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거, 그레고르 (1900 ~ 1950)

Steger, Greg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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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슈테거 신부.

그레고르 슈테거 신부.

베네딕도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그레고리오. 한국 이름은 전오범(全五範) 1900년 12월 30일 라티스본(Ratisbon) 교구의 트뢰베스에서 태어나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며, 1922년 7월 11일 슈바이클베르크(Schweiklberg) 수도원에서 첫 서원을 하였으나 사제 서품은 4년 뒤인 1926년 7월11일에 받았다.
1930년 4월 21일 덕원(德源)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8월 30일 덕원에 도착한 후, 한국어 문법을 배우고 한문도 익혔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말부터 수도원 부원장이자 덕원 본당 주임 다베르나스(K. d'Avernas, 羅國宰, 1884~1950) 신부와 함께 공소 순방을 하며 공소 사목을 배웠으며, 주일마다 교대로 공소 방문을 하고, 큰 공소에서는 미사를 집전하며 고해성사도 주었다. 슈테거 신부는 그해 12월 8일 신설된 영흥(永興)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었는데, 입국한 지 얼마 안된 때여서 히머(K. Hiemer, 任竭忠, 1884~1968) 신부와 함께 파견되었다. 이 두 신부의 노력으로 설립 당시 55명에 불과했던 신자수는 불과 1년 만인 1932년에는 191명으로 증가하였다.
또 원산에서 여학교로 사용하던 목조 건물을 옮겨 임시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해 왔었는데, 부임 이후 새 성당과 사제관 건립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32년 대림 제1 주일에는 사우어(B. Sauer, 辛上院, 1877~1950) 주교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슈테거 신부는 주로 영흥 읍내 사목과 본당 설립 직후에 개교한 소학교 일을 담당하였고, 히머 신부는 공소 일을 담당하였다. 이 소학교의 주간 과정은 정부로부터 150명을 정원으로 허락받았지만, 곧 야간 과정이 개설되어 실질적인 정원은 배로 늘어났다. 슈테거 신부는 주 · 야간 과정에서 교리를 가르쳤다.
또 슈테거 신부는 1936년 8월 17일부터 3일 간 개최된 교구 청년 대회에서 영흥 본당 청년들이 1등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같은 해 9월 13일 "가톨릭 소년회" 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교리 교사들을 위해 《교리 강의》(敎理講義) 3권을 저술하여 1942년에 제1권을 덕원 인쇄소에서 간행하였다.
광복 후 슈테거 신부는 계속 영흥 본당의 주임으로 있으면서 본당 사목과 교세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북한 지역에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어려움을 겪다가 1949년 5월 11일 영흥본당 신자인 남 선생과 마리아 여회장과 함께 정치 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되어 평양 인민 교회소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무신론 반박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아 그곳에서 1950년 10월 3일 옥사하였다.
※ 참고문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 《死亡者 名簿》, 1990/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 수녀원사》, 포 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韓國語 資料集》,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9/ 一,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1/ 一,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