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Stendha(1783~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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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스탕달.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가. 본래의 이름은 마리 앙리 벨(Marie Henri Beyle). 1783년 1월 23일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시 고등 법원의 법정 변호사인 세류빙(Chéru-bin Beyle)과 학식과 명망이 높던 의사 앙리 가능(HenriGagnon)의 딸 앙리에트(Henriette Gagnon) 사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엄격하고 보수적인 아버지, 편협한 사고 방식을 지닌 친지들, 독선적인 가정 교사 등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강압적인 가족에 대한 반항과 증오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8세기의 사상,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정신의 자유를 깨우쳐준 진보적인 성향의 외조부 앙리와 '에스파냐인 특유의 사고 방식' (espagnolisme)을 일깨워 준 외가 친척인 엘리자베스 가뇽(Elizabeth Gagnon)에 대한 사랑과 추억,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애정의 기억 또한 간직하였다. 1796년에 그르노블의 에콜 상트랄(Ecole cent-rale)에 입학한 뒤 유달리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1799년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에 응시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 하지만 이것은 가족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곧 그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응시를 포기하였다.
이듬해 외사촌 피에르(Pierre Daru)의 도움으로 육군성에 들어간 스탕달은, 이탈리아 원정군에 가담하여 밀라노까지 갔다. 이때 그가 이탈리아에서 체험한 것들은 이후 이탈리아가 그의 정신적인 고향이 될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802년에 군을 떠나 연극 예술과 시(詩) 창작의 꿈을 품고 파리로 되돌아온 스탕달은 극작가로서 제2의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가 되고 싶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몰리에르, 골도니(C. Goldoni,1707~1793), 보마르세(P-A.C. de Beaumarchais, 1732~1799),코르네유(T. Corneille, 1625~1709), 알피에리(V. Alfieri,1749~1803), 라신(J.-B. Racine, 1639~1699) 등의 작품들을 탐독하였고, 희곡에 대한 많은 기획 및 초안과 초고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연극 예술은 그의 주된 관심사 였지만, 이 분야는 습작으로 그치고 말았다. 극작과 연극 관람에 열중하던 그는 1806년에 황제 친위대의 경리국에 근무하게 되었고, 1808년까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머물렀다. 그리고 백작이 된 그의 외사촌 피에르의 후원으로 1810년에 참사원 심의관 대리가 되어 러시아로 파견되었다가 1813년 초에 되돌아왔다.
1814년 제정(帝政)의 몰락으로 실직당한 그는 1821년까지 주로 밀라노에서 보냈는데,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던 7년 간의 이 시기를 그는 훗날 '인생의 전성기' 라고 칭하였다. 1830년 7월 혁명 이후 트리에스테(Trieste)주재 영사로 임명되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달갑지 않은 인물' 로 선고받았으며, 1831년 초에 교황령인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의 프랑스 영사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단조로운 생활에 싫증이 난 그는 곧 3년 간의 휴가를 얻어 파리에 돌아온 뒤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1839년에 치비타베키아로 복귀한 스탕달은 병이 들어 1841년에 파리로 되돌아왔다가 이듬해 3월 22일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작품 활동 및 경향〕 1817년에 스탕달은 기행문이자 '행복 추구 에 대한 금언집인 《로마, 나폴리와 피렌체》(Rome, Naples et Florence)를 집필하고 스탕달이라는 가명으로 출판하였다. 그리고 그 해 파리에 잠시 머무르다가 누이동생 폴린(Pauline)과 함께 밀라노로 되돌아간 그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그의 자유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을 받고 1821년에 파리로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관념론자들 특히 데스튀트 드 트라시(Destutt de Tracy, 1754~1836)가 제시한 현대 심리 분석 방법에 영향을 받아 관찰과 내성(內省)으로 연애 문제들에 관해 숙고하던 것을 이론화한 《연애론》(De L'amour)을 펴냈다. 《연애론》은 소설 형식에 치중했다기보다는 관념론 혹은 감정론과 일종의 예증으로 짜여져 있는데, 스탕달은 여기에서 연애를 정열 연애, 취미 연애, 육체적 연애 그리고 허영 연애로 구분하였다. 1823년에는 《로시니의 생애》(Vie de Rossini)와 낭만주의를 위한 수필 《라신과 세익스피어》(Racine et Shakespeare)를 펴냈고, 생트 뵈브(C.-A.Sainte-Beuve)는 이 수필에 대해 '낭만주의의 경기병' 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자유주의자들의 모임에서 그는 기지와 사상으로 인정받고 환영받았지만, 좌익 사상에는 가깝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는 《실업가들을 향한 새로운 음모》(Un nouveau complot contre les Industriels, 1825)에서 생 시몽(C.H. de R. Saint-Simon, 1760~1825)의 산업주의와 세상의 모든 자유를 구현하겠다는 부르주아의 주장을 공격하였다. 1827년에는 소설로서는 처녀작인 《아르망스》(Armance)를 출판하였는데, 생트 뵈브는 이 작품을 "내용 면에서 난해하며 세부적인 면에서 사실성이 결여된 소설"이라고 혹평하였다.
