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발명가. 과학자. 신지학자(神智學者). 그의 추종자들인 스베덴보리파(Swedenborgianer)가 세운 '새 예루살렘 교회'(New Jerusalem Church)의 주창자. 본래 과학자로 활동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체험한 후 신지학자이자 환시가로서 영적인 세계를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생애 및 저서〕 1688년 1월 19일 스톡홀름에서 루터교 장로이자 읍살라 대학 신학 교수이며 훗날 스카라의 루터교 감독이 된 아버지 예스퍼 스베드베리(Jesper, Swed-berg)와 어머니 사라 보엠(Sarah Boehm)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소망과는 달리 신학보다는 자연 과학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읍살라 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뒤, 1709년 세네카(L.A. Seneca, 기원전 4~서기65)의 명언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런던과 파리에서 수학 물리학 · 지질학 · 천문학 등의 자연 과학을 공부하고 안경 및 시계 제조, 조판술 등의 수공업 기술을 익혔으며, 스웨덴으로 돌아와 잠수함 및 비행기 발명을 위한 가설적인 제안, 펌프 및 증기 기계 발명 등 과학자로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전쟁 때 레일 기계를 발명한 공로로 1719년에 스베덴보리라는 이름으로 귀족의 지위에 올랐고, 광업부 보좌관으로서 스웨덴의 광산업과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자연 과학과 자연 철학에 관한 주요 저술로 《자연 현상에 관한 다양한 관찰》(Miscellanea observata circa res natu-rales, 1722), 《자연계의 원리》(Principia Rerum Naturalium,1734), 《물질의 원인에 대하여》(De causis rerum, 1717),《창조의 무한성과 최종 원인에 관한 철학적 결론의 개관》(Prodromus philosophiae retiocinantis de infinito et causafinali creationis, 1724), 《철학과 광물학적 저서》(OperaPhelosophica et Mineralia, 1734) 등이 있고, 인간의 영혼을 신체 기관의 질서와 관련하여 설명한 《생명체의 배치》(Oeconomis regni animalis, 1740)와 《해부학적 · 생리학적 ·철학적으로 고찰한 생명체의 세계》(Regnum animale, anati-mice, physice et philosophice perlustratum, 1744/1745), 《이성적심리학》(Psycologia rationalis, 1740) 등을 저술하였다.
그는 자연 과학 · 의학 등을 연구하면서 인간 존엄성과 인간의 구원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학문에 한계를 깨닫고, 경험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으로는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736년에 영적인 신비 체험을 하였는데, 이 체험은 그에게 초월적인 하느님이 개입한 은총으로 받아들여졌고, 어린 시절의 신앙적인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고 대화하였다는 첫 번째 계시(1744. 4. 677)와 성소의 계시라고 일컫는 두 번째 계시(1745.4)는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두 번에 걸친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과 통교하는 신지학자로 변신한 그는, 자신을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처럼 여기는 종교적인 자아 인식을 확립하였다. 성소의 계시에 대한 그의 자전적 기록에 의하면, 그는 성서의 영적인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선택되었고 천당과 지옥 및 영들의 세계를 보았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또 계시를 통해 영혼의 눈을 뜸으로써 천사 및 영들의 세계와 통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747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성서 공부와 계시를 통한 저술과 토론 등에 전념하였다. 그는 계시 · 꿈 · 영혼과의 교제를 통하여 창세기 · 출애굽기 · 요한 묵시록 등을 주석하였으며, 20여 권이 넘는 종교서를 저술하였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와도 영적인 세계 안에서 교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사도 바오로와 루터(M. Luther, 1483~1546) 등을 만나 신학적 가르침에 대해 토론하였다고 하며, 1757년을 최후 종말의 해로 예언하기도 하였다. 즉 영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져 지금까지의 교회는 멸망하고 새 예루살렘이 시작되고, 새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1744년 이후 그가 받은 '새계시' 가 토대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저서로 1736년 이후 꿈과 빛의 계시 등을 통하여 체험한 영적인 세계에 관한 기록 《영적 일기》(Diaium Spirituale), 요한 묵시록에 계시된 예언적인 새 교회로서의 종교적 형태를 제시한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 1749~1756), 그리고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참된 그리스도교》 (Vera christiana religio, 1771) 등이 있다. 1772년 3월 29일 런던에서 사망하여 4월 5일 런던의 스웨덴 교회에 묻혔으며, 1908년 5월 19일 스웨덴 읍살라의 경당으로 이장되었다.
