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발리에, 시르 월리스 조제프 (1841~ 1923)

Chevalier, Cyr-Ulyse-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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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프랑스의 역사가. 서지학자.
1841년 2월 24일 프랑스 센에우아즈(Seine-et-Oise)의 랑부예(Rambouillet)에서 태어나 됭케르크(Dunquerque)에서 공부하였고, 1853년부터 드롬(Drôme) 지방의 로망스(Romans)에서 생활하던 중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1862년 신학교에 들어가 1867년 5월 30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 당시 드롬 지방의 고고학회 및 통계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델포이'(Delphoi) 아카데미의 통신 회원이자 프랑스 역사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며 학문 연구에 전념하던 그는, 이때 델리즐(Léopold Victor Delisle, 1826~1910)과 친분 관계를 맺었다. 이후 델리즐은 일생 동안 가장 탁월한 스승이자 가장 충직한 친구로 슈발리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슈발리에가 소속된 교구의 주교는 하느님이 그에게 학문적인 소명을 부여하였음을 인정하고, 그가 이 소명에 충실히 응답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학문 연구 활동을 배려해 주었다. 1870~ 1877년 그랑주(Granges) 지방의 생모리스(St. Maurice)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한 그는, 1881년 10월 로망스 대신학교의 고고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1877년 7월에는 리용 가톨릭대학 신학부의 교회사 교수가 되었다. 이때 그는 중요한 학회 활동과 연구에 참여하면서 질적 · 양적인 면에서 탁월한 학문적 기량을 선보였다. 1877년에 '금석문과 고전 아카데미' (Académie des Inscriptions et Belles-Lettres)의 통신 회원이 되었고, 1912년부터는 자유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많은 저서들과 논문들 및 서지(書誌) 목록을 정리 · 저술하였다. 특히 1903년에 그가 편찬한 서지 목록은 최소 466호 이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1912년까지 그가 저술하여 출판한 글들은 총 512종에 이른다.
슈발리에는 자신이 학문적 · 과학적으로 입증한 진리가 부당하게 위협받거나 명백한 근거도 없이 진리로 간주되는 비과학적인 상황이 벌어진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 기꺼이 논쟁에 끼여드는 성격이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그는 당시 두 가지 유명한 논쟁에 깊이 관여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토리노 성의(聖衣)' 의 진정성에 관한 1900년의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본래 나자렛에 있다가 천사들에 의해 이탈리아의 도시 로레토(Loreto)에 옮겨졌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 (SantaCasa)에 관한 1907년의 논쟁이었다. 그가 이 두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는 이때 고증학적 연구 성과를 근거로 논쟁에 임하여 논쟁 상대자가 이론적인 반박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1923년 10월 27일 로망스에서 사망하였다.
〔연구 및 저술 활동〕 슈발리에의 저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선 《중세사 사료 편람》(Répertoire des Sources historiques du Moyen Age)을 들 수 있다. 이 저서 제1권은 1~1500년에 살았던 모든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 및 저서들에 관한 연구인 《인명 서지학》(Bio-bibliographie)으 로 1877 ~ 1886년에 간행되었고, 제2권은 지지학(地誌學)에 관련된 문헌 편찬 목록인 《지지 서지학》(Topobibliographie)으로 1889~ 1903년 사이에 간행되었다. 또 《최신 갈리아 그리스도교》(Gallia christiana novissima)는 본래 참사 위원이었던 알바네스(J.H. Albanes)가 쓰기 시작한 것이지만 슈발리에가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 · 정리하고 내용을 보강하여 1899~1920년에 출판한 것이다. 1889년에 출판된 제1권에는 엑스(Aix) · 압트(Apt) · 프레쥐(Fréjus) · 가프(Gap) · 리에즈(Riez) 및 시스트롱(Sisteron) 교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1899년과 1900년에 출간된 제2권과 제3권은 각각 마르세유(Marseille)와 아를(Arles) 교구를 다루고 있다. 여섯 권으로 된 《성가학편람》(Repertorium hymnologicum)은 로마 전례 초기부터 당시까지 사용한 약 3만 개가 넘는 성가 및 각종 찬송 ·화답송 등을 모은 목록으로, 1889~1903년 사이에 《볼랑디스트 연보》(Analecta Bollandiana)를 발췌 · 보충하여 출판되었고, 이후 다시 《전례 총서》(Bibliothèque liturgique)라는 제목으로 부분적으로 편찬되었다. 《전례 총서》 제1 ~ 2권과 제5~9권에는 랑(Laon) · 랭스(Reims) ·바이외(Bayeux)의 미사 통상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프랑스 동남부에 있는 도피네(Dauphiné) 지방의 역사, 특히 중세 시기에 관한 방대한 연구와 기록도 출판되었다.
〔의 의〕 슈발리에의 방대한 저서들이 모두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중 몇몇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있지만,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섭렵하여 저술한 방대한 그의 문헌 편찬 목록들은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 역사학 특히 교회사 연구의 발전에 매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는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공헌과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참고문헌  G. Bardy, 《Cath》 Ⅱ, pp. 1048~1049/ M.I.J. Rousseau, 《NCE》 3, p. 55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