의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그의 죽음으로 계획된 저서의 출판은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문화와 윤리>에 근거해서 그의 생명 경외에 대한 개념을 추적해 볼 수는 있다.
슈바이처가 이해하는 세계관의 핵심에는 삶(생명)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가 이해하는 세계관은 인간의 자아 의식이고, 이 자아 의식의 가장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사실은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이다." 이로써 슈바이처는 삶을 생명에 대한 의지와 동일시하였다. 모든 생성 안에는 앞으로 계속 전진하고자 하는 충동이 있고, 이 충동은 바로 생명에 대한 의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의지로서의 삶은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자아 보존만을 고집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여 항상 더 높은 가치를 향하여 상승하고자 한다. 인간의 경우 이러한 생명 의지는 고유하고 특수한 방법으로 상승을 추구하며, 삶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롭고 의식적이고 합목적적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인 단계를 통하여 실현된다. 인간 안에 내재하는 상승의 추구는 지속적으로 이상적인 삶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생명 경외의 세계관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부단하게 사고하고, 그 결과 자아 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세계관을 통해 인간은 생명 부정과 세계 부정 대신에 생명 긍정과 세계 긍정에 대한 내적인 태도를 견지할 책임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슈바이처는 생명 경외를 무한하고 근원을 규명할 수 없는, 항상 앞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의지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 의지 안에 모든 존재가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 경외는 창조의 비밀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비밀을 통해 모든 존재가 생명의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긍정한다. 인간이 타인의 삶에 대해 자신의 관계를 외경스러운 태도로 결정할 때 거기에서 타인의 생명 의지와의 합일이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이러한 합일을 통해 생명 의지에 대한 갈등과 분열은 상쇄된다.
윤리의 기본 원리는 선과 악의 정확한 구별을 내용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윤리는 모든 생명 의지에 대해 동등한 생명 경외를 나타내 보이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 결과 슈바이처가 도달한 윤리의 기본 원리는 "생명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것은 선이고, 생명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것은 악"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원리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포함하고 있다. 즉 생명 경외라는 윤리적인 기본 원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절대적인 통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갈등과 모순에 예속되어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생명은 자신의 의지를 거역하여 또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침해하는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수많은 윤리는 이러한 갈등을 타협을 통해 극복하려고 모색한다. 즉 어떤 규정을 만들어 보편화시키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슈바이처의 생명 경외 윤리는 이러한 타협을 거부하는데, 이 타협은 임의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좌우될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보존과 증진이 선이라면 항상 선이며, 생명의 파괴와 침해가 악이라면 언제나 악인 것이다.
슈바이처는 의식의 가장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사실, 즉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로써 나는 생명의지라는 사실을 의식한다. 모든 맥박과 호흡은 신비스러운 생명 의지의 표현이다. 나는 살고자 하고, 나의 생명을 보존하고 완성하고 싶어한다. 아울러 모든 존재의 존재 이유 역시 생명 의지라는 것을 의식한다. 생명 의지에 대한 보편적인 의식으로부터 직접적이고 기본적인 윤리의 원리가 파생된다.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의지는 사고를 통해 생명 경외로 이행한다. 살고 싶어하는 생명의 맹목적인 본능으로부터 사고를 바탕으로 한 의식적인 의지가 발생한다. 사고를 바탕으로 한 생명 의지는 생명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긍정하고 생명의 파괴와 침해에 저항한다. 아울러 사고를 바탕으로 한 생명 의지는 개별적인 존재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의 영역 일반에까지 확대된다. 자아 안에서 완성을 충동질하는 생명 의지가 나 이외에 타자의 생명에도 나타나고 있다. 타자의 생명 안에 나타나는 의지도 나의 생명 의지와 마찬가지로 무한하고 신비스러운 생명 의지의 현상이다. 타자의 생명 역시 나에게 생명에 대한 경외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고를 통해 의식한다. 생명에 대한 의지로부터 "생명을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것은 선이고, 생명을 파괴하고 침해하는 것은 악"이라는 생명 경외의 윤리적 기본 법칙이 생겨난다.