〔사 상〕 스베덴보리는 영적인 세계와의 교제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계시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신학적 · 신지학적 사상을 발전시켰다.
신론 : '새 교회' 를 선포함으로써 교회의 멸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 새 그리스도교 · 새 예루살렘을 선포한 스베덴보리는, 교회 몰락의 원인이 초기 교회 때부터 특히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 이후부터 참된 하느님의 존재를 삼위로 잘못 이해한 데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위격이 셋이라는 삼위 일체론에 반대하면서, 하느님은 실체와 위격에서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의 몸을 취해 자신을 계시한 하느님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예수가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인간을 지옥의 권세에서 구원하였고, 그의 인간성이 내재적인 신성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변형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 빛의 발산으로 인간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신적인 지혜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한 분이며, 세 가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우주와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 하느님의 세 가지 작용 및 현시 방법으로, 그의 단일성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 그리고 영육의 단일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신론 및 그리스도론은 교회가 이단으로 단죄한 아폴리나리우스주의와 유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현시 방법에서 구분된다고 주장한 면에서는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us)와 유사하다. 그의 신학적 사상은 요약되어 그의 추종자들이 세운 '새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 고백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의 세계 : 스베덴보리는 '저 세상'을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발생적이라고 보고, 인간의 영적 발전 단계의 과정으로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내세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출발점은 그의 인간관에서 시작되었다. 그에 의하면, 영적인 존재는 서로 구분되는 두 부류 즉 천사와 인간이 아니며,천사와 악마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천사와 악마는 인간의 영적 변화에 있어서 다른 단계일 뿐이며,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세상은 인간이 고양되거나 추락하는, 또는 자신을 실현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인간의 죽음은 인격적인 존재의 연속성을 파괴하지 않으며, 단지 물질적인 형태에서 영적인 형태로 전 존재가 변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의 발전 과정이 현세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죽음 후 저 세상에서도 이어진다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이 사상을 통하여 그는 세상 종말에 하느님에 의해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그리스도교의 정통적인 가르침에 반대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자신이 죽음 후 자신의 심판자가 된다는 것이다. 천국은 현세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죽은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가 천사가 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고, 지옥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거역하고 자기애(自己
愛)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각자의 욕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악마가 된다. 그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한 행위가 내세에서의 삶을 결정짓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랑과 지혜를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하고 구원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윤리적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인식하에 그는 원죄설과 예정설, 그리고 루터의 의화론과 구원론이 윤리적인 본분에 대한 인간의 의무에부합되지 않는다고 반대하였다. 루터교가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믿음과 분리될 수 없는 사랑을 믿음에서 분리시키는 잘못을 범하였다고 비판하고 사랑을 강조하였다.
성(性)의 신학 : 스베덴보리의 사상 중 독특한 성의 신학은 천국에서의 결혼을 다룬 《부부의 사랑에 관하여》(Über die eheliche Liebe, 1768)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참된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외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 · 정신적으로 결합되는, 진실하고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로 보았다. 이러한 결합은 현세뿐만 아니라 저 세상까지 이어지므로 천국에서의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아담과 이브가 원래 한 몸이었다는 창세기내용처럼, 남녀가 절대적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는 데 결혼의 완전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남녀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시작되지만 육체적 영역인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일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완전한 일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하므로 천국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지상에서 잘못 결혼한 사람들이 헤어지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 참된 결혼을 한다고 하였다. 