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협주곡을 제외하고, 가곡 · 피아노곡 · 실내악곡 · 교향곡 · 라틴어 및 독일어 미사곡 등다양한 장르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대표적인 초기 낭만파 작곡가이다.
1797년 1월 31일 빈(Wien) 근교의 작은 마을 리히텐탈(Lichtental)에서 교장인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어(FranzTheodor Schubert)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비에츠(ElizabethVietz) 사이에서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났으며, 1808~1813년에는 빈 궁정의 소년 합창단에서 소프라노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궁정 오르간 연주자 루치카(WenzelRuzicka)에게서 오르간과 피아노를, 궁정 악장 살리에리 (Antonio Salieri, 1750~1825)에게서 노래 반주법과 대위법 등을 배웠으며, 변성기 후 귀향하여 3년 간 예비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였지만 작곡에 전념하기 위해 이내 그만두었다. 그 후 1818년과 1824년에 에스테르하치(Johann Esterházy) 공작의 피아노 가정 교사를 하기 위해 헝가리의 젤리츠(Zseliz)에 머문 것 외에는 줄곧 빈에서 가난한자유 작곡가로서 생활하였다. 생활고와 병에 시달리다가 베토벤(L. van Beethoven, 1770~1827)이 사망한 이듬해인 1828년 11월 14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작곡 활동 및 작품〕 슈베르트는 자신의 기억력을 이용해 즉흥적으로 작곡한 후 수정 없이 완성하곤 하였다. 1818년까지 리히텐탈에서 작곡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하이든(F.J. Haydn, 1732~1809) · 모차르트(W.A. Mozart, 1756~1791) · 베토벤의 빈 고전 양식을 모델로 하였으나, 가곡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드러내었다. 1822년까지 무대 음악에 열중하였던 그는, 이후 사망할 때까지 열광적으로 창작에 몰두하였는데 현존하는 그의 많은 걸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작곡된 것들이다. 이 곡들의 풍부한 선율과 아름다운 화성은 고전적 단정함과 낭만적 서정성을 넘치도록 반영하고 있다.
가곡집 : 슈베르트는 세 개의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D795, 1823, 뮐러 작시) ·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 1827, 뮐러 작시) · 《백조의 노래》(Der Schwanengesang, D957, 1828, 7개는 렐슈탑 작시이고 6개는 하이네 작시)에 포함된 600여 곡의 가곡을 작곡함으로써, 고전 시대까지도 주목받지 못하였던 예술 가곡 장르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일명 '가곡의 왕' 이라고 칭해지는 슈베르트의 가곡 형식은 단순 장절 가곡(<방랑>) · 변형 장절 가곡(<송어>) · 일관 작곡 가곡(<보리수〉)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후대 가곡들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대부분 그의 가곡들은 가정이나 친구들과 의 사교 모임에서 작곡가 자신에 의해 불려지곤 하였다.
이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면서도 친구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을 정도로 밝고 사교적이었던 그의 성격 탓이라기 보다는 당시 빈의 음악적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곡이 공공 연주회장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1817년 궁정 오페라 가수 포글(Johan Michael Vogl)에 의해서였고, 서정적 예술 가곡이 올바른 평가를 받게된 것은 슈만(R. Schumann, 1810~1856)의 시대에 와서였다.
