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형제회 소속 신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와 더불어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 '정교한 박사'(doctor subtilis)라고 불렸다.
그가 사제 서품을 받은 날과 사망 일자 외에는 그의 생애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스코투스(Scotus)인 것으로 미루어 스코틀랜드 지역으로 이주해 살았던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인이고 둔스(Duns)라는 이름으로 보아 출생지가 둔스라는 작은 도시였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사실 1966년 둔스에 스코투스의 기념비가 세워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또 그는 1291년 3월 17일 영국의 노샘프턴(Northampton)에서 링컨(Lincoln) 교구의 서턴(O. Sutt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적어도 25세였을 것이므로 1265/1266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스코투스는 뉴캐슬(Newcastle)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들어간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입회 시기는 알려져 있지않다. 그의 학문 활동에 대해서도 많은 것이 불명확하지만 1291년경부터 몇 해 동안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전해지며, 장상의 명으로 파리로 건너가 신학을 연구한 후 1302년경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스코투스가 1300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당시 신학생들의 필수 과목이었던 베드로 롬바르두스(Petus Lombardus, 1095~1160)의 《명제집》(Lib-ri Sententiarum)을 강의하였다는 증거는 있지만 1300년 이전에 파리에 간 적이 없다는 것이 마이어(L. Meier)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스코투스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 주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1302년부터 스코투스는 파리에서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듬해 프랑스의 왕 필립(Philippe Ⅳ le Bel, 1285~1314)과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 사이의 갈등에서 교황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파리를 떠나 옥스퍼드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되며, 1304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가 1305년경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307~1308년에 독일 쾰른(Köln)에서 강의하다가 1308년 11월 8일 그곳에서 사망하여 작은 형제회 소속의 미노리텐 성당(Minoritenkirche)에 묻혔다.
〔저 서〕 스코투스의 저서들은 상당히 방대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네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에 관한 저서들로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의한 명제집 강의록인 《옥스퍼드 활동》(Opus Oxoniense : Ordinatio)과 파리 대학교에서의 명제집 강의록인 《파리 보고》(Reportata Parisiensia :Reportationes, Lectura)가 있다. 이 강의록들은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단순히 주해한 것이 아니라, 스코투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독창적인 대답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이 강의록들에는 스코투스의 고유한 사상이 담겨 있으며, 그의 사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둘째, 제자들과의 토론을 토대로 엮어 낸 것들로서, 파리에서 강의할 때 제자들과의 토론 내용을 모아서 집필한 토론집들이다. 이에 속한 저서로는 《자유 명제집》(Quaestiones quodlibetales, Quodlibetum)과 《모음집》(Col-lationes)이 있다.
셋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의 저서들에 대한 주해서들로, 《범주론)(Quaestiones in librum praedicamentorum)과 《명제집》(Quastiones in primumet secundum librum Perihermeneias)과 《영혼론》(Quaestionessuper libros Aristotelis de Anima)에 대한 주해서가 있으며,형이상학 제1~9권을 주해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관한 정밀한 문제들》(Quaestiones subtilissimae in Meta-physicam Aristotelis) 등이 있다.
넷째, 자신의 고유한 사상들을 편력한 저서들인데, 철학적 사고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자 안셀모(AnselmusCantuariensis, 033/1034~109)의 사상에 입각해서 쓴 《제1원리론》(Tractataus de primo principio)과 《정리론》(定理論,Theoremata)다.
〔주요 사상〕 스코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능통하였으나, 그의 사상적인 견해는 일반적으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안셀모,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지주의적 경향에 반대해서 의지를, 강조하는 주의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주요 사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신앙과 이성 : 스코투스는 신앙(fids)과 이성(intellec-tus)의 관계를 신학과 철학(형이상학) 또는 지혜(sapientia)와 지식(scientia)의 관계로 생각하면서,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였다. 우선 그는 신학과 철학 내지 형이상학은 각기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신에 대한 연구는 신학만의 고유 영역이며 이성으로 해명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결코 철학 즉 형이상학에 의해서 파악되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은 이성으로 파악 가능한 영역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스코투스의 의도는 결코 철학 즉 형이상학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학과 철학의 영역을 보다 더 정확히 구분하고 이성의 영역을 한정시키는 것이었다. 예컨대 신의 존재나 불멸성을 제외한 형이상학적인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코투스의 견해는 분명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토마스 아퀴나스나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주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또 "이성과 신앙의 조화"(fides quaerens intellectum)를 꾀했던 안셀모의 사상과도 차이가 있었으며, 후기 아우구스티노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의지와 이성 : 스코투스의 사상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이성보다 의지(voluntas)를 더 강조한 점이다. 그는 의지를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하였는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의지 즉 어떤 것을 단순히 선택하기를 원하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의지(affectio commodi)와 항상 올바른 것으로만 향하고자 하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의지(affectio iustitiae)였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이성이 의지를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의지에만 해당되며, 고유한 의미에서의 의지는 인간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서 이미 항상 올바르고 선한 본성으로, 즉 신에게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아우구스티노의 자유 의지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안셀모의 의지론에서도 이러한 점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안셀모의 사상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보편자에 관한 논쟁 : 보편자(普遍者, universalien)는 실재이며 모든 개별자들에 앞서 존재한다는 실재론(實在論)과 보편자는 단지 내용이 없는 '이름'에 불과할 뿐 실재가 아니며 개별자들만이 존재한다는 유명론(唯名論)과의 논쟁에서, 스코투스는 보편자와 개별자들은 단지 형식적으로만 다를 뿐(distinctio formalis)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 양자의 입장을 중재하려고 하였다. 그는 보편자와 개별자 중간에 '공통적인 본성'(natura communis)이 있어서, 개별자들이 추상의 과정(abs-tractio)을 통해서 개별자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는 공통적인 본성을 깨달음으로써 보편자를 인식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개별자를 통한 보편자 인식은 감각적인 경험에 의한 진리 인식의 가능성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훗날 영국의 경험론(經驗論)과 칸트(I. Kant, 1724~1804) 사상의중심 과제로 다루어졌다.