죽음 후의 영적인 세계에서도 인간이 남녀로 구별된다는 스베덴보리의 주장은 남녀가 성 구별이 없는 천사의 모습으로 천국에서 산다는 정통 신학과 배치된다. 이 세상에서 못다 이룬 사랑이 저 세상에서 완성된다는 이 생각은 훗날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과 이상주의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우주의 신학 : 영적인 세계에 관한 스베덴보리의 독특한 생각은 외계인들과 관련된 사상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의 인성의 모습대로 창조하고 자연계의 미물까지 자신의 인성을 부여하였으므로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는 인성의 반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각 혹성에 살고 있는 모든 영적인 존재들도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지구의 인간들과 함께 '거대한 인간' (homo maximus)을 형성한다고 여겼다. 개별적인 혹성에 거주하며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은 각각 '거대한 인간' 의 한 부분(뇌, 근육, 뼈대 등)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모여 하느님의 몸인 대우주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외계인의 구원을 포함한 구원사적 우주론을 펼쳐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된 그에 의하면, 하느님이전 우주 공간 어디에나 있으므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조그만 지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이 다양한 형상을 통하여 전우주의 구원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므로 각 혹성마다 나름대로 신의 현현을 경험하게 되고, 하느님의 말씀도 각 별들의 인식 수준에 맞게 전달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인간의 고정 관념을 뛰어넘어 전 우주를 총괄하는 하느님에대한 사상은 그의 학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더 나아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한 신비 체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가와 영향〕 스베덴보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정신병자 · 몽상가 · 심령론자로 여겨져 반대와 질타, 그리고 비웃음까지 받았다. 특히 칸트는 《한 환시가의 몽상》(Träu-men eines Geistersehers, 1766)에서 스베덴보리의 작품 거의 모든 부분을 부정하고 그를 사기꾼으로 평가하였으며, 스웨덴 교회는 그의 저서를 금서화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후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새 교회의 창설을 원하지 않았으며 죽기 직전까지 스웨덴의 루터교 신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적저서를 신의 계시로 여기고 그의 신학적 · 신지학적 사상을 신앙 고백으로 사용하는 추종자들에 의해 '새 교회'혹은 '새 예루살렘 교회' 로 칭해지는 신앙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1787년 런던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미국 · 유럽 · 아프리카 등지로 퍼져 나갔고, 추종자들 중 일부는 스베덴보리 협회를 설립하여 그의 저서를 수집 · 번역하고 출판함으로써 그의 사상을 전파하고 있으며, 노예 제도 반대 운동이나 아프리카 신생 국가의 건설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스베덴보리의 사상은 철학(쇼펜하우어, 셀링, 헤겔 등), 문학(특히 괴테의 《파우스트》, 발자크 등), 종교 운동(신지학 및 인지학 운동, 뉴 에이지 운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신지학 ; 심령 과학)
고 문헌▷ E. Swedenborg, Homo Maximus, Der Himmlische und der leibliche Mensch, Hrsg. von 0.W. Barth, Weilheim, 1962/ H. Berg-mann · E. Zwink, Emanuel Swedenborg 1688~1772 : Naturforcher und Kumdiger der Überwelt, Württemberg Landesbibliothek, Stuttgart, 1988/ L.Goerwitz, Wer war Emanuel Swedenborg? : Gedankrede zur 250. Wieder-kehr seines Geburtstages am 29. 01. 1938, Swedenborg Verlag, Ziirich,1938/ H. Maltzahn, Emanuel Swedenborg : Sein Werk, Sein Weg, Sein Weltbild, Hrsg. von R. Hummel, Leipzig, 1939/ E. Benz, Emanuel Sweden-borg : Natuforscher und Seher, Hrsg. von H. Rinn, Miinchen, 1948/ 一Swedenborg als geistiger Wegbereiter der deutschen Romantik und des deutschen Idealismus, Hrsg. von R. Hummel, Leipzig, 1940/ 一, Vision und Offenbarumg : Gesammelte Swedenborg-Aufsätze, Swedenborg Verlag, Zürich, 1979/ H.D. Reimer, Neue Kirche, Evangelisches Kirchen- lexikon,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92, pp. 672~673/ W. Heller, Swedenborg, E., Biographisch-Bibiliographisches Kirchenlexikon 11, Bautz, Hamm, 1996, pp. 294~304/ W. Koch, 《LThK》 9, pp. 917~918/ W. Köhler, Swedenborg und die Swedenborgianer, Realencyklopidie für protestanti-sche Theologie und Kirche 19, Hinrichs, Leipzig, 1907, pp. 177~ 195/ A.G. Wildfeuer · H.J. Ruppert, 《LThK》 9, 2000, pp. 1149~1 150/ O. Pfülf, Swe-denborgianer, Kirchenlexikon 11, Herder, Freiburg, 1899, pp. 1012~1016. 〔吳善子〕
스베덴보리, 에마누엘 (1688~1772)
Swedenborg, Emanuel
글자 크기
8권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