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주세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Giuseppe Domenico Scarlatti, 1685~1757)의 아버지. 1660년 5월 2일 팔레르모(Palemo)에서 피에트로스카를라타(Pietro Scarlata)와 엘레오노라 아마토(Eleonora Amato) 사이의 다섯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어린시절에 어떻게 음악 교육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또 외가쪽의 친척 가운데 팔레르모 주교좌 성당의 음악 감독을 지낸 아마투스(V.Amatus) 외에는 그의 가문에 이렇다 할 음악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672년에 부모의 배려로 두 여동생과 함께 로마에 갔을 때 만난 파스퀴니(B. Pasquini, 1637~1710)와 코렐리(A.Corelli, 1653~1713)에게 종교적이고 음악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카리시미(G. Carissimi, 1605~1674)로부터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안토니아(Antonia Anzalone)와 결혼한 1678년부터 자신의 성(姓)을 아버지의 성인 스카를라타(Scarlata) 대신 '스카를라티' 로 표기하였다. 1679년에 로마 주재 스웨덴 황후 크리스티나(1626~1689)의 궁정 악장, 1684년부터는 나폴리의 궁정악장, 1703~1709년에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의악장을 역임하였고, 이어 1710년부터 나폴리 궁정 악장으로 계속 활동하다가 1725년 10월 24일 나폴리에서 사망하였다.
〔작 품〕 피에트로의 주된 창작 분야는 오페라였다. 그는 1679년부터 오페라를 작곡하여 발표한 이래 <로사우라>(Rosaura, 1690), <그리셀다>(Griselda, 1721), 희가극<명예의 승리>(Il Trrionfo dell'onore, 1718) 등 모두 115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이러한 작곡 활동으로 나폴리 악파를 창시하고 대표한 그는 17세기 말과 18세기의 오페라를 주도한 주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1600년대 초에 레치타티보(recitativo, 낭송)와 아리아로 구분되는 것이 보편적 규범이었던 오페라 형식과 특히 만토바와 베니스에서 시작된 몬테베르디(C. Monteverdi, 1567~1643)의 '다 카포(da capo) 아리아'를 수용하여, 나폴리 오페라의 중심적인 아리아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심각한 내용의 오페라를 세코 레치타티보(secco-recitativo)로 줄거리를 이어나가고 규모가 큰 다 카포 아리아로 감정을 표출하였다. 그의 다 카포 아리아는 바흐(J.S. Bach,1685~1750)와 헨델(G.F. Händel, 1685~1759) 등으로 이어지는 아리아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흐와 헨델의 거의 모든 아리아가 이러한 형식을 갖추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한 피에트로는 오늘날 근대 오페라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또한 오페라와 상관없이 이른바 음악회를 위한 그의 나폴리 오페라 신포니아(sinfonia, 이탈리아 서곡)의 빠르고 느리고 빠른 3악장 구조 역시 후에 소나타, 신포니아, 협주곡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 밖에도 17세기 중엽에 전형적인 바로크의 기악 장르가된 콘체르토(concerto)도 이탈리아 전주곡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는 교회 음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로마 공연을 위하여 15편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면서 이중창이나 대규모의 앙상블(ensemble)을 거의 배제하였고, 다양한 형식들도 세코 레치타티보 · 반주 레치타티보 · 다 카포 아리아 · 합창 음악으로 축소시키며 당시의 오라토리오 양식을 주도적으로 형성하였다. 빈과 리용 등지에서도 연주되어 큰 호응을 얻은 그의 오라토리오는 헨델의<메시아>(1742)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크고 작은 이탈리아 칸타타(cantata)와 비전례적인 교회 음악 칸타타를 800개 이상 작곡하였다. 기악 반주를 갖는 이 성악곡들은 레치타티보, 아리아, 합창곡 그리고 기악적 리토르넬로(nitomello, 전주, 간주, 후주) 등이 결합되어 있다. 피에트로의 가장 대표적인 교회 음악은 이중 합창을 포함하여 200편이 넘는 합창 미사곡들이다. 명료함과 감정이 넘치는 이 미사곡들은 다른 나폴리 오페라 작곡가들처럼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합창 및 관현 악기법에서 그의 오페라와 동일한 형태였다.
이와 같이 세속적인 표현 형식을 교회 음악에 수용한 그는, 기리에 · 글로리아 · 그레도 · 상투스 · 아뉴스 데이등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미사의 각 부분을 다시 여러 작은 부분으로 구분하여, 이들을 여러 개의 아리아로 창작하였다. 이는 엄격 대위법에 근거한 팔레스트리나(G.P. Pales-trina, 1525~1594)의 이상적 교회 음악 양식이 18세기에 빈의 푹스(J. J. Fux,1660~1741)에 의해 새롭게 전수될 때까지, 미사곡들이 주로 번호 미사곡 혹은 칸타타 미사곡의 이름으로 작곡가의 주관적 해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창작되고 연주 시간도 크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 스카를라티, 주세페 도메니코)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I · Ⅱ , 세광음악출판사, 1990 . 1991,pp. 135, 314, 325, 329/ E. Hanley · A. Scarlatti, 《MGG》 11, pp. 1482~1506/ E. Hanley · D.J.Grout, 《NGDMM》 16, pp. 549~567/ W. Gurlitted., Riemann Musik Lexikon, ersonenteil 2, Schott's Söhne, 1961, pp. 582~583. 〔趙善字〕
스카를라티, 피에트로 알레산드로 가스파레 (1660-1725)
Scarlatti, Pietro Alessandro Gaspare
글자 크기
8권

피에트로 스카를라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