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제2대 춘천교구장. 한국 성은 박(朴).
1925년 8월 8일 아일랜드 골웨이(Galway의 우드포드(Woodford)에서 태어나 발리나슬뢰(Ballinasloe)의 성 요셉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뒤 1944년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하였으며, 골롬반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우고 1950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로마의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전공하고 1954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고 입국하여 서울 지부에서 한국어를 배운 다음, 1956년 강원도 횡성(橫城) 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8년 초 학성동(鶴城洞) 본당 2대 주임으로 전임되었으며, 같은 해에 횡성 본당과 간성 본당의 주임으로도 활동하였다.
1959년 춘천 대목구의 총대리(vicar delegate)로 임명되었고, 1962년에 본국 휴가를 다녀온 뒤 1963년에 교구 상서국장이 되었으며, 이듬해부터는 부감목을 겸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5년에 총대리 겸 상서국장으로 임명됨으로써 당시의 춘천교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1896~1970) 주교를 도와 교구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966년 2월 12일 제2대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그 해 5월 11일 "회중에 모범이 될지니라" (Forma Factus Gregis)란 사목 표어 아래 춘천 성심여자대학 교정에서 주교로 성성되었다.
교구장 재임 초기인 1970년대에 정부에서는 인구 억제책의 하나로 임신 3개월 이전의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 보건법을 시행함으로써 인공 유산과 불임 시술을 합법화하였다. 이에 스튜어트 주교는 자연적 가족 계획법인'빌링스(Bilings) 법'(일명 점액 관찰법)에 대한 자료를 입수하여 적극 홍보하였고, 1976년에는 '매리지 엔카운터'(M.E.)를 도입하여 태아의 생명 보호와 출산 조절 방법을 가르쳤다. 또 부부 주말 강습을 한국에 소개함으로써 가정 성화(聖化)와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한 방법과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노력하는 한편, 미혼모를 위한 사목적 배려를 위해 착한 목자 수녀회를 초청하여 1970년 중반부터 미혼모들을 돌보게 하였다. 그 후 스튜어트 주교는 한국 매리지 엔카운터 담당 주교, 주교 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1974~1994) 등을 역임하면서 인간 생명 수호 운동과 가정 성화를 이루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가정 사목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 후 지병인 심장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1994년 5월 21일 춘천교구장직을 사임했다. 스튜어트 주교는 한국에서의 40년 활동 기간 중 28년을 춘천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교구장 임명 당시 본당 18개, 신자수 33,592명이던 춘천교구의 교세를 1994년에는 본당 39개, 신자수 52,212명으로 증가시켰다. 1994년 7월 16일 본국으로 돌아가 나반(Navan)의 달간 파크(Dalgan Park)에 있는 골롬반 외방선교회 본부에서 휴양하던 중, 그 해 10월 30일 심장 마비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 박 토마스 ; → 골롬반 외방선교회 ; 매리지 엔카운터 ; 춘천교구)
※ 참고문헌 Jeremiah F. Kelly, The Splendid Cause(1933-1983), Columban Fathers, 1984/ Missionary Society of Saint Columban, Those who Joumeyed with Us(Deceased Columbans 1918~1995), p. 132/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 교구, 1989/ 《한국 선교 60년》, 골롬반 외방선교회, 1993. 〔편찬실〕
스튜어트, 토마스 (1925~1994)
Stewart,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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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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