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성 베네딕도회의 수녀승. 성 베네딕도(Benedictus, 480?~547?)의 쌍둥이 누이동생. 축일은 2월 10일. 최근에는 일부에서 성녀가 실제 인물이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성녀에 관한 이야기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Dialogi de Vita et Miraculis Patrum Itali-corum)이 유일한 자료인데, 이 책 제2권 33~34장에 베네딕도 성인의 생애 이야기와 더불어 일부 수록되어 있다. 어원학적인 관점에서 그리스어로 '스콜레'(σχολή)는 라틴어 '오시움'(otium)에 상응하는 단어인데, 철학자의 지적 생활이나 그리스도교의 관상 생활에 필요한 한가한 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스콜라스티카라는 이름이 무엇보다도 관상을 상징하고 대표할 특별한인물을 뜻하는 것으로 보려 하였다.
〔생애 및 일화〕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 의하면, 성녀는 성 베네딕도의 쌍둥이 누이동생으로서 480년경에 움브리아(Umbria) 지방의누르시아(Nurcia)에서 태어났으며, 오빠와 같이 아주 어려서부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성녀가 그리스도교 신심이 깊고 돈독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음을 추측할 수 있는데, 이외에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빠 성 베네딕도가 교육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을 때에 성녀는 아버지와 함께 줄곧 집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베네딕도 성인이 수비아코(Subiaco)에 있을 무렵에는 근처의 어느 수도원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 베네딕도는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의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Piumarola)에 베네딕도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스콜라스티카에게 이곳을 맡겼다. 이로 인해 성녀는 베네딕도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이들 남매는 매년 한 차례씩 만나 영적 담화를 나누곤 하였는데, 주로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베네딕도 성인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서로에게 수도회 생활에 있어서 지혜롭고 활기 찬 협력자가 되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생애에 대한 유명한 일화 한 가지가 전해 온다. 이 이야기는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마지막으로 베네딕도 성인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성녀는 예년과 같이 오빠를 방문하였지만 그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베네딕도 성인이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하였으나,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거절하였다. 이에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베네딕도 성인과 수사들은 심하게 퍼붓는 뇌우 때문에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베네딕도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당신은 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주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일화는 수도회 규칙에 대한 엄격한 준수 못지않게 사랑의 힘과 덕의 승리가 중요함을 증명하는 좋은 일례이다.
이 책 34장은 스콜라스티카 성녀의 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에 따르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베네딕도 성인은 성녀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비둘기 모양으로 승천하는 환시를 보고 누이동생의 죽음을 알았다고 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마음 깊이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미를 드리면서, 지체 없이 몇몇 수사들을 보내 성녀의 시신을 거두어 오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곧 수도원으로 옮겨진 누이동생의 시신을 전부터 자신을 위해 몬테 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다.
〔공 경〕 몬테 카시노가 붕괴된 후 8세기경에 베네딕도 성인의 유해와 성녀의 유해는 플뢰리(Fleury)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이탈리아 밖의 지역에서 성녀의 공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8세기 말에는 베네딕도회의 시간 전례에 성녀의 축일이 수록되었고, 9세기경에는 전세 계 수도원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 예절이 전세계의 교회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1~13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로마 전례력에 정식으로 축일이 수록된 것은 18세기경이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도 수녀회의 주보 성녀로 공경받고 있다. (→ 베네딕도)
※ 참고문헌 acura di André Mandouze, Storia dei Santi e della Santità Cristiana, vol. 3, Grolier Hachette International, 1991, p. 2871 G.D. Gordini, 《LThK》 9, pp. 445~446/ R.P. McBrien ed., The HarperCo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 1168/ David Hugh Farmer, The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1987, p. 380/ Enzo Lodi, Saints of the Roman Calendar, trans. by Jordan Aumann, O.P., NewYork, 1992, pp. 48~49/ Clifford Stevens, The One Year Book of Saints,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Inc., 1989, p. 49/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Great Britain, 1983, p. 293/1 Robert Ellsberg, All Saints-Daily Reflections on Saints, Prophets, and Witnesses for Our Time, The Crossroad Publishing Co., New York, 1997, p. 71/ Angelo di Berardino ed., Encyclopedia of the Early Church Ⅱ , James Clarde & Co.,Cambridge, 1992, p. 759/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 449. 〔편찬실〕
스콜라스티카 Stholastica(480?~555/560?)
글자 크기
8권

성 베네딕도의 쌍둥이 누이 동생인 스콜라스티카 성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