슈바이처의 윤리관에 대한 평가 : 생명 경외의 윤리는 그 적용 영역과 통용 영역에서 절대적이다. 이 윤리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 생명 경외 윤리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해 무한하게 확대되는 책임을 요구하는데, 생명 그 자체는 거룩하고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하나의 윤리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윤리의 영역에 포함시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하나의 생명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이 세계는 생명 의지의 갈등과 모순으로 엇갈리는 비극의 장소가 되고 있다. 생존 경쟁은 모든 생명체의 세계에 침투하여 투쟁의 장소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는 길에 대해 생명 경외 윤리는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상황 아래에서 행동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기를 거부하고 개개인의 책임 아래 윤리적 결단을 내리도록 위임한 것은 생명 경외 윤리가 안고 있는 한계이자 약점이다. 이러한 한계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생명 경외는 슈바이처의 종교, 철학 그리고 세계관을 형성하고 동시에 그의 윤리적 사상을 대변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아울러 생명 경외는 사고의 필연성을 전제로 하는 윤리로서 몰락해 가는 윤리와 문화를 재건하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A. Schweitzer, Verfall und Wiederaufbau der kultur, München, 1923/ 一, Kultur und Ethik, Miinchen, 1960/ 一, Aus minem Leben und Denken, Leipzig, 1931/ - Die Lehre von der Ehrfurcht vordem Leben, München, 1966/ O. Spengler,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München, 1923/ M. Strege, Albert Schweitzers, Religion und Philosophie, Tübingen, 1965/ E.W. Kantzenbach, Albert Schweitzer, Wirklichkeit und Legende, Göttingen, 1969/ T. Rees, Albert Schweitzer, Ehrfurcht vor demleben, Karlsruhe, 1947/ K. Raab, Albert Schweitzer, Personlichkeit und Denken, Düsseldor, 1937/ H. Groos, Albert Schweitzer, Größe und Grenzen. Eine kritische Würdigung des Forschers und Denkers, Miinchen, 1974/ W. Picht, Albert Schweitzer, Wesen und Bedeutung, Hamburg, 1960/ 0. Kraus, Albert Schweitzer, Sein Werk und seine Weltanschauung, Charlottenburg, 1926/ J.B. Hygen, Albert Schweitzers Kulturkritik, Göttingen, 1955/ H.W. Bähr herg., Albert Schweitzer, Sein Weg und sein Denken, Tübingen, 1962/ G. Seaver, Albert Schweitzer als Mensch und als Denker, Göttingen, 1950. 〔安明玉〕
〔성서학자로서의 업적〕 슈바이처가 신약성서 분야에 미친 영향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지대하다. 그는 1894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홀츠만(H.J. Holtzmann, 1932~1910)에게 공관 복음을 배우면서 도덕적 이상주의의 입장에 근거한 당대의 자유주의적 예수관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는 이미 학부 시절에 마태오 복음 10장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人子]의 가까운 도래에 대한 말씀과 마태오 복음 11장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서 묵시주의적인 기대를 공유한 예수의 종말론을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마르코 복음을 위주로 예수의 생애를 재구성한 홀츠만의 결론을 넘어섰다. 1900년에는 성 만찬이 본래는 속죄의 죽음의 제사가 아니라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 기도였다는 연구 논문(Das Abendmahl imZusam-menhang mit dem Leben Jesu und der Geschichte des Urchristentums, Tübingen, 1901, Heft 1)을 발표하여 박사(Lizentiat)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 이듬해에는 <메시아성의 비밀과 고난의 비밀, 예수전(傳)의 한 스케치>(Das Messianiatäts und Lei-densgeheimmis, Eine Skizzze des Lebens Jesu, Tubingen)를 발표
하여 1902년에 대학 강사로 임명되었다. 슈바이처는 이 논문들의 근간을 이루는 종말론적인 예수상(像)을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Von Reimarus Zu Wrede, Tübingen, 1906)에서 집약적으로 발전시켰는데, 이 책이 국제적으로 크게 호응을 얻자, 《예수 생애 연구사》(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Tübingen)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1913년에 제2판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18~19세기에 행해진 모든 예수 연구사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자유주의적 예수전들은 한결같이 작가의 눈에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는 인격적 구조를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에 의하면 예수는 합리주의에 의해 설계되고 자유주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으며, 현대 신학에 의해 역사적 옷을 입은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의 입장에서 브레데(W. Wrede, 1859~1906)가 마르코 복음에 적용한 메시아 비밀 이론을 비판하고, 예수는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면서 종말론적 윤리를 가르쳤다고 주장하였다. 