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소속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아르눌포. 한국 이름은 안세명(安世明).
1906년 9월 21일독일 로텐부르크(Ro-tenburg) 교구 플라움로크에서 태어나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회에 입회한 뒤 1926년 5월 15일 첫 서원을 하였다. 1930년 7월 13일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 선교사 겸 신학 교수로 임명되어 1932년 7월 18일 덕원(德源)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도착 후 한국어 문법을 배우던 중 내평 본당(內坪本堂, 고산 본당의 전신) 다베르나스(K. d'Avernas, 羅國宰) 신부의 건강 악화로, 그 해 12월 임시 보좌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피정이 끝나고 몇 주간 동안 한국어를 익히면서 동시에 몇 개 본당을 돕기 위하여 서울 대목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8월부터 약 1년 간 원산(元山) 본당 주임 담(F. Damm, 卓世榮) 신부가 일본에 체류하게 되자 임시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1934년 7월부터는 덕원 신학교에서 교리 신학 · 성서 입문 성서에 대해 강의하면서 덕원 본당의 주임 신부를 돕기 위해 고해성사와 강론 등을 하였으며, 이듬해부터는 신학교에서 성서 주석학도 강의하면서 원산 대목구 내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방학동안에는 원산 본당의 임시 주임을 맡았다. 1937년 1월 24~31일에 개최된 종교 주간 동안에는 대목구 내의 본당 회장들과 그 보조자들을 위한 교육에서 호교론을 강의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28일 덕원 수도원에 도착한 독일인 대신학생 7명의 사감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신학교 교수로 재임하면서 50쪽 분량의 《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가?》라는 교양 서적을 저술하여 1938년에 덕원 인쇄소에서 1만 부를 간행하였다.
1944년 12월 수도원의 부원장 다베르나스(L. d'Aver-nas, 羅碧宰) 신부가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광복 후 덕원 수도원도 공산 정권의 탄압을 받았는데, 그도 여러 가지 트집을 잡힌 끝에 1949년 5월 9일 사우어(B. Sauer, 辛上院) 아빠스, 원장 로트(L. Roth, 洪泰華) 신부, 철학 교수 클링사이즈(R. Klingseiz, 吉) 신부 등과 함께 체포되어 평양 인민 교화소로 압송되었다. 8월 5일 자강도 전천(慈江道 前川)의 옥사독 수용소로 이송되었으며, 이때 평양 인민 교화소에 남게 된 사우어 아빠스에 의해 그는 모든 수도 가족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슐라이허 신부는 감시원들로부터 많은 욕설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같이 수용된 수도,가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베네딕도 규칙서의 내용과성서의 내용을 들어 강론을 하였다. 1951년 겨울부터 숯 굽는 일을 하였지만, 이듬해 파종기에 심장과 신장이 급격히 나빠졌고 특히 화농성 기관지염으로 고생하였다. 몸도 많이 붓고 발도 부어서 서지도 걷지도 못할 상태가 되자, 감시원들은 슐라이허 신부를 거름더미 위에 앉혀놓고 거름을 부수는 일을 시켰다. 결국 그는 기력을 완전히 잃고 며칠 동안 앓다가 1952년 6월 28일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 참고문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死亡者 名簿》, 1990/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 수녀원사》, 포 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一, 《원산교구 연 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1. 〔편찬실〕
슐라이허, 아르눌프 (1906~1952)
Schleicher, Arnulf
글자 크기
8권

아르눌프 슐라이허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