슈베르트 가곡의 핵심은 선율에 있다. 예컨대 냇물을 차고 오르는 듯한 <송어>(Die Forelle)의 발랄함과 신선함, <보리수>(Der Lindenbaum)의 부드러움과 은밀함 등에서 보이듯 그의 선율은 단순하고 아름답다. 또 반주는 '성격적 음형' 을 반복하며 그러한 선율에 동참한다. 슈베르트에게 있어서 시(詩)는 영감의 원천이지만, 이 시는 분위기와 느낌을 위한 길잡이로만 사용되었다. 그의 가곡을 결정짓는 것은 시라기보다는 그의 풍부한 시정과 상상력이었고, 그래서 그의 가곡은 마치 기악 음악처럼 언어의 논리성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교회 음악 : 슈베르트의 가곡이 지닌 특징들은 그의 교회 음악곡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교회 음악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좁은 의미의 전례 음악으로 제한되며 이전 세기에 누렸던 중심적인 역할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는 계몽주의와 시민 혁명 등 시민 사회로 하여금 교회로부터 이탈하게 만든 세속화와 체칠리아주의로 압 축되는 가톨릭 교회 내부의 역사주의적 경건주의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슈베르트는 <아베 마리아>(AveMaria) 등 주옥 같은 노래들과 <독일어 레퀴엠>(GermanRequiem, D621, 1818) 및 여러 개의 <탄툼 에르고>(Tan-tum ergo)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 라틴어와 독일어로 된 <스타밧 마테르>(Stabat Mater, D175, 1815 ; D383, 1816) · <시편 92>(D953, 1828) 등 많은 합창곡들을 작곡하였다. 특히 그의 4개의 <작은 미사곡>(1814~1816)과 2개의 <장엄 미사곡>(D678, 1822 ; D950, 1828)은 매우 유명하다. 전자가 하이든의 미사곡을 모델로 작곡된 고전적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는 곡이라면, 후자는 모티브뿐만 아니라 음향까지도 개인적인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당시의 대규모 교향곡 같은 미사곡 양식과 낭만적인 정신을 융합시킨 곡이다.
슈베르트의 미사곡들은 그의 음악적 상상력이 개개의 가사를 뛰어넘어 절대적인 무엇을 직관적으로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문병 온 친구에게 자신의 작곡 계획을 설명하는 초연함을 지녔었고, "나는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느끼는 일이 많다"는 말로 영원한 하느님의 현존을 향하고 있는 자신의 종교적 심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미사곡을 포함한 그의 성악 음악과 기악 음악의 서정성은 모두 피안(彼岸)의 것을 지향하는 그의 낭만적 · 종교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아노곡 : 슈베르트는 시적인 피아노 소품부터 <방랑자 판타지>(Wanderer Fantasie, D760, 1822)에 이르기까지 당시 일반적이었던 모든 장르와 형식을 작곡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15개의 피아노 소나타, 특히 1825~1826년에 작곡된 4개의 중기 소나타와 1828년 9월에 작곡된 3개의 후기 소나타, 6개의 <음악의 순간>(Mo-ments musicaux, D780, 1823) · <즉흥곡>(Impromptus, D899 4곡과 D935 4곡, 1827) 등이 있다. 이외에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 D810, 1824)를 포함한 많은 실내악 작품들과 8개의 오케스트라 서곡, 그리고 <미완성 교향곡>(D944, 1825~1828)을 포함한 8개의 교향곡이 있다.
슈베르트는 31세의 짧은 생애 동안에 방대한 작품들을 남겼으나, 대부분 생전에 출판되지 못하였다. 만디체브스키(Mandyczewski)가 1884년부터 1897년까지 연대순으로 편찬한 40권으로 된 《슈베르트 전집》이 첫 출판된 책이다. 그 후 1951년에 도이치(D.E. Deutsch)가 정리한 <슈베르트 작품 목록>(D1부터 D998까지)에 따라 《슈베르트 신전집》이 1964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했으므로,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생전의 소망은 그의 죽음 이후에야 이루어진 셈이다. (→ 가톨릭 음악 ; 미사곡)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2, 세광음악출판사, 1991, pp. 460, 464, 468, 470, 490/ W. Pfannkuch, 《MGG》 12, pp. 106~185/M.J.E. Brown, 《NGDMM》 16, pp. 752~81 1/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Personenteil 2, Schott's Söhne, 1961, pp. 638~642. 〔趙善字〕
슈베르트, 프란츠 페터 (1797~1828)
Schubert, Franz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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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