1830년에 그는 예수회 회원들과 망명 귀족들이 주축이 된 사회에 반대하는 풍자문으로 약 500쪽에 달하는《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 대해 랑송(G. Lanson, 1857~1934)은 "발자크(H. de Balzac,1799~1850)의 '인간 희극' (la comédie humaine) 40권만큼이나, 대혁명이 형성해 놓은 사회 안에 있는 영혼들의 내적 특성과 은밀한 행위의 동기들을 가르쳐 준다" 라고 하였다. 실화인 베르테(Berthet) 사건과 부차적으로는 라파르그(Laffargue)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된 《적과 흑》은, 정력과 반항의 젊은이인 줄리앙(Julien Sorel)의 야심과 좌절을 중심으로, 모든 정치적 · 사회적인 통찰들과 왕정 복고 시대의 온갖 진전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1830년의 연대기' 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에게 매력적인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상을 19세기에 보여 준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1830년에 그는 자서전인 《에고티즘에 대한 회고록》(Souvenirs d'Egotisme)과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Vie deHenri Brulard)를 저술하기 시작하여, 1831년 이후 3년간의 휴직 상태에서 완성 · 탈고하였다. 그리고 미완성으로 남게 될 《루시에 뢰뱅》(Lucien Leuwen)과 《라미엘》(Lamiel)을 기획한 것도 이때였다. 그가 여행 도중 느낀 인상들과 관찰한 것들을 글로 엮은 《어느 관광객의 수 기》(Mémories d'un touriste)가 1838년에 출판되었고, 《이탈리아 연대기》(Choniquues italiennes, 1839)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얻어 1839년에 펴낸 《파름의 수도원》(Char-reuse de Parme)은 발자크에게 격찬을 받은 걸작이다. 이 소설은 반항 소설인 《적과 흑》과 마찬가지로 자전적인요소들이 풍부한 사랑 탐구 소설이다. 숙모 산세베리나(Sanseverina) 공작 부인의 영향력으로 파름의 보좌 주교가 된 파브리스(Fabice Del Dongo)가, 사랑했던 클레리아(Clélia Conti)가 아버지의 명령으로 크레센치(Crescenzi) 후작과 결혼하고 나서 곧 죽자, 수도원에 칩거하다 죽는 줄거리이다. 1815년 이후의 이탈리아를 그린 역사 · 풍속 소설인 《파름의 수도원》은 정력, 야심, 쾌락 그리고 행복을 동경하는 《적과 흑》의 줄리앙과 닮은꼴의 파브리스를 중심으로 보여 준 심리 · 서정 소설로서 낭만주의 문학의 걸작이다.
〔의 의〕 스탕달은 몽테뉴(ME. de Montaigne, 1533~1592)와 인간성을 탐구하는 도덕주의자들(moralistes)과 같은 계열에 속하는 작가로 평해진다. 탁월한 심리 분석가였던 그의 분석은 전적으로 내면적인 것이었다. 즉 작품 속에서 그를 사로잡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태도나 그들이 행동하는 배경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인간 마음에 대한 관찰이었다. 스탕달은 등장 인물들의 개성과 인격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낭만주의적이면서도 사실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낸 선구적인 작가였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J.P. de Beaumarchais · A. Rey · D. Couty, Dictiomairedes Littératures de Langue Frangaise, Bordas, 1984/ A. Caraccio, Stendhal,Hatier, 1970/ C. Cury · O. Boerner, 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gaise, B.G. Teubner, 1927/ H. Lemaitre, Du Romantisme au Symbolisme 1790~1914, Bordas, 1982/ M. Raimond, Le Roman Depuis la Révolution, Armand Colin, 1967/ C. Roy, Stendhal, Seuil, 1951. [金吉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