개별자에 관한 견해 : 스코투스의 사상 가운데에서 가장 근대 사상과 가까운 것이 바로 개별자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개개의 사물들이 질료에 의해서 각기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와는 정반대로, 실재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가 지니는 형상一자신을 타인과 구분시키는 형상一에 의해서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개별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개별자는 질료나 형상 또는 질료와 형상의 복합에 의해서 생성된 개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에 의해서 타인과 구분되는 자의적인 의미의 개별자(haecceitas) 즉 긍정적인 실재로서의 개별자를 의미하였다. 이러한 주장으로 새로운 학풍이 싹트게 되었으며, 근대와 현대에서의 개별주의나 개인주의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신 증명 : 스코투스의 신 증명은 그의 정신적 스승인 안셀모가 《프로슬로기온》(Proslogion)에서 전개한 신 존재에 관한 논의一훗날 칸트에 의해 '존재론적 신 증명'이라고 명명된 논증一즉 가장 큰 존재인 신이 사고될 수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된다는 주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보다 더 발전시켰다. 그는 무한한 존재로서의 신을 최초의 원인자(prima causa) 즉 최초의 작용인이자 최초의 목적인으로 규정하고, 최초의 원인자는 다른 원인에 의해서 생성되지 않고 스스로에 의해 발생되는 최고의 본질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무한한 존재인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사상적 영향〕 스코투스의 사상은 14~17세기 유럽의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보다도 더 많이 연구되었으며,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컴(W.Ockham, 1285~1349)의 반대자로서 명성이 높은 부를레우스(W. Burlaeus, 1275~1343)와 수학을 신학 이론에 접목한
브라드바르디누스(T. Bradwardinus, 1295~1349)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보편자에 대한 견해는 철학자이자 미국의 실용주의(實用主義)를 창시한 퍼스(C.S. Peirce,1839~1914)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도 스코투스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둔스 스코투스 ; → 개인주의 ; 보편논쟁 ; 스콜라학 ; 신학사 ; 실용주의 ; 실재론 ; 안셀모,캔터베리의 ; 오컴 ; 유명론 ; 주의주의 ; 칸트 ; 하이데거)
※ 참고문헌 K. Flasch, Das philosophische Denken im Mittelalter, Stuttgart, 1986, pp. 426-441/ E. Gilson, Johannes Duns Scotus, Duessel-dorf, 1974/ 一, Die Geschichte der christlichen Philisophie, Paderborn, 1937, pp. 517~551/ W. Hoeres, Der Wille als reine Vollkommenheit nach Duns Scotus, München, 1963/ L. Honnefelder, Duns Scotus . Scotismus, 《TRE》 9, pp. 218~240/ 一, Scientia transcendens, Hamburg, 1990, pp. 82~94/ 一, Der Begriffdes Seienden als solchen als Gegenstand der Me-taphysik nach der Lehre des Johanness Duns Scotus, Bonn, 1971/ L. Meier, Zur Biographie des Duns Scotus, Wissenschaft und Weisheit, 15, 1952, pp. 216~221/ W. Kluxen, Johannes Duns Scotus Abhandlung über das erste Prinzip, Darmstadt, 1974/ K. Vorlaend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Ⅱ, Mittelater und Renaissance, Hamburg, 1990, pp. 111~119/ A.B. Wolters, Duns Scotus on the Will and Morality, Washington, 1986, pp. 11~13/ 一, The Transcendentials and Their Function in the Metaphrysics of Duns Sco-tus, New York, 1946. 〔金永哲〕
스코투스, 요한네스 둔스 (1265/1266~1308)
Scotus, Johannes D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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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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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