또 산상수훈에 나타난 윤리적 가르침은 종말의 상황에 적용되는 소위 중간 윤리(Interimsethik)라고 하였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대망하면서 바로 이 중간 윤리를 가장 철저하게 살아간 분이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마태오 복음 10장 23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이 다시금 귀환하고도(마르 6, 30 : 루가 10, 17) 사람의 아들이 도래하지 않자 예수는 자신의 수난으로 종말론적 고난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를 도래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또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는 자신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지 않았음에 절망하며 죽어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매달려 함께 돌아감으로써 역사가 진행되는 한 그에 대한 회상은 언제나 반복되어 전해진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예수 연구를 다음과 같은 시적(詩的)인 초대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예수는 그 옛날 갈릴리의 호수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름없는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나를 따르라' 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우리 시대를 위해 그가 완성해야 할 과제로 우리를 부르고 명령한다. 현명한 사람이건 단순한 사람이건, 그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수고와 갈등 그리고 고통에 함께하면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 그가 누구인지를 자신의 체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슈바이처의 신학 연구는 《사도 바오로의 신비주의》(Die Mystik des Apostels Paulus, Tübingen, 1930)라는 그의 또 다른 주저에서 완결되었다. 슈바이처는 《종교 개혁에서 현대에 이르는 바오로 연구사》(Geschichte der paulinischen Forschung von der Reformation bis auf die Gegenwart, Tübingen, 1911)에서 카비쉬(R. Kabish)의 노선에 동조하며 바오로의 종말론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사된 것을 나중에 《사도 바오로의 신비주의》에서 조직적으로 심화하고 체계화시켰다. 그에 의하면 바오로는 종교사학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적 신비 종교에 내용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철저한 종말론을 계승하여 종말론적인 신비주의를 그리스적인 종교 언어의 형식을 빌려 표상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부활한 예수의 발현 체험에 근거한 바오로의 종말론적인 신비주의는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을 지닌다. 그것은 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의 윤리적인 신비주의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역사적 체험에 동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과 관계를 갖는다.
예수와 바오로에 관한 슈바이처의 연구는 20세기 신약성서학계가 역사 연구를 주관주의에서 객관주의로, 비종말론적 전망에서 종말론적인 전망으로 방향을 전향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슈바이처는 예수 연구에서 종말론과 중간 윤리를, 바오로 연구에서는 윤리적으로 정향된 종말론적인 신비주의를 학문적 토론의 주제로 부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보다 의사로서 생명에의 봉사를 평생 실천함으로써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었다.
※ 참고문헌  A. Schweitzer, Das Abendmahl im Zusammenhang mitdem Leben Jesu und der Geschichte des Urchristentums, Tübingen, 1901, Heft 1/ 一, Das Messianitäts und Leidensgeheimnis, Eine Skizze des Le-bens Jesu, Tübingen, 1901(윤성범 역, 《예수전 연구》, 세계 기독교 사상 전집 4, 1975, pp. 11~150)/ 一, Geschichte der paulinischen Fors-chung von der Reformation bis auf die Gegenwart, Tübingen, 1911/ 一, 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Tübingen, 1913/ 一, Die Mystikdes Apostels Paulus, Tübingen, 1930/ 一, Aus meinem Leben und Den-ken, Leibzig, 1931(지경자 역, 《나의 생애와 사상 -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홍신문화사, 1990)/ G. Kümmel, Zur Einführung, in Die Mystik des Apostels Paulus, pp. Ⅰ~ ⅠⅩⅡ/ 一, Albert Schweitzer als Paulusforscher, in Rechtfertigung, Festschrift E. Käsemann, 1976, pp. 269~289/ E. Grässer,《TRE》 30, pp. 675~682. 〔白雲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