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헨, 미카엘 (1857~1929)

Steichen,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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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슈타이헨 신부.

미카엘 슈타이헨 신부.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역사가.
〔생애 및 저서〕 1857년 룩셈부르크 뒤들랑주(Dudelange)의 열심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고 어린 시절을 룩셈부르크와 프랑스에서 보냈다. 상업가가 되려고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한 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런던으로 유학하였으나, 22세 때 사제 성소를 느끼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이시(Issy)의 소신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운 다음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본래 예수회에 입회하고자 하였으나, 조금이라도 빨리 외국에 나가 선교하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려는 열성 때문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던 것이다.
1886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일본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일본에 도착하였다. 이와데현(岩手縣) 모리오카(盛岡) 본당에 있다가 곧 스키지(築地)에 있는 신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1891년에는 시스오카(靜岡) 본당 신부가 되었고 1896년에는 동경 아사부(麻布)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그리고 1898년에는 《1637~1638년 시마바라(島原)의 난》(L'Insurrection de Shimabara de 1637~1638)을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동경에서 간행하였으며, 1902년에는 《사복음서》(四福音書)를 번역 ·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슈타이헨이 구술한 것을 다카하시 고로(高橋五郎)가 받아쓴 것으로 일본 최초의 가톨릭 성서 번역이었다. 1903년에는 그의 대표작 《그리스도교 영주들, 1549~1650년 일본의 종교와 정치사의 한 세기》(The Christian Daimyos, A Century of Religious and Political History of Japan 1549~1650)를 영어로 출판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프랑스어로 개정 · 증보하여 홍콩에서 간행하였다. 그리고 그 해에는 또 그의 구술을 구메구니 다케시(久米邦武)가 받아쓴 《기독진적고》(基督眞蹟考)가 출판되었다. 1905년에는 선교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유럽 각국을 순방한 후 1907년 스키지로 돌아와 이듬해 요코하마의 와카바마치(若葉町) 본당 신부가 되었고, 1909년에는 성심여자학원 지도 신부로 부임하였다. 1911년부터는 가톨릭 잡지 《고에》(聲)의 주간이 되어 시후데이 시영(秋庭紫苑) , 스다이히앵(須田井飛燕), 스데이셍(洲井泉), 스데이시행(捨井芝園) 등의 필명으로, 일본어로 쓴 글을 발표하였다. 1918년에는 스키지의 신학교 교장과 본당 주임을 겸임하게 되었는데 이때 후지이 히로다미(藤井伯民)에게 구술을 받아쓰게 하여 간행한 것이 《소년 성서》였다. 1923년 관동 대지진때 충격을 받고 건강이 나빠져 세키구치(關口) 본당에서 쉬다가 1928년 홍가카미(本鄉上) 후지마에치(富士前町) 본당 신부가 되었지만, 그 해 말부터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1929년 7월 26일 73세로 사망하였다.
〔업 적〕 그의 업적은 《그리스도교 영주들, 1549~1650년 일본의 종교와 정치사의 한 세기》를 저술한 것과 일본 최초의 가톨릭 잡지인 《고에》를 발행한 것을 들수 있다. 《배움의 동산》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기도 하였지만 곧 폐간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18년 간 《고에》의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빌리옹(A. Villion, 1843~1932) 신부에게 《그리스도교 영주들, 1549~1650년 일본의 종교와 정치사의한 세기》의 일본어 번역을 요청하였을 때, 빌리옹 신부가 이 책의 번역 출판을 알려 오자 그는 3월 30일에 저자를 자기 이름으로 해달라는 부탁 편지를 보낸 데 이어 5월 6일에는 한자 옆에 가명(假名)을 붙여 달라는 편지를 보내어 그 책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 보였다. 빌리옹 신부는 영어 원서를 번역하여 1929년에 《기리시탄 다이묘시》(切支丹大名史)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고,이듬해에는 요시다 고고로(吉田小五郎)가 프랑스어본을 번역하여 《기리시탄 다이묘키》(切支丹大名記)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1549년 천주교의 일본 전래부터 1650년까지의 일본 천주교회사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총 2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1549년 8월 15일에 프란치스코 사베리오가 토레스(C. de Torres) 신부와 함께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에 도착하여 포르투갈 상인들의 영접을 받으며 히라도(平戶)에까지 가서 선교한 뒤, 야마구치(山口) · 교토(京都) 등지에서 선교한 일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신자 영주인 오무라(大村順忠)의 개종과 다카야마(高山右近)의 개종, 고도(五島)의 영주와 아마구사(天草) 영주의 개종과 박해, 오타(織田信長)의 집권, 고니시(小西行長)의 개종, 1582년 봄 개종한 영주들이 16세의 소년 4명을 선정하여 유럽에 보낸 일, 오무라가 죽은 뒤 박해가 일어나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내려진 추방령과 박해, 세스페데스(G. de Céspedes, 1551~1611) 신부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입국한 일, 조선에서 포로로 잡혀 온 오타 줄리아의 천주교 신앙과 유배, 시마바라의 난, 운젠(雲仙) 온천의끓는 물을 끼얹으며 배교를 강요하는 형벌 등 초기 일본 천주교회사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도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살펴보면 이 책에는 오류가 적지 않다.
〔평 가〕 슈타이헨 신부는 키가 크고 풍채가 장중하며 말이 적은 편이었으나, 그와의 대화는 유쾌하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또 누구와도 잘 사귀었으나 깊게 사귀지는 않았으며, 조숙하여 실제 나이보다 들어 보였고, 때로는감정이 격렬하였지만 유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고도 한다. 반면에 사제로서 그는 엄격하였고, 성서를 애독하며 신앙심이 깊었다. 성가를 좋아하여 그가 맡은 본당에서 부르는 성가들은 정선된 것들로 훌륭하게 연주되었고, 전례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그의 장중한 풍채와 경건한 태도와 함께 각종 전례에서 눈에 띄게 돋보였다고 한다. 그는 구어체의 일본어 연구가 절실하게 요청되던 때에 입국하여 일본어를 잘 구사하였기 때문에 설교가로서도 성공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잡지에 게재되어 많은 젊은 선교사들의 교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설교하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데에서 더 진가를 발휘하였다. 그는 어려운 일본 책을 읽지는 못하였지만, 여러 학자들의 도움으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일본)

※ 참고문헌  A.C., <아, 영의 아버지 미카엘 · 슈타이헨 신부>,《聲》 644호(1929. 9)/ 山口鹿三, 〈故 슈타이헨 신부의 追憶〉, 《聲》 644호(1929. 9)/ 藤井伯民, 做 슈타이헨 신부님과 함께>, 《聲》 644호(1929. 9)/ M. Steichen, A. Villion 역, 《切支丹大名 史》, 東京, 三才社,1929. 〔河聲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